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 혼돈의 시대를 건너온 한 신학자의 비망록
김기현 지음 / 복있는사람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나. 도대체 어디에 분류해야 하나. 놀라워서 정신이 혼미하다.


육신의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바로 부르고, 마침내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가는 이야기인가. 몸으로 살아내는 세계관과 책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치열한 삶과 교회, 용서와 소명의 기록인가.


이 책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래서 분류하기 어렵다. 자서전이면서 신학서이고, 영성서이면서 한 사람의 신앙적 비망록이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하나님을 아바로 부르기까지의 여정이 첫 물길을 낸다. 그러나 그 여정은 개인적인 치유에 머물지 않는다. 고아와 나그네의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그를 삶의 가장자리로 이끈다.


교회의 제자 훈련과 1980년대 거리의 사회 참여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는 세계관을 세상을 보는 안경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 걷는 몸으로 다시 배운다. 정의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명분이 될 수 없지만, 처벌만으로 상처와 관계가 회복되는 것도 아님을 고백한다. 그렇게 신학은 권력을 대하고, 약자를 환대하고, 원수와 다시 관계 맺는 삶의 방식이 된다.


읽고 공부하는 일은 그에게 유배를 견디는 법이자 아버지의 부재를 건너는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말하면서 정작 하나님을 잃어버릴 만큼 몰두한 끝에, 앎이 기도와 몸과 삶을 살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배운다. 여러 스승에게서 건네받은 질문도 마침내 남의 이론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낼 신학이 된다.


책을 읽고 쓰는 일은 밥벌이이자 목회가 되고, 이중직은 부끄러운 차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또 하나의 소명이 된다. 건물과 프로그램을 내려놓은 가정집 교회에서는 둥글게 앉아 말씀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는 일이 교회의 본질을 되묻게 한다. 위기 청소년과 사회적 약자에게 책을 읽히고 글을 쓰게 하는 희망의 인문학 또한 강단 밖의 설교가 된다.


이 책에서 유배는 실패하거나 밀려난 자리의 다른 이름만은 아니다. 도망치고 싶던 변방은 끝내 평안을 구해야 할 선교지가 되고, 숨으신 줄 알았던 하나님은 떠나가는 등이 아니라 앞서 걷고 업어 주는 등으로 발견된다. 유배가 끝나는 대신 사명이 시작된다.


책과 함께했기에 쓰러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고민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벼르고 벼른 앎은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의 문장은 따뜻하면서도 냉철하고, 묵직하면서도 섬세하다.


독자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이 책과 만날 것이다. 한 사람의 스승을 만날 수도 있고, 오래 묻어 둔 자기 삶의 질문과 마주할 수도 있다. 단 한 줄의 문장 안에도 여러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오랜 삶이 포개져 있으니, 오래 읽고 오래 생각하고 끝내 살아낸 사람의 문장은 역시 다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