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마음 - 야생의 식물에 눈길을 보내는 산책자의 일기
고진하 지음, 고은비 그림 / 디플롯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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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살랑거리는

어린 나뭇가지들은

대지의 식탁이다.”

 

<풀잎에 바람이 스치고> 테드 휴즈



분명한 11월, 입동이라는 데 꽃이 피었다.

설마 환각인가 싶어 사진을 찍어도 찍힌다.

잎은 시들어 푸른 색감도 없는데

꽃은 저토록 제대로라니...

 

철쭉이 분명한 꽃을 보고

진달래가 피는 봄이 연상되는

기름이 자글자글 화전이 생각나는

어색하고도 그리운 순간

 

“음식을 먹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갖는

단순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밝은 빛과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빛이라고 해도 좋다.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이 열리고 자비심을 갖게 된다.

아직 부족하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세상에는 모든 인간이 먹을 충분한 양식이 있다.

다만 우리가 기꺼이 나누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의 양식이 될 것처럼 보이는 열매를 만났다.

좀 더 추워지면 좀 더 귀해질 것 같은

가을볕을 품은 낮은 흙 담벼락에

따스한 온기가 보인다.

  

“네 앞에 앉아

너를 바라본다

너를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눈부신 것이냐”

 

김용택



다정한 분의 선물로 만나게 된

다정하고 아름다운 책과

함께 하는 출사(?) 산책,

 

사진과 설명만 읽을 줄 아는

야생초에 관한 한

무지의 골짜기에 사는 독자이다.

 

여기저기를 둘러 봐도 ‘야생초’를 하나 알아볼 길이 없다.

늦가을 계절 탓이라 위안을 삼으며

‘초’ ‘꽃’ ‘나무’ 들을 담아 본다.

 

사진과 글이 맞지 않더라도

책과 글을 봐주시길...

봄꽃을 본 후 노래한 시지만

11월의 국화도 아름답긴 한 가지


“강원도 원주의 시골에 칩거하며

손수 농사를 짓고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는

씨앗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을 남겼다.”

 

“어떤 작가는 소설가란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다.

씨앗이 함축하고 있는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꽃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잎이라 해도 열매라 해도 씨앗이라 해도

닮은 붉은 색들

 

책을 낮게 자리 잡으려 하는 동안

땅에 가깝게 내린 시선에는

휙휙 지나가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이들이 참 많았다.

 

모두들 가을처럼 아름답다.

  

“세계 역사에서 지렁이를 주목하고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종의 기원>이라는 저서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박물학자이면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

그는 지렁이가 오물과 썩은 낙엽을 어떻게 흙으로 바꿔놓는지,

우리 발밑에 있는 땅이 지렁이의 몸을 통해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과학자란 오감을 통해 관찰한 데이터를 모아 이론을 정립하는 일을 하지만,

다윈이 ‘연구’하기 전에 논문 자료를 발표한 적은 없으나

지렁이를 더 잘 알고 있는 이들도 아주 많았을 거라 믿는다.

 

평당 얼마, 이렇게 땅이 거래의 대상이 아닌 오랜 시절

인류는 말 그대로 땅에 목숨을 빌어 살았을 것이다.

땅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수렵 채집이란 말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 한다.

육식 동물의 수렵 성공 확률이 1/10이라 하니 인간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사냥보다 자연에서 주워온 것들이 식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터.

 

“어떤 벌판이든 지표의 흙 전체가 몇 해 단위로 지렁이 몸통을 거쳐 왔고,

앞으로도 거쳐 갈 것이라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

사람이 지구에 살기 훨씬 오래전부터

지렁이들이 땅을 규칙적으로 쟁기질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땅을 갈고 있다.”

 

산책길에는 지렁이님을 못 만나고 귀가해 생각해보니

퍼머컬처permaculture를 전공한 친구의 강요로(?) 만든

커피박 콤포스트(compost 퇴비)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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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방 ㅣ 책 먹는 고래 25
최미혜 지음, 어수현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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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제목이지요. 어떤 계기로 이 동화를 만드셨는지 조금 알아서 더 겁이 나지만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거쳐 위로도 담아 주셨을 거라 믿고 펼쳐 봅니다.

 

2년 전 초2 꼬맹이가 애니메이션인지 학교 친구였는지 모를 동기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외국어란 세계의 확장이라 여기니 반가웠습니다. 덩달아 저도 같이 초급 동영상 강의도 듣고 회화 연습도 했지요.

 

그러다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악화되고, 불매 운동도 거세지고, 불가역적 문서와 소녀상 등으로 인한 역사적 아픔들도 부상하니, 아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몹시 놀랐을 것이고 나름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한 후 일본에 놀러 가는 일도, 일본어를 배우는 일도 그만 두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척 단호하게 언니들을 괴롭히고 죽인 일에 대해서는 용서를 빌어도 용서할 수 없다, 란 입장 표명을 하셨습니다.

 

2년이 지나 아직 그 일을 기억하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만 직접 물어본 적은 없고 이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6학년 혜주는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복잡해집니다. 치매가 진행 중인 왕할머니가 집으로 오셔서 방을 함께 써야 합니다. 할머니는 욕도 가끔 하시지요. 어릴 적 귀여워해주신 기억은 없고, 어쨌든 낯선 이와 한 방에 있으니 모든 것이 불편합니다.

 

목수일을 못하게 된 아빠는 자신이 쓸모가 없어 버려졌다는 것이 슬프다고 속마음을 털어 놓고 부탁하시니... 지내기는 하는데, 왕할머니는 자신을 여동생으로 알고 오히려 방을 같이 쓰기 싫다고 하시네요.

 

단기 기억 장애가 있지만 의식이 또렷해질 때면 할머니도 상황이 힘이 듭니다. 배변 실수를 하고 기저귀를 하고 손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모두 기억하니까요. 그리고 오래 전 친구와 고향으로 의식 여행을 떠납니다.

 

행복했던 기억도 있지만, 일본 순사가 이장과 함께 왔던 날은 여전히 끔찍합니다. 구명책으로 약혼자라 나선 이와도 가족과도 헤어져 이름 모를 일본 근처 섬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하게 된 시작의 날이니까요.

 

아픔이 진해서 현실의 가족을 다시 잊어버립니다. 날 할머니라 부르는, 엄마라 부르는 이들을 낯설어하며. 어떤 엄마로 살았는지, 남편은 누구였는지, 고향의 연인은 어디에 있는지.

 

물속에 잠겨 있는데 주변에 저렇게 큰 거머리들이 떠다니다 몸에 들러붙는다니. 할머니의 꿈에 제 악몽은 견줄 바가 못 되는군요.

 

6학년인 혜주가 혼자 고민하다 마음을 고쳐먹는 전개가 아니라서 좋습니다. 할머니의 일기장을 읽고, 연극반 선생님의 이해와 격려를 받아 극본을 직접 쓰고 연극 공연을 합니다. 생존자들의 비극이나 일본군의 만행에 주목하기보다, 밝은 곳으로 드러내어 아팠겠다, 공감하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좋습니다.

 

동화 속 이야기지만 빛나 보이고 뭉클하면서도 무척 슬프고 화도 나고 늘 그렇듯 복잡한 기분입니다. 그런 아픈 역사가 있었지만 사과를 제대로 받고 처벌도 하고 보상도 받았으니 마음이 좀 풀린다! 이런 얘기하며 살 수 있을까요. 

 


나쁜... 사과도 할 줄 모르는 나쁜...

.

.

.

“성노예가 뭐야?”

 

작가는 이 단어를 사용하네요. 명칭도 중요하고 정확한 내용이 전달되는 것도 중요하지요. 제가 처음 접한 단어는 무려 ‘정신대(挺身隊)’였습니다.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挺 빼어날 정 身 몸 신 隊 무리 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몸을 던질 각오로 조직된 부대)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중학생이 되면서 구체적으로 다가왔어요. 국사 선생님이 들려준 위안부 이야기. 일본은 그들을 종군위안부라 부르며 당당했고,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힘든 성노예 생활을 한 어르신들은 지금도 숨죽이며 살고 있습니다.”

 

올 해 초 최고의 망언 중 하나인 존 마크 램지어의 논문과 발언 기억하시나요.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였다.” 동화 속 왕할머니는 16세로 나오지만, 실제 평균 연령은 12~13세였다고 합니다. 일본 장학금이 그렇게나 좋았나 봅니다. 뭐라 말도 아까운 자라 말로 화낼 가치를 못 느낍니다.

 

더 기막힌 것은 대한민국 국정원이 일본 극우에게 이 일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이들의 일정을 포함한 정보를 넘겼습니다. 거래도 아니고 그냥 갖다 줬습니다. 공항에서부터 검색과 모욕을 당하도록. 이런 일을 겪으면 혼란스럽습니다. 여전히 어딘가는 누군가는 식민지인 듯해서.

 

작가는 잠이 안 올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타인의 삶에 깊이 공감하는 이들이 그렇듯 작가의 시선은 ‘우리’ 민족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더 확장됩니다.

 

“지금도 붉은 방은 존재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추운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은 방입니다. (...) 그들을 하인 취급하며 인격적으로 학대하는 사회가 붉은 방이죠.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무심한 어른과 외면하는 아이가 있는 곳 또한 붉은 방이라고 생각해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사회에서 차별받는 세상이야말로 붉은 방입니다.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새 옷을 안 사겠다고 외쳤어요. (...) 점점 붉은 방으로 변해가는 지구를 그냥 둘 순 없어요.”

 

11월 10일,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어떤 대접을 혹은 취급을 받게 될까 생각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과도한 심정적 집착인가요. 2007년, 2010년, 2012년 모두 입법 무위되었으니 그럴 만도 한가요. 반평생을 이미 살아버려 더 초조한 성격이 되나 봅니다. 모두들 안온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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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친구 맞니 ㅣ 책 먹는 고래 26
서가숙 지음, 유희경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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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구’가 아니라 ‘친구 맞니’라고 하는 제목이 궁금증을 키운다. 한 서식지에서 만날 가능성이 적은 바다거북, 토끼, 독수리라는 설정도 특이하다. 그래서 더 재미난 일들이 가득 펼쳐질 지도.

 

“친구라, 어떤 친구? 친구란 서로 도와줘야 하는데, 서로에게 어떤 일을 도와줄 수 있지? 사는 곳도, 먹이도 다른데 친구가 되면 만나서 뭘 하지?”

 

“우선, 친구를 해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먼저 해 줘.”

 

 약속은 약속이라 이 셋은 ‘친구답게’ 살아 보려는 노력을 해본다. 그런데 예상한 것보다 잔인한 상황이 펼쳐지고 그에 상응하는 복수도 이루어진다. 두근두근 놀랐다.

 

인간 사회에서는 드문, 신뢰를 저버리는 일에 대한 인과응보가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 교훈이 될 지도. 문득 제 본성을 따라 살아야하는 독수리가 성급하게 친구가 되자는 약속에 동의했다는 - 속셈이 따로 있는 듯도 했지만 - 생각을 한다.

 

억지로 친구가 되는 일은 시작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일까. 일단 약속을 한 것에 관해서는 지켜야 한다는 걸까. 작가는 어떤 메시지에 더 공을 들였을까.



강력한 고양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세금 논의를 거하게 하는 진중한 전개가 펼쳐진다.

 

세금은 공평해야 한다, 천재지변의 경우에는 피해를 감안해서 면제하고 복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세금 낼 형편이 아니면 노동으로라도 메워야 한다. 한 번의 호의가 선례가 되어 모두가 세금 면제를 원하면 재정이 무너진다.

 

설득을 하는 고양이와 반발하는 늑대의 캐릭터들이 인간 사회의 여느 이론가들 못지않다.

 

얼핏 자기 생각이 있고 소신이 있어 보이던 고양이는 아주 복잡한 캐릭터이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교묘하고 치밀하게 음모를 꾸미기보다는, 민폐로 보여서 아쉽기도 했다. 너무 빨리 읽지 않고 고양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떠오르는 인간들에 대입해보면 갑갑한 마음이 한 가득이다. 어떤 이론으로 포장해도 결국엔 제 욕심 차리느라 그로 인한 공동체 전체의 부작용을 생각도 못 하고, 사후에 변명하기에 급급하니까.

 

동물 왕국은 인간 사회보다 처벌이 더 강력한 영구 추방령이다. 인간은 가두긴 하지만 의식주를 세금으로 모두 제공하는데. 특정 동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담은 이야기라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동화란 모두 인간의 삶을 해석하기 위한 텍스트로 여기면 좋을 듯하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병아리가 있었어.”

 

첫 문장이 매력적이다. 그런 병아리도 있을 수 있지. 어쩌면 더 많은데 생존을 위해 협력할 뿐인지도 모르는 일이지.

 

“싫어. 몰려다니는 그 자체가 싫어.”

“싫어. 종일 먹느라 시간을 보내기는 싫어.”

“싫어. 종일 땅만 보며 걸어 다니는 것도 싫어.”

 

읽을수록 감정 이입이 되어 공감이 커진다. 병아리는 별명이 생겼다. ‘싫어’, ‘빼빼’, ‘거꾸로’. 이런 성격은 일단 가족과 집과 고향을 떠나게 된다. 혼자가 되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 자신이 속할 수 있는 다른 질서의 세계를 찾고 싶기도 하고.

 

모험과 여행을 거쳐 동료들을 만나고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읽다가 또 엄청 놀랐다. 이 작가분의 스토리는 내 예상을 늘 벗어나는 구나 싶다.

 

닭이 되어 알을 낳고 병아리들을 키우며, 예전 자신의 엄마와 똑같은 잔소리들을 하며 산다. 그리고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가 본다. 동화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편이었나 싶게 극히 현실에 있을 법해 괜히 힘이 쭈욱 빠지는 결론이다.

 

“알 낳기 싫다고 농장에서 뛰쳐나왔는데 자신도 결국은 엄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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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권력 - 인터넷을 소유하는 자 누구이며 인터넷은 우리를 어떻게 소유하는가
제임스 볼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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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좋아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 외에도 우리는 과학기술이 산업에 활용된 제품들을 문제 없이 구매 사용하면서 잘 살고 있다. 휴대폰이 생산/사용/폐기 과정에서 갖가지 환경오염과 노동착취, 인권 훼손을 하지만 사회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로 부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의사소통망에서 전 세계의 인프라망으로 자리 잡은 인터넷은 어떤가. 인터넷은 공공재인가 아닌가. 실은 현대/현재 사회의 문명 기반 - 국가, 사회, 개인 모두의 삶 - 은 민간기업이 소유한 것인가.

 

궁금하고 염려되는 점이 있거나, 인터넷의 역사가 알고 싶으시거나, 내 정보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케이블 회사들이 누구인지 알아둬야겠다거나, 나처럼 ‘에드워드 스노든 NSA 폭로’, ‘위키리크스 관타나모 파일’, ‘조세 피난처’ 사건 등을 심층 취재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국제앰네스티 저널리즘상 등도 석권한 저자의 글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만나셔도 좋겠다.


음모와 배후를 파헤치고 추리하고 주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터넷에 관해 두루 정통한 지식 정보를 기대 이상으로 많이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산업 기술을 통제함으로써, 적어도 어느 정도는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 그 첫 단계는 인터넷이라는 시스템의 본모습을 똑바로 보는 것이다.”



- 당시 대학에 컴퓨터가 부족해서 다른 대학 컴퓨터라도 써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 미국 국방부가 통신망이 망가졌을 때 핵 억지력을 유지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산물로 인터넷이 생겨났다.

- 인터넷은 학자들이 따분해 보이는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탄생한 부산물이었다.

 

: 그리고 세상을 불가역적으로 바꾸었다.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서비스이지만, 나처럼 가만 생각해보면 언제 처음 인터넷 망에 접속했는지 기억이 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통신망 수다에 별 흥미를 못 느끼다가, 4학년 때 교수 한 분이 인터넷상에 수업 진도와 성적을 올리겠다고 그 방법으로만 소통하겠다고 하셔서 억지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과 사무실이나 학교 전산실의 컴퓨터는 286이나 376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분들 많을 거라 짐작한다. 하여간 “윈도우의 발명은 어떤 바보라도 컴퓨터를 사용가능하게 만들었으니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신 교수의 말에 대꾸할 말을 못 찾았다.

 

“우리는 구글, 페이스북, 온라인 광고 회사 등이 가진 데이터를 걱정할 뿐, 집에 인터넷을 제공하는 회사가 우리의 정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컴퓨터와 전화로 오가는 모든 암호화되지 않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HTTP는 사용자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게 만들어졌지만, 쿠키가 등장하면서 사용 기록 추적은 웹의 대표적 수익원이 되었다.”

 

: 이미 다 설정해 두셨을 지도 모르지만 사용하시는 브라우저를 종료할 때 쿠키도 모두 지워지도록 옵션을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악랄하게(?) 따라붙는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알고리즘의 추천 광고를 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페이스북을 할 때 광고를 띄워서 돈을 벌 뿐 아니라, 사용자가 다른 인터넷 페이지를 방문할 때도 광고 회사에 정보를 넘긴다. 그러면 광고 회사는 다른 웹사이트까지 사용자를 따라다니며 광고를 보여줄 수 있다. 페이스북의 2018년 사사분기 매출액은 169억 달러이며, 이 중 166억 달러가 광고 수입이다.”



: 궁금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은 최근 주목받은 ‘페이스북 내부 고발 사건’ 보도를 살펴 보시면 참고가 될 듯하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인터넷 환경에서 야기되는 부정적 영향력을 방관하고 침묵하고 있다는 내부 고발자의 폭로. 선거 기간 중 난립한 가짜 뉴스 및 허위 정보와 내전이 일어난 에티오피아에서 폭력을 부추기는 게시물 확산을 막지 못하고 적절하게 관리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근무태만이 아니라, 조회수와 좋아요와 구독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다 알고서도 ‘분노와 증오’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분열을 조장해서 이익을 취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만 그럴까. 어느 사회이든 이 방식을 선호하는 이익집단들은 많다. 특히 선거철에 들어간 한국의 상황 역시 갈수록 저질스런 가관이 될 지도. 기억하셨다가 이런 발언을 하는 이들을 골라내는 도구로 삼으셔도 좋겠다.

 

보호와 감시 중 감시를 택한 미국 정부의 결정으로 사이버 공격과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줄 기술은 약화되고 무력화되었다 한다.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전투가 매일 발생하는 격전지가 인터넷이라고 한다. 대안 역시 단순 명쾌할 수가 없다.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온라인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키우는 것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미국은 소송전으로 가는데 제대로 된 해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가 만난 ‘배후 세력’ 혹은 ‘실권자’들의 면면은 위키피디아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 컴캐스트 홍보이사인 프랭크 엘리어슨, 벤처 캐피털리스트 존 보스윅, 전 FCC 의장 톰 휠러 등등이다. 심층 분석한 대상은 컴퓨터 과하자, 통신사, 투자자, 광고업자, 정보기관들이다. 방대하고 충실하지만 쉽다. 팔이 많은 경제 문화 분석이 아니라 ‘인터넷’ 하나를 붙잡아, 인터넷 기반 기업들이 현재 인류 문명 전반을 어떻게 주도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 인터넷은 규제해야할까

- 왜 규제해야할까

- 인터넷은 공공 서비스인가, 그래야하나



거의 매일 인터넷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편리에 길들여진 사용자로서, 인터넷 거대 기업들과 전면전을 벌인 사이버 전사들과 저항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얼마 전 감상한 <듄Dune>보다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내 삶도 중간 지대를 떠올리기 어려운 정도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의 <버전. 2021>로 흘러가고 있다. 판데믹 시절 동안에는 온라인에 접속하기 위한 재료를 만드는 시간으로 오프라인의 삶을 사용했던 것도 같다. 아주 많은 분들이 읽고 함께 고민하고 활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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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스트넛맨
쇠렌 스바이스트루프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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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만 고착된 이미지였을지는 몰라도, 제목에서부터 10월이 연상되는, 군 밤 옆에 두고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아무 의미 없지만 집착하듯) 목차가 끝나는 11월 4일에 완독을 해서 다행이란 흡족한 기분이다.

 

11월부터 코펜하겐은 거의 하루 종일 어둡다. 11시에 뿌옇게 밝아 오는 듯하다 2시면 깜깜해진다. 실내에 아무리 불을 켜도 호흡곤란이 와서, 평생 단 한 번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직장을 그만뒀던 오래 전 기억이 난다.

 

목에 줄이 걸려 있지 않다면 덜 무서웠을 표지의 ‘밤chestnut 인형’이 묘한 느낌의 공포를 미리 선사한다. 작품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범인을 마주할 줄이야! 알고서 범죄를 밝히고 추리하는 과정의 작품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극한의 고통이 짐작되는 잔혹한 묘사로 만나는 살인 행각이 끔찍하다. 살인현장마다 남아 있는 살인자의 표식 ‘밤인형’. 1년 전 납치 실종된 이의 지문이 묻어 있다.

 

1989년 10월 최초로 등장한 범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극적인 장면들이 연이어 지나는 중에도 범인이 완벽하게 가려져 있는 느낌에 갑갑하고 그래서 궁금증은 폭증한다.

 

완력이 약한 여자들만 골라 살해하는 찌질한 범인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참혹한 사건의 담당형사가 딸을 키우는 유일한 보호자라는 설정에 불안 초조했다.

 

극한의 매운 맛을 느끼게 하는 이 끔찍한 연쇄살인은 1년 전 실종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내내 궁금했다. 형사 톨린과 파트너 헤스의 고군분투의 과정이 마무리까지 지루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아 좋다.

 

특히 아동학대/(성)폭력/범죄에 관한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룬 것, 북유럽에서 가능할 내용의 복지 시스템에 대한 비판, 그리고 거짓말을 감추려는 노력이 얼마나 고난다고 힘든 일인가를 파헤치듯 보여주는 인간 심리를 사회복지와 연계해서 펼쳐 주는 점이 설득력이 강하다.

 

진짜 범인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충격적인 반전이니, 읽기 전인 분들은 어떻게든 스포일러를 피하셔야 한다!

 

읽으면서 맛보는 감정의 온도 차가 커서 즐거웠고, 텍스트에서만 드러날 수 있는 세심한 심리 표사, 생각의 변화 등이 재미를 더한다. 집착도 과장도 없는 건조하고 서늘한 북유럽의 분위기를 따르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여지들이 억지스러운 봉합보다 훨씬 더 좋다.

 

! 시리즈나 스핀오프라도 출간해 주시길!

! 엄청 빨리 읽히니 주의! 596페이지 분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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