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 과학자 아빠가 들려주는 우주생물학 자음과모음 청소년과학 1
이문용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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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가 들려주는 세계 각국의 우주센터와 국제우주정거장, 우주로 간 인간과 여러 생물의 생물학적 변화는 시점과 더불어 상세 내용이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내가 어릴 적엔 정보 부족으로 전혀 알 수 없었던 입사 방법과 연봉까지! 충분히 흥미롭고 유익하게 읽고 배울 수 있는 멋진 서적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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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애할까 - 황영주 북에세이
황영주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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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그냥 좋아서 읽는다.

 

사계절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이 인쇄된 목록에 두근거린다어떤 제목들에는 마음이 징~하고 오래 울린다독서가 연애라면 그 연애는 여타의 제한도 금기도 없어서내 연애 상대가 다른 누군가의 연애 상대가 되고 그 연애는 어떻게 했나하고 들여다보는 일도 부끄럽지 않으며아무런 감정적 동요 없이도 지난 연애를 반추할 수 있다오히려 내 연애상대들 내가 읽은 책들 -과 만난 이들에게 친근감과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가 가슴 먹먹했던 일그 추억들을 기꺼워하기도 한다.

 

7월 중순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3개월간 책도 인터넷도 놓고 살았다여름날에도 한기가 드는 몸으로도 불쑥 책을 펼치고 싶긴 했지만……맥없이 떠나면 폐가 될 책짐들이 마음에 걸려 조금 기운 차린 날들에 부지런히 책들을 기증했다잠깨는 아침마다 늘 어딘가가 아프거나 더 아프거나 하지만 슬금슬금 책을 다시 읽고 싶은 기분에 처음 잡은 책이 북에세이, <우리 연애할까>. 회환처럼 치료처럼 희망처럼 새 책을 읽기 전에 지난 연애사 한 번 더 돌아보는 심정으로 목록을 추렸다연애의 형태도 내용도 깊이도 느낌도 각양각색이라 시종일관 두서없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작가의 진단병명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

독자의 진단병명우울증과 범불안장애

 

다른 상대에게 끌리는 것도 연애이지만비슷한 상대에게 느낀 친숙함과 동질감에 끌리기도 하는 것이 연애이다그래서 읽은 책병증이 비슷해서 술술 읽으면서 신나는 수다를 떤 기분이 들었다누군가는 서로의 상처를 닦아주는 척하며 공멸하는 연애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독설을 날리지만살다보니 딱 하나로 뭐든 해결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건 없다는 것이 현실 경험인지라.

 

저는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고다른 사람들이 그 약한 모습을 다 알고 있을 거 같아요당당한 척 말해도 내 안의 약한 모습을 들킬 거 같은 거예요구려 보일까 봐 두려운 거죠근데 사실 아무도 저를 무시한 적 없고제가 가장 저를 무시하고 있었어요.”

 

이에 대해 그녀의 주치의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일종의 자기 처벌적인 욕구예요화가 났다가도 바로 죄지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여기저기서 더 좋아 보이는 걸 차용해서 이상화된 내 모습을 쌓아놓아서 그래요어떤 절대적인 기준의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하지만 힘들 땐 무조건 내가 제일 힘든 겁니다그건 구린 것도 이기적인 것도 아니에요.”

 

황현산 사소한 부탁

밤이 선생이다와 격렬한 연애를 한 기억을 바탕으로 같은 상대에게 또 다시 반하는 기분으로 읽은 책이다어느 하나 사소하지 않은 부탁들로 가득 그득한 책서늘한 가을이라 숨을 들이켜다 문득 소천하신 선생이 그립기만 하다.

 

이가라시 유미코 나기타 게이코 캔디 캔디

국민학교 입학선물로 받은 책이다한국전래동화와 안데르센동화에 대한 독서 후 반응에 염려가 되셨기 때문일까…… 어쨌든 지금 생각하면 쏘~~한 부모님의 축하 선물이었다스위트 로맨스물로 분류되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는데당시 나는 위험할 정도로 몰입하고 감정 동일시를 해서 누군들 안 그랬을까마는 나달나달해진 책장이 분리될 때까지그래도 매번 읽을 때마다 충격과 격동의 충격적인 대서사시로 느꼈을 것이다아주 오랫동안 인물 캐릭터의 원형적 이미지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단지…… 빛나는 주인공이지만 캔디로 살고 싶진 않았다.

 

정재찬 시를 잊은 그대에게

밑줄 쫙이런 입시국어교육이 시에 대한 애정을 원천 차단했다교과서에 시린 시들이란 까다로운 문제풀이 소재들이었고 시어들이 짜증스러웠다그러다보니 문학적 가치와 인문학적 교양에 대한 편견도 선입견도 뿌리를 내리려했다좋아하는 상대에게 워낙 귀가 얇고 마음이 보드라운 덕분에참 좋은 친구가 국문학을 전공하고 시를 읽어주고 들려주는 운 좋은 환경 속에서 오래지 않아 구원을 받았다.

 

지금도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에는 일어나서 제일 먼저 시를 읽는다. 20여 년을 같은 시를 읽는데 아직도 기도의 내용처럼 반성과 결심은 반복되기만 한다더 좋은 사람이 되진 못하더라도 더 나쁜 사람은 되지 않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꼭 움켜쥐고 그렇게 읽는다.

 

백희나 알사탕

사랑해!” “보고 싶어.” “나랑 같이 놀래?”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한 마디를 전할 용기를 주는 마법 알사탕!

 

세 번이나 새로 사야 했을 만큼 온 가족이 지독하게 사랑한 책이다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사랑하는 그런 간지럽고 행복한 상황이 시기에 핑계 삼아 맛있는 알사탕들을 과소비한 기억도 함께이다다 같이 치과치료 받고 알사탕과의 연애는 차분히 끝나간 듯하다.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젊음은 기억 속에서도 산화되고 몸은 불가역적으로 늙어가고 기억에 오류가 생기고 몸이 아프다끔찍하게 살게 되면 어쩌나끔직하고 더한 불행이 마련되어 있다면 내가 뭘 잘못했냐고 누군가에게 한번은 따지고도 싶은 심정이니나도 술 마시기 좋은 날을 골라 주정뱅이가 되어볼까……이 연애는 주선자 작가 -를 좋아해서 시작한 연애였고그 당시엔 남의 비극들을 속편하게 읽으면 되는 쉬운 연애였는데지금은 그만두고 싶어도 성큼 파고드는 원치 않는 복잡한 연애 감정이 든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그 누구의 동정과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것 또는 가혹한 시련이다그녀는 장애인이지만 그것이 겉으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그녀는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신체가 마비되지도 않았다겉으로 나타나는 장애는 아무것도 없다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98

 

예전에 어느 특강에서 미리 서류 작성을 하는데 장애 유무와 종류를 기입하라는 공란이 있었다성실하고 충실하게 불특정 다수의 심신장애가 있다고 기입했더니 담당자가 크게 웃으며복지부에 공식 등록된 장애 유형만 해당한다고 알려주었다농담을 해서 웃기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지체장애 신체로 드러나는 장애 의 경우를 제외하면 다른 유형의 수많은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조금은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장애인 표시는 왜 항상 휠체어에 탄 모습인가요.

 

차분한 마음으로도 열렬히 반하고 감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연애를 알려 준 대단한 작가의 귀중한 작품이다신경과 전문의가 온기를 담뿍 담아 들려주는 위로와 감동 이야기들이라니학창시절신비로운 뇌를 연구하는 의사가 되어 보는 건 어떠냐고 강요하려했던 부모님에게 느낀 반항심과 거부감이 처음으로 후회되었다부디 더 많은 이들이 이 책과 연애해보시길!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우아하고 아름답고 슬픈 매력도 있는 멋진 연애 상대이긴 했지만내 연애 상대로는 내가 턱없이 부족하고 경험이 일천했던 때에 만나 썸만 타다 끝난 것 같은 연애영화를 먼저 봐서 이미지로 간단 정리된 탓일 수도 있으려나…… 어쨌든 참 오랜만에 기억해보는 반가운 책이기도 하다. 60세까지 살아남으면 그때는 어떤 연애가 가능할지 다시 읽어 보고 싶다.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냉소cynicism란 지성의 가장 저급한 형태라는 말이 있지만대책 없이 너무 자주 빈정거리기만 하는 건 나도 싫지만어쨌든 난 영국식 블랙유머나 냉소적 위트가 취향에 딱 맞다웃다가도 죽을 수 있다는 솔직한 두려움을 깨닫게 해 준 닉혼비의 초기작이 발작적으로 그립다..내가 이 오베라는 남자를 얼마나 찬미했는지는 자명하다스웨덴스웨덴 작가라고편견 탓에 믿을 수 없었지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꼭 오베의 이웃으로 살고 싶었다올 해까지 일 년에 한번은 읽고 있다온전한 연애라기 보단 팬심으로 하는 행복한 짝사랑이 더 맞겠다.

 

정세랑 피프티 피플

누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다본관의 입원실 낮은 층 창가에 있던 사람이 잠깐 망설이더니 설아에게 손을 흔들었다설아도 마주 흔들어주었다창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바닥만은 다정했다이설아, 266

 

정답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도 이래야 제대로이지!’하는 삶의 양식과 방식에 대해 고집스럽게 굴던 시절이 있었다그때에는 심지어 퍼즐도 프라모델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추지를 못했다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져서 누군가 방 안에 뛰어 들어와 밀쳐서라도 멈춰주면 좋겠다고 맘속으로는 울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젊어 체력도 좋을 때라 기절도 못하고 꾸역꾸역 완성(?!)’시키려 즐거움도 없이 괴롭게 움직거렸다그래서 작가가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낮고 넓은 테이블에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란 말을 붙여 내놓은 주인공이 없는 그리고 많은 이 글을 읽고 젊고 어리석던 그 시절…… 기억이 났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옥중서간

상징적 공간으로의 감옥이 아니라 실제 감옥에서 20년 20그런 저자의 목소리와 글에는 아무런 불신과 증오와 회한과 절망……이 없다어찌나 부정도 부인도 불가능한 깊이의 사색과 성찰이었는지 아무 어려움도 모르고 한창 시건방지던 애송이었던 내게도 이해불식 중에도 확실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먼 나라 철학자의 말이 훨씬 더 재밌고 짜릿했는데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런 정조의 애정과 신뢰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당시로서는 표현할 지식도 식견도 경험도 마음가짐도 없었던 내게도 한 가지 선명한 방향타를 오래 남겨 주었다나는 꽤 오랫동안 선생 덕분에선생의 글 덕분에 타인이 미워지고 상상 속에서는 따귀를 치고 싶은 감정에 시달리는 순간이 오면 내가 타인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 증오하게 만드는 여름 날 감옥에 갇혔구나.’하고 숨고르기를 했다그러고 나면 상대를 향해 솟아오르던 열기와 불꽃이 동력을 잃고 사그라진 적이 무척 많았다.

 

<더불어 숲>과 <처음처럼>을 만나고, <담론>에 이르러운 좋게 강의도 들어 보았다선생인 소천하시고 나는 이제 타인을 향해 무엇도 태울 수 없는 지친 기색의 몸덩어리로 살고 있다한 번도 따르지 못했던 서삼독(書三讀)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언젠가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불안한 기대를 걸고 있다아직은.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필자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토대에 발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필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입니다.

진정한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신영복서삼독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이 책에 대해이 연애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발밑이 꺼지는 듯한 충격 속에서 완전히 낯선 다른 존재와 전면적으로 전 존재를 부딪치듯 만난 연애라면 비유가 될까올 해는 참 많은 책들을 정리했다좋은 마음으로 기증을 하고도 그런 짓(?)을 한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들이 불쑥 찾아 들던 참 어렵고 끈질긴 집착을 긁어내는 일이었지만아마 나누고 보내고 난 후 단 한 권이 남는다면 아직은여전히이 한 권(한 권이라고 했지만 1985년 출간 본부터 여러 권을 탐욕스럽게 사 모았다이 책에 대한 묵직한 소유욕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가능하다면 반드시 올 그 날에 함께 태워져 환원된 원소들이 마구 뒤섞여 공기 중으로 함께 날아오르면 좋겠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인간이 타인의 환대 없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도 현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인류는 오랜 세월 서로를 적대하고 살육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맞아들이고그들에게 절실한 것들을 제공하고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떠나보내오기도 했다거의 모든 문명에특히 이동이 잦은 유목민들에게는 손님을 잘 대접하라는 계율들이 남아 있다. 139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207

 

굳이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 목표인 적은 없었지만 꽤 많이 떠돌아다니던 시기가 있었다여행이라 봐야 내가 좋아하는 건 한 곳에 머무르며 동네 사람들과 같이 설렁설렁 걸어 다니며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게 제일 좋아 별나게 재미날 것도 신날 것도 없지만어쨌든 지나보면 낯선 곳들에 겁 없이 가서 이런저런 곤란한 작은 일들을 만났을 때도 마법처럼 늘언제나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그래서 더 겁이 없어진 나는 세상의 온갖 선의와 호의와 행운을 믿는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좀 더 오래 살아 지금에서는 꼭 필요한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산 내가 멀쩡히 살아남은 것 자체가 수많은 다른 이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푹 숙여진다나는 몰염치한 빚쟁이에 가깝다.

 

쿵짝이 잘 맞는 연애는 아니었지만그래도 맛난 차를 마시는 동안 무척 즐거운 대화를 나눌 상대를 만나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그 또한 정말 감사한 일이다.

 

김중미 존재 

봄볕가을볕처럼 환하게 번지는 웃음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게 하는 작가슬프고 아프고 묵직하고 어려운 소재들을 다르면서도 생명력이 빛나게따스한 위로처럼 온기가 퍼지게 글을 쓰는 신비한 작가코로나가 관리 가능해지면 가장 먼저 강연 목소리를 듣고 싶은 분<존재> 이전에 이미 깊이 사랑에 빠졌던.

 

사누 씨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아프리카 속담을 소개해 주었어요. “진짜로 잠든 사람을 깨우는 건 쉽다그러나 잠든 척하는 사람을 깨우는 건 어렵다.” 저도 여러분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125

 

저는 그런 것이 작은 용기라고 생각해요그렇게 작은 용기들이그 용기가 내는 작은 균열들이 견고해 보이는 이 세상을 조금씩 바꾼다고 생각해요남들 사는 대로 고분고분 사는 사람보다는 좀 덜컹거리기도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해요어쩌면 글 쓰는 일도 그렇게 틈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계속 글을 써요. 163

 

책과 연애하는 황영주 작가님의 북에세이 덕분에 옛사랑에 취하는 호사를 누리는 시간을 누렸다. 체력이 더 있으면 더 많은 책들을 들춰보고 싶지만 여기까지, 아쉽다. 이 에세이에 담아 주신 황영주 작가님의 연애는 67권에 이른다. 그래도 목록을 보는 동안 책과 하는 연애는 나도 못지않게 한 기분이 들어 잠시 우쭐했다친절하고 따뜻하고 깊이 있게 쓰신 에세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목록의 연애 내용에 관심이 있는 독자 분들이 찬찬히 읽으시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두서없는 내 연애 담과는 달리 간결하고 진솔하고 행복한 격려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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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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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금’이란 이름에 걸맞게 월급을 소금으로 받은 시절도 있었음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롭고 흥미로운 장편소설이라 반갑고 관심이 큽니다. 환상 소설이라는 분류처럼 현존하는 모든 것들이 판타지일 수도 있겠지요. 어릴 땐 재미나기만 했지만 어느덧 많은 것들이 조금은 서글픈 나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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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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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를 지었다.

3천 년 뒤매들린 밀러는 키르케를 써야 했다.

 

사회가 여자에게 허용해준 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여성에게 주어지는 단어가 마녀였어요틀림없이 키르케가 그런 경우죠그녀는 오디세우스와 1년을 보냈죠그렇다면 그녀의 나머지 인생은어떻게 그녀는 지금의 그런 존재가 되었을까?

 

10년도 더 전에 친구의 은사가 오랜 기간 연구하고 완역했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책을 선물 받아 아주 힘들게 읽었는데필사한 몇 구절들 이외에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매력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키르케>를 잘 읽어 보고 싶으니지금에 와서 <오디세이아>가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몹시 아쉽다.

 

키르케의 탄생 장면과 대화들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인 성차별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외모이름능력부모의 기대 등의 모든 것이 그러하다누가 누구를 더 반영한 것인지는 몰라도 인간계나 신계 역시 씁쓸한 장면이다아이들 용 책제목을 보니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마녀 키르케>라고 뜬다그 책에서는 아마 얻을 수 없는 정보 중 하나로 키르케,가 hawk라는 것을 알게 되어 뜻밖의 기분이 들었다그저 적당한 남편을 만나는 일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한 기대가 생기는 이름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지상에는 그의 뜨고 짐을 기록하는 천문학자라는 인간들이 있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그들은 인간들 사이에서 최고로 존경을 받았고 왕의 고문으로 왕실에서 지냈지만아버지는 가끔 여기저기에서 미적거려 그들의 계산을 어그러뜨렸다그러면 이 천문학자들은 섬기는 왕 앞으로 끌려가 사기죄로 처형당했다.

중략.

아버지,” 그날 내가 말했다. “천문학자를 죽일 만큼 늦었을까요?”

그렇구나.” 아버지는 대답하고 짤랑거리는 고삐를 흔들었다.

빨래를 짜듯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중략.

폐하태양 자체가 늦은 게 저희 탓은 아니지 않습니까.

태양이 늦을 리가 있느냐왕들은 왕좌에서 대꾸했다그렇게 이야기하는 자체가 불경죄이니라죽어 마땅하다이와 함께 도끼가 떨어지고 읍소하던 남자들이 두 동강 났다.

아버지,” 내가 말했다. “기분이 이상해요.”

배가 고파서 그런 거다.” 그가 말했다.

 

모두가 비슷한 성격의 자신만만한 가족들에 둘러싸여 사는데자신만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불편할지 혹은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을 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이 시대의 신들이 왜 이리 무감한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었을까가차 없고 냉정한 것이 신에 속하는 것이고공감 능력과 측은지심은 인간에 속하는 것이라고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믿었을까.

 

키르케는 인간에게는 늘 반가운 이름으로 기억되는하지만 그 행동의 이유는 잘 알 수 없는영원한 고통이라는 상상 가능한 가장 큰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와 조우한다.

 

인간들을 도우셨죠.” 내가 말했다. “그래서 벌을 받으시는 거죠.”

그렇다.”

인간은 어떻게 생겼는지 얘기해주실 수 있어요?”

어린아이의 질문이었지만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대답할 순 없어저마다 다르게 생겼거든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불사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뿐그게 무슨 뜻인지 아니?”

알아요하지만 죽는다는 걸 이해하지는 못해요.” 내가 말했다. “용서해달라고 빌라는 걸 거부하셨다던데 진짜예요붙잡힌 게 아니라 제우스한테 가서 솔직하게 얘기하셨다는 것도요?”

그렇다.”

왜요?”

그의 눈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얘길 한번 들어보자신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로서는 대답을 알 수가 없었다신의 처벌을 자청하다니 내가 보기에는 미친 짓 같았지만그가 흘린 피를 밟으며 서 있는 마당에 내 생각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그가 말했다.

 

영웅담이나 단발성 에피소드를 읽는 것보다 주인공을 따라 중심이 잡힌 서사 속에서 그리스로마신화의 접점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다프로메테우스는 철학자의 면모를 가진 듯 생각과 주관이 뚜렷해 보인다키르케가 마실 것을 가져다 준 것에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것도 다른 신들과 구분되어 보인다신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프로메테우스의 질문을 받은 것처럼 나도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모두 똑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키르케는 프로메테우스와의 이 만남과 대화를 통해 어떻게 변화할까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상상해본다인간들을 벌레처럼 하찮게 여기는 생각과 달리 키르케는 신과 인간의 존재와 관계 맺음에 대해 다른 의미를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에테스(남동생)가 내 귀에 대고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길 봐다이달로스야인간계의 경이로운 작품으로 꼽히는거의 신에 맞먹는 재주꾼이지내가 왕위에 오르면 저런 자랑거리를 모아서 곁에 두고 싶어.”

그래언제 왕위에 오르는데?”

조만간.” 그가 말했다. “아버지가 왕국을 하사하시겠대.”

나는 농담인 줄 알았다. “나도 거기서 살아도 돼?”

아니,” 그가 말했다. “내 왕국이잖아누나도 누나의 왕국을 가져야지.”

중략.

내 것 하나 없이 땅속에서 평생을 썩을 수는 없어.”

나는 어쩌라고묻고 싶었다나는 그냥 썩으라고?

 

다른 동생들이 모두 자신이 속할 곳을 찾아 자신의 몫을 챙기러 떠난 후 홀로 남은 키르케는 자신이 머물 장소도 자신의 역할도 찾지 못한 채로 홀로 남는다그러다 우연히 만난 글라우코스라는 인간과 얘기를 나누다 사랑을 느낀다그리고 그제야 프로메테우스와의 대화 속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해낸다인간은 나이를 먹고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제발 도와주세요.” 내가 말했다. “위대한 여신이여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영생을 부여해주세요.”

그건 어떤 신도 할 수 없는 일이란다.”

저는 그를 사랑해요.” 내가 말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거예요.”

글라우코스를 내 옆에 붙잡아놓을 수만 있다면 뒤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찢고 불태울 수도 있었다하지만 내 머릿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은 건 내가 파르마콘이라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 외할머니가 지은 표정이었다.

나는 공포가 뭔지 알아가고 있었다신은 뭘 두려워할까? 나는 그 대답도 알고 있었다.

자기보다 더 뛰어난 능력.

 

똑같은 형태는 아니라 해도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을 사랑하게 된 키르케외롭지 않은 처지였다면 인간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지도 후에 마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이 또한 모두 정해진 운명이었을까키르케가 원한 것은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것일까자신이 인간이 되는 것일까.

 

문득 <개구리가 된 왕자>란 동화와 <슈렉>이 함께 생각난다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유쾌하게도 상징적인 인물이고 반전과 파격을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인물이다틀에 얽매어 고민에만 빠져 있지도 않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용감한 선택을 한다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고원하는 행복을 위해 특권을 포기하고 자립한다자신을 구해 줄 갑옷 입은 기사나 백마 탄 왕자에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구한다사랑을 위해 자유와 독립을 제한하는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에 반드시란 없다죽음 말고는.

 

동화든 신화든 현실이든 삶이란 본질적으로 죽음과 연결된 길이고최종적인 죽음이 아니더라도 종종 매우 비극적인 단계에 이를 수 있다바라고 꿈꾸는 것과 다르게 아주 씁쓸할 수도 있다그래서 어쩌면 많은 동화의 끝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그 과정을 생략하는 지도 모른다가장 확실한 운명이 죽음이라면영생을 누리는 신들에게는 삶 또한 죽음의 부재처럼 가치가 부재한 시간일 뿐일지도 모른다그래서 나는 시간의 두 축 사이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가장 궁금하다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분명 성장의 신호이다.

 

파르마콘자기보다 뛰어난 능력을 두려워하는 신들대단한 위계적 사회이다능력이 없거나 적은 존재라면 신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불멸의 삶이 얼마나 무력한 형벌일까 상상해본다.

 

키르케의 손을 거쳐 스킬라와 글라우코스가 변신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운명의 여신의 소행이지키르케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아버지가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중략.

그런 술수를 파르마케이아라고 부릅니다세상에 변화를 유발하는 능력이 있는 약초 파르마콘을 쓰기 때문인데신들이 피를 흘린 곳에서 피어나기도 하고 지상에서 지천으로 자라기도 하죠그 약초의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재능이고 저 혼자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크레테에서는 파시파에가 독약으로 왕국을 다스리고 바빌론에서는 페르세스가 육신에 영혼을 다시 불어넣습니다키르케가 마지막으로 능력을 입증한 셈이죠.”

 

어쩌면 누나는 파르마키스가 아닌가보다는 생각이 들려던 참이었다고.”

내가 모르는 단어였다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모르던 단어였다.

파르마키스.” 내가 말했다.

마녀라는 뜻이었다.

 

그 아이는 내 명령을 거부하고 내 권위에 도전했소독약으로 동족을 변신시켰고 다른 반역 행위도 저질렀소.” 새하얗게 이글거리는 아버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 아이는 우리 이름을 더럽혔소우리가 보여준 애정에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였소그렇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제우스와 합의를 보았지키르케는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는 무인도로 추방될 거요바로 내일.”

 

그리웠던 남동생아이에테스를 통해 아버지 앞에서 키르케와 형제 자매들의 능력을 발설되고 확인된다그리고 바로 그 일이 키르케를 각성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이제 키르케는 더 이상 아버지의 딸님프가 아니였고그제야 본격적인 자신을 찾아 본격적인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펼치기 된다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마녀 이야기.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야키르케나는 아버지에게 마법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얘기하고아버지는 내 말을 믿는 척하고제우스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 척하고그렇게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지실토한 누나가 잘못했어왜 그랬는지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렇다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프로메테우스가 채찍질을 당했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마치 피오나 공주처럼또한 그 자신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마녀 키르케는 유배지 섬을 감옥이 아닌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바꾼다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원망도 회복도 귀향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마법 능력을 연마한다헤르메스다이달로스오디세우스 등 쟁쟁한 인물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그들은 키르케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들이다키르케는 아무도 붙잡거나 매달리지 않는다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지키려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온갖 주술로 보호하며 양육하지만아들이 떠나려하자 순순히 보내 준다운명에 휘둘리는 것도 순종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원하는 것을 알고 얻고 지키고 또 다른 흐름에 따른다그 과정이 모두 주어진 능력이나 행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발휘해서 도전하는 모든 과정이다신으로 태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간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하는 결심을 하는 주인공반전에 놀라는 한편 그 결심이 가장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그래도 그의 끝이 어떻게 될까 한참을 생각 속에 머물렀다.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저는 당신에게 맡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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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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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설!’ 평론가가 이토록 극찬한 소설이라니 의심(?)스럽다취향에 절대적으로 휘둘리는 것이 문학작품이고더구나 감상 능력은 다 제각각일 텐데……물론이런 딴지는 최고의 소설을 알아보지 못할 지도 모르는 독자로서의 나를 위해 미리 쳐두는 방어막 같은 비겁함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닉 혼비*유학 시절 한심한(?!) 인간들을 같이 마구 헐뜯는 듯 뒤틀리고 꼬인 병리학적 공감을 느끼며 가장 크게 웃게 해준 작가라 무조건적인 애정이 있다나만 나이 든 건 아닐 텐데…… 닉 혼비도 나이 따라 고상하고 말랑하고 시시해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경애하는 작가가 <스토너>를 애정하고 극찬하니 제 맘에 드는 사람들 의견에는 귀가 얇다 못해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는 나로서는 저항감이 스르르 내려간다.


찬란하고가차 없이 슬프며 또 아름답다현명하고 우아한 소설닉 혼비

 

묵묵히 자신을 길을 걷고자 했던 인물에 대한 이야기출세에 뜻도 없었고조용하고 소박하게그러나 쉼 없이 열정을 좇아가는 인물, 존경해야할 인물 유형이지만 궁금하지도 않은 유형이라 다시 망설이게 된다그래도 이 책을 추천한 분들의 면면이 워낙 설득력이 있어 책 정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읽어보았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위와 같이 살았는데도 굳이 말하자면 실패에 가까운 삶이라……삶에 주어진 1인분의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태도의 캐릭터주류에 속하는 인생이거나 꽤나 많은 남성들에겐 낭만적일 이런 태도를 나는 주변의 무수한 여성들의 불행한 삶에서 숨 쉬기가 갑갑할 만큼 빈번하게 목격했다비겁한 변명이지만 꼭 알아야할 의무감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자세히 알아보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먼저 드는 내용이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주인공의 마지막을 첫 페이지에 밝히다니안 그래도 망설이는 마음에 온갖 거부할 이유들이 들끓는다……그래, 50년 만에 극적 부활한 드라마에는 분명한 이유가설득력이 있을 것이다에세이도 아닌 소설이과장도 없이 실제 삶과 가장 유사한 질감을 재현한다는 정말로 그렇다면 이 작품은 비소설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매력 파괴의 평범함이 어째서 감동을 주고왜 많은 독자들이 인생 소설이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솔직히 궁금하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읽지 않고 쌓아 둔 책 타워에서 이 책의 아름다운 표지가 빛나고 있다.

 

(원하는줄거리가 없다. (마땅히기대하는 내용이 없다주인공은 세월이 흘러도 배경이 바뀌어도 관계가 변해도 편안해지지도 행복해지지도 않는다한결같이 어렵고 지난한 삶이 계속계속 흘러간다답답하고 갑갑하다분통이 터질 듯하다묵언 수행의 의무가 있는 양 입을 앙다물지 않으면 후회할 말이 터져 나올 것 같다제발 이 주인공의 삶에서 꼴 보기 싫은쓸데없이 불행만 끼얹는 한 명이라도 치워 달라고 작가에게 연락이라도 해야 견딜 듯하다그러다 호흡 사이에 잠시 정신이 들면(?) 이 정신 나간 작가는 왜 소설에서 주인공을 이토록 학대하는 거냐며 작가에 대한 원망으로 감정의 물꼬가 방향을 틀기도 한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나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맙소사…… 이미오랫동안아무도믿지 않아도우리는 이전보다 뭐라도 나아질 거라고최선을 다해있는 힘껏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견디며 사는데이 작가가 끝끝내 아무 희망의 실마리도 위안이 되는 환상도 배치하지 않는다변함없이 힘겨운 하루하루거기에 대중소의 고난과 시련들이 다채롭고 지속적으로 번갈아 들이친다그러다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인물로 스토너의 삶이 마감되었다라고 쓰여 있다체온보다 높은 온도로 울화가 치밀고 이 소설은 금서가 되어야 천만번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지경이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해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나자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스토너는 견디기 힘든 맹렬한 폭풍 속을 지나갈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옷깃을 단단히 여미고생각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데에만 고정시킨 채 그 시절을 겪어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 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순전히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그가 알고 있던 것들이 때로 머리에서 싹 비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이미 날마다 부족한 체력을 마지막 장과 더불어 말끔히 소진시키고심장이 부풀어 올라 목에 걸린 듯해서 애써 삼키는 서글픔을 기어코 빼내려는 불온한 소설이다이런 결말이 내 현실이 될까 눈을 감고 견디는데딱 그런 결말을 말끔하게 보여주는 인물에 정신적 빙의가 되어 체험하는 잔인한 시간을가장 효과적이고 거의 유일한 피난처인 독서로 경험하다니.

 

마지막 종지부는 옮긴이의 말이다.

 

잘 생각해 봐라스토너의 삶이 실패한 슬픈 이야기인가우리 대부분은 이보다 못한 삶을 산다스토너처럼 하고 싶은 일도 자각하지 못하고그 길을 스스로 선택하지도 못하고평생 그 일에 머물지도 못하고애정과 보람은 부재하고의미도 못 찾고매일을 충실하게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주제에그런 주제에 누구를 동정하는 건지!*”

 

옮긴이가 직접 표현한 내용 그대로가 아니라

분노에 엉클어진 제가 해석한 과장된 어투의 표현입니다

내용상 일치하거나 합의에 이를 내용은 그대로입니다(라고 믿습니다).

 

6시간 30분을 꼼짝 않고 읽은 분의 간결한 서평을 읽고 추천을 받아 읽었다요란하게 망가진 심정으로 안절부절못하다혹시하며 먼저 읽었을 법한 이가 있어 연락을 했더니 7시간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움쩍거리지도 못하고 읽고아무도 없기에 꽤나 속 시원히 울었다고 한다.

 

그런가…… 원체 아는 바가 없기도 하지만<스토너>라는 이 작품은 내가 특히 모르는 인문학’ 작품일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특정 시공간에서 살아간 지극히 평범한 인물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가가 단조롭게만 그려냈지만독자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사유를 하고 고민을 하고 공감을 하는그런 기능을 하는 매개체로서의 문학독자가 어떤 판단을 하건 강요도 비난도 하지 않는 작품메시지와 이슈와 장르의 형식성에서 가장 멀리 있는 작품……배경이 되고 토대가 될 지식이 너무 없어서 생각이 더 나아가거나 정리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걸세.” 스토너가 말했다.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스스로 대단한 기대를 한 적은 없으나 낯 뜨거워질 일은 없을수록 좋겠다싶은데그럼에도 두서없이 내뱉는 말과 별 다를 바 없는 글을 마구 끼적였다(추천해 주신 이웃분께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그런데…… 내면의 폭우가 그치자 수치심도 따라 흘러간 듯 멀쩡한 기분이 돌아와 한편 당혹스럽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일상에서 아주가끔자그마하고 우호적인 웜홀을 통과한 것처럼 공간이 겹치고 연결되어서아주 멀리 떨어져 무관하게 존재하던 서로 다른 세계들이 우연처럼 차례로 등장하는 신비 체험을 할 때가 있다같은 날 경애하는 한 이웃의 <마담 보바리> 서평 글을 읽고 책을 뒤적였고늘 부러운 다른 분의 서평을 읽고 <스토너>를 펼쳤다따로 실재하던 두 작품을 내가 같은 날 추천받아 읽었다는 행위만으로 <마담 보바리>에서 발견한 말들이 <스토너>를 읽은 감상인 양자리를 옮겨 달라붙는다양자역학이 아름답게 작동하는 미시 세계를 천만 배쯤 확대한 VR을 체험하는 기분이다.



등장인물과 한 몸이 되어서 그들의 의상 속에서 자신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만 같아지는

 

당신은 때때로 그런 일이 없어요옛날에 가졌던 막연한 생각이라든가 아주 먼 곳에서 되살아오는 것 같은 어떤 알 수 없는 이미지또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내놓은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하는 일 말예요.’

 

불안이 바닥이 아니라 천장을 계속 치는 날들이 이어지자인내심은 마땅히 차있어야 할 모든 저장 용기가 비어가는 것처럼 가난해진다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지도 못하고 알아 낼 수도 없는 막막한 시간어쨌든 덕분에 읽는 동안에는 기운 팔팔한 생명체처럼 들끓고 뒤척이는 감정을 맛보았다울지는 못했지만 심정적으로 다 빠져 나오기 전 식료품 쇼핑을 다녀왔더니 정말 낯선생전 처음 보는 물품이 담겨 있는 뜻밖의 망각 체험도 하였다귀리우유………….

 

행복불행 포함 모든 감정과 판단이 모두 개별적 사건들이고 체험이라 종종 아무 것도 권하지 못하지만최고로 단조롭고 담담한 소설을 읽으면서 폭풍 같은 감정의 요동을 느끼고 싶다면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반응 결과는 독자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으니 아무런 보장은 못 드립니다만). 그리고 혹시나 무엇을 기대했는지’ ‘한 줄 평감상평서평낙서욕설(?)’ 무엇이든 쓰게 되시거든 제게도 부디 소식 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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