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보카 3.0 - 수능마스터, 개정2판
유우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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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의 소개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거의 모든 이유이다. 흔히 말하듯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고, 입시전용영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유우선

 

“영어강사”가 아니라 “입시영어쟁이”다. 오직, 가르치는 아이들이 입시영어에서 수능 1등급, 내신 1등급을 정해진 기간 내에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그리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성과 낼 궁리만 한다.

 

수능이든 내신이든 “어휘학습”이 성적 결과의 80% 이상을 좌우한다 믿고, 15년 넘게 천여 명의 학생들을 직접 1:1코칭하면서 지금까지도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는 언제나 단어를 잘 알고, 영어를 못 하는 아이는 언제나 단어를 모른다. 그렇게 “입시영어에서 영단어는 언제나 옳다”고 믿는 자.

 

입시 영어, 학교 영어 수업을 올 해 유달리 싫어하고 견디고 있는 중학생 가족이 있다면 조금 걱정이 된다. 성적이 걱정이라기보다 당사자 마음이 어떻게 불편하고 괴로울지, 학교 수업의 정확한 문제와 해법은 알 수 없는 것인지, 저 고민의 시간이 나중에 좋은 경험이자 훈련이었다고 생각하게 될지, 이런 방식의 입시는 언제나 되어야 누구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을 것인지. 복잡하다.

 

나도 예전에 입시란 단일 측면에서 보자면 효율성이 낮은 과목의 수업에 대해 기대를 버리고 혼자 정리하고 알아서 대비한 기억이 있다. 쓸쓸한 해법이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의 학창시절은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 과정이 아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해치워버리는 것도 시간 낭비와 스트레스를 줄이는 영리한 방식이다.

 

나는 만나 본 적 없는 명성이 높은 입시영어강사의 장기간의 코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영어 교재를 내용 모두를 학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방법론만 보았다.

 

1. 어휘 암기 학습법: 발음기호와 어원을 통한 학습 효과.

 

2. 8,800개의 단어 학습: 난이도와 빈도수에 따라 11단계로 분류. 중, 고등 내신시험 단어들과 수능시험 단어들. 저자만의 암기법을 활용한 단어 학습.

 

3. 동사의 삼단변화, 품사가 여러 개인 단어의 문장 내에서의 쓰임과 의미. 즉 전치사, 부사, 접속사와의 연계와 다의어 공부. 혼동어휘. 독해에서 주제를 담은 핵심문장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단어, 연결사를 구별해서 정리.

 

단어, 어휘 암기에 집중하는 책이다. 어떤 언어든 어휘가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은 당연하다. 한국어 어휘가 부족해서 괴로운 나로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어려운 단어들이 눈에 잘 안 띄고 소개처럼 기본기를 위한 기본 어휘들을 늘리는데 충실한 교재이다. 어차피 예외 투성이인 언어가 영어라지만 분류법에 따른 구분도 적절한 도움이 된다.



뭔가 어렴풋한 추억이…….

 

핵심은 시험과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고 숨을 틔워주는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다. 수능 세대가 아니라 감이 없다. 기회를 봐서 우리 집 중학생에게 구체적인 내용과 효과를 물어 봐야겠다. 


온라인과 비대면 시절을 잘 반영하는 강의 영상 자료가 유튜브에 있어 혼자 학습하거나 설명이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fREkLGOdm_qwTl-97Y68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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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승무원 - 서비스와 안전 사이, 아슬했던 비행의 기록들 ㅣ 어쩌다 시리즈 1
김연실 지음 / 언제나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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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직 승무원이었거나 나처럼 전직 승무원 친구가 있다면 이 책에 담긴 ‘비밀스러운 뒷이야기’가 완전히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항공사에 따라 경험이 천차만별일 수도 있지만 - 저자는 티웨이 항공 5년 근속 승무원이다.

 

해외 항공사에 50-60대 항공 승무원들이 근무하는 풍경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서비스직 여성들의 나이와 외모가 변태적으로 강압적이기 때문에 장기 근속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몸무게를 매주 측정해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넘으면 감시 메이트가 배정되어 몸무게가 줄 때까지 지켜본다고 했다(꽤 오래 전이긴 하지만!).

 

불규칙한 근무 시간, 불편한 복장, 온갖 불필요한 스트레스까지 승무원은 고단한 직업이다.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격한 드라마가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끊이지 않는, 얘를 들면, 해외 도피 범죄자부터 외교관까지 다양한 승객들과의 일화들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승무원을 직업으로 동경한 적이 없으나 승무원으로 입사하여 5년간 근무하고 현재는 취업 멘토링을 하는 저자 김연실은 내가 느끼기엔 - 적어도 내 친구보단 - 긍정적이고 모범적이고 열심인 분으로 느껴졌다. 본인은 ‘똘끼’로 중무장 했다는데 무척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들이다. 신발 벗고 타세요/쉬는 시간 쥐포 구워 먹기/동료들과 행복수다/도떼기시장 상인을 빙의한 기내판매 등등.

 

그런 저자의 분위기에 맞게 일러두기와 일러스트 모두 귀엽고 재미있다. 이것은 재밌어서 공개한 일기인가, 하는 생각도 도중에 들었다.


앞치마 주름이 그렇게 큰일인가요…….

 

항공사는 다르지만 역시나 계약직처럼 불안한 고용 구조는 비슷한 것 같고 - 1년 단위로 의무 정기 교육을 받아야 자격을 유지한다거나, 위계질서라는 이름의 전체주의적 분위기는 여전히 강한 것 같다.

 

비행 서비스를 이용하던 예전의 나와 나를 감당해주던 승무원들 기억이 난다. 젊고 무지하고 이해심이 없어 아이들이 비행 동안 얼마나 지겨울지도 부모가 얼마나 피곤할지도 전혀 몰라서, 통로를 뛰고 노는 아이들을 봐주지 못하고 승무원을 호출했던 낯 뜨거운 기억, 뒷자리 승객들의 수다가 어쩌면 처음 나선 친구들과의 여행길의 즐거움일 지도 모르는데 망설임 없이 호출 버튼을 눌렀던 미안한 기억.

 

아직 승객들이 탑승을 하기 전인데 제 자리 바꿔달라고 떼쓰다, 기다리시란 말에 건방진 것들! 니들이 다방레지랑 다를 게 뭐냐!고 고함을 쳐서 모두를 당혹시킨 몹쓸 인간. 차분하게 다방레지에게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하던 멋진 승무원 언니! 등등. 예전 시절 공항과 비행기 안 풍경들이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쩌다 승무원’이 되었지만 ‘멋지다 승무원’으로 살아 온 저자라 느낀다. 평소에 다른 이들을 보면 부럽게 느끼는 활발함과 친근함이다.



전 지구가 여전히 판데믹 상황이고 변이 바이러스들의 출몰과 확산이 불안하기만 한다. 유럽 본사에 업무로도 이 년째 못 가고 있다는 지인들도 있으니 해외로의 여행은 상상 속에서만 자유롭다.

 

비행 산업에 관련된 모든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 걸까. 이 책에 소개된 내용만으로도 ‘빡센’ 교육과정을 마침내 마쳤는데 비행이 중단된 바로 그 시기를 마주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부디 매일 조금이라도 숨쉬기 더 편한 날들을 만나시길 바라는 마음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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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ㅣ 문학동네 청소년 53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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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인지 혼재인지 안온한 어린 시절에 그저 상상해본 불행과 슬픔의 잔재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특정 작품과 정서에 반응하는 눈물샘이 있다. 감정의 밀도가 아주 높고 노골적으로 울어라~ 울어라~ 하는 이야기보다는 웅장한 서사구조에 감동을 크게 하는 경우가 잦다.

 

자라서 과학자가 되고 우주비행사도 되고 지구도 구하겠단 생각을 하던 세대science kids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 정서는 골고루 스며있어 연주도 단품 보다는 오케스트라가 좋다. 헤드폰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은 인간 소외의 대표적 사례라 느끼긴 하지만.

 

“수없이 태어나는 별들을 위해 우주는 스스로의 몸을 넓혀 새 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린 별들은 두렵지 않을까. 자기 주변의 세계가 자꾸자꾸 커지는 것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나는 이제 겨우 어른이 되었는데 어른들은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말할 수 없이 넓은 이 우주 안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웃분들은 이제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다소 뜬금없는 제 얘기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단 고백이다. 대서사 구조의 이야기, 결핍과 비관은 깊고 어둡고, 갈망과 연대는 높고 황홀한 그런 거대한 격차가 좋다.

 

우주공학의 최정상을 차지한 연구단체는 또한 사업을 막대한 이윤을 거둔 기업의 얼굴을 하고 있다. 달에 표면에 메지시를 개기는 도구를 만들어 달 자체를 이윤 창출을 위한 거대한 광고판으로 만든 것이다. 그 모든 욕망이 들끓는 지구로 소행성이 날아오고 있다.

 

“엄마.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몰라서 그 미움을 모두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나요. 저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다른 하늘 아래 서면 별자리가 바뀐다. 같이 본 하늘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곳은 오직 여기뿐이었다. 흐려지는 기억과 떠나는 사람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 안에서 나는 변화하고 싶지 않았다.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내 자리만이라도 못 박아 두고 싶었다.”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창작 이야기라 해도 ‘지구멸망’이란 말은 마음을 깊이 찌른다. 인류가 오래 살아남아 우주의 비밀도 더 알게 되고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과 삶을 대하는 방식이 이토록 멋지고 존경스러운 이들이 사라지는 이야기는 절망적으로 슬프다. 부디 뜻밖의 희망이, 해법이 나타나주기를, 지구와 더불어 생존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읽었다.

 

‘걷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라고 시구처럼 자신을 소개하는 전삼혜 작가의 시침 뚝 떼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내용은 죽도록 사랑하는 이야기였다. 다 읽은 나는 흉통을 느낄 정도로 아프다. 열렬히 살자던 젊은 날이 막 떠오르면서 더 늦기 전에 힘껏 사랑하고 싶어지는 위험한 작품이다. 이 모든 것을 208페이지에 담은 작업이 기적이다.

 

“암흑물질에 대해 천문학 책은 외로운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빛을 잡아 두지만 관측되지 않는다고. 단지 은하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별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끌어들이고 있으니 거기에 암흑물질이 있다고 하는 거라고. 나는 암흑물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SF를 태어나면서 좋아한(듯한) 나는 등장인물들이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처럼 반갑다. SF의 고전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의 매력이자 위대한 메시지는 다른 인종들과 생명체들이 만나서 친구가 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이다. 여전히 먼지만한 지구 행성의 30%도 안 되는 땅 위에서는 피부 색깔이나 국적이나 종교나 나이나 성별이나 성지향성 등등 온갖 시시한 이유들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들 있지만.

 

“사회는 어떤 일에든 자격을 묻고 자격이라는 말로 선을 긋는다. 

어리기 때문에, 

신체가 불편하기 때문에, 

버림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내지 못할 거라는 확신. (...) 

궤도 밖으로 밀려난 주체들이 사랑을 하고, 세상을 구하려 한다. 

최종의 최종까지.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확신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단 하나의 자격이 필요하다면 바로 간절함이라고.” 


천선란 『천 개의 파랑』 저자.

 

이 책을 읽고 <1987>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의 감상이 떠올랐다. 텍스트 기록과 사진의 불연속적 자료로 만나다 영상 자료를 보니 일련의 흐름 속에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했구나, 이건 안 되겠다, 이건 못 하겠다, 스스로 그어 놓은 인간으로 사는 한계선에 임박해서 불안하고 두렵지만 선택과 행동을 했구나 하는 것들이 한 눈에 보였다. 경중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 모두의 무언가가 중첩을 거듭하여 보강된 파동을 만들고 거대한 물결을 밀어내듯이 그렇게 진행된 것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강인함과 보드라움이 빛이 닿지 않는 달의 뒷면에 따뜻한 구원으로 도착한다. 저자는 현실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시선의 힘으로, 짐작할 수 없는 미래를 진보와 희망의 세계로 상상하는 힘으로, 주류와 규범의 가장자리 밖에 더욱 집중하여 미래의 인류 - 청소년을 위로하고 살리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열일곱, 사랑을 받지 못해 주는 방법도 느리게 배우던 우리에게 첫사랑은 봄바람이라기 보단 태풍 같았지.”

 

“슈, 우리의 궤도가 평행선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평행선이 아니라면 하나쯤은 교차점이 있지. 우리는 그 보육원에서 교차점을 이루었고, 시간이 지나 다시 멀어졌다 해도 교차점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 교차점이 누군가의 생을 구하기를.”


무슨 말을 보태야 할까요.

혐오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나에게.

그 혐오 속에서 우리가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 일이,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의 방향을 비틀고 표면을 깎듯

예전보다 나은 삶을 위한 우리의 최선이라는 것 외에는.

 

전삼혜

 

혹 이 책을 읽으시게 되면 리아, 제롬, 리우, 단, 루카(캐롤린), 세은의 이야기를 잘 읽어 주시고 힘껏 응원해주시길 바란다.

 

“나의 자유. 나의 등을 밀어 준 바람. 나의 울음 가득한 밤을 지켜준 사람. 나의 룸메이트. (...) 네가 이 지구에 다시 돌아올 희망으로. 설령 이 지구에 내가 없더라도.”

 

“당신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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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해변에서 혼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3
김현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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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좋다. 동경한다. 공들여 잘 벼린 것들이 가지는 분위기가 아름답다. 그래서 읽지만 매번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풀 수 없는 수학공식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읽지 못하는 시, 잠시도 내 것이 되어 주지 않는 세계는 쓸쓸하다.

 

시를 읽기 전 여타의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다. 새로 만난 시가 주는 느낌이 깨어질까봐. 어차피 오롯이 혼자인 유일한 경험, 원치 않는 색들로 채색될까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다 아무리 애써 봐도 읽혀 주지 않는 시들을 결국 놓아버린 기억이 오래지 않다.

 

그렇기도 하고, 고집스런 결심이 약해지기도 하고. 뭐든 방법이 있다면 결국엔 시를 잘 읽고 이해하는 쪽을 택하리란 이유를 들어 시인의 에세이를 먼저 읽어 보았다. 작가를 모르고서 작품을 잘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하나 에세이 한 편 읽는 것이 얼마나 이해를 높일까도 확신은 없지만 이번에 그렇게 해 보았다.

 

선입견에 있어서 나는 참 구태의연한가보다. 시인의 에세이가 뜻밖에 뜨겁고 선명하고 강렬해서 그 어조에 놀라고 어색했다. 시인은 잠시 화가 난 게 아니라 분노하고 있다. 그래서 슬프고 그런데 모두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 ♡. 시집을 넘기는 내 손 끝에서 따끔거리는 불꽃이 빠삭거린다.

 

“그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누구와도 있지 않고 그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해변에서는 누구나 남길 것인가 지울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해변에서 그런 갈림길에 서보지 않은 사람을 나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가지 않은 길에 관해 후회 없이 인간다운 척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그가 사랑의 기로에 서 있길 바란다. 몰락은 대체로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다.”

 

오래 만나지 못해 더 그리운 친구가 옮겨 살고 있는 제주를 찾아가 어디든 적요하고 아름다운 해변에 앉아 함께 읽으면 좋겠다. 그러지 못해 아쉽다. 대신이라기엔 무례할 지도 모르지만 본 적 없는 동물과 새와 식물과 꽃이 함께인 강주리님의 작품 표지를 한참 보았다.



하나도 반가운 뿔소라가 세 개나 있다. 제주 삼춘들이 바다에서 캐다 준 뿔소라를 꽝꽝 깨부수어 꼬득또득 씹어 먹으라던 다사로운 친구가 더 그리워지고. 그리움은 이기적이라 그 곁에 가서 앉고 싶어 잔병이 들거나 눈물이 날 것 같다 ― ♡.

 

첫사랑은 그 이후의 모든 사랑은 가사처럼 어쩌다 생각이 나는 게 문제이다. ‘아무 일 없이도’ ‘언젠가 조용해진 연인이 되어’ ‘홀로 걷게 되는’ 날이 오면 ‘소리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도 나의 불행만을 확인해준다. 이별의 시간마저 달리하는 이별을 하고 ‘비로소 헤어질 준비가 된’ 나는 [뿔소라]를 선물로 내민다. 그때의 뿔소라가 매끈하고 빛난다면 수명이 다했거나 속이 텅 빈 상태일 것이다. 이끼가 끼여 두텁다면 아직 살아 온기가 남은 마음이 거기 있을 것이다 ― ♡.

 

뭐 잘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은 아닐진대, ‘살리는 것보단 죽이는 게 쉬우니까/사시사철 뜨거운 사람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자국]’ ‘뿔소라의 내장에는 독이 있다’는 핑계로 빈 공간으로 날뛰던 사랑도 부재를 견디지 못하던 슬픔도 모두 말 못 되는 지껄임이 되어. 상대가 홀연히 경쾌하게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서야 남은 할 말에 ‘혼비백산’하게 되어. ‘잘 사시는지, 잘 살고 있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되었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되었는지 ― ♡.’



네가 보여준 그 날의 바다 풍경이 오고서야 ‘혼자서 해변을 걷노라니 온갖 상념이 반복적으로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의 구절을 이어 읽었다. ‘그 여름 해변에서 네가 내 손에 쥐여줬던 조개껍데기에 관해. 사랑할 때만 소중한 것에 대해.’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발견한 사랑할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의 손에 자꾸만 놓아 준다. 오래 전 우리가 물고기였을 때 새였을 때 건네던 선물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쥐여줬던’ 손과 손이 향연처럼 떠올라, 잠시 ― ♡.

 

(...)

어스름한 저녁에 책상 앞에 앉아 뿔소라에 귀를 대보면

언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네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묻는다

 

뭐 해 불도 안 켜고

(...)

 

큰 꿈을 꾸거나 큰 행복을 바라는 방법을 몰라서 평생 작은 것들만 욕심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렇다. 소확행을 바라는 큰 무리에는 끼지 못해 혼자 행복만을 알아보곤 한다. 언젠가의 내 행복도 ‘도봉로 10길 잔치국수에 담겼’던 적이 있다. 플라스틱이 아닌 그릇에 담긴 그릇에 행복했으니까. 작은 행복의 띄엄한 흔적으로 이어나가는 삶이지만 시인은 ‘큰 시를 쓰기로 한다’ ‘어딘가 복스러운 사람을 보면/무럭무럭 자라서/인류의 등불이 되길/부러워서 부끄럽게/열심히 지켜보았다/해시태그 인생사.’ 나도 바라본다, ‘인류의 등불’이 출현하길, 열심히.

 

삶은 오늘도 ‘쏟아지지 않’고 슬픔과 더불어 ‘소년은 (...)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내의 이유]는 매일 충분하니 ‘맞다. 대체로 삶이 문제다. 끝날 때까진 계속이니까, 계속 밀고 가야 하니까.’ 이제 남은 삶에는 쫒아 올 행복한 사람도 행복도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럴 수가 아름다워 보여서/희망적인 사람이기로 했다’

 

(...)

꺾이지 않는

피를

똑

똑

똑

흘리면서

도망쳤다

(...)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잘 울게 된다. 특히나 사랑이 사랑에게 사랑을 사랑하자는 스물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다면. 이 모두를 세 시간에 완독할 수 있다는 네 말 때문에 나는 다시 다사로운 해변에 홀로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발 옆에 뿔소라가 하나, 둘, 셋 있어 주면 좋겠다. 두 귀에 입술에 대어보고 싶으니. ‘우두커니 남의 인생을 재생하다 보면 (...) 똑같이 따라 써보게’ 되면 따라 읽어 보게 되면. ‘그런 게 간혹 시가 되기도 하고. 시가 될 뻔 하기도 하고. 시가 되라고(...) ― ♡.’


...............................................................................

꼭 싸 안고 며칠을 지내 봐도 부화는 없다

그만 품에서 내어 놓을 때


시는


좋고

낯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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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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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좋아하시지요? 혹 나무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좋아합니다. 바라만 봐도 즉각 기분이 좋아집니다. 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 묘목도 한 그루 심어 주셨습니다. 나무가 저보다 빨리 자라 고가의 지붕을 넘어섰지요.

 

어릴 적 단독 주택에 살 때는 아침에 새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그런 아침이 사라졌는데, 사라진 줄도 모르고 살다가 유학 시절 기숙사에 살면서 아침마다 수다스러운 새들을 다시 만나고서야 비로소 그 단절을 알아 차렸습니다.

 

2층 기숙사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비로운 떡갈나무Oak tree가 계셨거든요. 수령이 오래되면 가지가 땅으로 휘어져 굴곡져서 한 그루가 숲처럼 공간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 가지 하나에 올라가 책을 읽기도 하고 그냥 숨어 있기도 하고. 반지의 제왕의 그 숲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던 국립공원에 현장 조사 나가던 시절도 그립습니다.



당시 무척 인상적이었던 나무껴안기, Tree Hugging 혹은 칩코Chipko 운동이 있었습니다. 인도 히말라야 칩코 지역 여성들이 벌목산업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나무를 껴안고 벌였던 조용한 저항운동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가 시애틀에 사는데 워싱턴주 사람들 별명이 Tree hugging hippie people이라고 합니다. 자연친화적이고, 환경운동에 열심이고, 매우 진보적인 정치 성향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책과 무관한 얘기를 지나치게 한 셈인데, 나무이야기가 즐거워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나무에 관한 이 책도 반갑고 궁금하고 행복하게 잘 읽었습니다. 아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직업과 연구 분야가 있다니! 뭔가 제 정보지식을 과신하다 다시 한 번 크게 놀란 내용이 가득한 책입니다. 조금 소개하겠습니다.

 

첫 문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멋진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연륜연대학Dendrochronology’이란 학문 분야를 아시나요? 나이테에 생장 연도를 부여하고 나이테에 저장된 다양한 환경 정보를 밝히는 학문(옮긴이)입니다. 


Dendro는 ‘나무’라는 뜻이고, ‘Chronos’는 ‘시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 ‘연륜’은 나이테라는 뜻입니다(옮긴이). 즉 나무의 나이테가 담고 있는 정보들을 찾아 읽어 내는 분야입니다. 기후나 토양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관련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저자 역시 나이테가 과학의 한 분야가 될 정보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 잠시 상상해보니 나무와 함께 하는 연구란 참 좋을 것만 같습니다. 나무들은 정말 근사하니까요. 요즘은 특히 인간의 수명이 짧디 짧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몇 천 년 씩 살아가는 나무들이 부럽고 경이롭습니다.

 

“나는 연륜기후학자이다.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 매년 우리는 기후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태운 화석 연료가 기후에 초래한 대혼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 그러나 해를 거듭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억제하거나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 196개국이 모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 찬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한 2015년 파리 기후 협약 이후에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연륜연대학은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연속적인 나이테 기록은 독일의 참나무-소나무 연대기로 지난 1만 2650년 동안 한 해도 건너뛰지 않았다.”

 

“세계적 규모의 네트워크 덕분에 과학자들은 나무가 자라던 지구 표면의 과거 기후는 물론이고, 지표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권의 과거 기후까지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연륜연대학이 정확하게 밝혀낸 한 해 한 해의 나이테는 인류와 기후의 역사 사이에서 일어난 복잡한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발판과 정박지가 된다.”

 

“물론 나를 사로잡은 나이테 이야기들도 들려줄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나무 착취와 산림 파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연륜연대학자들로 하여금 과거를 연구하게 만들고, 미래에도 지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멈추지 않고 최고의 속도로 자신의 닿을 다음 천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지만 과학 진보에 대해 인류는 또한 불신과 무관심도 동시에 높습니다. 젊을(?) 적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혼란스럽고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 예외가 아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오답이 아닌가 생각했지요. 그런데 같은 연도를 살지만 우리 모두는 또한 각자의 연도를 살고 있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예외도 잘못도 오답도 아닌 팩트였지요. 항상 그럴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저자처럼 과학적 발견을 재미있어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을 즐거워하는 - 저자는 짜릿함이라 했지만 - 그런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과학의 동력은 발견의 즐거움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궁무진하게 재미있습니다. 1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영상 자료로도 기록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나무’라는 단일 대상에 관한 과학 분야이지만, 역사를 오르내리는 풍부한 문명적 사건들을 담고 있고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 문학처럼 읽힙니다. 무려 지난 2,000년 동안의 지구 날씨와 인류 문명과 생태계의 변화를 저자가 나무와 함께 밝히고자 노력한 기록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폭우와 모로코의 가뭄, 나이테의 넓이와 해적선, 여름 추위가 닥친 것과 로마 제국의 멸망, 나이테에 기록된 어느 해의 화재, 가뭄, 추위와 같은 나무의 불만과 우울 증상들. 나무인데 사는 일은 사람 사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경쟁과 공격이 없고 식량과 물이 풍부할 때 나무도 행복하게 살고 자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기록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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