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마요
김성대 지음 / &(앤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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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소설내가 아는 김수영 말고 다른 김수영인가낯선 곳에 잘못 내린 것처럼 잠시 생각이 유영했다시인 김수영이 맞다저자 김성대도 시인이다그런데 <키스마요>는 장편소설이다읽단 읽어 본다.

 

나는 너의 눈을 바라보았다.

너의 눈으로 나를 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의 눈에 나를 비춰볼 수 없었다.

너에게 나는 없었는지 몰랐다.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채로.”

 

시가 아니라 소설이 맞는데 시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없는 것은 아니고전체적인 설정은 또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 신기하게 헷갈리며 계속 읽는다뉴스 보도를 옮긴 것만 같은 오로지 현실적인 상황들이다.

 

낯선 바이러스에 전 세계인들이 고전하고급히 만든 백신은 바이러스와 다를 바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바이러스는 인간에게서 가축과 반려동물로 옮겨 가고인간은 늘 그러했듯이 대량 살처분 살해 -를 저지르고이 혼란의 도가니에서 더 떠들썩한 시위사이비종교집단 자살발발한 시간이 동시대는 아니지만 고스란히 현실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다른 거라곤 외계인비행물체그들의 메시지뿐이다가장 중요한 사건의 축은 주인공의 연인이 사라진 것연락할 수 없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연인을 기다리다 찾아 나서다……지구는 멈추지 않고 혼란을 거쳐 종말로 향하고 있다.

 

혼자서 헤어질 수 있을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네가 돌아와서 헤어졌으면 했다.

만나서 헤어졌으면.

너 없이 헤어질 수 없으니까.”

 

인간의 몸을 우주라고 한다면 인간의 몸에 공생하는 들은 우주에서 명멸하는 은하들태양계들별들과도 같다그 균들이 없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잊고 살고평생 함께 살아도 인사 한 번 나누지 않는다.

 

우주에 있어 지구 행성의 존재는 그보다 더 미미하다지구가 사라져도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을 뿐더러 우주는 지구의 존재를 모르고 모를 것이다소설에서 지구가 우주의 실패한 실험 중 하나라고 해서 섭섭할 이유는 없다존재감이 뚜렷해지는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를 궁금해하고 지구를 구하려하고 그 모든 이유가 사랑이라는 인간은 우주 차원의 신비한 존재이다인간의 의식consciousness는 어째서 창발emerge했으며 진화의 방향은 왜 이쪽이었을까. 20대에 천착했던 질문인데 어느새 잊혀졌다.

 

이런 이상한 감상글을 읽고 이 작품이 심심하고 지루할 거란 생각은 하지 말기를깜짝 놀랄 복선과 반전의 결말이 존재한다혼란스럽도록 여러 생각과 감정의 변색을 경험할 지도 모른다아무래도 시인이라 이런 효과가 가능한 듯도 하다.

 

살아도 산 거 같지 않은 곳이었다.

살면서 잊는 곳이었다.

살수록 기억이 안 나는 곳이었다.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듯.”

 

인간들...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냐고 내부에서 외부에서 물어 오는 소설...

 

인간은 지구에서만 있어야 하는 건지.

인간끼리만 살아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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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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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수능 난이도가 높을수록 다음해 사교육 시장 수요가 올라간다는 분석이 있다분노에 휩싸일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을 접하고 난 뒤온라인상에서는 몇몇 음모론이 이미 회자되고 있다출제가의 의도를 알 도리는 없지만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결과는 기사제목 - 불수능에 대치동 수요 폭발 - 과 같다

 

언제부터 금수저흙수저란 단어들이 사용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불평등이 상식이 되고 경쟁이 당위가 된 21세기 초입에 태동되었을 듯하다.

 

자산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고 사람마다 가장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나교육은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회적 자원이었다교육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소위 경쟁과 능력을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교육의 내용만이 아니라 학벌이 과장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 모든 학교들을 매년 업무평가를 하고 연구실적을 검토해서 투명한 결과를 발표하고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이 있다면 모를까, ‘명성과 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는 늘 일치하지 않거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물론 원하는 것이 교육을 통해 세계 최고의 학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간판을 달고 다른 이익을 좀 더 수월하게 챙기겠다는 것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된다맛도 없고 서비스도 나쁜 식당이지만그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경험이 계급성을 표현하는 유일한 길이라면 참고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도권 교육에 대한 내 경험은 20년 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 정확히 모르나결코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여전하고 예나 지금이나 심각하게 유해한 부작용과 사회 문제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하는 고질 병폐는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한국사회문제의 가장 뜨거운 핵심은 입시와 부동산이다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이슈가 안 되어도 대입 시험을 못 치른 사정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시험날은 등교도 출근도 조정되고 군사훈련도 중단되고 경찰들은 곤경에 빠진 수험생을 태워 나른다.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의 농도가 가장 진한 곳대치동의 사교육 제공자로 산기획 PD겸 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인류학적 보고서ethnography 혹은 참여관찰 기록지field note이길 바란다고 한다모든 기록은 중요하다영상 기록인 다큐멘터리의 역할과 기능처럼 잘 꾸며진 책이다.

 

한국사회의 뇌관이자 어떤 손해도 감수할 수 없는 내 자식들의 미래가 걸린 일그래서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차라리 덮어두고 죽을 날을 기다릴지언정 누군가 나서서 성공 확률이 없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수십 년째 새로운 바르는 약을 개발했다는 이들만 들락거렸다내상에 외상연고를 발라 병이 나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서 만난 학부모와 학생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모두 절실하게 자신의 욕망을 좇고 있었다때로는 도박판의 플레이어처럼 성적과 정보를 거짓으로 부풀리고, (...) 때로는 구세주를 찾는 맹신도처럼 울며불며 매달렸고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기꾼처럼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했으며때로는 구도자처럼 모든 정신력을 긁어모아 자신이 목적하는 바에 쏟아 부었다.”

 

인생 한 방이 통하는 사회는 양아치 사회이다꾸준히 일관되게 올바르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요행이든 기회든 한 방을 잘 잡아 인생을 뒤바꾸려는 욕망그런 의미에서 대학 입시가 이후의 인생을 상당 부분 결정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한국 사회는 저열한 곳이다이렇게 쓰고 나니 속상해서 마음이 쓰리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대학 입시는 차별의 정식 출발점이다학창시절 내내 무엇을 좋아하는지하고 싶은지 보다 진학할 학교들의 순위에 신경을 썼다이보다 더 계급적인 선택은 없다이후에 사회적 이동의 기회는 거의 없으며학벌은 사회적 지위와도 직결된다.

 

대학 입시라는 통과의례는 인생이 걸린 계급의 거름망이고 운명의 갈림길이다대학 입시를 통해 인간이 분류되고한 번 분류당한 인생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때 필요한 지원을 해서 자식을 진학시키지 못한 부모는 자식 인생을 망친 범죄자실패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벼랑 끝에 선 것은 수험생만이 아니다묘하게도 부동산 자산 증대와 자식 교육이라는 첨예한 책임을 도맡은 어머니들 역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놓인다.

 

여기에 무슨 낭만과 청춘이 있을까무슨 다른 충고가 먹힐까어떤 사회적 분석과 정책적 시행이 충분할까이런 시절을 경험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이 가능할 리가 없다사회는 더욱 해체되고 분리되고 차별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아는 지옥이 낫다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 모든 비용과 낭비와 부작용을 치르며 모순 안에 머물러야 할까여전히 변화가 더 큰 혼란과 악일까적폐를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왜 새로운 적폐를 차곡차곡 쌓는 일에 협조하는 것일까.

 

차별과 부당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모순된 세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거기서 낙오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21세기 21년 동안 한국인들의 문해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공부하는학력이 가장 높은가장 인내심이 강한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 읽고 쓰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읽기와 쓰기문해력과 논술을 외면하는 교육 과정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기를 빼고 가능한 사회문화적 활동이 무엇일 있을까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끼리는 소통을 어떻게 할 수 있나왜 책을 안 읽냐고 놀랄 일이 뭐가 있나.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코로나 시대에도 입시로부터의 해방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3은 좁은 공간에서 밀집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존재였고” “재난은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입시와 학벌의 피라미드 아래에서 그저 공부만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긴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사외의 학벌과 능력(학력)주의

 

사실은 능력주의의 정반대편에서 인지적 편견에 기초한 집단주의적 차별이 문화적 악습으로 뿌리내린 결과일 뿐이다.”

 

자기 학교 출신을 밀어주고 끌어주며 특혜와 가산점을 주어 만들어온 강고한 연고주의의 성채가 바로 학벌주의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적이 없다당연히 자유경쟁도 없었다전근대적이고 연고주의가 강고한 가운데 예상치 못한 예외적 성공을 이룬 낯선 이들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 부르며자신들의 불의한 시스템이 공정한 것인 양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학벌을 옹호하는 이들은 (...) 자기 조직의 상징을 문신으로 새기고 건들거리는 조폭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삥 뜯는 일을 자신의 특권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학벌주의는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가?

사라지지 않을 경쟁이 초래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갈수록 진화하고 세분화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뤄야하는가?

불로소득을 향한 욕망과 결합한 학벌 집착은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학력이 높아지는 만큼 지성을 존중하기는커녕 불신하고 혐오하는 반지성주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울대 나온 놈들이 세상을 다 망친다고 하고 서울대 나온 이들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내 자식은 서울대에 가길 바라는 괴리를 무엇으로 설득할 것인가?

집단의 은밀한 세속적 욕망을 어떻게 파악하고 끌려 다니지 않는 정책을 마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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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답은 내 안에 있다 -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 인문학
김이섭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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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여러 가지를 배우기 시작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을 배우기도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배우지 못하는 걸까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뭐가 이렇게 복잡해서 늘 난제를 만나는 걸까해답과 정답을 아는 이는 왜 이리 드물까.

 

우리는 새처럼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고 물고기처럼 바다를 헤엄치는 법은 익혔지만함께 살아가는 간단한 기술은 배우지 못했다.” 마틴 루서 킹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하인리히 뵐

 

프레임에 갇히면 사람이 잔인해진다이미 답은 정해졌고 상대를 자백시키거나 확인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상대의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상황을 정확히 알기도 전에염려를 하기보다 범죄를 밝히듯 단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남이 설치한 프레임에혹은 프레임인지 자각하지 못한 상태로 벗어나지 못하고 오류만 거듭 출력하게 된다.

 

뇌과학에서 밝히는 뇌의 정보처리인지기능은 내 오독과 오해인지도 모르지만생존을 위한 최선의 요약정리처럼 들리기도 한다외부 자극과 정보를 모두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판단도 선택도 할 수 없으니우리 뇌가 선별 선택한 정보들로 결론에 이르는 방식이다.

 

문제는 정보의 정확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최초의 결과가 좋게 나온 경우뇌는 그 일련의 과정을 쓸 만한 것으로 기억해두고 유사한 상황에서 유사한 과정을 거쳐 유사한 결론에 이르려고 한다는 것이다나이든 이들이 고집스러운 이유는 자신의 방식으로 오래 생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그러니 내가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최고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편애편견선입견확증 편향 등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기보다 흔한 것으로 받아들여야한다모두 자신의 편향을 따르자는 말이 아니라발생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인정하고자신이 받아들이는 정보와 도출하는 결론에 의문을 가지자는 것이다그리고 애써 다른 의견에 귀 기울여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무척 어렵고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손에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더구나 온라인과 가상세계의 지분이 아주 많이 늘어나면서이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인 알고리즘은 인간의 갖가지 편향을 강화하는 위험한 도구이다분야는 달라도 결국엔 같은 정보만을 계속 보게 되면자력으로 그 세계에서 탈출하는 일은 더 요원해진다단톡방에서만 대화하는 이들의 현실감 없는 음모론들은 외부 사람이 듣기엔 어처구니가 없지만그들 사이에서는 사실과 진실로 통용되는 것처럼.

 

늘 더 중요한 것은 결론보다 답보다 질문이다그리고 질문을 구성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이 책의 곳곳에서 듣는 일에 대한 동서고금의 격언들을 담아 두었다사람들이 얼마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안 듣는지의 반증으로 읽힌다.

 

- 1 2 3 법칙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생각하라

삼사일언(三思一言) :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

인간에게는 입이 하나귀가 둘이 있다 <탈무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칭기즈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결국 우리가 듣고 싶고 알고 싶고 만나고 싶은 것은 역시 이런 해법이자 대답이자 결론이다저자 말고 독자인 우리가 각자의 해법을 작성해 보는 건 어떨까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다 아는 단어들이 무수하기 때문이다개념어들이 모자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소통공감동행긍정소유 말고 존재자기암시자기반성자기개발자기통제자기실현...

 

만나서 마음이 뜨끔거렸던 몇 문장을 기록해둔다.

 

건망증 환자는 기억해야 할 걸 금방 잊고강박증 환자는 잊어야할 걸 오래 기억한다.

쓰레기통을 없앤다고 쓰레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인생은 빠르게 가는 게 아니라 바르게 가는 것이다.

사다리를 오르기 전에 왜 오르는지 먼저 생각하라

남의 절망에 눈을 감는 사람은 자신의 희망에 눈을 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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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김남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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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삶에서도 사람은 여러 생을 살 수 있다어느 순간의 선택으로 인한 변화가 격렬할수록 생이 나뉜 풍경을 연출한다내 과거는 종종 전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이 책의 저저가 펼쳐 놓은 삶의 면면들이 내가 전생에 경험한 내용들과 너무 자주 겹쳐서... 반갑고도 불편했다.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한 것들한동안 그렇게 살았던 것들이젠 그런 시간과 유사성이라곤 없는 삶을 살면서도이 삶은 가짜이고 바꿀 수 없이 나를 구성한 것들은 모두 그 과거에 있다고 믿는 그런 이야기들...

 

내가 선택한 삶의 길을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이렇게 계속 가도 괜찮은 걸까생의 마지막날까지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까. (...) 밥벌이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내게 해를 가하지 않은 저자를그의 삶을그 탓에 원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내게로 향하는 분리배출을 미룬 감정들이다.

 

서른을 넘긴 후 나는 늘 혼자 살아왔는데정말로 혼자였던 날은 한 번도 없었다언제나 매 순간을 타인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 왔다.”

 

오늘도 작은 호의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건너왔다어떤 상황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고삶의 품격을 지키며 남은 생을 살아내는 사람이고 싶다.”

 

아주 오래 나는 궁금했다뉴스에 등장하는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 그렇게 많이 살고 있었던 것일까나는 평생을 타인의 호의와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다가장 가까운 타인들인 가족들은 물론이고전혀 모르는 이들아주 잠시 시공간을 나눈 이들심지어 언어도 통하지 않던 이들까지.

 

세상은 호의와 배려를 기꺼이 나눠주는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했다평소에는 다들 할 일을 하며 살고 있다가누군가가 곤경에 처하거니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이가 손을 번쩍 들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한 겨울의 눈이 펑펑 내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커다란 가방을 끌고 도대체 이 지도는 왜 이렇게 불친절한가... 헤매고 있을 때 잡화점교회식당에서 거리로 나와서 알지 못하는 언어로 묻고 전화를 걸고 약도를 그려준 이들을 떠올린다이럴 때 현실은 영화보다 더한 판타지이다.

 

누구나 양면성도 아니고 다면성이 있다항상 일관적이지 않으면 모두 가짜라고 하는 건 지나친 단정이다문제는 상대에 따라 달리 반응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게을러서 간명한 게 좋기도 하지만 경험으로 믿는 것들도 있다진심은 힘이 세고 다정함호의친절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으로 돌아온다는 것.

 

가능하면 도움 받는 일보다 도울 수 있는 일이 더 많으면 좋겠단 모순적인 욕심이 있다나이다 들수록 사양하는 태도가 더 강해지는데 좋은 일이 아니란 생각을 더 자주한다상대가 기분 좋게 힘들지 않게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키는 일이고그것 역시 일종의 좌절이라 자연스럽게 외부로 향하는 선한 에너지를 막는 꼴이다.

 

그러면서 내가 도울 때는 사양 말고 받기를 강권하니 이보다 모순적일 순 없다돕고 도움 받는 일은 상호 간은 물론 파급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윤리를 형성한다타인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대신 모르는 존재로 살아가다가도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 모두는 서로 도울 것이란 얼마나 든든한가얼마나 다정한 뒷배인가.

 

주어진 가족을 떠나내가 만든 가족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가족들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무수한 변형들을 그렇게 느슨하지만 촘촘한 연대로 만드는 일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에 대단하지 않아도 소소하게 꾸준히 참여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연대가 내가 가장 바라는 보험의 형태이기 때문이다가입 조건은 지구생명체일 것단 하나인.

 

제 어머니는 11년 전오늘 같은 봄날에 친구와 가족을 불러 모아 이틀간 웃고 노래하며 꽃놀이를 즐긴 후 세상을 떠나셨죠. “완벽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요그때 이후 저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며 죽음은 늘 마주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왔지요.”

 

확률적으로는 여전히 노화로 인한 죽음이 다수이지만다 알다시피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지구 반 바퀴를 돌아다니며 살던 시절이왕 지구에 태어난 것 안 가본 곳 없이 열심히 다니다 길 위에서 죽으면 좋겠다 싶던 시절 나는 20대부터 유서를 써두었다.

 

내용은 매년 갱신되고 장기기증서약도 조금씩 바뀌고이제 연명치료의견도 밝혀두었다언제까지 존엄사가 불법일지 모르겠지만필요하다면 스위스에 가서 죽어야할 지도 모르겠다남은 육체는 아무 숲이라도 좋으니 야생동식물의 먹이가 되면 가장 좋겠는데... 하여간 원하는 방식으로 죽으려면 이것저것 더 바뀔 때까지 오래 살아야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 내용은 사라지고 내 감상만 남은 글이 되었다저자의 삶에 그늘이 늘지 않기를가장 간절한 것과 가장 오래 살 수 있기를나를 중심에 놓고 사는 일이 이기적이라 비난 받지 않기를외로움이 서러움으로 바뀔 필요가 없는 사회이기를불안을 견디는 일을 서로 조금씩 도울 수 있기를성취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무능하게 여기지 않기를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이기적인 일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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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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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집 건너 친구 집으로 놀러가던 6살 제니가 실종되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경악하고 함께 노력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이웃들의 관심이 옅어져도 실종 아동의 부모들은 살던 곳에서 이사를 가지 않는다. 6살 제니의 얼굴이 찍힌 전단은 여전히 붙어 있지만, 더러는 잊고 새로 이사 온 이들은 아이의 존재를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존재를 거의 지웠을 무렵 ‘나’는 결국 집에 돌아왔다. 실종 아동을 찾고 범인을 잡고 그 과정에서 여러 비밀이 드러나는 짐작 가능한 설정이 아니라 티저북이지만 잠시 놀랐다. 돌아왔다고? 발견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시점은 ‘나’로 옮겨 간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어도 6살 때까지만 살았던 동네가 익숙하고 행동이 자연스러울 리가 만무하다. 이름을 밝히고 경찰을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라 다행이다.

 

1. 열 한 번째 모퉁이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깊이 뻗어 있다. 그리고 딱 거미줄처럼 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2. 그럴 의도가 아닌데도 가끄ㅁ가다 이런 일이 생겼다. (...) 생각만 했을 뿐인데, 또 혼자서 시부렁거리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입 좀 닫아라. “다시는 아무 말 하지 않을게요, 맹세해요…… 제발…….”

 

3. “왜 이제야 도망쳐 나왔을까요?” (...) “그 사람들은 제니가 여섯 살 때부터 부모 노릇을 했어요. 괴물 같은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제니에게는 그 괴물이 세상의 전부였죠.”

 

4. “VIDI. 라틴어로 나는 보았다라는 뜻이다.” (...) “뭘 봤어? 이것저것. 그게 뭔데? 네가 알고 싶지 않은 것들.”

 

5. “우리가 삼촌이라 부를 때까지 브렌트 삼촌이 간지럼을 태웠다는 장난 있지? 내가 지어낸 얘기야.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도 네가 기억한다니 참 이상하다?”

 

6. “네가 유괴당한 날 말이야. 뭐 기억나는 거 없어?” 잠깐만, 나는 생각했다. 잠깐만…….

 

7. 그만하세요…… 말 잘 들을게요……. 이러지 마세요, 누구세요……? 제발요, 누구세요……? 아버지…….

 

8. 그는 물에 빠진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그러면 가족은 다시 세 명이 된다. 구성원은 달라지지만, 벤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동생 제니가 채우게 된다. (...) 동생 제니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 소식을 듣는 순간의 죽을 것 같던 느낌이, 그를 끌어안으려는 아빠가 너무 이상해서였다.

 

9. 벤은 자기 방으로 가는 길에, 부모님이 그 애에게 내어 준 방의 닫힌 문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이 방으로 갑자기 들이닥치곤 했던 여덟 살 때를 떠올렸다. 아니, 이 방에서 달아났었나?

 

10. “제발…….”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해.” 내가 돌아보지 않으면 그 여자는 여기 없는 거다. (...)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저 여자는 돌아갈 거야.

 

11. “결국 받았네.” 수화기를 들자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폐가 갈비뼈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잊지 마” (...) “난 네가 진짜 누구인지 안다는 걸.”

 

티저북은 끝나고 나는 홀로 온갖 상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헷갈리고 짐작을 벗어나고 반전이 거셀 듯……. 기대하는 장치들이지만, 그건 내 손에 결말이 있을 때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분노를 크게 자아내는, 공감과 슬픔이 큰 소재가 아이의 실종 납치 범죄이다. 근절된 적이 없는 만큼 낯설지도 않지만, 매번 사람들은 새롭게 분노하고 안타까워한다.

 

범인 찾기도 궁금하지만, 일단 자신이 제니라고 밝힌 ‘나’가 혼란에 빠진 제니인지, 제니가 아닌지, 아니라면 기억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제니와 같은 피해자인지, 혹은 가해자 가족인지…… 어느 하나에 그럴 듯한 근거가 있어 특별히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멀쩡해 보이는 제니의 친부모는 보이는 그대로인지 숨기고 있는 다른 비밀들이 있는지, 삼촌의 존재와 역할은 무엇인지,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오빠 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날 혹은 더 오랜 시간의 폭력의 형태는 무엇인지 궁금해서 갑갑하다. 잠시 현실을 떠날 정도의 뒤집기 반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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