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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평점 :
자주하는 경험은 아니지만 간혹 어떤 교수는 학위 논문 쓴 이후로 공부를 한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반 백이 넘어 수십 년 전 자기 논문 자랑을 하는 이를 보면 난감하고 서글펐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박사 학위 논문은 이제 혼자서도 의제를 설정하고 연구할 훈련을 해보았습니다, 란 증명서이다. 말하자면 연구하며 살아보라는 자격증이랄까. 그러니 의무 과목 모두 사라진 원하는 주제에 집중하는 공부는 이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학위를 공부면제 허가서로 사용하는 이들을 만나면 - 뭐 나도 졸업하면서 “이제 누가 나보고 시험보라는 말은 더 안 하겠지” 란 오해도 하긴 했다 -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구나 싶어 얼굴을 대신 붉히기도 했고, 밀도도 순도도 없을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부당한 형편에 마음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잠깐 한 공부로 오래 교직에 버틸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잘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고, 전수조사를 하면 현재진행형인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20대까지 공부한 걸로 평생 먹고 살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이 예순에도 여든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20대에 내가 무엇을 전공했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학습하고 어떤 지식을 습득해 어떻게 자기만의 스토리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현실이 재빠르게 변하는 것에 비해 교육은 요지부동인 것만 같다, 한국은 정보교육 시간이 40시간 밖에 안 된다고 함!
지인들과 함께 읽는 중에 감격에 겨운 감상을 전해 들었다. 수학은 짜증스럽게 어렵고 물리학은 외계 학문이라 여기면서도 나와의 느슨한 우정을 오래 유지하는 별난 이는 이 책을 읽고 자신과 수많은 이들이 왜 과학을 어려워하는지 이해했다고 한다.
“과학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닐뿐더러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관한 지식체계이다. 인간에 관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낯설다. 우주의 언어는 인간에게 아주 낯설다. 그래서 과학이 어렵다.”
“과학은 수학으로 이루어진 지식체계다. 과학을 기술하기 위해 수학을 언어로 사용한다. 마치 미국인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그 ‘수학’이라는 언어사용이 서툴러 ‘과학’을 멀리했다.”
발췌해 준 문장들을 보고 내가 그 오랜 세월 했던 말은 무엇이었나, 뒤끝이 불멸을 획득할 뻔 했지만 동의할 수밖에. 수학은 언어이고 낯선 언어이고 그러니 외국어를 처음 배우듯 접근해야 한다.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철학은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우주는 항상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주의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 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황금계량자(1623)>
물론 우리 모두가 과학자가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척 중요하다. 과학적 태도를 중시하지 않으면 손바닥에 왕(王) 자를 그려 넣고 의지하게 된다.
오랜 세월 친구들은 내가 보수(保守)적이라 놀렸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보수(補修)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니까.
“과학자들은 보수적이다. 새로운 현상을 앞에 두고 적극적인 귀납주의자가 되기보다 엄격한 보수주의자가 되는 이유는, 기존의 체계 안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그 현상이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야 새로운 체계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검증의 단계를 일단 넘어서면 과학자들은 열렬한 혁명주의자가 되어 좌고우면하지 않고 새 체계를 받아들인다.”
“엄격한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열렬한 혁명주의자인 사람들. (...)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고자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도 해보지 못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 날씨에, 기분에, 내 성질에 못 이겨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반성한다.”
이종필 교수는 입자물리학을 전공했다. 물리학 전공자인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샅샅이 잘 안다. 대학원에서 입자물리를 전공하고 싶다고 하자 지도교수는 백 번의 다짐을 하라고 하셨다. 마치기도 어렵고 취직도 어렵고 연구 기회도 (거의) 없고 고통의 삶이 탄탄대로로 펼쳐진 길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시대를 조명하고 시대를 고민하고 도움이 되기 위해 집필한 이 책이 반갑고 감사하고 서글프다. 과학의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량화와 환원주의, 한국의 과학이 지적 한탕주의 - 인생 한 방이란 양아치 문화와 결이 같다, 그리고 산업 자본에 완전히 모조리 포섭된 과학기술 연구. 이 모든 것들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어떻게 가능한지 내부자로서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과학을 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NIV(Nullius in verba*), 무엇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즉,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 믿는다. 그리고 과학은 그 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쉽고 편리한 도구이다.
* The Royal Society's motto 'Nullius in verba' is taken to mean 'take nobody's word for it'.
초능력도 재능도 필요 없고, 감각기관을 동원해서 관찰을 잘 하면 된다. 그렇게 포집한 데이터를 보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적 통찰이다. 정보 축적 - 단 거짓, 과장, 비약은 없어야 한다 - 과 협력, 소통, 공유, 네트워킹 그리고 관계의 유지 관리가 과학 활동의 비법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 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뉴노멀 시대를 맞아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입자물리학자의 이야기도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진지한 제안과 정책으로 고려되면 무척 기쁠 것이다. 대개가 논쟁적이지 않고 보편적 가치에 안온하게 머무는 메시지들이다. 언제나 그렇듯 꿈이 작은 나는 과학상식이 널리 통용되어 손 씻을 때 손가락만 씻는 사람이 없는 사회도 무척 기쁠 것 같다.
“사물에도 일부러 지능을 집어넣으려는 초지능의 시대에, 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지능을 안 쓰려고 하는 것일까?”
“초연결성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혼자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 다 같이 잘하는 시대에 필요한 덕목은 소통, 협력, 공유, 탈 중심 등의 가치이다.”
“초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수평적이고 분권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수평과 분권은 사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 최소한의 권한이 있어야 밑에서도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앞서 말했던 초지능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