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의 시작 - 미·중 전쟁과 한국의 선택
허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평점 :
한 때는 언론사 주식도 보유했고 잡지 구독도 열심이었고 관련 활동과 모임, 소식도 챙겨 보고 참여했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점차로 줄어들었다. 신제품을 맛보고 신곡이 좋고 뉴스가 궁금하던 시절이 모두 지나갔다. 지금의 일상은 업무, 책, 영화, 클래식 음악만으로도 시간이 아쉬운 날이 더 많다.
어쩌다 접하는 언론 보도 역시 기사 가치가 있나 싶은 대상과 의도가 저열하게 드러나는 작전이 보이니 달갑지도 않고 화내는 일도 지겹다. 그래도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칼럼과 사설과 연재를 쓰시는 이들 중 못 읽고 지나간 내용이 아까워서 다 찾아보게 되는 분들도 계시니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은 저자가 10여 년간 언론에 게재한 칼럼들을 주제별로 나눠 수록한 것이다. 취사선택도, 수정도 가필도 없이 그대로 실었다 한다. 단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구성이다. 국제 분야란 대해 언제 따로 배워 이해할까 싶은 영역이라 주요 시사용어, 경제 지식, 세계적인 작가와 학자들, 발췌한 글들을 모두 모아 주었으니 이만한 텍스트도 없다 느낀다.
여전히 내 독서의 편향은 공고한 것인지, 책을 읽은 티가 안 나게 처음 만나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싫은 것은 아니고 도리어 반갑고 재미있으니 다행이다. 분량면에서도 내용으로도 일독으로 다 이해하기란 벅차지만, 결심을 하면 아주 진지한 공부를 할 충실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만나기 싫은 인물이 포함된 글들을 슬쩍 건너뛰며 읽기도 했다. 언젠가 내 깜냥이 좀 더 커지면 차분하고 우아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바다 심연의 4차 산업혁명 물결과 그 위 내셔널리즘이라는 조류가 물밑에서 부딪혀 충돌하는 지점에는 굉음이 일고 마그마가 폭발한다. 바로 패권을 둘러싼 미중의 전투 현장이다. 수면 위로 눈을 내밀면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너울 파도가 출렁인다. 이 파도는 지난 30여 년간 인류를 지배한 세계화라는 현상을 아련한 추억의 포말 정도로 역사의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과거 한반도에 2,000번이 넘는 침략이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 지난 일이라 괜찮다 - 식민지, 전쟁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 덮자는 말은 아닙니다. 여전히 한반도에 자리한 대한민국은 형태를 달리한 전쟁에 여전히 시달리는 중이다.
그나마 수치심을 모르던 탐욕스러운 이가 최강국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좀 덜 졸이게 하지만 - 건수가 있으면 돈 내놓으라던 장면들이 아직도 떠올라 불쾌하다 - 그렇다고 우리에게 특별히 더 유리해진 면은 무엇이며 있다고 해도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글로벌 통상 체제의 중심축은 다자주의 -> 양자주의 -> 거대 블록화로 옮겨 가고 있다. (...) 경제 대국을 중심축으로 주변 국가들을 연결해 광역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구상이다.”
언론에서 현 정부와 원수가 진 듯 악착같이 보도하지 않아 의미도 축하도 없었지만 대한민국은 57년 만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인정받았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상 첫 만장일치로 지위가 변경되었다.
그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실질적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일상이 더 많으리라 동감한다. 하지만 - 이젠 그럴 기회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 해외 관련 어떤 일을 하든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 국적을 가진 국가의 지위 변화는 늘 영향을 미친다. 가령 OECD 가입국이라 유학생 혜택이 제한되는 것처럼.
동아시아는 다른 형태로 협력을 이루어낼 것인가. 과연 중국과 일본과 함께 외교 관계를 분쟁 없이 이뤄나갈 수 있을까. 과문해서 더 모를 일이지만 그 미래가 쉽지 않은 예감은 강력하다.
베트남은 ‘포스트 차이나’로 기대를 받지만, 한국에게도 기회의 땅이 될 것인가. 일본 식민지로 살았지만 일본을 꽤나 동경하던 일부 한국인들의 정서와 달리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정서는 훨씬 더 적대감이 크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제일 걱정되지만, 한편으로는 20-30년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환경재앙 앞에서 일국의 경제나 자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들도 동반되길 간절히 바란다.
겁보라 늘 희망이 있길, 여지가 있길, 최대한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하지만, 인류에게 남은 뭐라도 해볼 마지막 기회일 듯하다. 최대로 잡아 2040년이라는 보고를 가장 자주 본다. 일부 학자는 6년간 극한 기후 현상이 강화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5년 안에 재앙을 만날 것이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스스로는 선택하기 어려웠을 논조와 입장을 가진 저자의 글을 읽게 되어 오히려 좋았다. 혼자 읽지만 투덕거리며 반론과 정리가 이루어지는 활발한 독서였다. 지난 십 년 간 우리가 살아 온 역사도 덕분에 다시 떠올려 보았다. 사적으로도 부대꼈지만 한국 사회도 참 큰일들이 많았다. 힘겹고 아프고 어려웠고 지금도 모두 다 낫고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들 애 많이 쓰셨다.
우리에게 다음 십 년이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