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시민 -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강남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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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냉소하지 않고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이 책의 부제와 비슷한 생각을 몇 달 전에 하고 써두었다내가 느낀 실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남의 열의에 찬 물을 끼얹는 냉소는 떠들어 대지 말자고더구나 그 대상이 90년대 생이라면 더욱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본래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에 비로소 의문을 가지고비로소 저들이 남용하는 권력은 우리가 빌려 준 것이고 정치란 시민의 몫이라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세대이다아는 게 병이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협박을 역사적으로 체험하고 겁에 질린 세대와는 다르다.

 

이분법도 양비론도 아니고, 구조가 먼저 개인이 먼저! 라는 공론에도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먼저 바뀔 수 있는 개인이 바뀌고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시민들이다. 90년대 세대들이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책임과 윤리를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각했다는 것이 무척 많이 아프지만덕분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정책으로 싸우지 않는 정당정당의 역할은 논쟁인데 싸우기만 한다고 욕하는 주권자들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오해하는 기성세대들에 대해서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날카롭고 뼈아픈 질문들을 던진다.

 

가진 자들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계급의 입구를 좁히려 특혜와 편법을 동원하고,

덜 가진 자들은 좁혀진 입구에 들어가기 위해 교육 신화와 부동산 신화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그보다도 덜 가진 자들은 이미 가진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여성과 비정규직과 장애인을 밀어낸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로 자리매김한 자신들의 삶이 있다세상 어디가 어떻게 좋아졌는지 실감할 겨를이 없이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고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존재들이 자신들과 동년배 또는 더 어린 이들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목격하는 이들이다.

 

어제 저녁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평등법을 대표 발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기쁜 소식임에는 분명하다사실 많이 뭉클하다그러나 감정을 다 잡고 현실을 지켜봐야할 의무가 있다과연 본회의에서 논의될 것인가통과될 것인가시행될 것인가거래되지 않을 것인가누더기가 되지 않을 것인가.

 

물러나고 움찔거리는 버릇이 있는 기성세대로서 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다뤄지는 조마조마한 과정 내내 저자처럼 정의단 장혜영 의원을 말을 기억해냈다잘 하고 있다같이 돌파하자고그런 말들이 필요하다.” 덕분에 냉소하지 않고 체념하지 않고 지났다감사하다.

 

장혜영 의원은 더 이전에  다른 말로 인해 무척 고맙게 느끼고 배우고 응원하는 이다저는 낙관주의자예요제가 행동할 거니까요.”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 다투는 와중에누가 이 상황을 왜 해결해 주지 않는지 비관하는 대신 내가 행동한다내가 나 자신의 구원자가 된다행동하는 순간 해결할 가능성이 늘어나니까이렇게 들렸다멋진 생각이다.

 

이웃분들 지겹게 너무 자주 언급하는 것 같지만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누군가가 바꾼 것이다.’

 

이들 세대가 얼마나 종합적인 어려움을 겪는지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읽는 내내 실감이 났다책임지지 않는 정치기레기라 불리는 언론퇴근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노동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분노를 토해내지 않아 무척 놀랍기까지 한 냉철한 결론을 낸다.


결국 가짜뉴스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할 수 있다이해 집단 간의 치열한 갈등이 정치라는 과정 속에서 원활하게 해소되지 못하니 집단들은 정치적 해결이 아닌 파워게임으로 이해를 관철시키려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파워게임의 룰은 간단하다갈등하는 상대방과의 대화와 타협은 고려되지 않고상대방을 위선적인 대상으로 매도하거나 이론으로부터 고립시켜 영향력을 잃도록 만들면 된다그런 점에서 가짜뉴스가 주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거나 갈등 관계인 상대방이 여론의 비난에 부딪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탓이 맞아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출처: <이어즈 앤 이어즈 Years and Years>

 

여전히 법과 구조와 제도와 사회적 규모의 변화가 실질적 변화에 중요한 동력이자 계기라고 믿는다그리고 동시에 개인들이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팔리지 않는 것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그러니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이 무엇이든 사지 않으면 된다허망할 정도로 이 모든 문제는 돈 때문이다


기업의 상품이건 정책이건 마찬가지이다그래서 나는 매일 더 꼴 보기 싫어지는도움이 참 안 된다 싶은 언론 역시 소비자로서 독자로서 시민이 바꾸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이런가이랬지정말 이럴까이런 질문들이 그치지 않았다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사회와 90년생들이 보는 사회는 다른 점이 이렇게나 많은 풍경이었다내가 선 자리를 정확히 떠올려 보려 애를 써보았다.

 

힘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낄 정도는 남았다이런 내게 든든한 위안처럼 의지처럼 존경하는 작가의 문장을 만난다


외울 의도가 없었지만 자주 회자되니 외워진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와 같고도 다른 상황처럼 들린다.

 

죽음의 경위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죽음을 막지 못한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이윤을 보채느라 안전에 존을 쓰는 대신에 사람을 밀어 넣은 곳에 죽음이 솟아난다. (...)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넘치되그 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없으니 능력은 있으나 마나다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마비되는 까닭은이 마비가 구조화되고 제도화되고경영논리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깔끔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김훈 2019. 11. 25 경향신문 특별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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