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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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무엇일까. 재밌는 장르문학일 거란 생각에 읽기 시작했는데 심장을 조이듯 차분하게 농도가 진해지는 불안과 무섬증이 여러 번 스치고 지나가던 참 이상한(?) 작품이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읽은 것도 같고 그냥 우연히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아찔한 느낌이 압도적으로 강해서 내용을 가리기도 하다. 작가가 소위 혼신을 담은 데뷔작에 꾹꾹 눌러 담은 삶과 앎의 진한 맛을 본 것 같다.

 

작가 자신의 에세이처럼 느껴지는 내용들과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당연한 듯 어우러져 있고, 정교한 솜씨로 창작된 세계임에도 여려 겹의 현실이 촘촘히 언급되고 있다.

 

단절로 변역된 severance는 퇴직연금 항목에서 보던 단어이다. 모든 끝은 이전의 삶과의 단절이라 의미가 전혀 다른 것도 아니지만, 단절이 싹둑! 소리가 나는 급작스럽고 단호한 결별이라고 느껴온 나는 그보다는 무사히 퇴직하기까지의 성실한 루틴이 연상되는지라 조용하게 흘러갈 퇴직의 그날이 더 서늘하다.

 

현실에서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많은데 왜 더 놀라고 더 화내고 더 떠들썩하게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는지, 그 고요함이 괴이할 때가 있다. 이야기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태연하게 건조하게 살아가는 낮은 볼륨의 풍경들에서 확실히 죽어가는 끝을 향해 걸어가는 불가피한 종말이 보인다. 무섭다.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 역시 내 삶의 평지풍파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반응한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너무나 무관한 듯 편안하게 위기의 한 가운데서 일상을 즐기는 모습이 격렬한 반동의 저항보다 더 무시무시해 보일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내가 두려워하던 어쩌면 정확히 알고 싶지 않던 확인까지는 바라지 않았던 그런 부조리함에 현미경을 들여댄 작품이기도 하다. 렌즈에 눈을 대고 본 풍경이 소스라칠 듯하다.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체로 지난 수년, 수십 년 동안 내재화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오래된 루틴과 몸짓을 그대로 모방하는 습관의 노예였다.”

 


선 열병(Shen Fever)에 걸렸지만 무증상 환자들처럼 살던 대로 하던 대로의 행동을 습관을 반복하다는 사람들은 그렇게 남은 삶을 쓰고 만다. 주인공 캔디스 역시 재난 상황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던 일을 하는 삶을 선택한다.

 

“궁극적으로 선 열병이 초래하는 결과는 치명적인 의식 상실이다.”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런 선택을 유도한 시간은 환영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부모의 삶과 맞닿아 있다. 선 열병이라는 재난이 닥치기 전의 삶에서도 목표를 찾지 못해 할 수 있는 루틴을 반복하던 부모의 삶이 있었다.

 

“너는 우리의 유일한 자식이야. 그러니 넌 아빠보다, 적어도 아빠만큼은 잘 해야 해. (...)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네 아빠가 바랐던 것과 같단다. (...)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네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단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사는 일과 맞바꾼 현실의 잔인함이 풍경으로 드러나는 역작이다.

 

“무한히 돌고 돌며 반복되는 지극히도 무료한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그렇게 의식을 잃는 일이 생길 수 있는 법이다. 이 열병은 반복의 열병, 루틴의 열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루틴이라고 해서 반드시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다양한 차이를 포착하게 된다. (...) 내가 넋을 놓게 만든 것도 바로 그런 차이였다.”


 

주말이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시위가 있다. 주중에는 법 제정을 위한 얘기들을 종종 하다가 주말이면 편히 쉬고 즐겁게 보낼 아이템들을 떠올린다.

 

어떻게 해야 할까... 피곤한 하루의 저녁, 지친 한 주의 주말, 헛헛한 한 해의 연말이 주는 잠시의 위안마저 뿌리쳐야 하는 건가. 그건 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

 

36.5도로 잔잔히 타면서 소진되는 인간이라는 회복 불가능한 내재적 열병을 모두가 앓으며 살아온 것이라면 이런 잠시의 위안만이 실재하는 전부일까. 경고만이 아니라 작가적 예언을 만나 습격당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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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ㅣ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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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가는 곳마다 엄청난 규모의 살해와 멸종을 자행하던 사피엔스가 12,000년 정착하여 농사를 시작합니다. 농업이 힘든 일이 아니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노동이었다면 협력을 할 필요가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도시와 제국도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역사 속 사피엔스의 삶은 힘겹고 고단하고 대규모의 협력이 필요한 일들이 생기고, 네트워크의 일종으로 형성된 체제에서 위계가 생기면서 점점 더 악순환처럼 문제들은 더 커집니다. 저자가 지적한 문명의 기둥 - 농업, 문자, 관료제, 위계질서 - 이 전쟁, 기근, 질병, 불평등을 낳습니다.

 

하라리는 인류의 문명의 성립 조건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신도 국가도 돈도 모두 상상 속에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은 자신이 상상한 세계의 질서에 따라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발적인 아니라 마치 어떤 덫 혹은 함정에 빠진 것이라면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일까요. 사피엔스가 다른 문명을 만들 선택을 할 마지막 기회는 언제였을까요.

 

역사서를 읽으면 폭로하는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근본적으로 희망을 갖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 지난 삶에서의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자의 명령이나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모두 인간이 만든 관습입니다. 만들었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이지요.

 

워낙 수명이 짧으니 조바심을 늘 내는 삶을 삽니다. 살아생전 원하던 변화를 못 볼 가능성이 더 높은 문제들이 많지만, 이렇게 역사서를 읽는 순간에는 인간이 확실한 반성 능력에 기반을 두고서 꾸물꾸물 만들어낸... 위계와 불평등에 반하는 변화들이 문득문득 눈물겹기도 합니다.

 

1권에 비해서 시선은 더 집중되었는데 내부는 더 복잡한 장면들을 한참 들여다본 기분이 듭니다. 아마 역사적 기록이 더 많이 남아 있어 아무래도 점차 복잡해지는 문명사를 더 풍부한 내용으로 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멸종되기 전에 우리는 얼마나 더 오래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요. 적어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역사가 3만년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 년에 한 권씩 출간되는 듯합니다. 다음 권이 예고를 본 것만으로도 궁금해서 조바심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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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 인류의 탄생 ㅣ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1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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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가 출간된 지가 벌써... 자비 없는 시간의 흐름입니다. 6년 전엔 더 사고가 경직되어 있었는지 읽을 당시의 상황이 그랬는지 재밌고 유익했지만 새로 생긴 퓨전식당에서 식사를 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머릿속을 맴돌던 발상들이 즐겁고 재밌어서 허약한 기억력에 비해 상당한 내용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순리대로 흐릿해지는 시간 그래픽 노블로 출간된 사피엔스라는 반가운 소식을 만납니다. 가독성도 접근성도 아주 높아질 거란 생각입니다. 그 벽돌책은 함께 읽자거나 읽어 보라고 권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펼쳐 본 그래픽 히스토리 사피엔스는 그냥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책 내용을 옮긴 것이 아니네요. 뜻밖에 새로운 형식의 책을 읽는 기분입니다. 조카에게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다시 쓴 책이 맞습니다. 다양한 매체 기법들이 활용되기도 해서, 그림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넘겨보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도저하고 방대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읽으셔야 합니다. 기발하고 새롭고 충격적이고 기억하고 싶은 몇 장면을 소개합니다.


https://blog.naver.com/kiyukk/222586960506 


역사학자이지만 그가 활용하는 증거들은 물리, 화학, 생물학 등 총동원 방식입니다. 역사적 자료가 너무 부족한 시대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겠지요. 그래서 역사서로는 더 낯설게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저는 정말 사피엔스의 정체성에 대해 충격적으로 느꼈습니다. 동일화가 반갑지만은 않습니다만... 그건 제가 단지 21세기를 사는 사피엔스라 그런 것이겠지요.

 

잠시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의식을 갖추고 우주도 지구도 다른 생명들도 보면서 사는 일은 무척 행복하고 귀한 기회입니다. 그런데... 생존과 번식의 진화란 참 무자비, 무가치, 맹목이란 생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복잡하고 불친절한 글이지만 읽을 수 있는(?) 반가운 사피엔스 책이란 점은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막 쉽고 재밌게 사락사락 넘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정보의 양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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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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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세계 속에 오래 머물며 푹 잠기는 느낌의 장편들을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재작년에 단편집 추천을 받아

퇴근길에 한 편씩 읽으며 아마 처음으로

단편 문학의 정체를, 어렴풋이,

기발한 설정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을,

날카로운 충격처럼 느껴지는 순간적인 이해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채워야하는 참여 요구를,

배웠던 것 같다.


9편의 작품을 모두 읽고

금단 증상처럼 다음 날부터 아쉬움이 찾아왔다.


그 이후로 단편집 소식을 들으면

활짝 웃게 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리 피곤해도 때론 대여섯 쪽 안에 모두 써 준

놀라운 작품 한 편을 읽을 여유와 체력은 충분한 것도 감사하다.


재밌는 단편들을 많이 만났다고

단편이란 이런 거구나 짐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담긴 단편들은 또 특별하다.


문학잡지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의 문학 실험실에서

태어난 새로운 글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추천받아

만든 선집이고, 그 중 3편이다.


편집부의 글처럼 단편 작품에 대해 즐겁게 새롭게 배운다.

- 소설의 형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 얼마나 큰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지

 

......................................................................

* 1953년 당시 출판 산업과 문학 교류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창간된 영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는 요란한 선동가나 음모꾼이 아닌 좋은 작가들과 시인들을 환영한다.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 (윌리엄 타이런 작가).

 

“노벨문학상이나 퓰리처상,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의 글쓰기 철학이 궁금하면 <파리 리뷰>를 찾아보면 된다.”

 

** 이 책의 원제인 ‘Object Lessons’는 ‘실물 교육’이라는 뜻. 작품 뒤에 배치된 해설을 통해 ‘공부가 되는 함께 읽기’도 할 수 있다.

 

1


<히치 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폭우가 아스팔트를 할퀴며 푹 팬 바퀴 자국 속으로 콸콸 흘러들었다. 딱하게도 내 생각이 질주했다. 출장 중인 세일즈맨이 혈관 내막이 벗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약을 먹였다. 턱이 아팠다.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일을 감지했다. (...) 차에 탄 가족의 다정한 목소리만 듣고도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당할 것을 알았다.”

 

“그가 더는 버티지 못하리란 것을 나는 알았지만 그는 몰랐고, 그래서 나는 지상의 한 인간의 삶을 향한 지극한 연민을 품에 안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극한 연민이 아니다.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는 내게 말할 수 없고, 나는 무엇이 현실인지 그에게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폐란 얼마나 대단한가! 어디선가 독수리가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여자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살아서 그 소리를 듣다니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늘 그런 느낌을 찾아다녔다.”


- 관습을 부수는 통렬하고 날카로운 서사 제프리 유제니디스


“단편소설은 개념대로라면 반드시 짧아야 한다. 그것이 단편소설의 어려움이다. 그렇기에 쓰기가 매우 어렵다. 서사를 간결하게 하면서 이야기로서 기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단편소설 쓰기의 주된 문제는 무엇을 생략할지를 아는 것이다. 남겨진 것은 반드시 사라진 모든 것을 함축해야 한다.”

 

: 잠시 내 정체성을 잃고 밑줄을 막 그을 뻔...!

 

신기하고 다행한 우연은 어제 읽은 단편이 (아마도) 조현병을 다루는 심리스릴러였다는 점이다. 유사한 읽기 훈련을 거친 듯 이 작품을 만나 약물중독, 환각, 환시, 환청을 겪는 주인공을 경험하는 일이 불편하지 않다. 병명을 알고 병증을 이해한다고 해서 고통과 경험까지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질문도 의심도 필요 없다. 아쉽도록 짧고 약물에 취한 듯 전개되는 느린 속도의 이 작품은 단 몇 줄로도 기대할 수 있는 갖가지 사건과 징신적 긴장과 공감각적 서사를 진하게 맛보게 해준다.

 

2


<어렴풋한 시간>


뭘까. 처음 읽으며 일독으로 정리되는 게 별로 없겠구나 싶었다. 재독하니 ‘멜’의 연대기가 그려진다. 가엾게도 태어난 것뿐인데 그런 불행이 연이어 닥치다니. 그렇다고 뉴스거리가 될 만한 극적인 사건과 희생이라기보다, 평범한 장소, 평범함 사람들, 평범한 동네(풍경), 평범한 일상이다. 누구의 삶에도 내밀하게 명멸한 격렬한 사건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단편에서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게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와 서사들이 이어진다. 분명 단편이나 결론에 이르면 오랜 여행으로 지친 기분이 든다. 시작부터 죽어 사라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재가 채워지기 보다는 남은 아이 ‘멜’을 외국으로 띄워 보내는 작가의 선택이 저릿할 정도의 외로움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같이 생생한 글 다니엘 알라르콘

 

3


<춤추지 않을래>


“괜찮아. (...) 내 집인걸. (...) 춤을 춰도 돼.”

 

“(...) 우리는 완전히 취해서 춤을 췄어. 진입로에서 말이야. (...) 그 사람이 우릴 위해 이 레코드들을 틀어 줬어. (...)”

 

여자애는 계속 말했다. 모두에게 말했다.

뭔가 더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말로 할 수는 없었다.

얼마 후 여자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가려움 데이비드 민스


“주어진 거라곤 조금 더 큰 존재의 작은 조각,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 관점의 전환, 몇 주 늦게 듣는 진술이 전부다.”

 

“카버는 (...) 엄청난 세심함과 강렬한 지성으로 작업했다. (...) 자신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길러 나가면서 때로는 감출 만큼 영리하기도 했다. (...) 그는 자신이 뭘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한 줄 띄우기의 힘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궁금하다, 란 표현 대신 가렵다,는 말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단편이란 이렇게 심굴궂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싶은 작품이다. 싫은 점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문장과 저 문장 사이, 이 문단과 다음 문단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다. 상상력은 경험의 산물이다. 나는 도무지 싹을 틔울 경험을 데려올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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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발명했지? - 똑똑한 사람들과 그들의 빛나는 생각들
앤 아메리-시멘스 지음, 베키 토른스 그림, 김아림 옮김 / 생각의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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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적힌 사람들 이름이 익숙하신가요? 혹시 목차의 물건들을 발명한 사람들을 알고 계신가요? 저는 떠오르는 이름이 너무 적어서 은밀하게 당황을 했습니다. 원래 암기를 잘 못하는 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알았는데 잊은 것도 아닌 듯하고... 뭘까요...

 

가족 모두가 함께 읽기에 아주 좋은 책입니다. 집안일이나 작은 소원을 두고 게임을 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그런 방식이면 조금은 더 즐겁게 잘 외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집에서의 내기의 결과는...

 

책 읽기 전에 집 안을 둘러보고 눈에 띄는 모든 물건의 이름을 적고 발명한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만약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괴롭거나 하면 멈추면 되지요. 아무도 우리에게 시험보라고, 성적에 반영하겠다고 겁주는 시간이 아니니까요.

 

인간의 발명품들 중에는 처음 발명한 모양 그대로 이미 완벽해서 고칠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고, 꼭 필요한 물건들도 있고, 신기한 물건이나 효용성이 없어 잊힌 것들도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직업 현장에서는 아이디어들이 끊이지 않고 생겨나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든... 그릇된 믿음보다는 아는 바가 없었던 가족들이 각자의 충격과 자각으로 함께 읽은 무척 재밌고 유용한 책입니다. 관심을 많이 받은 내용들을 일부 소개해 둡니다. 얼마나 지나면 적어도 이 책의 내용은 다 기억하게 될까요. 거듭 활용(?)하기에 최적인 책입니다.

 

1. 신호등 1868년

 

년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영국에서는 인도를 pavement라고 합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을 먼저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느낌에는 포장도로, 자동차 길처럼 느껴지지요.

 

sideway 갓길이라는 단어보다는 조금 인간이 대접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기 무서운 길들여진 사람으로서 경건한 마음으로 외워봅니다.

 

2. 월드와이드웹 1989년

 

WWW 90년대에는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퀴즈 문제로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아예 언급도 안 되고 몰라도 사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도 합니다. 인터넷과 더불어 인류의 문명을 확실하게 바꾼 발명이지요.

 

발명가인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인 팀 버너스는 자신의 발명을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WWW에 대한 접근은 ‘권리’라고 여겼습니다.

 

3. 주파수 도약 기술 1941년

 

어릴 적엔 저는 시골에서 서울 사는 친척을 방문하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전구를 하나 선물해 줄 수 있냐고, 집이 이렇게 밝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기가 공급되어야 하는데, 전구라는 물건이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줄 아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무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술들은 많은 어르신들을 또 한 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요. 이제는 선도 없는데 신호가 가고 통신이 연결되고 합니다. radio라는 단어는 ‘무선’ 연결 기술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제품명으로 쓰인 예입니다.

 

발명 당시 잠수함과 어뢰에 활용되던 기술이 이제는 휴대폰, 컴퓨터, 스피커에도 쓰입니다. 세상이 더 평화로워졌다는 물증일까요?

 

헤디 라마르와 블루투스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지요. 발명품과 발명가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대접이 또 이 모양이었지만 살아생전 인정받아서 다행입니다.

 

4. 지퍼 1851년

 

발명가 이름은 휘트컴 저드슨... 제가 이 발명품이 궁금했던 이유는 ‘자쿠’라고 하는 지퍼를 부르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서입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저 좀 가르쳐 주시길! 제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쿠자쿠 궁금해서 답답합니다.

 

5. 플라스틱 1907년

 

인간이 발명한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고 칭송받았지요. 덕분에 의료기기도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결과와 공로가 아주 크지만 어쩌면... 합성 물질 - 플라스틱 - 의 태생적 부작용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유 - 정제하지 않은 석유 -를 원료로 합니다.

 

저는 우유가 유리병에서 종이박스로 플라스틱으로 바뀌는 걸 모두 목격한(?) 세대입니다. 유리병 우유의 종이 마개를 여는 일이 어릴 적엔 쉽지 않아서, 종이 박스에 담긴 우유에서 나던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우유가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얼마 안 되어 부작용이 거의 바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분해가 안 되는 물질이라는 것이 치명적이지만, 저는 그에 더해 사람들이 물자를 너무 낭비한 것도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량생산소비 시스템과 마구 버리고 산 시간들이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이토록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비닐봉투가 플라스틱 백이라는 것은 많이 아실 듯하고, 껌 - 풍선껌 - 이 플라스틱이라는 것도 아셨나요?

 

6. 트랜지스터 1947년

 

과학자들은 20세기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 트랜지스터라는데 동의했다고 합니다. 일상에 널리 쓰이지만 소비자인 우리가 보는 일은 잘 없겠지요. 194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명했다니 발명가 두 사람에게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겠습니다. 전자공학의 시대를 살게 될 후손들에게도 그랬겠지요.

 

제가 기록한 6가지 발명품과 발명가들은 다 외우셨나요? 목차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발명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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