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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여자들
다이애나 클라크 지음, 변용란 옮김 / 창비 / 2021년 7월
평점 :
이 주제는 제목만 읽어도 누구나 내용을 짐작할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미적인 기준 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 있어서 여러 기준처럼 작용하는 ‘마름’에 대해서는 누구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를 꺼린다.
얼마나 말라야 제대로 마른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니 나도 명확하지는 않다. 간혹 프로필 숫자를 보면 뼈가 비었거나 내장이 없어야 가능한 몸무게가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는데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단 생각이 무서워 차라리 거짓이라 믿고 싶다. 몸무게를 줄이려고 마지막 갈비뼈를 잘라 낸다거나 위를 절제하는 수술은 이미 오래전에 실제로 이루어졌다.
“물고기의 혀에 흡착해 살아가는 기생충인 키모토아 엑시구아는 아가미를 통해 숙주인 물고기 안으로 들어간다. 암컷은 물고기의 혀에 달라붙어 혈관을 절단해 근육을 괴사시켜 혀가 떨어져나가게 한 다음, 남은 혀뿌리에 붙어서 보철물처럼 움직이며 혀를 대신한다. (...) 과학자들은 이 기생충에 감염된 물고기들이 대부분 중량 미달임을 확인했다.”
어쩌다 마른 것이 예쁜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을까, 참 기괴하고 이상한 미감이다. 몸이 마른다는 것은 영양 섭취가 나쁘거나 질병에 시달리는 신호로 해석된 시간이 더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특정 직업 분야도 아니고 전 여성이 외모에 관한 선입견, 차별, 강박, 혐오에 노출되어 사는 사회이다.
타인의 몸무게와 속옷과 머리 길이에 일일이 간섭하고 욕하고 공격하고 심지어 생업조차 그만두게 하는 폭력적인 자들이 무리지어 사냥터를 누비듯 돌아다니는 사회이다. 적어도 온라인상에서 이들은 아주 대담하고 한 건 해치울 때마다 ‘먹어치웠다’라고 표현하며 일부는 수입을 얻기도 한다.
인간 소외와 차별의 절정은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예쁜 것들이 성격도 좋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성형외과 의사에게 살려 달라 부탁들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몇 년 째인가 종합병원 흉부외과 지원이 없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현실 한탄은 그만하고 책 내용을 소개해본다. 2003년 14세였던 쌍둥이 자매 릴리와 로즈는 성격이 아주 달랐다. 마치 쌍둥이가 한 면의 성격을 따로 나눠 가진 것처럼 언니 릴리는 적극적이고 활달하고 동생 로즈는 소극적이고 내향적이다.
동생은 언니가 되고 싶어하는데, 하필 그 방법이 마른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동생은 거식증을 언니는 폭식증을 겪으며 둘의 몸무게는 3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게 된다. 이후에는 끔찍할 정도의 숫자에 이른다. 2012년(23세 릴리: 122kg, 로즈: 27.5kg)
“우리는 모래시계였다. 한쪽의 내용물을 비워야 다른 쪽이 채워졌다. 우리는 서로 달라지기 전까지만 똑같았다.”
아주 마른 사람을 보고 그 이유만으로 멋지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산 나는 마른 것과 인기의 상관관계가 기이하고 놀라울 뿐이다. 아무래도 미디어 영향이 크겠지만. 다들 꿈이 비쩍 마른 청소년 아이돌일 리도 없을 텐데. 생존 근육이 무척 중요한 나이인지라 더 공감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시선과 미디어가 모두 특정한 몸의 형태를 선망하도록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특히 여성들의 몸은 흔히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 여성의 날씬하지 않은 몸은 곧장 게으름과 자기관리 실패를 의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거식, 폭식, 알코올 중독 등이 왜 일어나는지는 이해한다. 이런 행동은 당사자가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이 있다는 것, 정신이 망가지기 전에 그 고통을 몸에 퍼부어 정신이 미치지 않게 버텨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해와 다름없는 이런 식의 전이는 결국 자신을 살리는 것일까, 죽이는 것일까.
“거식증의 핵심 개념은 모순이다. (...) 우리는 죽도록 굶주릴 때 가장 충족감을 느낀다. 우리들만 누리는 느린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우리는 몸을 포기함으로써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우리는 자신을 말살하면서 눈에 띄기를 열망한다.”
출처: http://psycheblog.uk/2018/04/30/characteristics-of-anorexia-nervosa/
“거식증 환자는 극단적인 체중 감소를 경험한다. 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은 그 이상이다. 머리카락, 손톱, 치아, 친구, 가족, 자기 자신을 잃는다. 세상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 먹지 않는 것 외에 중요한 게 뭔지도 잃어버린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목숨까지도. 그는 탐욕스럽다, 거식증 말이다.”
머리가 찢어질 듯 복잡한 기분일 때, 우연히 - 자해한 것 아닙니다 - 몸을 살짝 다치니 머리가 맑아졌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하나의 고통만 인지한다고 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정신이 편안했다. 다행스럽게 읽고 들은 것들이 적지 않은 나이라 이후에 기분이 복잡할 때 몸을 자해하는 일로 이어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마도 짐작보다 많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탈출할 도망갈 방법도 아무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가해를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며칠 전 지인의 추천으로 <노는 언니>라는 프로그램 영상을 보았다. 넘사벽 국가대표들과 메달리스트, 세계 순위권 프로 운동선수들이 나오는 지라 거리감이 엄청난 몸들을 지녔는데도 한편으로 영상 자료가 무척 편안했다. 몸에 대한 표준도 지적질도 없어서이다.
자기 분야에서 원하는 목표를 위해 어떤 몸이 필요한지 잘 아는 프로들이라 세간의 청순가련함 따위는 그들에게 쓸모도 가치도 없는 점이 유쾌했다. 너무 웃기고 솔직한 이 언니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운동에 열심이었다.
이 프로는 왜 공중파가 아니란 말인가. 십 대들 몇 년 씩 굶겨서 속옷 같은 옷 입혀서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돈 벌게 해주는 것보다 공적으로 다뤄야 하는 사회적 가치가 더 있지 않을까. 이렇게 쓰지만 정말 순진하게 수익구조를 몰라 그러는 건 아닙니다. 답답한 호소랄까요...
이 책은 음식과 다이어트라는 주제를 두루 아우르고, 사랑이 관련된 관계, 부재, 왜곡, 결핍, 집착, 동성애와 우정에 대한, 첫 작품에 쏟아 부을 만한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소설이고 번역이지만 저자도 역자도 언어를 넘어선 삶과 연구에 있어 주제와 근접한 분들이다.
쌍둥이 자매의 사투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장편 소설이 주제의 진지함과 분량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를 만나기를 간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