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 개정2판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 멘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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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머 애들러와 찰스 반 도렌이 공저한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은 독서법의 고전이다(독서법에 대한 책을 읽으면 대부분이 이 책을 인용하고 있다). 1940년에 최초로 출판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72년에 개정하여 출간되었다(물론 이 후에 개정2판이 출간).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핵심은 모든 책을 똑같은 속도로 똑같이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적절한 속도로 읽는 능력을 갖춰야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1부 '독서의 단계'에서 독서의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해야한다고 말한다. '정보를 얻기 위한 읽기'와 '이해를 하기 위한 읽기'가 있다는 것이다. 능동적인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그 책이 어떠한 책인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체계적으로 훑어보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제2부 '분석하며 읽기'에서는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분석하며 읽기의 1단계는 그것이 무엇에 관한 책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2단계는 내용을 해석하는단계이며, 3단계는 지식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비평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모든 단계마다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3부 '분야별로 다르게 읽는 법'에서는 실용서적, 문학서적, 소설, 희곡, 시, 역사서적, 과학서적과 수학서적, 철학서적, 사회과학 서적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읽을 것인지를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다.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책을 똑같은 속도와 똑같은 방법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 다르게 읽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제4부 '책 읽기의 궁극적인 목적'에서는 사회과학서적에 집중하여, 통합적인 읽기에 대해서 할애하고 있다. 다소 어려운 책읽기 방법이긴 하지만 한가지 주제나 이슈에 대해서 다양하고 많은 책들을 비교분석하여 정리하는 책읽기의 방법이다. 

그는 마지막장인 21장 '책읽기와 정신의 성장'에서 좋은 책을 읽는 유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좋은 책을 읽는 유익은 첫째로 좋은 책을 붙잡고 씨름한 댓가로 책을 읽는 기술을 향상시켜주는 것이며, 둘째로 (훨씬 더 중요한 댓가인)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서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 안에 있는 책을 읽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능력 밖에 있는 책, 당신의 머리를 넘어서는 책을 붙잡아야한다. 그래야만 정신을 확장시킬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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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영성이다 - 영성 형성에 미치는 습관의 힘
제임스 K. A. 스미스 지음, 박세혁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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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K. A. 스미스는 2011년에 『칼빈주의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a Young Calvinist)를 통해 만났었다. 얇은 책이었기에 비교적 정보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그에 대한 첫 인상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건전한 신학적 토대 위에 현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하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를 다시 만난건 6년이 지나서다. 그의 예배 3부작 중 하나였던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는 많은 통찰과 함께 여러가지 고민을 안겨주었다. (자세한 서평은 https://blog.naver.com/mojung01/220923172276)


이번에 읽게 된 습관이 영성이다는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를 비롯한 예배3부작의 입문서 혹은 개론서로 볼 수 있다. 원제는 You Are What You Love 인데,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제가 책의 전체적 내용을 포괄적으로 지시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저자의 문제제기는 인간이 어떠한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그에 맞는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논지는 영성 형성에 훈련과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기에, 번역서의 제목은 조금 더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스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러하다. 인간은 갈망하는 존재다. 즉,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우리의 정체성의 핵심이다. 우리의 신앙도 동일하다. “앎과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열망과 갈망의 문제다(14).” 우리는 근원적으로 갈망하는 존재이기에, 이 갈망이 어디를 향해있는가가 중요하다. 우리의 문화는 끊임없이 세속적 욕망을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일깨우며, 자극한다. 이러한 세속적 가치는 매우 교묘하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가치(사랑이 아닌 대상화, 경쟁, 소비주의 등)를 분별하며, 인식해야 한다.

죄는 악덕의 문제이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 습성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을 재형성해야한다(92).” 인간은 전인격적 존재다. 죄된 본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항하는 예전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 죄를 복음으로 가득채워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구체적이며 공동체적 실천으로 그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95).”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적 차원의 인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 실천은 반복적이어야 한다. 습관의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모방이다. 이미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을 주어야한다. 하나님께 사랑 받은 우리가 먼저 사랑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전적인 사랑을 해야한다. 더불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먼저 덕을 실천하며, 본받게 해야한다. 우리는 교회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 가운데서도 덕을 형성을 위해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은혜의 방편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특별히 예전에서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교회와 그 안에서의 예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다. “교회 예배가 제자도의 핵심이다(112).” 기독교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 된다. 우리의 예배는 형성적이어야 하며, 그렇기에 형식은 중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예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 가운데 이미 형성적 예전의 형식은 존재했다. 우리는 이러한 예전을 재발견하고,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죄의 고백과 신조의 낭독, 세례와 성찬은 매우 주요한 예전적 전통이다.


제임스 K. A. 스미스의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교육과 예배에 경종을 울린다. 대부분의 예배와 교육은 지식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가 중심이 되는 현재의 예배는 다양한 은혜의 방편이 적절하게 조화되는 예배로 변화 되어야 할 것이다. 복음이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전달되고, 경험되어지는 예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책은 예배3부작에 비해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그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조금 더 친근하고 대중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읽고, 교회와 예배를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고, 참되고 전인격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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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볼프강 슈테게만.에케하르트 슈테게만 지음, 손성현.김판임 옮김 / 동연출판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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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하르트 슈테게만(Ekkehard W. Stegemann)과 볼프강 슈테게만(Wolfgang Stegemann)의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Urchristliche Sozialgeschichte)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1세기 지중해 세계의 경제와 사회적 맥락을 먼저 살핀다. 다음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여, 로마 지배 체제하에 있는 이스라엘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세부적으로 아우른다. 그들은 유대교에서의 ‘예수 따름 운동’과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 고백 공동체 운동’을 구분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명백한 차별성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내기 위하여 저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생활 영역 구분 및 계층 소속성과 결부된 여성의 삶의 기회를 주로 살핀다. 또한 지중해 세계와 초기 그리스도교 내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상황을 밝힌다. 


저자들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1세기의 사회적 환경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1차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근의 사회학적 연구방법을 도입하여 1세기의 환경을 적절하게 해석하려고 한다. 이들의 연구는 신약성경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매우 유용하다. 단순히 배경지식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넓게는 1세기 지중해 연안의 경제와 사회적 맥락을 안다면, 신약성경의 배경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이스라엘에서의 유대교의 사회사와 예수 따름 운동을 소개하는 2부의 내용도 신약성경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특별히 7장부터 그들은 신약성경의 구체적 본문을 제시하면서, 그 텍스트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이스라엘의 예수 따름 운동을 분석하면서, 세례요한과 예수를 직접적으로 관련 짓는다. 이스라엘에서의 예수 운동을 세례요한의 종말론적 회개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그들은 밝힌다. 그들은 복음서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요한복음 3장과 4장, 누가복음 7장과 마태복음 11장, 마가복음 1장과 마태복음 4장 등 신약성경의 자료를 가감없이 제시한다. 특히 예수 운동을 소개하면서 구약 성경의 문맥까지도 소개하며, 복음서의 일부분이 아닌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신약성경과 당시의 배경을 적절하게 연결짓는다.


또한 메시아적 공동체를 소개하는 8장 이후에서는 복음서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 등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며 적용한다. 더불어 바울 서신 이외에도 그리스도인의 차별이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상황 등을 분석하면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의 서신 등을 활용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신약성경의 사용으로 인해, 신약성경의 배경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사회학적인 분석에 치중하다보니, 성경에서의 본래적 의도와 장치 등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신학자들의 의견도 반영되고 있지만, 해석학적인 오류도 종종 보이고 있다. 특히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서의 바울을 대치시키면서, 사도행전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픽션이라고 정의를 하는 아쉬움도 있다. 자료를 최대한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그들의 본래적 의도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어떠한 목적과 방향, 의도로 그 성경을 기록했는지에 대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또한 1995년에 출판되었기에 최신의 신학적 결과물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들은 충분하게 숙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최신의 성서신학적 결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책의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습득한다면 훌륭한 성경의 동반자가 될 것 같다. 이들의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사회학적 결과물은 신약성경의 배경 이해에 있어 매우 탁월한 보조자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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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합본) 신 :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김용규 지음 / IVP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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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은 이 책과는 상관없이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어떠한 의미이며,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학술적인 책이기도 하지만, 실용서이기도 하다. 신학서적이면서도 신앙서적이다.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는 기독교출판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할 대상자는 기독교인들이 아니다.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읽으면 더욱 좋은 책이다. 왜냐하면 서양사의 '신'에 대해, 특히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양사의 큰 흐름 가운데 뚜렷한 흔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신'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다룬다. 우리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한계 가운데, 인간은 어떻게 신에 대해서 이해해 왔고, 그러한 정의가 가지는 약점은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대한 통전적 접근 하고 있다 책의 부제와 같이 인문학을 통해 신에 대해 말한다문학과 역사철학과학, 예술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거칠게 나누어보자면(이 책의 밑 바탕에 역사와 예술, 문학 등이 전제되어 있다), 1부는 예술과의 대화, 2부는 철학과의 대화, 3부는 과학과의 대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4부와 5부는 신학과 역사, 철학 등이 주를 이룬다. 이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총체적이며열린 태도로 연결된다자연스럽게 두번째 장점으로 이어진다.

둘째로, 비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도 객관적으로 읽을  있다모든 자료들이 신중하게 배치되었고구체적이며 실제적이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을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변증으로 하나님을 다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령, 고난의 문제 등)에 적실하게 반응한다. 이 모든 언어는 최대한 대중의 언어로 씌였다. 대중의 언어라 함은 기독교인들만이 쓰는 언어를 최대한 배제했다는 것이다. 열어두고 함께 고민해보자며 손 내밀고 있다.

이 책은 통전적이며 객관적인 동시에, 매우 쉽다다양한 학문적 접근에도 불구하고전이해 없이 읽을  있다물론 철학과 신학과학문학역사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다면 더욱 깊게 읽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전 지식 없이도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백미는 2부다. '하나님은 존재다'에서 서양철학사의 큰 흐름을 간명하게 정리하여 복잡한 사상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철학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다. 3부 '하나님은 창조주다'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과학 이론 등과 접목하여 창조와 진화에 대한 최근의 논의들을 절묘하게 헤쳐나간다. 

이러한 특징들과 더불어 국내 저자의 글이기에 가지는 장점은 매우 크다. 쉽고 간명하게 글을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내용이 많음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비슷한 사유를 할 수 있는 동일한 문화와 언어의 저자의 글은 그 글의 이면의 감정과 배경 등이 떠오르고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 글은 살아 숨쉰다. 역동한다. 그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이 된다. 그가 아파하는 교회의 아픔은 곧 우리의 문제 의식과 맞닿아있다. 

내용으로보면 900여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지만, 충분하게 독파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긴 호흡으로 즐겁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혹시 시간이 없다면,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하여 읽어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가령 서양철학사를 빨리 정리해보려면 2부를, 창조와 진화 논쟁에 관심이 있다면 3부를 읽는 식이다. 하지만 전체의 흐름이 1부부터 5부까지 연결되고 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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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차원
G.로핑크 지음, 정한교 옮김 / 분도출판사 /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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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회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일까?' 이러한 고민과 질문은 많지만 정작 우리가 그리는 교회의 모습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의 모습이라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은 거의 없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일치된 그림이 없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있지만, 신약시대의 교회가 실제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적다. 


튀빙엔 대학 가톨릭 신학부에서 신약성서학 교수로 재직했던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서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탁월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우시길 원하셨던 공동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자신이 곧 하나님나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선포와 사역의 중심에는 '하나님나라'가 있었다. 즉,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자신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하나님나라는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저자는 예수님께서 세우기 원하셨던 공동체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연속상에서 생각해야만한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12제자의 구성의 "예언자적 표징행위"로 파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빛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나라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도리어 어둠으로 쫓겨나게 될 운명에 처해졌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거룩한 남은 자들이나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언제가는 충만한 숫자로 모여 이루어져야하는 종말론적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민을 위한 "구원의 보편적 징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탄생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선취를 맛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 교회에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경험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 모든 차별은 지양된다. 모든 장벽은 무너진다. 하나님의 영은 화합의 영이며, 평화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다. 로핑크는 다른 성서학자들이 많이 주목하지 않았던 한 단어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밝힌다. 이는 "서로"라는 단어이다.  "ἀλλήλων"은 개역개정에서 '서로, 피차, 각각'으로 번역되어지는데, 주로 '서로'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이 단어의 용례를 살피면서, 공동체의 특징을 "서로 함께"를 실천하는 것에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며, 온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을 받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로핑크는 신약성서의 사랑은 보편적 인류애가 아닌, 거의 예외 없이 공동체 내의 형제애를 뜻한다고 말한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은 대조사회 혹은 대척사회로서 존재한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세상과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화되어 그분의 진리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다. 여느 사회의 거짓과 허위와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교회의 거룩함은 세상의 거짓을 폭로한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빛으로 밝히 드러난다.  교회는 스스로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로 인하여 거룩해진다. 용서받은 백성은 죄가 없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 희망이 자라나는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과 차별되어진다. "십자가와 고난의 역사라고는 또 다시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되 또한 그분과 함께 일으켜지기에 거듭 새삼 부활절을 경축할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말한다(244)."


교회론에 대한 다양한 책이 있지만, 로핑크의 이 책은 다른 책이 꼭 한번은 참고하는 책이다. 즉, 교회론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부제에서 보여지듯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차원'을 분석한다는 것은 다소 생경한 경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원초적 교회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재 교회가 배우고 닮아야 하는 부분은 계승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이론이나 사상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대안이나 응답일 것이다. "삶의 자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본질적인 부분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지금 현재 이 땅에서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가 많아지길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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