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인문학 - 돈의 흐름을 읽고 경제의 정곡을 찌르는
가야 게이치 지음, 한세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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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분에 인문학人文學 , humanities을 검색했다. 인문학이란 학문의 영역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현대과학에서는 그 구분이 불필요해졌지만, 인문학은 인간 활동을 자연과학은 인간을 제외한 사물과 현상을 연구한다고 분류되어 있다.

 

무척 놀란 것은 ‘미국 국회법’에 인문학의 학문 영역이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어(language), 언어학(linguistics), 문학, 역사, 법률, 철학, 고고학, 예술사, 비평, 예술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 (교육학용어사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부(富)’라는 것은 - 자신의 집, 창고, 계좌 등등에 필요 이상의 가치를 쌓아둔 것 - 은 인간만이 가진 개념이고 시스템이다. 이 책에서 부자와 인문학의 관계가 인문학적 배움을 갖춘 이의 결과적인 부인지, 인문학적 배움을 부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각 장에서 사회학, 경제학, 수학, 정보공학, 철학, 역사학을 다룬다. 저자 본인의 경험기는 아니고, 사례를 통해 제시하는 방식이다. 특히 관심이 있었던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는 일단 실행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옳은 태도다.

• 나라와 시대에 상관없이 차별 문제는 돈 문제와 얽혀 있다.

• 전쟁도 마지막에는 돈 이야기로 끝난다.



 

어느 분야건 선점한 뜻이 시대와 저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일독을 마친 후 이해한 내용과 원제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인문학은 liberal arts로, 정의는 ‘진리를 깨우치는데 필요한 종합적인 지식과 생각이 인격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세계의 연결망이 촘촘해질수록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작아진다고 느끼지만, 작은 것이라도 바꾸고 싶거나 바로 잡고 싶을 때에는 모든 게 막막하다. 인간이 서로에게서 계속 배우는 존재라면, 모든 것은 학습 자료가 될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집단의 지성을 믿고 싶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이지만, 적어도 다른 제도보다는 낫다.” Winston Churchill


 

전 세계의 경제가 얼어붙는 가장 어두운 시간이 온다는 전망을 오늘 만났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인류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인문학 지식이라곤 없는 직업 기술자들이 통치 권력이 되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도, 인문학을 포함한 수많은 배움은 선택의 여지없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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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23 : 인도와 인도아대륙 1 - 전근대 편 ㅣ 먼나라 이웃나라 23
이원복 글.그림, 그림떼 그림진행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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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이렇게 오래 만나고 보게 될지 몰랐다. 어릴 적엔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만화였다. 교과서는 워낙 지루하고 천편일률적인 참고서들도 재미가 없어서, 역사 만화가 출간된 것이 즐거웠다.

 

학습만화라고 하지만, 진지하게 공부를 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암기력이 워낙 없기도 하고, 교과서처럼 공부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서 아직 가 본 적 없었던 세계 각국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가 생기고 커지는 그런 효과가 가장 강했다.

 

성인이 되고 기다렸다 얼른 펼치는 책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책과는 아주 다른 외모를 갖춘 업그레이드판을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소재사나 주제사도 무척 재미있지만, 커다란 그림과 흐름을 경험하게 해주는 책도 오랜만에 반갑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어느 나라도 편안하지만은 않았겠지만, 오랜 분쟁과 전쟁과 비극이 많은 곳들의 이야기가 무겁고 아프다. 끝나지 않은 전쟁도 발발의 위험도... 분단국에 산다는 걸 너무 자주 절감하는 요즘의 시절과 겹쳐지고 합류하기도 하며 읽었다.

 

인도란 무엇일까. 어떤 곳일까, 실체가 있을까, 혹은 내가 가진 이미지들은 무가치할까. 이 책의 인도아대륙 전체를 따라 다니다 보니, 오랜 역사는 물론 작금의 상황도 풀릴까 싶게 복잡하다. 해설이 있다는 점이 편안했다.



 

꿈쩍도 하지 않을 듯한 카스트 제도, 극도로 갈등하면서도 공존하는 종교들, 히말라야 산맥처럼 묵직하게 뿌리내린 세계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누구도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적 특성들, 외부의 침략과 식민 지배 이후에 비로소 국토와 국명이 통일되고 단일화된 아이러니...

 

다시 목을 부어오르게 하는 감기로 기분이 가라앉는 주말 저녁, 마지막으로 ‘행복이 국가 목표’이고 정기 설문조사의 목적이 ‘국민 행복도 측정’인 부탄을 마지막 여행지로 머물러 보았다.



 

예전처럼 휴식이고 즐거움이면서 여전히 재밌는 경험이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만난 순간들이 변하지 않은 시리즈 제목 덕분에 잠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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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 까보슈 ㅣ 문지아이들 그림책
다니엘 페나크 지음, 그레고리 파나치오네 그림, 윤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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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 한 동화를 읽지 못해서, 간단한 소개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그래픽노블을 보았습니다. 인간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 적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개(종이자 이름)’의 여정이 시난고난한 삶을 살며 떠도는 인간과 닮았다고 느낍니다.

 

이 책의 원작은 1982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까, 다니엘 페나크의 문제 의식과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그 시절이겠지요. 40년이 지난 읽는 한국인 독자는 그동안 접한 여러 기사들과 자료들이 떠올라서, 여전히 시의적절한 내용과 메시지에 슬프고 아픕니다.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경고하고 고발하는 작품들은 적지 않지만, 이 책은 인간의 시점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보는 경험을 한다는 점이 귀하고 특이한 점입니다. 몰입을 할수록 위험과 불안이 거대해지는 도시 환경입니다.

 

“품종견이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완전히 인위적인 거야.”



 

인간은 야생동물들이 사는 터전을 빼앗고,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들을 멋대로 변형시키고 매매하고 학대하고 버리기 죽입니다. 1982년 전후에도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메시지가 정확한 순간 울림을 전할 때마다 무척 복잡한 기분입니다.

 

동화도 좋았겠지만, 큰 판형에 직관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들은 논픽션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효과도 있습니다. 상세 내용은 잊어도 잊지 못할 장면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고민도 주저함도 없이 개를 마구 버리는 사람들... 분명 현실이겠지요.

 

하나의 생명을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생명의 가치도 비슷하게 느끼겠지요. 자신이 힘이 있고 우위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 같은 종인 인간도 그렇게 버릴 수 있겠지요. 이 책 역시 ‘개’의 이야기이고 ‘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 세상의 풍경이 어지럽습니다.

 

“삶에 있어 문제는, 결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도 늘 변화가 일어나는 데 있다.”

 

‘개’가 단지 귀여움을 받고 사랑을 받고 보호 받다 버려지고 슬퍼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모든 경험에서 ‘개’는 배웁니다. 자신이 살아 갈 현실을 똑바로 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관계의 주체가 되고자 합니다.

 

“사과가 날 좋아하니 그걸로 충분하다. 두 달 만에 나는 이 꼬마를 길들이게 되었다. 나의 여주인은 내 친구가 되었다.”



 

이런 변화와 의지를 읽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개’의 시선으로 내내 책장을 넘겨왔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결말과는 별개로 2022년의 현실에는 복잡한 관련 문제들이 가득합니다.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겠지요.

 

어린이들은 재밌게 읽고 안도하고 행복해질 수도 있을 듯합니다. 어른 독자들의 감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저는 1982년에 전송된 지금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받고 다른 책들을 떠올렸습니다. 언젠가 이 책과 더불어 모임에서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게 되면 좋겠습니다.

 

고전이 된 동화가 그래픽 노블로 더욱 강력해져서 우리 곁에 왔습니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동물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 우리 모두 참 할 말이 많아질 것만 같습니다. 40년 늦었지만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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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평전 - 아홉 개의 사물을 통해 본 브론테 자매의 삶과 문학
데버러 러츠 지음, 박여영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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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가 아닌 자매(들)의 평전. 여러 작품을 읽었는데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The Tenant of Wildfell Hall)은 읽지 않았다. 책을 구하기 어렵고 드라마를 다 보기엔 시간이 부담스러워서 엉뚱하게 BBC 방송을 시청했다. 몇 개의 오디오북은 영국인 녹음이 아니라 몹시 어색해서 포기...

 

https://www.youtube.com/watch?v=f7U22YYTi4o

 

<In Our Time: S24/03 The Tenant of Wildfell Hall (Sept 30 2021)>


 

작가들의 평전이니 당연히 그들의 작품들이 자주 언급된다. 특이한 점은 부제에 드러나듯 ‘아홉개의 사물’을 통해 살펴본다는 점이다. 그 점이 흥미로웠다. 이론으로 가득한 평전을 즐겨 읽지 않는 아니 못하는 편이라서.

 

짐작한 사물들도 있고 시대적 상황을 알려 주는 신기한 것들도 있다. ‘사물’은 크고 작은 물건들에 한정되지 않고, 거리와 마을과 동물들과 행위로까지 확장된다. 오독일 수 있으나 내게는 사물 자체보다는 사물로 인한 행위들과 시간들과 풍경들이 저자들을 더 잘 설명하는 대상으로 읽혔다.

 

작품들을 읽었다고 했지만, 사물들의 상징과 의미와 역사를 몰라서 미처 다 상상하지 못한 묘사들이 참 많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의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배치하지 않는 것이 소설의 세계라면 작품 이해에 사물의 이해도 무척 중요할 것이다.

 

세세하게 작품의 디테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흐름을 따라 정신을 놓치고 읽는 버릇이라서, 사물을 다룬 평전을 읽고 사물을 통한 작품 이해 방식에 대해 처음 고민해본다. 현실적으로는 사망연령이 상대적으로 젊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망자들을 기억하기 위하 고안한 여러 사물들에 애틋함을 느낀다.

 

아버지만 남기고, 4남매가 연이어 사망한 브론테 일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망자의 머리카락을 주고받는다. 작품 속에서 그런 장면들이 자주 나왔다. 당시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는데, 육체의 일부라는 점에서 무척 감정적인 사물이란 기분이다.

 

인간이 유일하게 경험하는 현실은 일상뿐이다. 사물은 하찮은 물건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평범한 것들이 전부이고, 통속은 어쩌면 진실과 한통속일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뇌는 선입견, 상투, 편견, 오해, 오독, 환상, 거짓, 유치찬란한 모든 것을 선호한다고 하니까.

 

호흡이 곤란한 감기 증상과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약물로 제 정신이 아닌 상태라서 숫자와 형태를 가진 사물을 따라다니며 읽는 시간이 편안했다. 작가나 작품이나 해당 시대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무척 반갑고 귀한 자료이자 평전이다. 감사히 읽었다.



“혼자 책을 읽는 행위 역시 풍부한 쾌락을 불러온다. 말없이 책을 응시하며 한 사람의 내면을 따라잡는 것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훈련 과정이었다. (...) 집안에서도 특히 창가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책에 빨려 들고, 그러다가도 문득 눈을 들어 황야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브론테 자매의 글쓰기는 책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책을 만들고, 읽고, 책에 직접 글을 쓰고, 책에 의지해 글을 쓰고, 책에 관한 글을 썼다.


“휴대용 책상을 갖고 있다는 건, 그 주인이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마치 오늘날의 랩톱 컴퓨터처럼) 집 안 여기저기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방이 더 조용한가, 따뜻한가, 혹은 빛이 잘 드는가에 따라 옮겨 다닐 수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만지고, 저것을 입고, 유령들을 연상시키는 집에서 글을 썼다.”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가자, 지금 우리에게 불어오는 바람은 다시 불지 않으리니.”

 

“말해다오, 관찰자여, 지금이 겨울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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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사는 이유
김승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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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엉망이라서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근래에 허무하고 서글픈 글을 읽었다. 실험 자료 분석이라 그럴 기분을 느낄 필요는 없었지만, 가끔 내가 발작처럼 묻고 싶은 이유가 적혀 있었다.

 

불편한 건 불편한 거고, 그래도 말이 되는 소리는 당장 부인해도 밤에 잠들기 전에 슬그머니 수긍될 거라고 믿었다. 때론 그래서 힘을 내어 끝까지 지적을 하기도 했고, 그런 힘든 일은 내게 해주는 이들을 좋아하고 감사했다.

 

어릴 적엔 사해동포의식 같은 게 있어서 모두를 같은 에너지로 대하려고 했지만, 미미한 체력은 그런 안배를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는 좋아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집중하고, 싫은 이들에게 애를 써서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그래서 될 일도 아니고 지치기만 한다.

 

내가 읽은 그 자료 분석에는 예를 들어서, “생물 다양성이 80% 감소했습니다.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빠른 대책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면 사람들은 꿈쩍도 안 하고, “19%까지 줄어든 생물다양성이 1% 가량 증가했습니다. 증가율을 높이기 위해 참여해주십시오.”라고 하면 좀 더 많은 이들이 설득된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조삼모사가 인간우화 같지만, 뭐든 효과가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다행이라고 한편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가, 가면(탈, persona, mask)가 필요한 인간, 왜곡된 시선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인간, 위악이 망치는 삶, 존재하는 것들의 보이지 않는 뒤쪽을 오래 보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

 

죽음의 공포를 나누려고 구명 재킷의 끈을 서로 묶은 채

아무런 말이 없네

 

(...)

 

이 연둣빛 봄은 어이없이 슬프게

가고 있었다


스스로가 벗지 않으면 누군가가 벗기는 것이 맞을까. 탈이 벗겨졌다고 삶이 달라질까. 뒤쪽을 볼 줄 아는 시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모두가 혹은 충분히 많은 이들이 정면을 함께 응시하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은 여전히 유의미할까.

 

(...)

 

사탕수수를 조금 먹다가 그만 덫에 걸려

손자놈 코가 반쯤 잘려 나가 버렸어요

잘린 코를 상아 위에 걸쳐 놓고 살다가 죽었죠

 

(...)

 

시인은 생활인으로서 중심을 잘 잡고 글도 쓰고 사유도 깊어 가는데, 어둡고 가려진 것들을 보는 목적은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과의 변증법적 변환을 위한 것이라는데, 나는 또다시 마주한 삶의 부조리에 마음이 어두워진다.

 

(...)

 

내 봄날의 슬픔이 식탁에 차려져 있으면

그는 접시째 먹어

비로소 슬픔임을 잊어버린 슬픔이 된다

 

이것이 그와 사는 유일한 이유다

 

시란 한없이 직설적일 수도 있는 무기이다.

 

마을에 달랑 나 혼자 산다

남편은 시든 지 반백 년

 

(...)

 

저절로 피어난 망초와 여름을 지내고

긴 겨울밤에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젊은 남편을 그렸다가 지운다

 

(...)

 

나 죽으면

마을은 텅텅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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