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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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추천받은 제목이 친구인 책, 2018년 첫 출간이니 꽤 지난 일이다. 읽게 되지 않았다가 작년에 작가의 다른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읽고 이 작품이 생각났다. 어느새 번역이 되어 출간되었고 신기하게도 결국엔 선물로 받았다. 만나는 데 3년이 걸렸네.

 

팬심이 가득하니 설레고 멋진 작품으로만 보이는데 읽은 지인도 훌륭한 작품이라 하니 기쁘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내용은 먹지도 않는 고구마를 계속 먹은 듯 갑갑한 장면들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나쁘다는 건 아니고, 이름들도 없이 등장하는 인간들 중에 남자는 계속 말하고 여자는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는 대비가 멋진 대비이고 매력이지만 답답함까지야 어쩌지 못했다는 뜻이다.

 

유일하게 이름이 확실한 존재는 표지에도 드러났듯이 개인 아폴로이다. 참 멋진 설정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인간의 부산스럽고 어리석고 쓸데없는 말들과 모순투성이인 혼돈의 삶과 흔들림 없이 충실한 존재로 살아가는 개를 계속 보여준다. (완전 개인적인 감상!)

 

인간들, 특히나 남자가 떠벌리는 말들은 대체적으로 개소리이고 저는 인생과 문학에서 느끼는 환멸로 생을 끝내기로 했다지만, 뭐 그렇게 대단하게 훌륭한 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역겨운 느낌이 올라오는 면면도 없지 않고.

 

나만 홀로 늘 할 만한 들을만한 말 같은 말만 하고 산 것도 아니니... 헛소리, 비약, 개똥철학을 마음 놓고 풀어내고, 그걸 또 한 자리에 앉아 오래 들어주고, 그러고도 절교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모두가 모르고 혼란스러웠으니까.

 

뭐 어쨌든 남자는 예술가이자 작가이고 교수이다. 그가 죽은 후 그의 개를 맡아 키우는 여자도 역시 작가이다. 사랑이라고 하니 사랑이겠지만, 애틋한 한편 사랑할만한 면면이 뭐 그리 있는지 내내 혼란스럽다. 한편 그 맹점과 한결같음이 부럽기도 하지만.

 

“사실 그를 사랑했는지 아닌지 지금도 명확히 말할 수 없어. 전에 여러 번 사람에 빠졌고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은 신비주의자가 신앙을 정의하려는 시도와 비슷하다고 읽은 기억이 있어. 그것은 이게 아니다, 그것은 저게 아니다. 그것은 이것과 비슷하지만 이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과 비슷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사랑과 상실에 대한 섬세하고 내밀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뜰채로 건져 올리듯 문장마다에 참 잘 담아 준다. 고구마도 개소리도 혼돈의 사랑도 다 잊고 진심으로 감탄하며 읽게 되는 문장들을 만난다.

 

계약에는 익숙하고 성실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 약속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여전히 펫로스증후군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나를 추스르고 다독여서 뭔가 좀 변해보고도 싶다. <친구>를 권해 준 오랜 친구가 언젠가 해 준 말처럼, 내 인생의 계약을 한번이라도 와장창 어기게 되면 삶이 바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럴 생각은 없다. 상대가 입을 피해를 어찌 견딜 것인가...

 

“개가 사람을 인간으로 만든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말이 마음에 들어요. 내가 완전한 인간 혐오에 빠지지 않는 것은 개들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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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우리나라 서울 여행지도 - 서울 지리/역사/문화를 이해하고 여행에 도움되는 지도, 2022-2023 개정판 ㅣ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 외 지음 / 타블라라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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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중에 가장 좋아했던 건 사회과부도였습니다. 지도를 좋아했으니까요. 학년이 달라져도 똑같은 지도들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교실에 갇혀 세계의 지도를 보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지구본도 좋아했고, 전도도 좋아했습니다. 그래도 벽에 붙이는 일만은 안 했는데 유학 가서 침대 머리 쪽에 한반도 지도를 붙이는 감상(?)에 잠시 휘둘리기는 했습니다.

 

알아야 보이는 것은 책만이 아니라 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보면 게임을 익히는 것처럼 지도 용어들을 배우며 즐겼던 것 같습니다. 지도는 ‘읽는’ 것이거든요.

 

어떤 책이건 줄을 긋거나 접거나 하지는 않는 버릇이 있었지만 지도에는 인덱스를 많이 붙였다 떼었다 했습니다.

 

게임도 좋아했습니다. 도시국가들도 국가 명으로 인정해야하나 꽤 논쟁이 활발했던 시절 기억도 납니다. 그립네요.

 

지도는 참 흔한 물건이 되었고 어디서나 구매할 수 있고 심지어 공짜로 나눠주는 경우도 있지만, 한 때는 국가 기밀이었습니다. 개인이 허락 없이 소지하다 발각되면 첩자의 혐의를 피하기 어려웠으며 중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엔 어떻게 지형을 그리는지가 우주의 신비만큼 신기했습니다. 측량과 척도가 암호처럼 대단해 보였습니다. 고공관찰이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는데…….

 

지도를 여러 개 보기도 했지만 한동안 실물지도, 종이지도를 잊고 살다 만난 이 지도책은 정말 대단합니다. 구성도 품질도 정보의 촘촘함도 멋집니다. 바스락 소리가 나는 지도를 짚어가며 오랜만에 즐거운 읽기와 상상을 겹쳐 봅니다.

 

집과 동네를 조금 알던 시절에 계시던 분들도 그립고, 창경원이 있던 시절의 외출도 떠오르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골목들과 집들도,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낮게 퍼지던 음식 냄새도 지도 속에서 찾습니다.

 

이 스티커들을 저는 지도 위에 붙이게 될까요. 한참을 보다보니 다 귀찮고 집에 웅크리고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덕분에 가고 싶던 전시회를 예약하고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다시 상상해봅니다. 지도 없이도 갈 수 있는 곳들이지만 지도 위로 먼저 걸어봅니다.

 

언젠가는 이 지도에 표시된 여러 곳들을 마스크 없이도 다닐 수 있겠지요. 그런 날이 오면 그날부터 방문한 특별하고 중요한 곳들에 색색의 스티커들을 살짝 붙여봐야겠습니다. 첫 방문인 곳도 이번 생에 마지막 방문인 곳들도 있겠지요.

 

지도란 여전히 설레고 멋진 기호이자 그림이자 텍스트네요. 참 즐거웠습니다.



http://piknic.kr/

 

영화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사진 전시회,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오는 시기의 작품들을 이어 보고 싶다면,

창을 좋아한다면,

물방울, 빗방울이 맺히고 흐르고 흐려진 창의 풍경을 좋아한다면,

사진으로 찍은 창을 보는 게 즐거운 분들은 방문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는... 아주 좋아서 오래 머물다 영화까지 보고 오고 싶었습니다.

 

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2101190001360

 

박수근 화가나 작품에 큰 관심은 없는데, 박완서 작가의 시선으로 구성된 방이 있다고 해서 홀린 듯 가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애정이 부족했는지, 평생 빨래는 한 번도 안 하고 빨래하는 사람만 그렸겠지, 아기 없어 달래며 고단한 매일을 보낸 적 없이 아기 업은 소년만 그렸겠지, 나른하게 고양이와 책 곁에서 내키면 그림을 그리고 살았겠다, 그런 생각만 보글보글…….

 

판데믹 명절이라 덜하긴 하지만, 명절마다 고단하고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오니 상해있던 마음이 더 빈정이 상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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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우리를 구한다 - 병 주고 약 주는 생태계의 숨은 주인, 미생물의 모든 것
필립 K. 피터슨 지음, 홍경탁 옮김, 김성건 감수 / 문학수첩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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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밝힌 사실들에 최고 최강의 충격을 받았다.

 

- 인간의 몸 중 10%만이 ‘인간 세포’이고 90%는 세균이라는 것

- 그 10%도 세균이 들어있어 ‘완전하고’ ‘순수한’ 인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

- 인간 염색체 DNA 대부분은 ‘감염’에 의해 염색체에 삽입된 것

- 그나마... 인간 DNA의 8%는 바이러스 게놈이고 그 외 40~50%가 바이러스 유전자 조각이라는 것이다.

 

너무 놀라서 여전히 기억이 나지만 이후 연구 결과나 수치 변화는 모른다. 어쨌든 나는 새로운 존재론적 고민에 빠졌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인가.

 

‘세균’과 ‘감염’은 하찮은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닌 인간의 생존 방식이자 존재이유였다. 인간은 감염이 되어야 인간이 된다. 위의 수치를 다시 보고 인간에게서 세균을 빼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상상해보자.

 

“무능력한 바이러스는 숙주를 죽이지만, 영리한 바이러스는 숙주와 함께 산다.” 제임스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k

 

물론 인간을 살리는 감염과 죽이는 감염이 있다. 감염병과의 영원한 대결은 매번 인간의 승리로 마감되는 듯하나 백신이 ‘약’이 아닌 것을 기억하면, 그 기능은 질환을 가볍게 하고 사망률을 낮추는 예방책인 것이다.

 

“의학적인 치료와는 달리 백신은 치명적이고 몸을 쇠약하게 하는 질병으로부터 평생을 보호해 준다.” 세스 버클리 세계백신면역연합 대표이사

 

당연히 무지한 백신 무용론에 찬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작용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항체가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백신의 효능과 현대과학은 분명 역사 속에서 감염병을 극복하는 해법으로 작동해왔다. 부작용은 개인을 구성하는 세균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미생물을 수송하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진화했다는 내용이었다. (...) 실제로 인간의 몸은 99퍼센트가 미생물이다. 그리고 인간의 지문이나 유전자처럼 모든 개인의 마이크로바이옴은 고유하다.”

 

10년 만에 비슷하고도 다른 책을 만나, 다시 인간과 세군과 감염의 생명 작동 원리를 떠올리며 읽어 보았다. 실제로 세균의 집합이지만 인간인 우리가 세균과 감염과 싸우는 이율배반처럼 들리는 이유와 역사와 그 과학적 성과를 살펴보며, 지식을 보충하고, 여러 생각을 해보는 귀한 기회였다.

 

“시장에 나와 있는 수백, 수천 가지의 프로바이오틱스 중 어떤 건강 문제에 대하여 치료용이든 예방용이든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것은 없다.”

 

판데믹 시절에는 이런 책들이 좀 더 확실한 교양서 혹은 필독서로 자리매김하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든다. 불필요하게 소모적인 논쟁도 줄이고. 물론 괴랄한 주장만 떠드는 이들이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미생물의 쓸모와 가치를 가늠하며 인간의 건강과 이익을 다루는 내용이 아니다. 미생물의 세계를 주제로 전 지구적 삶을 톺아보는 놀라운 내용들이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 있다. 40년 넘게 감염의학 분야의 전문의로 일한 저자의 평생의 경험과 연구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보여 주는, 생명의 순환 자체를 이해시켜 주는!

 

바이러스란 말만 들어도 지치고 화가 나는 인간의 마음을 잠시 고르고 시선을 들어 생명과 세계를 이해하고 배워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이다. 인간이 적으로 규정한 이름들이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무해하고 무관한 미생물들이 더 많다.

 

또한 지배종인 인간보다 미생물의 총 생물량도 더 크다. 지구상에서 가장 ‘중대한’ 존재는 인간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인 것이다.

 

“박테리오파지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박테리아보다 더 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대다수가 박테리오파지다. 바이러스는 단연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생명체이다.”

 

미생물들은 인간이 저지른 해악을 대신 해결해주기도 한다. 플라스틱을 분해하고 기름 유출 가스 섭취하며 기후 위기의 희망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기본 지식도 중요하고 경고도 확실하다.

 

아직 인간이 파악하지 못한 미생물의 수는 얼마나 많을까. 어떤 놀라운 일이 생길지... 자멸과 자살 경향을 보이며 사는 어리석은 생명체인 인간은 어쩌면 미생물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생물은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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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한국 의료의 혁신가들 - KBS 생로병사의 비밀 20주년 특별기획
전흥렬 지음 / 넥서스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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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다행히 의학에 의지할 수 있어 엉뚱한 미신적 원인에 사로잡히거나 패닉에 빠지는 일이 없이 견디고 있습니다. 대충 알던 의학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의학정보들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설마 2년이나 가겠어, 란 낙관을 누르고 이제 3년에 접어들었습니다. 확진자 수만 보자면 더 암울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 한편 다행이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 방송을 1월에 보고 이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힘이 나지 않던 시기에 차분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1. [방송 하이라이트+미방분] 이것이 K만성질환관리의 핵심이다, 광명시 고당(고혈압ㆍ당뇨병)센터가 만든 기적 [생로병사의 비밀 20주년_한국의료의 혁신가들]

https://www.youtube.com/watch?v=d2ncEiLusmU

 

2. [방송 하이라이트+미방분] 세계 최다 위암수술, 사망률 0.3%! 위암 수술의 혁신을 이끈 노성훈 교수 [생로병사의 비밀 20주년_한국의료의 혁신가들] (KBS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Knf0t17DGlE

 

3. 가슴을 열지 않는 심장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최초로 입증한 박승정 교수 [생로병사의 비밀 20주년_한국의료의 혁신가들]

https://www.youtube.com/watch?v=T29QfxPkJaM

 

4. 2021 노벨상 후보! 세계 최초 유행성 출혈열 백신 개발, K-바이러스 연구의 아버지 이호왕 박사 [생로병사의 비밀 20주년_한국의료의 혁신가들]

https://www.youtube.com/watch?v=VneWbKhnNGg

 

이호왕 박사가 1976년에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명명하고 백신까지 개발한 것도 배우고 바이러스와 감염병 연구에 있어 우리나라의 기분과 연구자들의 규모도 알 수 있었습니다. 마법지팡이가 없는 한 유일한 대비책은 방역 체계를 확립하고 질병 연구를 계속하는 것 밖에 없겠지요.

 

방송과 책에는 가족들을 진료해주고 시술해준 분들이 계십니다. 시간이 꽤 지나 잊고 지냈는데 덕분에 당시의 심정과 감사를 떠올려봅니다. 환자와 보호자인 제 가족이 이렇게 오래 진료를 보셔도 되는 건가 주치의를 염려할 만큼 아주 친절하고 성실하게 설명하고 답해 주신 점이 지금에도 감사한 일입니다.

 

책을 읽으며 모든 환자에게 그러셨을 거라 생각하니 자신의 일을 열심히 잘 하면서도 타인에게 여전히 친절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어쩌면 닮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쁜 생각을 해봅니다.

 

질환 중에는 시간이 걸려도 고통이 덜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이 예후와 회복에 좋은 종류도 있고, 시간이 생존과 직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당 분야에 따른 전문의들의 고민이 자세하고 구체적이고 불만이 아니라 의료 혁신을 위해 사회적으로 어떻게 준비가 확장되어야하는지 설명하는 내용이 참 좋습니다. 나쁜 의사 골라 처벌하는 기사들에 신물이 난 것이 오래전입니다.

 

한 사람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뛰어다니고 애쓰는지, 얼마나 촘촘한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한지를 배우며 생명의 무게, 살리는 일, 살아가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여러 복잡한 고민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가장 기본은 살고 싶어 하는, 낫고 싶어 하는, 치료하면 살 수 있는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겠지요.

 

가능한 쾌적하고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의 욕구를 모조리 무시하자는 의견은 아니지만, 해당 분야들에서 고심하고 변화를 이뤄내는 분들의 바람처럼 저도 공공 의료 체계의 정상적인 작동을 가장 먼저 바랍니다.

 

민간 병원에서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은 당연히 정부의 역할입니다. 기쁘게도 닥터헬기 확충과 야간운행, 뇌졸중 특화 응급 이송 시스템 개발, 전문 치료실의 전국 확대 등이 논의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다른 문제처럼 부디 유의미한 예산 확보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누구의 희생도 담보되지 않는, 요구하지 않는, 당연시되지 않아야 하지만, 모든 과정에서 정확히 업무의 양과 강도를 계산해낼 수는 없겠지요. 무언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면 그 과정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 헌신, 포기하지 않았던 노력, 업무와 의무 이상으로 애쓴 이들의 의지와 정확한 현실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 싸움이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했는데, 그 결정이 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 순간 ‘이것이 과연 타당한 결정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습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교육, 돌봄, 민생과 관련한 문제들이 점차 누적되고 있어서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 ‘코로나 우울’ 등 심리적인 문제가 늘어났고, 자영업, 소상공인 등 민생 경제에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누적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듣는 것이 제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단계적 일상 회복은 예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일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염병 위기는 건강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 안전과 국가 안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감염병 위기는 보건 분야에서 노력한다고 해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 분야별로 감염병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확보해야 합니다. (...)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과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식량이나 물 부족 사태처럼 백신도 자국민 우선입니다. 따라서 백신 주권을 확보해야만 유사시에 우리 국민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에 얻었습니다.”

 

문제도 대책도 다양하고 유기적입니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결국엔 과로와 희생이 없는 의료체계 구축에 실질적인 제안들과, 예산 편성과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믿습니다. 사회안전망의 가장 중요한 얼개 중의 하나이지요.

 

가족 친지 중 의료인들이 여럿이라 마음을 많이 졸이며 지내는 판데믹 시절입니다. 혁신이 필요한 시절에 귀한 제안들을 담아 주신 책이라 감사히 읽었습니다. 모두들 내내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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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합니다! 실패할 권리
김영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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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중에서 가장 읽고 싶은 분야는 이 책처럼 어떤 분야에서 오래 일한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당연한 일인데 정확히는 모르고 산 기분,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고 그 현장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외부에서 관찰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 무엇보다 시간을 버텨온 사람이 가진 사유와 힘이 있다는 것.

 

저자가 처음부터 분명히 하듯 이 책은 발달장애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한 조력자의 이야기이자 저자의 동반 성장기이다. 우리가 무엇이라 불리든 누구나 다 초보에서 시작해야했던 공통의 경험은 이 책을 읽으며 만날 공감의 포인트일 것이다.



성인도 천사도 아닌, 누구를 ‘도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같이 걷고 뛰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한 사람이 그 시간의 틈에 읽고 쓰고 책으로 일군 이의 재밌고 부러운 이야기이다.

 

“<쓰기의 말들>의 저자 은유 작가는 ‘글을 쓴다는 건 고통에 품위를 부여해 주는 일’이라 했다. (...) 고통과 의문투성이던 내 일을 글로 풀어내니 20년이 빛나는 글감으로 재탄생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시작은 더 이상 이 일 못 해 먹겠다며 울고불고했던 그 즈음이었다. 이성은 못 해 먹겠다지만 감정은 하고 싶다, 인 따로국밥 자아가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하루 24시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평생이 그러하리란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는 매순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긴 하지만, 생애주기에 따라 도움의 경중이 달라지고 때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며 살아간다. 좀 더 많이 대단하게 사회에 환원할 수 있으면 뿌듯해하기도 하고, 도움을 받더라도 대가를 지불할 수 있으면 ‘도움을 받는다’에 딸려오는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5살만 되어도 내가 할게, 할 수 있어, 라며 청하지 않은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 인간이다. 거절할 자유, 여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에서 감당해야할 정서적 정신적 부담은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완벽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것이 실상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으면 아무 것도 혼자 해낼 수 없는 거란 것도 말이 안 된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그만큼의 자립이다. 그리고 진실은 아무도 완전한 자립을 이룬 사람은 없다.



“혼자 살 생각 말고 ‘혼자 살지 못하는 재주꾼’이 되라고, 도움 요청할 생각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나의 재주를 발견하라고 그 재주는 큰 것보다 작은 것이 더 좋다는 말도 꼭 해준다.”

 

“저는 우리 동네 칼국수 맛집 잘 알아요.”

“저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 유통기한 확인을 잘해요.”

“저는 가스밸브 잠그는 거 잘해요.”

“저는 설거지 진짜 잘해요.”

“저는 알람 없이도 잘 일어나요.”

 

다 나는 잘 못하는 것들이다. 부럽다.

 

“지금의 나는 장애인 당사자 자립훈련이나 부모 상담 때 자립을 강요하지 않는다. (...) 물리적으로 혼자 사는 게 자립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게 된다면 그게 곧 자립이라 말한다. 반찬을 만드는 방법은 몰라도 좋다. 집근처 반찬 가게가 어디 있는지 알고 사 오는 법을 알려 준다. (...) 당사자들이 직접 끓인 쫄아 붙은 떡볶이 사진 (...) 망쳐버린 퍼즐 판까지 날것의 자립생활을 수시로 공유한다. 이제 나와 그들 사이엔 표준전과 같은 자립생활 이야기는 없다. (...) 자립생활은 반듯한 옷을 갖춰 입는 게 아닌 늘어진 옷을 입어도 되는 삶, 그게 아닐까?”

 

저자는 업무 목표가 교과서적으로 분명했던 초기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은 조력대상자들을 바꿔놓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자신을 바꾸었다고, 직업재활해주었다고 한다. 무척 사랑스러운 고백이다. 취업한 후 저자와 직장 내 고민을 나누는 모습은 너무 닮아서 웃프기도 하다. 이 모든 건 저자가 ‘대상’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만나고 지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여럿이 우르르 다니다 보면 으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마련인데 (...)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아이구, 고생이 많에, 좋은 일 하는구먼”이라며 측은하게 바라보는 할머니. 쯧쯧쯧 혀를 차기도 하는 어르신들. 가끔 경험하는 나도 이렇게 불쾌한데 평생을 별난 시선 받으며 살아온 장애인과 가족들은 오죽할까.”

 

‘솔직함’은 나쁜 일은 아니다. 단지 떠오른 생각에 대한 생각 없이 입으로 튀오나오기만 하는 솔직함은 무례하고 불편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도록 의무화된 교육을 시켜야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교육이고 문명이라 믿는다.

 

가족끼리 적당히 못 본 척하지 않아서 솔직하게 다 말하고 말하라고 해서 얼마나 힘든 일들이 많은지를 생각해보면 거리낌없는 솔직함의 단점이 더 선명해진다.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가해를 가하려는 게 아니라면 나는 작은 거짓말도 과장도 가식도 그렇게 되고 싶은 바람으로 읽는다.

 

“1년간 영국에서 지적장애 노인 거주시설에서 일을 하다 온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는 (...) 50세가 넘은 지적장애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시설이었는데 매일 아침 모여 티타임을 갖는다고 했다. (...) ‘홍차’라는 메뉴가 단일 메뉴가 아닌 각자의 취향에 맞는 브랜드, 온도, 잔, 추가되는 토핑까지 구체적인 욕구를 반영하여 차를 준비하고 제공된다고 한다.”

 

오해하진 마시길, 저자도 나도 한국의 시설에서 이렇게 못하는 이유는 인력 부족, 시간 부족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짜장면으로 통일! 콜라로 통일! 이라고 당연하게 정하고 마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결정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티끌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문화는 편하고 효율적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그게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말이다. 다른 사람이 정한 짜장면과 콜라만 입 다물고 먹고 살아도 좋은 게 아니라면 끈기 있게 바꿔나가야할 일이다. 그래야 다른 것들도 바꿀 수 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미연씨, 오늘 되게 용감했어요. 혼자 사이다 먹는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자기 생각 말한 모습 정말 좋아요.”

 

“발달장애인들은 작은 것을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말로는 ‘자기 스스로 권리를 찾으세요. 부당한 것은 당당하게 표현하세요’라고 말하지만 권리라는 말에 너무 큰 무게를 실어 현실감 없게 만든 건 정작 나였다. 작은 것부터 자기 생각과 욕구를 표현할 기회가 있어야 자연스레 내재화가 될 수 있음을 놓치고 살았다.”

 

읽는다고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나을 것 같아 기억하려 애써 본다.

 

인식에도 말에도 행동에도 문제가 많은데 말끔하게 고쳐지지 않는다. 무척 좋은 책들을 만나서 그나마 조금씩 고쳐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지 않았다면 아직도 결정장애, 선택장애란 말을 사용하고 있을 지도.



아주 노골적으로 멸칭인 것들도 있고 모르고 사용하는 말들도 있고, 배우는 대로 안 하려고 노력하는 거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듯하다. 언어는 곧 인식이라서 언어가 바뀌지 않는 한 차별과 인권과 혐오의 인식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한 때 논란이 되었던 ‘장애우’ 호칭에 대한 현장에서의 고민이 있어 귀하게 읽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다. 당사자들이 원하는 호칭을 인정하는 것.



마지막으로 선천적 장애 인구 10%, 후천적 장애 인구 90%라는 통계에서 보듯 남의 일도 아니고 특별한 일도 아니다. ‘장애인’이란 다른 인간 유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 천천히 차근차근 느리게 타인과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고 행동하면 되는 일이다. 희생을 하지도 말고 요구하지도 말고 격리하지도 말고 같이 먹고 같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경험을 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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