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시민 -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강남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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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이 책의 부제와 비슷한 생각을 몇 달 전에 하고 써두었다. 내가 느낀 실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남의 열의에 찬 물을 끼얹는 냉소는 떠들어 대지 말자고. 더구나 그 대상이 90년대 생이라면 더욱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본래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에 비로소 의문을 가지고, 비로소 저들이 남용하는 권력은 우리가 빌려 준 것이고 정치란 시민의 몫이라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세대이다. 아는 게 병이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협박을 역사적으로 체험하고 겁에 질린 세대와는 다르다.

 

이분법도 양비론도 아니고, 구조가 먼저 개인이 먼저! 라는 공론에도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먼저 바뀔 수 있는 개인이 바뀌고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시민들이다. 90년대 세대들이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책임과 윤리를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각했다는 것이 무척 많이 아프지만, 덕분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정책으로 싸우지 않는 정당, 정당의 역할은 논쟁인데 싸우기만 한다고 욕하는 주권자들,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오해하는 기성세대들에 대해서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날카롭고 뼈아픈 질문들을 던진다.

 

“가진 자들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계급의 입구를 좁히려 특혜와 편법을 동원하고,

덜 가진 자들은 좁혀진 입구에 들어가기 위해 교육 신화와 부동산 신화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그보다도 덜 가진 자들은 이미 가진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여성과 비정규직과 장애인을 밀어낸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로 자리매김한 자신들의 삶이 있다. 세상 어디가 어떻게 좋아졌는지 실감할 겨를이 없이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고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존재들이 자신들과 동년배 또는 더 어린 이들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목격하는 이들이다.

 

어제 저녁,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평등법을 대표 발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쁜 소식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많이 뭉클하다. 그러나 감정을 다 잡고 현실을 지켜봐야할 의무가 있다. 과연 본회의에서 논의될 것인가, 통과될 것인가, 시행될 것인가, 거래되지 않을 것인가, 누더기가 되지 않을 것인가.

 

물러나고 움찔거리는 버릇이 있는 기성세대로서 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다뤄지는 조마조마한 과정 내내 저자처럼 정의단 장혜영 의원을 말을 기억해냈다. “잘 하고 있다. 같이 돌파하자고, 그런 말들이 필요하다.” 덕분에 냉소하지 않고 체념하지 않고 지났다. 감사하다.

 

장혜영 의원은 더 이전에  다른 말로 인해 무척 고맙게 느끼고 배우고 응원하는 이다. “저는 낙관주의자예요, 제가 행동할 거니까요.”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 다투는 와중에, 누가 이 상황을 왜 해결해 주지 않는지 비관하는 대신 내가 행동한다. 내가 나 자신의 구원자가 된다. 행동하는 순간 해결할 가능성이 늘어나니까. 이렇게 들렸다. 멋진 생각이다.

 

이웃분들 지겹게 너무 자주 언급하는 것 같지만,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바꾼 것이다.’

 

이들 세대가 얼마나 종합적인 어려움을 겪는지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읽는 내내 실감이 났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 기레기라 불리는 언론, 퇴근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노동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분노를 토해내지 않아 무척 놀랍기까지 한 냉철한 결론을 낸다.


“결국 가짜뉴스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해 집단 간의 치열한 갈등이 정치라는 과정 속에서 원활하게 해소되지 못하니 집단들은 정치적 해결이 아닌 파워게임으로 이해를 관철시키려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워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갈등하는 상대방과의 대화와 타협은 고려되지 않고, 상대방을 위선적인 대상으로 매도하거나 이론으로부터 고립시켜 영향력을 잃도록 만들면 된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가 주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거나 갈등 관계인 상대방이 여론의 비난에 부딪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출처: <이어즈 앤 이어즈 Years and Years>

 

여전히 법과 구조와 제도와 사회적 규모의 변화가 실질적 변화에 중요한 동력이자 계기라고 믿는다. 그리고 동시에 개인들이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것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이 무엇이든 사지 않으면 된다. 허망할 정도로 이 모든 문제는 돈 때문이다. 


기업의 상품이건 정책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더 꼴 보기 싫어지는, 도움이 참 안 된다 싶은 언론 역시 소비자로서 독자로서 시민이 바꾸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이런가, 이랬지, 정말 이럴까, 이런 질문들이 그치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사회와 90년생들이 보는 사회는 다른 점이 이렇게나 많은 풍경이었다. 내가 선 자리를 정확히 떠올려 보려 애를 써보았다.

 

힘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낄 정도는 남았다. 이런 내게 든든한 위안처럼 의지처럼 존경하는 작가의 문장을 만난다. 


외울 의도가 없었지만 자주 회자되니 외워진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 와 같고도 다른 상황처럼 들린다.

 

“죽음의 경위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죽음을 막지 못한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이윤을 보채느라 안전에 존을 쓰는 대신에 사람을 밀어 넣은 곳에 죽음이 솟아난다. (...)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넘치되, 그 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없으니 능력은 있으나 마나다. 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마비되는 까닭은, 이 마비가 구조화되고 제도화되고, 경영논리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깔끔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 김훈 2019. 11. 25 경향신문 특별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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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작 - 미·중 전쟁과 한국의 선택
허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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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언론사 주식도 보유했고 잡지 구독도 열심이었고 관련 활동과 모임, 소식도 챙겨 보고 참여했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점차로 줄어들었다. 신제품을 맛보고 신곡이 좋고 뉴스가 궁금하던 시절이 모두 지나갔다. 지금의 일상은 업무, 책, 영화, 클래식 음악만으로도 시간이 아쉬운 날이 더 많다.

 

어쩌다 접하는 언론 보도 역시 기사 가치가 있나 싶은 대상과 의도가 저열하게 드러나는 작전이 보이니 달갑지도 않고 화내는 일도 지겹다. 그래도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칼럼과 사설과 연재를 쓰시는 이들 중 못 읽고 지나간 내용이 아까워서 다 찾아보게 되는 분들도 계시니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은 저자가 10여 년간 언론에 게재한 칼럼들을 주제별로 나눠 수록한 것이다. 취사선택도, 수정도 가필도 없이 그대로 실었다 한다. 단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구성이다. 국제 분야란 대해 언제 따로 배워 이해할까 싶은 영역이라 주요 시사용어, 경제 지식, 세계적인 작가와 학자들, 발췌한 글들을 모두 모아 주었으니 이만한 텍스트도 없다 느낀다.

 

여전히 내 독서의 편향은 공고한 것인지, 책을 읽은 티가 안 나게 처음 만나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싫은 것은 아니고 도리어 반갑고 재미있으니 다행이다. 분량면에서도 내용으로도 일독으로 다 이해하기란 벅차지만, 결심을 하면 아주 진지한 공부를 할 충실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만나기 싫은 인물이 포함된 글들을 슬쩍 건너뛰며 읽기도 했다. 언젠가 내 깜냥이 좀 더 커지면 차분하고 우아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바다 심연의 4차 산업혁명 물결과 그 위 내셔널리즘이라는 조류가 물밑에서 부딪혀 충돌하는 지점에는 굉음이 일고 마그마가 폭발한다. 바로 패권을 둘러싼 미중의 전투 현장이다. 수면 위로 눈을 내밀면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너울 파도가 출렁인다. 이 파도는 지난 30여 년간 인류를 지배한 세계화라는 현상을 아련한 추억의 포말 정도로 역사의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과거 한반도에 2,000번이 넘는 침략이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 지난 일이라 괜찮다 - 식민지, 전쟁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 덮자는 말은 아닙니다. 여전히 한반도에 자리한 대한민국은 형태를 달리한 전쟁에 여전히 시달리는 중이다.

 

그나마 수치심을 모르던 탐욕스러운 이가 최강국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좀 덜 졸이게 하지만 - 건수가 있으면 돈 내놓으라던 장면들이 아직도 떠올라 불쾌하다 - 그렇다고 우리에게 특별히 더 유리해진 면은 무엇이며 있다고 해도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글로벌 통상 체제의 중심축은 다자주의 -> 양자주의 -> 거대 블록화로 옮겨 가고 있다. (...) 경제 대국을 중심축으로 주변 국가들을 연결해 광역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구상이다.”

 

언론에서 현 정부와 원수가 진 듯 악착같이 보도하지 않아 의미도 축하도 없었지만 대한민국은 57년 만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인정받았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상 첫 만장일치로 지위가 변경되었다.

 

그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실질적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일상이 더 많으리라 동감한다. 하지만 - 이젠 그럴 기회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 해외 관련 어떤 일을 하든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 국적을 가진 국가의 지위 변화는 늘 영향을 미친다. 가령 OECD 가입국이라 유학생 혜택이 제한되는 것처럼.

 

동아시아는 다른 형태로 협력을 이루어낼 것인가. 과연 중국과 일본과 함께 외교 관계를 분쟁 없이 이뤄나갈 수 있을까. 과문해서 더 모를 일이지만 그 미래가 쉽지 않은 예감은 강력하다.

 

베트남은 ‘포스트 차이나’로 기대를 받지만, 한국에게도 기회의 땅이 될 것인가. 일본 식민지로 살았지만 일본을 꽤나 동경하던 일부 한국인들의 정서와 달리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정서는 훨씬 더 적대감이 크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제일 걱정되지만, 한편으로는 20-30년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환경재앙 앞에서 일국의 경제나 자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들도 동반되길 간절히 바란다.

 

겁보라 늘 희망이 있길, 여지가 있길, 최대한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하지만, 인류에게 남은 뭐라도 해볼 마지막 기회일 듯하다. 최대로 잡아 2040년이라는 보고를 가장 자주 본다. 일부 학자는 6년간 극한 기후 현상이 강화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5년 안에 재앙을 만날 것이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스스로는 선택하기 어려웠을 논조와 입장을 가진 저자의 글을 읽게 되어 오히려 좋았다. 혼자 읽지만 투덕거리며 반론과 정리가 이루어지는 활발한 독서였다. 지난 십 년 간 우리가 살아 온 역사도 덕분에 다시 떠올려 보았다. 사적으로도 부대꼈지만 한국 사회도 참 큰일들이 많았다. 힘겹고 아프고 어려웠고 지금도 모두 다 낫고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들 애 많이 쓰셨다. 


우리에게 다음 십 년이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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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8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운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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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개인적 동기 없이 필독서라고 읽었더니 내용은 남았는데 책의 구성은 잊어 버렸다. 무려 한 세기가 지나 만난 현대 지성의 이탈리아 원본 완역은 그 자체로 반갑고 귀하다. 번역본은 어쩔 수 없이 가장 최근의 것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전에 읽었을 때보다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많이 늘지 않았다는 현실이다. 조금씩이라도 이탈리아 역사 공부를 해두었으면 좋으련만.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용 중에서 역사에 대한 예시들을 찬찬히 읽으며, 익숙해질 때쯤이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바가 좀 더 잘 이해되는 느낌이다.

 

독자의 경험의 크기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도 하는 텍스트라 이렇게 오래 두었다 꺼내 보는 독서도 새롭고 근사하다. 이전에는 단순 명쾌하게 들리던 제안들도 이제는 좀 다르게 읽힌다. 


원저자의 의도를 다 알 수야 없겠지만, 정치권력 관계에 따라 몹시 휘둘리던 개인으로서의 불안과 희망과 고찰과 고민 등이 군주에게 전하는 문장들에 담긴 것도 같다.

 

현재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정독한다는 이 고전을 어떤 목적으로 의미로 읽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오독과 오해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책의 운명이기도 하지만, 악의적으로 자기변명의 수단으로 삼지는 말기를 바란다. 당시의 도시국가의 상황과는 아주 다른 역학이 작용하는 현대 국가가 아닌가.

 

“군주가 나라를 얻고 유지하면, 그의 수단은 언제나 명예롭다는 평가를 받고, 그는 모두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민중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일의 결과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군주가 관리를 정확하게 가늠할 방법이 있습니다. 관리가 당신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런 사람은 절대 훌륭한 관리가 될 수 없으며 당신도 그를 믿지 못할 것입니다.”

 

읽다 보니 일견 군주의 처세술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처럼도 보인다. 단 한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쓴 글이라 긴 편지글 같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1513년에 그가 집필한 책은 2021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른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간지 혹은 아이러니처럼 느낀다.



우리는 공화국이지만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제를 택한 탓에 곧 다시 시끄럽고 혼탁한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군주론>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군주와 대통령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이들 알고 있지만 잘 떠올리지 않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즉 굳이 따지자면 공화국의 군주는 모든 국민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자신이 주인이고 군주라는 생각으로 다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와 국가에 대해 참여하기를 염원해 본다.

 

지금 읽어서 다시 읽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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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여자들
다이애나 클라크 지음, 변용란 옮김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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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제목만 읽어도 누구나 내용을 짐작할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미적인 기준 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 있어서 여러 기준처럼 작용하는 ‘마름’에 대해서는 누구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를 꺼린다.

 

얼마나 말라야 제대로 마른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니 나도 명확하지는 않다. 간혹 프로필 숫자를 보면 뼈가 비었거나 내장이 없어야 가능한 몸무게가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는데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단 생각이 무서워 차라리 거짓이라 믿고 싶다. 몸무게를 줄이려고 마지막 갈비뼈를 잘라 낸다거나 위를 절제하는 수술은 이미 오래전에 실제로 이루어졌다.

 

“물고기의 혀에 흡착해 살아가는 기생충인 키모토아 엑시구아는 아가미를 통해 숙주인 물고기 안으로 들어간다. 암컷은 물고기의 혀에 달라붙어 혈관을 절단해 근육을 괴사시켜 혀가 떨어져나가게 한 다음, 남은 혀뿌리에 붙어서 보철물처럼 움직이며 혀를 대신한다. (...) 과학자들은 이 기생충에 감염된 물고기들이 대부분 중량 미달임을 확인했다.”

 

어쩌다 마른 것이 예쁜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을까, 참 기괴하고 이상한 미감이다. 몸이 마른다는 것은 영양 섭취가 나쁘거나 질병에 시달리는 신호로 해석된 시간이 더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특정 직업 분야도 아니고 전 여성이 외모에 관한 선입견, 차별, 강박, 혐오에 노출되어 사는 사회이다.

 

타인의 몸무게와 속옷과 머리 길이에 일일이 간섭하고 욕하고 공격하고 심지어 생업조차 그만두게 하는 폭력적인 자들이 무리지어 사냥터를 누비듯 돌아다니는 사회이다. 적어도 온라인상에서 이들은 아주 대담하고 한 건 해치울 때마다 ‘먹어치웠다’라고 표현하며 일부는 수입을 얻기도 한다.

 

인간 소외와 차별의 절정은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예쁜 것들이 성격도 좋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성형외과 의사에게 살려 달라 부탁들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몇 년 째인가 종합병원 흉부외과 지원이 없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현실 한탄은 그만하고 책 내용을 소개해본다. 2003년 14세였던 쌍둥이 자매 릴리와 로즈는 성격이 아주 달랐다. 마치 쌍둥이가 한 면의 성격을 따로 나눠 가진 것처럼 언니 릴리는 적극적이고 활달하고 동생 로즈는 소극적이고 내향적이다.

 

동생은 언니가 되고 싶어하는데, 하필 그 방법이 마른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동생은 거식증을 언니는 폭식증을 겪으며 둘의 몸무게는 3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게 된다. 이후에는 끔찍할 정도의 숫자에 이른다. 2012년(23세 릴리: 122kg, 로즈: 27.5kg)

 

“우리는 모래시계였다. 한쪽의 내용물을 비워야 다른 쪽이 채워졌다. 우리는 서로 달라지기 전까지만 똑같았다.”

 

아주 마른 사람을 보고 그 이유만으로 멋지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산 나는 마른 것과 인기의 상관관계가 기이하고 놀라울 뿐이다. 아무래도 미디어 영향이 크겠지만. 다들 꿈이 비쩍 마른 청소년 아이돌일 리도 없을 텐데. 생존 근육이 무척 중요한 나이인지라 더 공감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시선과 미디어가 모두 특정한 몸의 형태를 선망하도록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특히 여성들의 몸은 흔히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 여성의 날씬하지 않은 몸은 곧장 게으름과 자기관리 실패를 의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거식, 폭식, 알코올 중독 등이 왜 일어나는지는 이해한다. 이런 행동은 당사자가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이 있다는 것, 정신이 망가지기 전에 그 고통을 몸에 퍼부어 정신이 미치지 않게 버텨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해와 다름없는 이런 식의 전이는 결국 자신을 살리는 것일까, 죽이는 것일까.

 

“거식증의 핵심 개념은 모순이다. (...) 우리는 죽도록 굶주릴 때 가장 충족감을 느낀다. 우리들만 누리는 느린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우리는 몸을 포기함으로써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우리는 자신을 말살하면서 눈에 띄기를 열망한다.”


출처: http://psycheblog.uk/2018/04/30/characteristics-of-anorexia-nervosa/


“거식증 환자는 극단적인 체중 감소를 경험한다. 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은 그 이상이다. 머리카락, 손톱, 치아, 친구, 가족, 자기 자신을 잃는다. 세상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 먹지 않는 것 외에 중요한 게 뭔지도 잃어버린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목숨까지도. 그는 탐욕스럽다, 거식증 말이다.”


머리가 찢어질 듯 복잡한 기분일 때, 우연히 - 자해한 것 아닙니다 - 몸을 살짝 다치니 머리가 맑아졌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하나의 고통만 인지한다고 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정신이 편안했다. 다행스럽게 읽고 들은 것들이 적지 않은 나이라 이후에 기분이 복잡할 때 몸을 자해하는 일로 이어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마도 짐작보다 많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탈출할 도망갈 방법도 아무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가해를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며칠 전 지인의 추천으로 <노는 언니>라는 프로그램 영상을 보았다. 넘사벽 국가대표들과 메달리스트, 세계 순위권 프로 운동선수들이 나오는 지라 거리감이 엄청난 몸들을 지녔는데도 한편으로 영상 자료가 무척 편안했다. 몸에 대한 표준도 지적질도 없어서이다.

 

자기 분야에서 원하는 목표를 위해 어떤 몸이 필요한지 잘 아는 프로들이라 세간의 청순가련함 따위는 그들에게 쓸모도 가치도 없는 점이 유쾌했다. 너무 웃기고 솔직한 이 언니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운동에 열심이었다.

 

이 프로는 왜 공중파가 아니란 말인가. 십 대들 몇 년 씩 굶겨서 속옷 같은 옷 입혀서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돈 벌게 해주는 것보다 공적으로 다뤄야 하는 사회적 가치가 더 있지 않을까. 이렇게 쓰지만 정말 순진하게 수익구조를 몰라 그러는 건 아닙니다. 답답한 호소랄까요...

 

이 책은 음식과 다이어트라는 주제를 두루 아우르고, 사랑이 관련된 관계, 부재, 왜곡, 결핍, 집착, 동성애와 우정에 대한, 첫 작품에 쏟아 부을 만한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소설이고 번역이지만 저자도 역자도 언어를 넘어선 삶과 연구에 있어 주제와 근접한 분들이다.


쌍둥이 자매의 사투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장편 소설이 주제의 진지함과 분량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를 만나기를 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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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이 당신이다 - 주변을 보듬고 세상과 연대하는 말하기의 힘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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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이야기하기 전 남기고 싶은 표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책은 표지 코팅이 없습니다.

반짝반짝 띠지도 없습니다.

책을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이 사용되는지

책들로 가득한 서재에 오래 머무르면 건강이 나빠질 거라 합니다.

 

인간의 건강만이 아니더라도

‘책’이, 책 만드는 일이 환경에 무감하면 더 서글프지요.

마케팅, 출판업계 사정도 모르는 철없는 소리인가요.

20년도 더 전부터

“먹고 사는 게 중요한데 쓰레기 치우는 소리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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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가진 말을 거르는 체의 형태와 기능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글은 말을 한 번이라고 걸러서 나오는 기록물이다. 이렇게 쓰니 생각나는 대로 적고 오타도 잘 못 보는 글을 매일 쓰는 입장이라 뭔가 깊이 찔리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즉 글이 보관되고 반복되는 것에 비해 말은 휘발되고 일회성일 경우가 더 많다.

 

비교적 즉각적이고 직설적인 말은 발화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 준다. 영국인들은 첫 단어의 발음만 들어도 그 사람의 계급을 알 수 있다고들 하던데, 처음 그 말을 비웃던 나는 시간이 지나 계급 이상의 것을 알게 되었다. 발음, 억양, 어조, 자세, 태도, 분위기... 우리는 전 존재로 자신의 정보를 밝히며 산다.

 

“우리는 언어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다. 태어나자마자 따라야 할 말의 규칙들이 내 몸에서 새겨진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언어의 찐득거리는 점성을 묽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는데, 아주 좁은 영역에서 살며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던 내가 여러 사회 경험을 하면서 나이와 더불어 경험이 늘어나 보고 듣고 판단한 자료가 늘어난 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쁘게(?) 지적받고 배운 점은 내가 만들어 놓은 언어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다. 맞춤법보다 우리가 쓰는 말에 더 맞게 고쳐야 한다는 지적. 아직도 동의하는가에 대해서는 미결정의 상태이지만 이런 주장이 분명 반갑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겐 말을 비틀거나 줄이거나 늘리거나 새로 만들어 쓸 권리가 있다.”

 

이 책의 제목 <말끝이 당신이다>는 동감하는 동시에 자기반성 모드로 읽어야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합의한 당사자들만 좋다면 의례적인 말끝을 사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가령 반말 사용이 무례가 아니라 친밀감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그나저나 낮춤말, 높임말 이런 언어는 언제나 바뀌려나, 희망이 없는 건가... 문득.

 

말끝이 친밀도, 관계의 성격, 위계, 권력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은 일반 상식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글이 입말에 가까울 때 나는 말끝이 더 길어진다. ~습니다, ~않을까요 등등. 그건 친구들과 떠들 때 외에는 반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왜 반발이 당연한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라면.

 

그 외에도 대중매체의 발달로 말끝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일, 축약해서 쓰는 말들이 의미 전달이 어려운 점 등은 가능한 자주 유의해야 한다. 여러 해 전이긴 하지만, 한글을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 KBS MBC SBS YTN JTBC 이런 방송국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를 대화에 사용하고 표기하는 일은 옳은 일인지 뒤늦게 자각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현실은 아주 다층적으로 심각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언어를 파괴한다는 항의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호소가 있지만 축약어 만들기를 막을 도리가 없다. 말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말을 말답게 잘 사용하지 못한 일화들이 없지는 않다. 근무처에서 받은 전화에서 상대방이 아무 말도 안 하기에 왜 말씀 안 하시냐 했더니 자동응답기인줄 알았다고. 그렇게까지 인간미를 없애고 기계처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선거 준비로 말들이 떠들썩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잘 들리지 않던 말들도 미디어가 활성화된 덕분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반복해서 찾아 들을 수도 있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더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은 위계에 익숙하고 어느 조직이든 권력의 최상층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더구나 관료로 오래 일한 이들은 여지없이 삶을 말로 태도로 드러내보이게 된다. 천재 연기자가 아니라면 - 그렇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연기는 불가능하겠지만 -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들이 진심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국민을 섬기는 일을 하겠다고 한껏 겸손을 표한다.

 

내용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살짝 들어본 그들의 말은 실망스러운 점들이 꽤나 벌써 많다. 한글 사용도 오류가 많고 말하는 법도 참 미숙하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생활의 결과인가. 자꾸 스스로 찔리는 부분이 많이 평하기가 편하지만은 않다.


사실 가장 놀라고 걱정되는 것은 이전에도 언급한 문해력literacy이다. 한글이 배우기 쉬운 언어라 글자는 다 알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고등학생들 문해력 수준이 20% 내외라고 해서 무척 충격적이었다. 장문의 글을 못 읽고 읽더라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스마트하게 제목, 사진, 영상만 누리고 사는 탓일까.

 

나도 아주 늦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도 하는 중이고 진전은...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도 한편 아주 쉽게 어휘 공부도 할 수 있고, 좋은 글들도 찾아 읽을 수 있고, 원하면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필사도 할 수 있다. 말끝이 자신을 나타낸다고 공감하는 이들은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말끝을 만들어 나가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잘 몰랐던 김진해 저자는 자신의 글을 집중력이 가장 좋은 800자 내외로 다듬기 위해 노력을 치열하게 하신다고 한다. 내용의 순도와 더불어 형식의 정제성도 뛰어나리라 기대한다. 주제와 더불어 어휘들을 함께 공부할 좋은 자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늘 그렇듯 100분의 1도 소개 못한 내용입니다. 풍부한 주제와 멋진 글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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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기회인 것 같아 말을 덧붙입니다.

 

O린이,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장애, 암유발(암 걸릴 뻔), 병맛, 사춘기냐, 갱년기냐, 보통은~ 일반적으로~ 세상은~ 원래~ 그걸~ 돼지야~ 개야~ 닭이야~ 등등 그 외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진 욕설과 비속어들.

 

힘껏 기억해서 같이 줄여 나가면 좋겠습니다.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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