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리학으로 알아보는 연애사용설명서
염채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9월
평점 :
아무도 쉬운 일이라고 얘기하지 않은 인간관계, 온갖 극적이고 강렬한 인간사의 이유와 배후가 되는 비중 높은 사건이 연애이다. 연애결혼이라는 것이 비교적 근대, 서양의 문화 양식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류와 연애에 대한 규범과 평가와 기타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전승, 재생산된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공공연히 드러내거나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My one and only, 운명의 상대를 찾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연애를 할 거라는 상상과 희망을 꾸준히 내재한 채 살아왔다. 단지 연애보다 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던 탓에, 타인과 지나치게 친밀하게 되는 관계가 편하지도 않고, 노력에 비해 그다지 즐겁거나 행복해지기 어려운 낭비가 심한 일이라 생각되어 점차 관심이 멀어져 갔다.
첫눈에 반하거나 운명을 느끼거나 하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지만 크게 실망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저 때론 궁금했다. 해가 갈수록 사적인 공간을 누구와 나눠 사는 일이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하게 느껴져서인지 연애하지 않은 상태가 외롭지도 않았다. 늘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었고, 말끔하게 분류되고 숨 쉬기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는 그런 관계들이 딱! 좋았다.
더구나 자본산업사회의 상품으로 가장 잘 팔리는 게 연애이고 사랑이라, 미디어 가득 연애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오는지라 연애, 가 연관된 모든 것들이 자주 지긋지긋했다. 긴 인생에서 훨씬 더 중요한 관계,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가 우정이라고 생각했고 - 지금도 그렇다 - 독점, 배타적 소유, 집중과 집착을 기본으로 하는 연애를 삶의 중심으로 놓는 문화가 관계도 당사자의 존재도 점차 작아지게 할 것 같아 뜻 없이 불안하고 안타까웠다.
잠시 아름다운 포장을 걷고 보면, 1차적 인간관계인 가족 역시 기본적인 구성이 위계적이고 애증과 부채감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당연히 수평적 대화도 관계도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그에 반해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를 만나 친구가 되면 정말이지 무척 반갑고 행복하다. 필요한 공감과 위로, 와!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연애사용설명서를 읽고 연애 하지마라, 연애 안하면 어떠냐, 이런 글을 쓰는 듯해 길을 잘못 들어 어정쩡해진 느낌이다. 어쨌든, 또 하나 연애가 무시무시한 점은 - 아마도 연애뿐만이 아니라 타인과 어떤 방식의 관계를 맺는 행위 자체가 그럴진대 - 타인을 알아가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무시무시한 경험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며 살았다. 타인이 굳이 알려주려 하지 않아도 투영되는 내 전면이 거울에 반사! 되는 것을 눈도 못 돌리고 고스란히 봐야하는 당혹감이라니. 그래도 그런 경험을 통해 완벽하게 도망갈 수 없다면 점차 자신을 객관화하게 되고, 찬찬히 살펴보게 되고,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뿐 아니라 가치판단도 다듬고 고치게 된다. 단지 그 과정은 정말 여러모로 힘겹다.
이제는 실패한 연애들에 대한 회환도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도 흐릿해질 정도로 체력과 호르몬이 부족해서 예전 같은 동력으로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연애, 결혼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얻거나 팁을 배운다거나 하는 기대보다는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 일의 엄중함’에 대해 그리고 그 막막한 어려움에 대해 절실하게 배우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고 졸업도 시켜주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여 미래로 이어지는 딜레마들을 분석하고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책이라 기대도 높았고 그런 내용을 들려준다는 점이 마냥 고마웠다. 정말 지겹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릴 적 해소되지 않고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미해결 과제, 이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거듭 고찰한다. 그렇다고 매번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모든 길잡이는 제 역할을 하는 법이다.
사람들에게 솔직하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옳다고 자주 착각을 합니다.
나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생각했던 나’의 반응과 나의 진짜 모습은 다르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언제부터 나는 진실된 사람이고, 타인의 진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요.
주류심리학적인 방법들도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고 그 외에도 활용 가능한 툴, 수단들이 독자의 선택지를 넓게 잡아 제공되고 있다 - 양가감정ambivalence, 고슴도치딜레마, 신경호르몬의 작용, 낭만적 신념romantic beliefs, 후광효과halo effect 등. 각자가 실험해보고 싶은 것,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더 찬찬히 읽으면 좋을 것이다. 누군가의 연애에 잘 사용되는 설명서로 명성을 얻으면 좋겠다고 응원한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란 말인가?"
랍비 힐렐,『선조들의 어록』 1장 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