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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마음 - 야생의 식물에 눈길을 보내는 산책자의 일기
고진하 지음, 고은비 그림 / 디플롯 / 2021년 10월
평점 :
“하늘을 향해 살랑거리는
어린 나뭇가지들은
대지의 식탁이다.”
<풀잎에 바람이 스치고> 테드 휴즈
분명한 11월, 입동이라는 데 꽃이 피었다.
설마 환각인가 싶어 사진을 찍어도 찍힌다.
잎은 시들어 푸른 색감도 없는데
꽃은 저토록 제대로라니...
철쭉이 분명한 꽃을 보고
진달래가 피는 봄이 연상되는
기름이 자글자글 화전이 생각나는
어색하고도 그리운 순간
“음식을 먹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갖는
단순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밝은 빛과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빛이라고 해도 좋다.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이 열리고 자비심을 갖게 된다.
아직 부족하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세상에는 모든 인간이 먹을 충분한 양식이 있다.
다만 우리가 기꺼이 나누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의 양식이 될 것처럼 보이는 열매를 만났다.
좀 더 추워지면 좀 더 귀해질 것 같은
가을볕을 품은 낮은 흙 담벼락에
따스한 온기가 보인다.
“네 앞에 앉아
너를 바라본다
너를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눈부신 것이냐”
김용택
다정한 분의 선물로 만나게 된
다정하고 아름다운 책과
함께 하는 출사(?) 산책,
사진과 설명만 읽을 줄 아는
야생초에 관한 한
무지의 골짜기에 사는 독자이다.
여기저기를 둘러 봐도 ‘야생초’를 하나 알아볼 길이 없다.
늦가을 계절 탓이라 위안을 삼으며
‘초’ ‘꽃’ ‘나무’ 들을 담아 본다.
사진과 글이 맞지 않더라도
책과 글을 봐주시길...
봄꽃을 본 후 노래한 시지만
11월의 국화도 아름답긴 한 가지
“강원도 원주의 시골에 칩거하며
손수 농사를 짓고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는
씨앗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을 남겼다.”
“어떤 작가는 소설가란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다.
씨앗이 함축하고 있는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꽃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잎이라 해도 열매라 해도 씨앗이라 해도
닮은 붉은 색들
책을 낮게 자리 잡으려 하는 동안
땅에 가깝게 내린 시선에는
휙휙 지나가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이들이 참 많았다.
모두들 가을처럼 아름답다.
“세계 역사에서 지렁이를 주목하고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종의 기원>이라는 저서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박물학자이면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
그는 지렁이가 오물과 썩은 낙엽을 어떻게 흙으로 바꿔놓는지,
우리 발밑에 있는 땅이 지렁이의 몸을 통해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과학자란 오감을 통해 관찰한 데이터를 모아 이론을 정립하는 일을 하지만,
다윈이 ‘연구’하기 전에 논문 자료를 발표한 적은 없으나
지렁이를 더 잘 알고 있는 이들도 아주 많았을 거라 믿는다.
평당 얼마, 이렇게 땅이 거래의 대상이 아닌 오랜 시절
인류는 말 그대로 땅에 목숨을 빌어 살았을 것이다.
땅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수렵 채집이란 말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 한다.
육식 동물의 수렵 성공 확률이 1/10이라 하니 인간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사냥보다 자연에서 주워온 것들이 식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터.
“어떤 벌판이든 지표의 흙 전체가 몇 해 단위로 지렁이 몸통을 거쳐 왔고,
앞으로도 거쳐 갈 것이라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
사람이 지구에 살기 훨씬 오래전부터
지렁이들이 땅을 규칙적으로 쟁기질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땅을 갈고 있다.”
산책길에는 지렁이님을 못 만나고 귀가해 생각해보니
퍼머컬처permaculture를 전공한 친구의 강요로(?) 만든
커피박 콤포스트(compost 퇴비)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