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삶에 공감하려면 ‘내 삶’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어 내려면 ‘내 문장’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내 문장’은 바로 ‘내 삶’을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이게 바로 글쓰기와 글 읽기의 시작점 아니겠는가.

규칙과 기술을 익히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문장을 읽거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기법을 익힌다고 해서 내 손끝에서 나만의 문장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이 첫눈에 말끔하게 해독되는 것도 아니듯이.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삶의 첫 문장이든 글쓰기의 첫 문장이든. 우선은 소설의 첫 문장을 통해 내 글쓰기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더불어 내 삶의 첫 문장까지 다시 살펴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언제부터인지 내 안에서 더 이상 그런 마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도 않을뿐더러 기대감도 사라졌다. 소설책을 봐도 재미가 없고 삶은 그야말로 균일한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 같아져서 드라마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실망하기만 한 건 아니다. 어쩌면 이야기나 삶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니까.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 기대할 것도 없을 때 이야기는 이제까지와 다른 면을 드러내 보이고, 삶 또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마치 꿈속처럼 제각각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젠 소설책을 읽을 때든 삶의 모퉁이에서 다음 장면을 앞두고 있을 때든 내가 궁금해하는 다음은, 다음의 내가 어떤 나일지뿐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내가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또는 삶의 다음 장면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다음의 나.

상대가 내게 누구냐고 묻지 않고 뭐냐고 물을 때, 대답하기 난감하다. 아니, 난감하다기보다 곤혹스럽다. 뭐냐는 물음 앞엔 대개 ‘정체’가 붙기 때문.

이럴 땐 저 두 문장처럼 고양이든 침대든 정확하고 분명한 술어가 간절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또 누구에게든 주저 없이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 그런 존재가 마냥 부러워진달까.

하지만 어쩌랴. 내 정체를 규정하는 건, 내 안에 존재하면서,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헷갈리게 만드는, 바로 그 ‘분명하지 않은 요소들’인걸.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 박형규 옮김, 『안나 카레니나』, 문학동네, 2010.

죽음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비카스 스와루프, 조영학 옮김, 『6인의 용의자』, 문학동네, 2009.

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삶도 죽음도. 물론 그사이에서 겪는 행복과 불행의 모습도 다르고, 그 행불행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다 제각각이다.

같지 않아야 마땅하다. 우린 모두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이 자명한 사실을 왜 자꾸만 부정하려는 건지.

말만 해도 그렇다. 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같지 않은 걸 ‘같잖다’라고 표현했을까.

무섭다. 말도 무섭고 그 말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도 무섭고.

아무도 나와 같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털끝만큼도 같지 않기를…….

이곳 사람들은 나를 안다.
이창래, 정영목 옮김, 『척하는 삶』, 알에이치코리아, 2014.

나는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최수철, 『매미』, 문학과지성사, 2000.

자기들끼리도 "난 걔가 그런 놈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야" 하고 말할 때가 잦은 걸 보면 서로 잘 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 같고, "세상 참 말세다" 하고 탄식 아닌 탄식을 종종 내뱉는 걸 보면 이곳에 대해서도 역시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를 비롯해 이곳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곳이 어딘지도 잘 모르고 서로에 대해서도 역시 잘 모르는 것이다

다행이다. 이곳이 어디고 저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과연 이런 멋진 꿈을 꿔도
되는 거냐 싶은 꿈을 꿨다.
박상, 『말이 되냐』, 새파란상상, 2010.

무서운 꿈을 꾸었다.
에쿠니 가오리, 김난주 옮김, 『냉정과 열정 사이』, 소담출판사, 2000.

무언가 결정을 내리기에 일요일 오후는 나쁜 시간이다.
프란세스코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권상미 옮김, 『일요일의 카페』, 문학동네, 2014.

일요일 오후에 우리는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일요일 오후는 어쩐지 세속적인 세상과는 동떨어진 시간처럼 여겨지니까.

당연히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은 그 ‘성스러운 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시계가 멎었어요.
이윤기, 『뿌리와 날개』, 현대문학, 1998.

세탁기가 고장 났다.
김희진, 『옷의 시간들』, 자음과모음, 2011.

뭔가 고장이 났을 때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생각하게 되는 건 마치 삶이 멈춰 선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리라. 고장이 난 것이 기계가 아니라 내 삶이고 나라는 생각. 내 삶과 나는 설계도도 없고 작동 원리도 알 수 없으니 허둥댈 수밖에.

그래서일까. 소설의 첫 문장에서 뭔가 고장이 났다는 표현을 만나면 대개 누군가의 삶이 고장 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냄새가 먼저였다.
구효서, 『동주』, 자음과모음, 2011.

냄새는 악어빌딩 어디에나
스며 있었다.
김중혁,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문학과지성사, 2014.

이 냄새다.
하성란, 『A』, 자음과모음, 2010.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난다.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창비, 2009.

따뜻한 날들이면 우리 집 벽에서 부드러운 우유 냄새가 올라온다.
메이어 샬레브, 박찬원 옮김, 『네 번의 식사』, 시공사, 2013.

평생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 무엇을 챙겨 가야 할까?
라이오넬 슈라이버, 박아람 옮김, 『내 아내에 대하여』, 알에이치코리아, 2013.

나는 허름한 배낭에 MP3와 소설책 한 권을 넣고 집을 떠났다.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문학동네, 2009.

돌아갈 수는 없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 이나경 옮김, 『라스트 런어웨이』, 아르테, 2014.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에드가가 말했다.
헤르타 뮐러, 박경희 옮김, 『마음짐승』, 문학동네, 2010.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다.
은희경, 『그것은 꿈이었을까』, 현대문학, 1999.

쓸데없이 이런저런 말 하지 않고 침묵에 잠기고 싶은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불편해서 그게 잘 안 된다. 소심해서 상대를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쪽이 먼저 입을 열게 마련인지라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을 늘어놓게 되고 결국 내 꼴이 우스워지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 늘 그렇다.

자연스레, 침묵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말하고 싶을 때 선뜻 나서서 말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고 능력이지만, 침묵하고 싶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침묵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고 능력이라는 걸 매번 절감한달까.

내가 체포되어 경찰에 끌려오다니, 정말이지 내 생애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일지, 『진술』, 문학과지성사, 2000.

"이대로 가라앉을 수만 있다면……."
레지 드 사 모레이라, 이희정 옮김, 『책방 주인』, 예담, 2014.

나쁜 생각이 들어서 당신을 보러 왔어요.
니나 부라위, 기영인 옮김, 『나쁜 생각들』, 뿔, 2011.

모르는 척하는 게 차라리 나은 것들. 가령 연극무대 뒤의 어수선함 같은. 혹은 배우들의 사생활. 대가들의 서툴기 그지없는 초기작.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행동. 상대에게 가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도는 시선. 남몰래 품은 나쁜 생각들. 세상이 ‘이면’裏面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

몰라도 된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알아도 굳이 아는 척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아는 척하는 사람에겐 도대체 무엇을 안다는 것이냐고 되묻고 싶은.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해 주고 싶은.

그런 것들. 세상이 ‘이면’이라고 부르는. 그 가운데 내 몫이 된. 내가 원해서라기보다 어쩌다 내 몫이 되어 버린. 나쁜 생각들. 집요하게 이어지는 그것들. 자신의 삶을 온통 단 한 뼘의 기억 속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끊임없이 맴도는 치매 환자처럼, 나로 하여금 하루 종일 그 안을 맴돌게 만드는. 한 뼘의 생각

책은 나와 누군가를 매개하기도 하고 내 삶의 어느 날을 의미 있는 날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내게 다른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책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거나 바꾸고,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소개받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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