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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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하는 경험은 아니지만 간혹 어떤 교수는 학위 논문 쓴 이후로 공부를 한 적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반 백이 넘어 수십 년 전 자기 논문 자랑을 하는 이를 보면 난감하고 서글펐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박사 학위 논문은 이제 혼자서도 의제를 설정하고 연구할 훈련을 해보았습니다란 증명서이다말하자면 연구하며 살아보라는 자격증이랄까그러니 의무 과목 모두 사라진 원하는 주제에 집중하는 공부는 이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학위를 공부면제 허가서로 사용하는 이들을 만나면 뭐 나도 졸업하면서 이제 누가 나보고 시험보라는 말은 더 안 하겠지” 란 오해도 하긴 했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구나 싶어 얼굴을 대신 붉히기도 했고밀도도 순도도 없을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부당한 형편에 마음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잠깐 한 공부로 오래 교직에 버틸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잘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고전수조사를 하면 현재진행형인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20대까지 공부한 걸로 평생 먹고 살았다하지만 앞으로는 나이 예순에도 여든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20대에 내가 무엇을 전공했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학습하고 어떤 지식을 습득해 어떻게 자기만의 스토리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현실이 재빠르게 변하는 것에 비해 교육은 요지부동인 것만 같다, 한국은 정보교육 시간이 40시간 밖에 안 된다고 함!

 

지인들과 함께 읽는 중에 감격에 겨운 감상을 전해 들었다수학은 짜증스럽게 어렵고 물리학은 외계 학문이라 여기면서도 나와의 느슨한 우정을 오래 유지하는 별난 이는 이 책을 읽고 자신과 수많은 이들이 왜 과학을 어려워하는지 이해했다고 한다.

 

과학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닐뿐더러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관한 지식체계이다인간에 관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낯설다우주의 언어는 인간에게 아주 낯설다그래서 과학이 어렵다.”

 

과학은 수학으로 이루어진 지식체계다과학을 기술하기 위해 수학을 언어로 사용한다마치 미국인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나는 그 수학이라는 언어사용이 서툴러 과학을 멀리했다.”

 

발췌해 준 문장들을 보고 내가 그 오랜 세월 했던 말은 무엇이었나뒤끝이 불멸을 획득할 뻔 했지만 동의할 수밖에수학은 언어이고 낯선 언어이고 그러니 외국어를 처음 배우듯 접근해야 한다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철학은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우주는 항상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주의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황금계량자(1623)>

 

물론 우리 모두가 과학자가 될 수는 없다중요한 것은 과학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무척 중요하다과학적 태도를 중시하지 않으면 손바닥에 왕(자를 그려 넣고 의지하게 된다.

 

오랜 세월 친구들은 내가 보수(保守)적이라 놀렸다부정할 생각은 없다나는 보수(補修)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니까.


과학자들은 보수적이다새로운 현상을 앞에 두고 적극적인 귀납주의자가 되기보다 엄격한 보수주의자가 되는 이유는기존의 체계 안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그 현상이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야 새로운 체계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 검증의 단계를 일단 넘어서면 과학자들은 열렬한 혁명주의자가 되어 좌고우면하지 않고 새 체계를 받아들인다.”

 

엄격한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열렬한 혁명주의자인 사람들. (...)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고자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도 해보지 못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날씨에기분에내 성질에 못 이겨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반성한다.”

 

이종필 교수는 입자물리학을 전공했다물리학 전공자인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샅샅이 잘 안다대학원에서 입자물리를 전공하고 싶다고 하자 지도교수는 백 번의 다짐을 하라고 하셨다마치기도 어렵고 취직도 어렵고 연구 기회도 (거의없고 고통의 삶이 탄탄대로로 펼쳐진 길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시대를 조명하고 시대를 고민하고 도움이 되기 위해 집필한 이 책이 반갑고 감사하고 서글프다과학의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량화와 환원주의한국의 과학이 지적 한탕주의 인생 한 방이란 양아치 문화와 결이 같다그리고 산업 자본에 완전히 모조리 포섭된 과학기술 연구이 모든 것들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어떻게 가능한지 내부자로서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과학을 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가장 중요한 것은 “NIV(Nullius in verba*), 무엇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 믿는다그리고 과학은 그 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쉽고 편리한 도구이다.

 

* The Royal Society's motto 'Nullius in verba' is taken to mean 'take nobody's word for it'.

 

초능력도 재능도 필요 없고감각기관을 동원해서 관찰을 잘 하면 된다그렇게 포집한 데이터를 보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적 통찰이다정보 축적 단 거짓과장비약은 없어야 한다 과 협력소통공유네트워킹 그리고 관계의 유지 관리가 과학 활동의 비법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저자는 뉴노멀 시대를 맞아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입자물리학자의 이야기도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진지한 제안과 정책으로 고려되면 무척 기쁠 것이다대개가 논쟁적이지 않고 보편적 가치에 안온하게 머무는 메시지들이다언제나 그렇듯 꿈이 작은 나는 과학상식이 널리 통용되어 손 씻을 때 손가락만 씻는 사람이 없는 사회도 무척 기쁠 것 같다.

 

사물에도 일부러 지능을 집어넣으려는 초지능의 시대에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지능을 안 쓰려고 하는 것일까?”

 

초연결성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혼자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 다 같이 잘하는 시대에 필요한 덕목은 소통협력공유탈 중심 등의 가치이다.”

 

초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수평적이고 분권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수평과 분권은 사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 최소한의 권한이 있어야 밑에서도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하게 된다이는 앞서 말했던 초지능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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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리더 세종 - 대한민국 천년의 미래를 묻다
양형일 지음 / 밥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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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왕()을 그리고 대선에 출마한 후보 덕분에 우리나라에 왕이 있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고부모들은 대한민국이 공화국이고 공화국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에 직면했다고 하니모든 일에는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면이 있구나 싶다.

 

주말에 십 대 아이들이 읽고 둔 책들을 혼자 읽어 보는 것이 일종의 의식인데 왕 중에서도 대왕이라 불리는 세종에 관한 책이 완독 책장에 올려 있다. 이번 생에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고 싶다는 야망은 깔끔하게 포기해야 할 듯하고, 그 탓은 아니지만 가장 익숙한 왕의 업적을 정리하는 것도 선명하지 않다.

 

대략 독서를 하는 입장에서 세종이 각종 분야의 책들을 가능한 많이 읽은 점은 이의 없이 존경스럽다읽고 마는 것도 아니고 당대 누구와 토론을 해도 주도했다니 이해력도 남달랐을 것이다.

 

건국 초기이긴 하나 왕족이 유학 경서만이 아니라정치행정역사종교율례지리천문운학문학수학, 화음악문화농사경제군사병법 등의 독서를 했으니 총괄업무에 유용할 지식을 바탕에 둔 것은 분명하다.

 

무식하거나 수신이 안 된 군주가 치세를 바르게 할 수 없음은 고금의 정치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몇 해 전 다른 책을 읽다 알게 된 사실인데세종이 취한 조치들 중 노비에 관한 세세한 처우들이 인상적이었다이 내용만 보면 현대사회가 오히려 인권 부재의 사회처럼 느껴질 정도이다과장이라 느끼실 분들은 보도 자료나 기억을 비교하며 정리한 바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관노비나 사노비도 질환에 시달리는 자들은 노역에 동원할 수 없다.

노비에게 가혹하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했다.

질환이 있는 군졸은 부역을 면하게 하고이미 동원된 경우에는 중단시키도록 했다.

임신한 노비가 죄를 지어 하옥된 경우 특별 보살핌을 지시했고 고신(고문)을 금지했다.

산모와 태아에게 위해가 될 처벌을 배제했다.

관노비는 출산 시 1백일의 휴가를산기가 임박해서는 1개월의 출산 전 휴가를 주었다.

출산 휴가는 산모와 남편 모두에게 주었다.

세종 12년 10월 9출산휴가를 법제화하도록 명했다.

 

일하다 아파도 아픈 사람보고 아픈 거 증명하라고 하고죽어도 책임자 처벌도 없고계속 죽어도 개선도 없고출산휴가로 눈치 보는 직군이 더 많고뭐라도 입법화하려면 힘껏 애써도 몇 년 만에 발의될까 말까이다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독서 목록에 수학이 있어 궁금했는데 세종 시대 수학자 김빈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엔지니어와 테크니션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 저만 그렇다고 오해하는 건가요 - 경우들이 있는데이 둘은 하는 일이 다르다엔지니어는 발명이나 디자인을 하는 수학자나 물리학자인 경우가 많다짐작에 장영실은 테크니션이었을 듯 한데 천재 개발자의 이미지가 강해 실상이 좀 궁금했다.

 

세종 자신이 산학을 숙지하기도 했고당대 뛰어난 수학자 김빈과 자격루혼천의 등을 개발했다당시 학문도 아니고 중인 계급이나 관심을 갖는 분야로 취급되던 것을 전제군주가 공부하고 개발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알고 읽어도 신기하다수학에 능한자를 능자 기술기예에 숙달된 자라고 불렀다니 애들 모아 놓고 암산 대회하던 괴이한 대회들이 스쳐간다.

 

세종 15년 8월 (...) 인쇄된 책은 집현전호조서운관 등의 부서에 배포하여 익히도록 했다수학이 사대부들의 학문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당면한 문제 해결에 골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계획과 뜻이 있던 왕이라 볼 수 있다물론 건국한 아버지가 여러 정리를 말끔히 하고 권력을 넘겨 준 배경도 컸을 것이다반대 세력도 세를 구축한 집권 세력도 없는 새 왕조새롭게 잘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겠고 독서량과 지식이 많은 군주가 왕위에 올라 소위 시너지 효과가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시대에는 더욱 중요했던 용인술에 대해 토사구팽은 자주 들었으나 대의멸친은 처음이다대의를 위해서라면 가까운 사람들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현대 정치와는 같고도 좀 다른 의미를 갖는다흔히 사람들은 측근인맥낙하산 인사에 대해 부정적 경험과 언론의 과장되고 의도된 조작 이미지 탓이긴 하지만 무조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범죄의 지름길로 취급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가장 믿음직한 형님 국가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백악관 전 직원이 바뀌는 수준의 대대적 인사가 이루어진다행정부 구성 역시 일단 첫 근무 시작하는 첫 단계에 이미 수십 수백 명이 당선자의 자기 사람들로 구성된다정치적 목적과 구상이 같고 이해를 하는 사람들끼리 일해야 일이 되지 않겠는가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늘공이 관료마피아로 불리는 이유도 고민할 문제이다.

 

감시와 비판을 할 것은 관계의 거리가 아니라 직책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었는가 이다그래서 더 철저하고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다물론 남의 시선과 판단을 전혀 신경 안 쓰는 트럼프 같은 존재라면 문제가 커지긴 하나그건 그런 인물을 당선시킨 모두의 책임이고 망가지는 정치를 지켜보는 고통은 그 대가이다.

 

현대 정치야 직에서 쫓겨 가는 경우가 최악이겠지만 생사여탈권을 가진 전제 군주 시대에도 왕에게 쓴 소리를 하던 이들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어쨌든 불충한 신하에게 유배나 사약을 내린 적도 없는 세종도 놀랍다근무환경이 괜찮았겠다 싶은 부러운 생각도 살짝 든다.

 

“‘언문의 힘은 바로 과학성과 편의성에 있다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의해 표현하지 못할 소리와 말이 없다정인지 표현대로 머리가 좀 있는 사람은 반나절이면 이해할 수 있고아무리 머리가 나쁜 사람일지라도 터득하고 배우는데 열흘을 넘기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을 보면 잘 보인다문자가 조합 구성되기 때문에 뜻을 전혀 몰라도 글자는 다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먼저 오른다그렇다고 만병통치약처럼 '못할 게 없다'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경험도 있다자모가 번갈아 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글식 표기를 하면 음절이 대체로 늘어난.

 

1: English e,i 2음절발음 잉리ㅅ 한글잉글리쉬

2: Dark Knight a, i 2음절 닥나잇 한글다크나이트

 

물론 이런 별 거 아닌 지적보다는 나라말과 글에 담은 뜻과 정신 - ‘독립된 자주 문화 문명국이라는 세종의 지평 이 중요하다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재할 것이다.

 

나라를 보존하며 일으키기 위해서는 나라의 바탕을 굳건하게 하여야 하며나라의 바탕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말과 글을 존중하며 써야 한다모든 문명 강국들이 자기 나라의 문자를 존중하고 사용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주시경의 지론이었다. 이후 뜻이 같은 서재필은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한다.

 

곧 한글날이다나에게는 일 년에 한 번 언어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는즉 나를 규정한다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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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한 공룡 만화 -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한적한
보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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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적-하다 的的하다 : 밝고 곱다.

2. 적적-하다 寂寂하다 : 조용하고 쓸쓸하다.

 

두 개가 다 어울리는 작품이다.

 

천천히 보고

또 보고

오래 보고

다시 보고

그런 조용한 위안이 가득하다.

 

그리고 쓰는 사람인 보선 저자에게 부러운 것이

108배가 넘는 듯해

시기하듯 작품을 보고

예상치 못한 속마음을 마구 쏟아내는 짓을 여러 번 했다.


 

오늘은 뭘 하다가도 다 의미 없다,

이런 기분이 불쑥 쳐들어와서 짜증스러웠다. 별 일도 없는 주제에.

부질없다와는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찾아 보다 기력을 찾은 이상한 날.

그나저나 부질없다가 쓸모없다는 뜻이구나.



 

손쉬운 위로는 해주지 않는 무서운 분,

희망 따위는 없는 짧은 생을 죽기 전까지

끈질기게 버텨보라는 말씀인가.

분하고 오기가 생겨서 키를 놓지도 못하겠네.



난시가 심해서 안경을 벗으면 세상의 경계가 번지면서

모든 존재들이 다 아름다워 보인다.

가끔 해본다. 떠올리기 싫은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

달이 세 개로 보인 적은 없어서 시기 질투...


 

아이러니와 부조리가 인생의 본질이라고 오늘 조금 더 믿게 되었다.

존 레논이 아들에게 한 말도 떠오르고,

인생이란 네가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쁠 때 너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re busy making other plans.



신기한 확률상 부조리 발생!

같은 날 <고도를 기다리며> 작품을 언급하는 글을 두 개 만나다니...

2막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당황했던 그 억울함...

무언지 모를 고도라도 믿고 기다리는 이들이 분명 더 행복할 것 같다.



 

며칠 전 소름끼치는 악몽을 꿨다.

장면은 없고 목소리만 귀에 울리는...

불길한 예언을 카랑하게 들려주는 그런 꿈...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대단한 작가님,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고 쓰고 나니

눈물이 안 나와서 글로 울고 있다고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대뜸...



이 중에

나와 닮은 공룡 캐릭터가 있다는 중론인데...

글쎄...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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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벽화 고래책빵 그림동화 16
유백순 지음, 손정민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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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건 확실한데 거의 모든 문장들이 왜 이리 짠한지...

아이들은 잘 읽고 둔 것 같은데 나는 그림마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다.


“엄마는 반찬 가게에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내느라 늘 바빴다.

돈 많이 벌어 과자도 사 주고,

동물원에도 데리고 가고, 

새 아파트로 이사 갈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엄마가 바쁘니 (언급을 없었지만 아빠도 바쁜 모양) 아이들은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된다.

그래도 형제끼리만 노는 일은 심심하고 쓸쓸한 일이니

필요한 친구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수밖에...


다행히 아이들에겐 벽화를 가득 그려 넣을 공간이 있다.

바쁜 부모는 아이들이 벽에 그림을 그려도 야단을 치진 않았나보다.

벽화의 그림들에는 동물 친구들이 가득해졌다.


내가 그린 그림 속 동물들에게 애정이 흘러 스르륵 생명을 가진 친구가 되고

갖가지 상상 속 놀이친구들은 즐겁고 다정하다.

그런데 바쁜 엄마 아빠가 아이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날이 이들에게는 이별의 날이다.


“엄마는 따뜻한 손으로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었어.

김치 냄새도 나고, 마늘 냄새도 나는 그 손길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


마지막으로 애틋한 이별을 하는 이가 엄마라서 조금 놀랐다.

어쩌면 이들은 아이들의 친구들만이 아니라

엄마의 친구들이기도 했나보다.


“엄마들은 아기랑 연결되었던 탯줄도 보관하고, 배냇머리도 보관하고, 하나, 둘 뺐던 유치도 따로 잘 보관한다고 들었어요. 이렇듯 엄마에게는 여러분의 모든 것이 소중하답니다.”


이사를 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두고 떠나왔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잊어 버렸을까요.

여전히 소중하게 남은 것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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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최시현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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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가 읽기에는 한국에서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시기와 국가 주도 부동산 투기가 만나서자산을 충분히 마련해서 자자손손 노동소득에 목매달지 않고 살도록 하고 싶다는 모두의 욕망에 불을 붙인 시작과 과정을 총체적으로 들려주는 자료입니다.


우선 제 연구는 부동산 투기는 여성의 일이라고 관습적으로 생각해왔던 것을 실제 경험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는 점에서 (...) 남성들이 하는 주식이나 비트코인부동산 매매는 투자라고 말하면서도 여성이 해온 것은 투기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해 온 것은 (...) 왜 여성들의 경제실천에는 특별히 도덕적 평가가 부여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특이하고 반갑게도 최시현 박사의 여성학 박사 학위 논문을 정리한 책입니다과학과학 철학다시 과학을 전공한 저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타인의 경험들을 서술한 논문을 써 본적이 없습니다사회과학 논문들으로서 당대 다양한 사람들 - 40~70대 여성 25명 을 만나고 삶을 담아내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라독자들이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삶을 이해하기도 하고 혼란과 오해를 바로 잡기도 하는 무척 유용한 자료입니다부러운 일이지요제 논문은 몇 명이나 유용하게 읽었을까요.


무척이나 배타적이고 단단한 한국의 가족주의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잘 보이고그러한 변화의 동기나 결과가 여성 자신의 역량 계발이나 성장이나 자율성의 확대를 위한 것도 아니었던 그런 세월에 코가 시큰합니다.

 

여성이 남성의 집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하는지가 그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저는 모릅니다집사람이 한 일이에요.”  세상 비겁한 변명!

 

정당하지 못한 방식의 자금 축적과 이를 바탕으로 한 권력지향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문제시 되었다그런데 유독 위법적인 주택실천은 가족주의에 대한 강력한 옹호 속에서 오염된 일로 범주화 되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살아남아 내 집을 마련한 여성들은 이제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집이 곧 안사람집사람주부로서의 자아를 인증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그런데 그렇게 마련해서 쓸고 닦고 한 집이 문서상 내 집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가족은 하나라는 가치의 단단함을 제가 너무 몰라 하는 생각일까요.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고 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있고 나의 이익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입니다그렇게 느끼지 않고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은 모두 자산이 증가했다고 느낀다면 그건 실패 사례를 숨기는 노력이 있었고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요리스크가 부각되면 투자든 투기든 지속하려는 생각이 사라질 것이고그러면 부동산 시장은 진작 파국을 맞았겠지요.

 

최시현 교수가 이 논문에서 논하고자 하는 바는 가해자/피해자를 구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여성학 논문이라 뾰족하고 날 선 시선에 어려운 내용이라 짐작하여 피하지는 마시길저는 무척 감사히 읽었고 많이 배웠습니다. 사오 년 전에 친구의 하소연도 제대로 이해가 됩니다.  졸업 후 바로 결혼해서 아파트 분양 받고 애 낳아 기르며 살았던 대학 동창은 자산 가치가 수억이 늘었고, 직장을 다닌 자신의 소득은 그에 못 미치니 노동 가치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라는 세상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고 했습니다.

 

관념적인 주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속에서 구동된 역학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며 내 부모나 나 자신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습니다대한민국 부동산을 두고 펼쳐진 사회현상에 대해 포괄적이면서도 주제에 멀어지는 법 없이 집중하는 선명한 사회과학서입니다정책역사제도적 구조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무척 좋습니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실제 인물들 구술자들 -을 만나고 인터뷰를 한 내용들이 그들의 육성으로 기록되었는데이것도 나이 탓인지 육성에서 들리는 삶들이 느껴지고 고단함과 힘든 세월이 들려서 투기꾼복부인이런 생각은 전혀 안 들고 마음이 징징 울렸습니다.


저자는 침착한데 제 생각 속에는 국민을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던 이들에 대한 분노는 싸늘하고도 후텁지근하게 지나갔습니다대대적인 홍보와 부추김과 교묘한 가스라이팅으로 부동산 투기 시장을 활성화시키고개발 이익은 끼리끼리 나눠 갖고사회 문제로 부각되니 복부인이란 비난 대상을 만들어 내고 광고를 한 저열한 인간들이런 자들은 책임을 못 느낄 뿐더러 덕분에 돈 번 사람도 있다는 항변을 하거나친일파들처럼 개명한 사람은 다 친일파냐고 도리어 화를 내겠지요,

 

감정적으로 흐르는 글을 이만 마무리합니다다 소개하지 못한 충실한 내용들과 저자가 제안한 대안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책 내용을 온전히 만나기 전에 주택문제에 대한 저자의 해법을 듣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도 합니다각자가 가지고 계신 문제의식질문제안들이 궁금합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될 사회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오늘도 아파트값 폭등이란 기사제목들이 현란한 시절이니 함께 고민하고 얘기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 믿습니다읽게 되심 생각을 다양하게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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