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배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2 - 비취 나라에서 키눅타섬까지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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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취 나라에서 키눅타섬까지


출발의 흥분이 가시고 어려움과 모험이 전개되는 느낌. 새롭지만 방문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장소와 풍습들이 꽤 눈에 띄었다. 그림책을 보는 동안에는 현실의 구체적인 폭력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더 격한 거부감이 느껴진다. 책을 도피처로 삼는 부작용이다.


J. 비취 나라

 

K. 코라카르 나라

 

L. 연꽃 나라 Le pays des Lotus



연꽃이 좋고 연꽃 오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연근을 먹기는 싫지만, 이 책의 26개 장소들 중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 ‘드넓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 세 가지 향수라 불리는 석호에 우연히 닿을 때에만 비로소 찾을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나이든 스승들에게 ‘미친 풀’이라 불리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글씨체를 배운다. 나도 배우고 싶은데 읽을 수도 없다. 풀이 계속 흔들리는 듯!

 

M. 만드라고르산맥

 

N. 날랑다르의 두 왕국 Les deux royaumes de Nilandar


비옥한 땅과 목장의 나라. 삽화들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O. 오르배섬 L'ile d'Orbae

 

드디어 오르배 이야기가 등장했다. 지도책을 만든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궁금했다. 둥글고 방대하고, 안개강 -안개띠- 을 기준으로 안쪽 땅과 바깥쪽 땅으로 나뉘어 있다. 우주학자들이 다스리고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안쪽 땅이다. 항구의 이름이 멋지다. ‘다섯 가지 호기심 항구’ 형태가 달라지는 안개강 덕분에 생긴 다른 이름은 ‘숨 쉬는 오르배섬’

 

P. 석질인의 사막

 

Q. 키눅타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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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배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1 - 아마존의 나라에서 인디고섬까지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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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존의 나라에서 인디고섬까지

 

26개의 나라들인 것은 알파벳의 숫자 때문입니다. 글자에서 단어로, 시와 노래로, 이야기로, 이전에 존재한 모든 상상보다 더 풍성한 모습들... 재밌고 신기한데 읽을수록 왜 쓸쓸하고 허전한 기분이 들까요.

 

책 속의 나라들이 모두 이상적이서도 아닙니다. 가보고 싶은 나라들도 있는 반면에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자신만의 장소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들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프고 부럽고 그렇습니다.

 

A. 아마존의 나라 Le pays des Amansones


 

익숙해서 다 아는 듯하면서도 묘사하라면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배운 것들이 멋집니다. 금으로 된 매미 장식을 머리에 달고, 바람처럼 가볍고 감미로운 속삭임 같은 ‘생명의 노래’를 들려준다니요. 그들이 길을 가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붙여 주면, 그 읊조림이 너무 아름다워 잠자던 것들이 모두 깨어난다고 합니다.가본 적 없는 ‘지상낙원’이 궁금합니다.

 

B. 쌍둥이 호수의 바일라바이칼


 

내겐 너무 낯선 무당의 존재... 연설은 멋졌다.

 

“바일라바이칼족의 말씀은 바람처럼 자유롭다. 그 무엇도 그들을 가둘 수 없어!”

 

C. 바다의 진주 캉다아만


 

지야가 정확한 여행지도를 작성하는 일의 어려움이 절절...

 

“비밀 장소에 보관되어 잇는 오백삼십사 개의 노인들의 양식을 조금씩 맛보아야 했다. 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노인들의 양식 중에는 난파와 빈곤, 비참함의 맛만 남아 있는 것들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D. 북소리 사막


 

사막은 무섭다. 어린왕자를 혹 만날 수 있다 해도. 수렵, 채집, 농사가 인간이 식량을 구하는 방법들이라면, 사막에서는 온전히 살육과 약탈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한편 사막에서 사는 모든 생명이 경이롭다.

 

E. 에스메랄다산


 

건축 양식을 보면서 식량과 물자가 풍부하지 않은 사회는 내부 결속이 강하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경계하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해본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서 인상적인 곳이다. 산에 가고 싶네. 가서 머문 적이 오래 전이다.

 

F. 얼음 나라


 

사막에 못지않게 극한의 삶을 사는 장소이다. 사냥이 아주 중요하니 소개글의 대부분이 그러하다. 빙산 아래에 초록풀들이 있다니, 고래들이 풀을 먹는다니! 기이하고 재밌는 상상이다.


G. 거인들의 섬


 

거인들의 심장석을 캉디아의 빵 만드는데 사용하다니!

 

H. 웅갈릴족의 나라

 

I. 인디고섬 L'iles Indigo


 

인디고 블루가 좋아서, 아련한 쪽빛이란 번역도 무척 멋지다. 아무도 그 딸을 밟아 보지 못했다니, 다행이고 아쉽기도 하다.

 

“이삭은 삼각측량을 하러 큰 섬을 샅샅이 조사하고 다녔소. (...) 급기야 그 수치를 산출하겡 이르렀소. 그는 대수학을 무슨 종교인양 떠받드는 사람이었소. 결국 그는 신성한 섬이 큰 섬 주민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주장을 펼치더군요. 땅으로부터 일정한 높이에서, 그리고 신성한 섬과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장소에 서 있을 때라야만 그 섬이 우리 눈동자에 비친다는 것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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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마법사 ㅣ 고래책빵 동시집 22
김남권 지음, 손정민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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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와 ‘마녀’의 선과 악, 성별 구분의 이분법이 이제 다 끝난 건가 싶은 제목이 반가웠고,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궁금해서 먼저 찾아 읽어 본다. 말버릇이 없는 아이네... 불편한 마음이 들다가 마지막에서 웃었다. 엄마와 아빠가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했나보다. 얼굴 딱 한번 보고... 사실이면 마법사가 분명하다.


 

이 시는 제목부터 놀라웠다. 내가 상상 못한 것들을 상상하는 이들은 다 놀랍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밤하늘에 뜬 무지개를 볼 수 있는 아이의 시력이 부럽다. 빛의 산란과 파동으로 무지개가 설명된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날이후로도 무지개는 반갑긴 했지만 덕분에 여러 상상의 공간이 닫힌 것만은 사실이다. 대신 빛을 만났으니 괜찮다.


 

어릴 적 사진에 보면 노란색이 엄청 많다. 노란 원피스들과 심지어 잠깐 입었던 노란 교복. 아직도 기억나는 노란 장화... 인지과학과 컬러테라피에서는 노란색은 ‘잘 해야한다’라는 의미라던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뭐든 잘 해야한다는 바람을 담아 그렇게 입혔나 보다.


 

동시 낭독한 꼬맹이도 울고 나도 울고 싶고, 꼬맹이는 신기하게 두 살 전에 만난 내 할머니를 기억한다. 90대 조상과 2살이 채 못 된 조손이 마주보고 앉아서 가위바위보를 하던 풍경, 그 옆에서 막 초등학생이 된 큰 꼬맹이가 버선을 벗어보라고 조르던 풍경.

 

그렇구나, 할머니는 할머니 집으로 가신 거구나...


 

이 시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왜 아이가 겁을 내고 고드름이 되었을까요. 천국 한번 갔다 와서 먹을래?가 왜 무서운 말인가요...


 

이 동시는 가사이기도 하다. 창작동요대회 엄청 좋아했다. 기억하는 노래들도 있다. 지금은 성인가요를 듣는 아이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고, 심지어 트로트 가수도 있다고 하니. 어쩌면 늘 그랬는데 이제야 내 눈에 띤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lmnDo-8suhw

달이 자꾸 따라와요♬ (김남권 작사/이진희 작곡) - 김가현 [2021 창작동요대회]


 

이 시는 깜빡 속았다. 기분 좋고 재밌게. 별을 받은receive 줄 알았는데 별을 ‘받은bump’ 것이었다.


 

아이들이 이런 시를 쓰는 세상, 경험하지 않고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어른들을 신뢰할 수 없어서 십대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 시위를 시작한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니. 잘 하려다 실수도 하고 결과도 안 좋을 수 있지만, 알고도 모른 척 하거나 부정하는 못난 모습에 대해서는 정말로 할 말이 없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시는 한글 초성을 못 맞춰서 물어보려고 올립니다. 사랑해, 보고싶어, ㅁㅇㅎ, 괜찮아, ㄲㅂㄴㅂ, 한글로만 소리 나는 가장 기분 좋은 포옹과 한글로만 피어나는 소리글의 날개... 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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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건 아닌데 그게 날 힘들게 해 - 음악치료사가 바라본 현대인의 감정과 사고, 그리고 대처 방안
한진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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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단한 것도 다루기 힘들지만, 사람을 확실하게 좌절시키는 것은 반복되는 작은 실패와 절망들이기도 합니다. 아직 혈당이 낮은 시간이라서 그런 지 분노가 솟을 기운도 없지만 - 이래서 나이 들면 저절로 성격이 온화해지는 건가 싶기도 - 음악 들으며 음악 치료 이야기 듣기 좋은 날입니다.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고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 음악 감상을 제안하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투사(projection)이고, 둘째는 시간 지연(delaying time)입니다.”

 

선호하고 자주 접하는 음악은 각자 다르지만 나는 연주시간이 비교적 긴, 가사가 없는 음악이 좋다. 소리란 공기를 떨게 하여 내 청각 기관을 울리는 일이니 어떤 파동이 전해지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이들은 가사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고, 혹은 멜로디에 혹은 리듬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음악으로 매번 분노를 정화catharsis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음악 치료에 대해 들어보기 전에도 음악은 늘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어리석고 유치한 감정을 거르고 치우는 역할을 확실히 해주었다.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판단이 흐려지고 사소한 일에 감정 기복이 심해지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자기 보로, 애착, 감정 인지 능력이 떨어지면서 신체를 방관하기도 합니다. 탈진 증후군(burnout syndrome)처럼 말이죠.”

 

분노란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격렬한 감정 반응이라서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그런데 휙 지나가면 깨끗해지는 것만도 아니다. 최초의 5분도 중요하지만 말끔해졌는지 불씨를 확인하듯 잘 지켜보는 일도 필요하다.

 

“음악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심미적 경험을 제공해 주고 상황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켜 주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음악 경험 단계가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감상 시 내담자가 집중하는 주의에 따라 순서와 지각, 그리고 머릿속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달라지곤 합니다.”

 

생각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말은 제어하려 애쓸 수 있다. 그런 방법 중에 하나는 호흡이다. 뾰족한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입을 다물고 코로 호흡을 한다. 이렇게 쓰니 남들도 다 하는 것을 특별한 방법인 양 제안하는 듯도 하다. 중요한 것은 버릇을 들여, 정말 화가 치솟을 때도 자연스럽게 이 단계를 거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거의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지금까지는 나의 분노 표출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 상대의 분노, 여러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휘둘리지 않게 위해서도 여러 자가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대응법은 모두 달라지겠지만, 휘둘리지 말고, 파괴적인 결과를 피하고, 후회할 일들을 줄이면 사는 일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질 것이 아닌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우리의 반응을 선택할 자유와 힘이 있다.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는 내가 가진 불안과 번민을 묵혀둔 짐처럼 가끔 꺼내본다. 내면만 들여다봐서는 설명할 원인도 해법도 없다. 그래서 내 바깥의 세계를 차분하게 헤아려본다. 불편한 것 말고는 생존에 위협도 없는데 왜 항상 불안해하는지, 포기해도 별 영향도 안 받는 일들로 왜 고민하는지. 오늘 밖에 살 수 없다고 하면서도 왜 늘 먼 미래를 상상하며 겁에 질리는지.

 

“나를 객관적으로 볼 힘이 없을 때면 결국 나에 대해 잘못 인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지난 기록을 살펴보세요. 과거의 흔적은 지금의 나의 일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조각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기억을 소환하여 (...) 이 과정에서 우리는 놓치거나 오인했던 감정과 기억을 재경험하며 나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재구성에 음악 자서전도 가능할까. 한 번도 상상을 못해봐서 신기하고 궁금하다. 음악이 과거의 내 기억들과 얼마나 촘촘하고 긴밀하게 엮어 있을 것인지.



음악 치료 분야를 정확히 몰랐는데, 자폐, 주의력 결핍 장애, 레트 증후군, 다운 증후군, 통합 운동 장애, 감정과 행동의 어려움이 있는 이들, 알코올사용장애 등등, 음악 치료사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음악의 정의를 ‘소리와 침묵의 연결’이라 한다면, 자연에서 나오는 부드럽게 매료시키는 자극(soft fascinating stimulation: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등)이 활동 음악과 가미되어 감각을 일깨우는 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부작용도 있다고 한다. 소리에 대한 반응에 둔감하거나 과민한 신체 상태로 인한 경우들이다. 그러니, 연구와 의학적 근거가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관심이 있다면, 자신의 사건과 감정이 반영된 음악 리스트- 자서전 -을 한번 작성해서 감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환경을 하나 설정하고 그 안에서 충분한 교감과 안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안전 기지를 설정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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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1 (양장) ㅣ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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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상공을 덮은 한랭한 대기가 서서히 지나가는 시간이다. 겨울이 따뜻해서 계절을 잃은 새싹들이 흙을 뚫고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는 시절이라 적응을 하지 못한 손과 귀가 얼어붙었다. 공기가 쨍하니 이마가 서늘해서 정신은 조금 맑아지는 듯하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안전하게 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요란함과 소란스러움이 잦아드는 겨울이 참 좋았는데 이제는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생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 작품 속 세계는 내가 사는 판데믹의 세계보다 더욱 황량하고 처참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적응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위안과 힘을 얻는 방식도 존재한다. 그러나 매일 누군가에게 만족과 웃음을 주는 일이란 사실 기획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일이 뭐가 그렇게 자주 있을까. 더구나 이런 세상에서.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속 액터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따뜻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그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온갖 극적인 상황에 휘말려 고통받는 그들의 드라마로부터 오히려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현실의 독자들인 우리가 영위하는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지만, 차이점은 스노볼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는 모두 연기가 아니라 실제 삶이라는 것이다. 리얼리티 쇼의 인기는 이미 시작된지 오래이긴 하다. 타인의 삶이 담긴 시공간은 왜 흥미로울까.

 

“그렇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하루종일 편집 없이 그대로 지켜보는 것은 불필요하고 지루한 것이다. 그래서 디렉터는 (...) 자신이 판단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추려서 근사한 이야기로 만든다.”

 

한국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일 년은 사계절이라 믿고 경험하며 살았다.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계절이 서로 섞여들기 시작하고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사실이다. 날씨는 짐작과 기대를 자주 우습게 만들었고, 우리는 그래도 이름이 남은 계절감을 최대한 찾아보려 한다.

 

“스노볼에는 사실상 날씨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거대한 유리 천장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땅에는 (...) 그래서 스노볼은 인공적으로 날씨를 만들어낸다. (...) 그리고 이러한 날씨를 뽑는 사람이 바로 기상 캐스터다.”

 

이 정도면 살만한 안전한 환경인건가. 그런데 인간의 최고 약점이자 운명은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찾아 먹고, 입고, 그 외 모든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발전소는 원전 - 핵발전소 - 이다. 생존과 관련된 장소이기도 하고, 혹시나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없더라도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하면 남은 인류도 멸종한다.

 

온기와 평화의 대가는 늘 있게 마련이지만 짐작보다 잔혹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을 어찌되었든 유지해나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해서 머리가 무거워졌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사람들이 일하다 죽어도 죽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보다 보상금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스노볼이 여전히 따뜻할 수 있는 이유는 기적적인 지리 환경 덕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 버린 사형수들이 작동시키고 있는 미지의 발전소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이 태어나면 생존을 위해 적응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의 환경은 주어진 그대로이다. 그래서 적응에 성공하면 획득한 모든 삶의 방식이 당연해진다. 예외와 돌발이 불편해지고 뭐라고 바꾸는 일이 피곤해진다. 그런 노력 대신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 기회를 더 많이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사회는 그런 욕망을 원료로 작동되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을 목적에 맞게 사회화시키고, 불행은 각자의 일로 설명한다. 인간이 모여사는 일은 필연적으로 사회체를 구성하는 일이라 스노볼의 세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얼마나 그 비밀이 어둡고 격차가 끔찍한가이다.

 

“타인에게 이용당하려 태어나거나, 스노볼을 유지하라는 사명을 타고난 사람의 세상은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근데 우리가 쓸 전력을 생산하는 게 착취라니. 물론 지금의 삶이 천국은 아닐지라도 이보다 나은 선택은 없어.”

 

“이본 미디어 그룹은 백 명이 넘는 사람의 기억과 목숨, 그리고 인생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들이 전부 사형수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본의 잘못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이 정도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바이러스에도 추위에도 계속 일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부당하게 일하지 않도록 그런 부분이 근절될 때까지 완전한 파업을 한다면 나는 기쁠까. 얼마나 오래 지지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부러운 점은 세상이 멸망했고, 노출되면 모두를 죽이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이 모두 거짓이라는 점이다. 손쉽게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걸 밝히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

 

“평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거야. 나를 향한 금기와 한계를 깨기 위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안전과 평온을 위해.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기꺼이 감내하고 이어 가는 것. 그게 세상을 바꾸는 일의 본질이야.”

 

그래서 스노볼의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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