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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방 ㅣ 책 먹는 고래 25
최미혜 지음, 어수현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10월
평점 :
무서운 제목이지요. 어떤 계기로 이 동화를 만드셨는지 조금 알아서 더 겁이 나지만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거쳐 위로도 담아 주셨을 거라 믿고 펼쳐 봅니다.
2년 전 초2 꼬맹이가 애니메이션인지 학교 친구였는지 모를 동기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외국어란 세계의 확장이라 여기니 반가웠습니다. 덩달아 저도 같이 초급 동영상 강의도 듣고 회화 연습도 했지요.
그러다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악화되고, 불매 운동도 거세지고, 불가역적 문서와 소녀상 등으로 인한 역사적 아픔들도 부상하니, 아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몹시 놀랐을 것이고 나름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한 후 일본에 놀러 가는 일도, 일본어를 배우는 일도 그만 두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척 단호하게 언니들을 괴롭히고 죽인 일에 대해서는 용서를 빌어도 용서할 수 없다, 란 입장 표명을 하셨습니다.
2년이 지나 아직 그 일을 기억하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만 직접 물어본 적은 없고 이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6학년 혜주는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복잡해집니다. 치매가 진행 중인 왕할머니가 집으로 오셔서 방을 함께 써야 합니다. 할머니는 욕도 가끔 하시지요. 어릴 적 귀여워해주신 기억은 없고, 어쨌든 낯선 이와 한 방에 있으니 모든 것이 불편합니다.
목수일을 못하게 된 아빠는 자신이 쓸모가 없어 버려졌다는 것이 슬프다고 속마음을 털어 놓고 부탁하시니... 지내기는 하는데, 왕할머니는 자신을 여동생으로 알고 오히려 방을 같이 쓰기 싫다고 하시네요.
단기 기억 장애가 있지만 의식이 또렷해질 때면 할머니도 상황이 힘이 듭니다. 배변 실수를 하고 기저귀를 하고 손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모두 기억하니까요. 그리고 오래 전 친구와 고향으로 의식 여행을 떠납니다.
행복했던 기억도 있지만, 일본 순사가 이장과 함께 왔던 날은 여전히 끔찍합니다. 구명책으로 약혼자라 나선 이와도 가족과도 헤어져 이름 모를 일본 근처 섬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하게 된 시작의 날이니까요.
아픔이 진해서 현실의 가족을 다시 잊어버립니다. 날 할머니라 부르는, 엄마라 부르는 이들을 낯설어하며. 어떤 엄마로 살았는지, 남편은 누구였는지, 고향의 연인은 어디에 있는지.
물속에 잠겨 있는데 주변에 저렇게 큰 거머리들이 떠다니다 몸에 들러붙는다니. 할머니의 꿈에 제 악몽은 견줄 바가 못 되는군요.
6학년인 혜주가 혼자 고민하다 마음을 고쳐먹는 전개가 아니라서 좋습니다. 할머니의 일기장을 읽고, 연극반 선생님의 이해와 격려를 받아 극본을 직접 쓰고 연극 공연을 합니다. 생존자들의 비극이나 일본군의 만행에 주목하기보다, 밝은 곳으로 드러내어 아팠겠다, 공감하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좋습니다.
동화 속 이야기지만 빛나 보이고 뭉클하면서도 무척 슬프고 화도 나고 늘 그렇듯 복잡한 기분입니다. 그런 아픈 역사가 있었지만 사과를 제대로 받고 처벌도 하고 보상도 받았으니 마음이 좀 풀린다! 이런 얘기하며 살 수 있을까요.
나쁜... 사과도 할 줄 모르는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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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예가 뭐야?”
작가는 이 단어를 사용하네요. 명칭도 중요하고 정확한 내용이 전달되는 것도 중요하지요. 제가 처음 접한 단어는 무려 ‘정신대(挺身隊)’였습니다.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挺 빼어날 정 身 몸 신 隊 무리 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몸을 던질 각오로 조직된 부대)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중학생이 되면서 구체적으로 다가왔어요. 국사 선생님이 들려준 위안부 이야기. 일본은 그들을 종군위안부라 부르며 당당했고,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힘든 성노예 생활을 한 어르신들은 지금도 숨죽이며 살고 있습니다.”
올 해 초 최고의 망언 중 하나인 존 마크 램지어의 논문과 발언 기억하시나요.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였다.” 동화 속 왕할머니는 16세로 나오지만, 실제 평균 연령은 12~13세였다고 합니다. 일본 장학금이 그렇게나 좋았나 봅니다. 뭐라 말도 아까운 자라 말로 화낼 가치를 못 느낍니다.
더 기막힌 것은 대한민국 국정원이 일본 극우에게 이 일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이들의 일정을 포함한 정보를 넘겼습니다. 거래도 아니고 그냥 갖다 줬습니다. 공항에서부터 검색과 모욕을 당하도록. 이런 일을 겪으면 혼란스럽습니다. 여전히 어딘가는 누군가는 식민지인 듯해서.
작가는 잠이 안 올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타인의 삶에 깊이 공감하는 이들이 그렇듯 작가의 시선은 ‘우리’ 민족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더 확장됩니다.
“지금도 붉은 방은 존재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추운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은 방입니다. (...) 그들을 하인 취급하며 인격적으로 학대하는 사회가 붉은 방이죠.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무심한 어른과 외면하는 아이가 있는 곳 또한 붉은 방이라고 생각해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사회에서 차별받는 세상이야말로 붉은 방입니다.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새 옷을 안 사겠다고 외쳤어요. (...) 점점 붉은 방으로 변해가는 지구를 그냥 둘 순 없어요.”
11월 10일,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어떤 대접을 혹은 취급을 받게 될까 생각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과도한 심정적 집착인가요. 2007년, 2010년, 2012년 모두 입법 무위되었으니 그럴 만도 한가요. 반평생을 이미 살아버려 더 초조한 성격이 되나 봅니다. 모두들 안온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