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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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수능 난이도가 높을수록 다음해 사교육 시장 수요가 올라간다는 분석이 있다분노에 휩싸일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을 접하고 난 뒤온라인상에서는 몇몇 음모론이 이미 회자되고 있다출제가의 의도를 알 도리는 없지만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결과는 기사제목 - 불수능에 대치동 수요 폭발 - 과 같다

 

언제부터 금수저흙수저란 단어들이 사용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불평등이 상식이 되고 경쟁이 당위가 된 21세기 초입에 태동되었을 듯하다.

 

자산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고 사람마다 가장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나교육은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회적 자원이었다교육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소위 경쟁과 능력을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교육의 내용만이 아니라 학벌이 과장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 모든 학교들을 매년 업무평가를 하고 연구실적을 검토해서 투명한 결과를 발표하고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이 있다면 모를까, ‘명성과 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는 늘 일치하지 않거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물론 원하는 것이 교육을 통해 세계 최고의 학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간판을 달고 다른 이익을 좀 더 수월하게 챙기겠다는 것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된다맛도 없고 서비스도 나쁜 식당이지만그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경험이 계급성을 표현하는 유일한 길이라면 참고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도권 교육에 대한 내 경험은 20년 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 정확히 모르나결코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여전하고 예나 지금이나 심각하게 유해한 부작용과 사회 문제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하는 고질 병폐는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한국사회문제의 가장 뜨거운 핵심은 입시와 부동산이다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이슈가 안 되어도 대입 시험을 못 치른 사정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시험날은 등교도 출근도 조정되고 군사훈련도 중단되고 경찰들은 곤경에 빠진 수험생을 태워 나른다.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의 농도가 가장 진한 곳대치동의 사교육 제공자로 산기획 PD겸 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인류학적 보고서ethnography 혹은 참여관찰 기록지field note이길 바란다고 한다모든 기록은 중요하다영상 기록인 다큐멘터리의 역할과 기능처럼 잘 꾸며진 책이다.

 

한국사회의 뇌관이자 어떤 손해도 감수할 수 없는 내 자식들의 미래가 걸린 일그래서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차라리 덮어두고 죽을 날을 기다릴지언정 누군가 나서서 성공 확률이 없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수십 년째 새로운 바르는 약을 개발했다는 이들만 들락거렸다내상에 외상연고를 발라 병이 나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서 만난 학부모와 학생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모두 절실하게 자신의 욕망을 좇고 있었다때로는 도박판의 플레이어처럼 성적과 정보를 거짓으로 부풀리고, (...) 때로는 구세주를 찾는 맹신도처럼 울며불며 매달렸고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기꾼처럼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했으며때로는 구도자처럼 모든 정신력을 긁어모아 자신이 목적하는 바에 쏟아 부었다.”

 

인생 한 방이 통하는 사회는 양아치 사회이다꾸준히 일관되게 올바르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요행이든 기회든 한 방을 잘 잡아 인생을 뒤바꾸려는 욕망그런 의미에서 대학 입시가 이후의 인생을 상당 부분 결정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한국 사회는 저열한 곳이다이렇게 쓰고 나니 속상해서 마음이 쓰리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대학 입시는 차별의 정식 출발점이다학창시절 내내 무엇을 좋아하는지하고 싶은지 보다 진학할 학교들의 순위에 신경을 썼다이보다 더 계급적인 선택은 없다이후에 사회적 이동의 기회는 거의 없으며학벌은 사회적 지위와도 직결된다.

 

대학 입시라는 통과의례는 인생이 걸린 계급의 거름망이고 운명의 갈림길이다대학 입시를 통해 인간이 분류되고한 번 분류당한 인생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때 필요한 지원을 해서 자식을 진학시키지 못한 부모는 자식 인생을 망친 범죄자실패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벼랑 끝에 선 것은 수험생만이 아니다묘하게도 부동산 자산 증대와 자식 교육이라는 첨예한 책임을 도맡은 어머니들 역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놓인다.

 

여기에 무슨 낭만과 청춘이 있을까무슨 다른 충고가 먹힐까어떤 사회적 분석과 정책적 시행이 충분할까이런 시절을 경험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이 가능할 리가 없다사회는 더욱 해체되고 분리되고 차별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아는 지옥이 낫다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 모든 비용과 낭비와 부작용을 치르며 모순 안에 머물러야 할까여전히 변화가 더 큰 혼란과 악일까적폐를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왜 새로운 적폐를 차곡차곡 쌓는 일에 협조하는 것일까.

 

차별과 부당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모순된 세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거기서 낙오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21세기 21년 동안 한국인들의 문해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공부하는학력이 가장 높은가장 인내심이 강한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 읽고 쓰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읽기와 쓰기문해력과 논술을 외면하는 교육 과정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기를 빼고 가능한 사회문화적 활동이 무엇일 있을까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끼리는 소통을 어떻게 할 수 있나왜 책을 안 읽냐고 놀랄 일이 뭐가 있나.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코로나 시대에도 입시로부터의 해방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3은 좁은 공간에서 밀집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존재였고” “재난은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입시와 학벌의 피라미드 아래에서 그저 공부만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긴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사외의 학벌과 능력(학력)주의

 

사실은 능력주의의 정반대편에서 인지적 편견에 기초한 집단주의적 차별이 문화적 악습으로 뿌리내린 결과일 뿐이다.”

 

자기 학교 출신을 밀어주고 끌어주며 특혜와 가산점을 주어 만들어온 강고한 연고주의의 성채가 바로 학벌주의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적이 없다당연히 자유경쟁도 없었다전근대적이고 연고주의가 강고한 가운데 예상치 못한 예외적 성공을 이룬 낯선 이들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 부르며자신들의 불의한 시스템이 공정한 것인 양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학벌을 옹호하는 이들은 (...) 자기 조직의 상징을 문신으로 새기고 건들거리는 조폭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삥 뜯는 일을 자신의 특권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학벌주의는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가?

사라지지 않을 경쟁이 초래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갈수록 진화하고 세분화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뤄야하는가?

불로소득을 향한 욕망과 결합한 학벌 집착은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학력이 높아지는 만큼 지성을 존중하기는커녕 불신하고 혐오하는 반지성주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울대 나온 놈들이 세상을 다 망친다고 하고 서울대 나온 이들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내 자식은 서울대에 가길 바라는 괴리를 무엇으로 설득할 것인가?

집단의 은밀한 세속적 욕망을 어떻게 파악하고 끌려 다니지 않는 정책을 마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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