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밀크
데버라 리비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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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분에서 읽은 문장들도 출간본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사뭇 다르다. 텍스트 정보가 기시감이 충분하고 생생한 대화로 바뀌는 느낌이다. 작품 분위기를 대충 알 것 같다고 느꼈는데, 관계의 밀도도 더 지독하고 분리가 어렵게 보였다.

 

모녀 서사라는 건 왜 이런 방식이 많은지. 세부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예외 없이 모두 아프다. 분리와 거리감이 어려운 소재라서 나는 살아오면서 배운 갖가지 진정법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가족 모임이 있었던 터라 더 그렇다.

 

내가 살아온 스물다섯 해 중 스무 해는 어머니를 조사하고 관찰하는 나만의 연구 기간이었다. 아니, 아마 더 길 것이다. 네 살 때 어머니에게 두통이 뭐냐고 물었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문이 쾅 닫히는 것 같은 거라고 말했다. 타인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으로 자란 나에게 그녀의 머리는 곧 내 머리였다. 언제나 아주 많은 문들이 쾅쾅 닫혔고, 나는 그 광경의 주요 목격자였다.”

 

딸이 스물다섯이라 몇 번인가 큰 숨을 몰아 내쉬었다. 바라던 친밀함도 우정도 애정도 형성이 어려웠지만, 스물다섯의 나는 내 어머니의 보호자가 아니었고, 나만 생각하고 살아도 되었고, 내 직업란에 적을 직업을 찾아도 되었으니까,

 

스물다섯 살인 내가 어머니와 걸음을 맞추려 같이 절룩거리고 있다. 내 다리는 그녀의 다리다. 이게 우리가 찾아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명랑한 걸음이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걷는 방법이고, 어른이 된 자식이 한쪽 팔을 부축 받아야 하는 늙은 부모와 함께 걷는 방법이다.”



 

최우등 졸업, 장학금, 석사과정은 무용해졌고, 어머니의 발병 이후 진학도 직장도 옵션이 아니었다. 전 재산을 털어 어머니 클리닉 치료를 받으러 온 상황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직업칸을 채워 넣어야 한다.

 

기존에 엄마가 진 빚과 앞으로의 치료비도 모두 자신의 부담이다. 치료가 끝나면 돌아갈 집도 없다. 아버지는 14살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그는 현재를, 하루를 버티는 방법으로 자신이 배운 인류학적 지식으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혼란은 열기처럼 소피아를 뒤흔들고, 찾아간 아버지는 아내와 아기와 함께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족이란, 사랑이란,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환각이고 무엇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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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릴 수 없는 미래 - 사라진 북극, 기상전문기자의 지구 최북단 취재기
신방실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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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부제가 두려워서 며칠 만에 펼쳐 보았다. 30년 전에는 많은 이들이 환경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과 예측에 대한 고민은 나눠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이제 온난화, 가열화, 끓는 지구란 표현이 공식 등장하고 위기가 상식이 되는 시절이 되자 비로소란 기쁨보다 늦었다란 절망감이 더 크다.

 

2023년이 마지막 변곡점이라고 하는데 그냥 살던 대로 살았다. 이번 주말 가족 모임 도중에 기후환경 관련 얘기가 나왔는데, 십 대 아이들이 진지하게 어른들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미안하고 아파서였는지 먹은 음식에 체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언제까지 이런 질문만 거듭하며 사는 걸까.

 

이 책은 지금 북극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서늘하고 뜨겁게 기록한 자료다. 저자는 기상전문기자이고, 기후 변화의 시작점이 북극을 2주간 취재했다.* 오래 전 빙하를 보러 갔던 북위 78도 노르웨이도 기온이 오르고 해빙이 녹고 있다.

 

* 취재 내용은 KBS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 ‘고장난 심장, 북극의 경고편으로 방송되었다.



 

북극에 갇혀있던 제트 기류는 냉기를 품고 내려와 한파를 만들고, 대기 정체로 폭염과 집중 호우가 일상이 될 것이다. 규모는 전 세계이다.** 서식지의 급변은 생태계의 급변으로 이어져서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갈 것이고, 인간의 주거지도 위협받을 것이다. 영구동토층에 갇힌 이산화탄소는 대기 방출될 것이고, 미접촉 바이러스와 미생물은 깨어날 것이다.

 

** 원격 상관 teleconnection: 우리의 삶은 북극과 연결돼 있다. 지구는 대기권과 수권, 지권, 빙권, 생물권으로 연결돼 있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마주치게 된다.

 

사시사철 얼어있는 곳이 북극인데 문제는 반응 이 비가역적이라는 거거든요. 한 번 녹으면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이제 우리 시대 는 끝인 거고 다음 빙하기를 기다려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일단 시작되었다면 인간이 되돌릴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일들이다. 갯벌인지 사막인지 모를 낯선 곳이 북극의 현재 모습이다. 흰 눈과 얼음의 북극은 더 이상 없다. ‘불편한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기 거부한 결과다.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지구를 구할 필요는 없다. 사라지는 것은 인간이다.

 

인류가 공동의 지혜를 모아 탄소 농도를 예전만큼 줄인다고 해도 원래 기후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후의 히스테리시스*, 즉 비가역성 때문이다. 한 번 고삐가 풀린 기후 시스템은 대기가 정상 상태를 되찾아도 한동안 비정상적인 흐름을 보이게 된다. 예측 불가능한 폭풍우 속에 우리의 미래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번 녹아버린 북극의 빙하와 영구동토층*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럼에도 변화를 바란다면, 늦추려면,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지금 즉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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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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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돌아볼 여력이 없어서 저항도 연대도 쉽지 않고, 변화의 동력은 사라졌나 두렵고 때론 모멸감이 든다. 고통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감싸 안은 작품이 둔중한 통증 같기도 희망 같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품이 넓고 시선이 올곧은 정보라 작가의 작품은 무형이지만 확실한 위안과 의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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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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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으로 태어나 온갖 병치레를 하고 자랐다. 매일 20시간씩 울었다고 하시니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믿을 수밖에. 초등학생 때 소원은 개근상을 한번이라도 타는 것이었다. 어릴 적엔 아프다는 표현밖에 몰랐는데, 통증과 고통과 괴로움 등이 있고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세월을 통해 배웠다.

 

몸에 생기는 질환보다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 상황, 물리적 접촉이 없이도 지독한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뇌가 인지한 내용이 심장을 조이거나 명치에 둔중한 통증을 느끼게 했다. 분리되었던 여러 유형의 아픔은 원인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고통으로 경험되기도 했다.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들 - 타자들 - 이 생기면서, 타인의 고통이 나의 통증처럼 감각되기도 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생각은 거짓이 아니었고, 그들의 슬픔과 고통은 나의 통증과 아픔 같았다. 내가 공감하고 애도하는 인간임에 안도했다. 비록 그 동력이 유전자의 목적에 합치한다하더라도.

 

무통의 세계를 열었다는 의료과학기술의 선언과 이에 반대하는 종교단체라는 설정은, 같은 목적에 오래 복무한다고 느껴온 현실과의 아이러니라서 좋았다. 자극적이지만 과장은 아닌 갈등구조가 작품에 대한 호감을 끌어올렸다. 고통과 구원에 대한 모든 서사가 오래된 미래의 철학 논쟁처럼 흥미로웠다.

 

토론을 통한 갈등 조율이라는 문명적 풍경을 보여주던 작품 속 인물들은, 포장이 풀리자, 지겹도록 반복된 폭력의 방식 - 테러, 살해, 보복 등 - 이 야기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고통이 필요하다는 신념 이면의 서사를 계속 상상하며, 작가의 가이드로 그들이 경험한 고통의 순간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애하는 작가의 작품을 무례하게 문해하는 건가 두렵지만, , , , , , 현 등은, 다른 인물처럼 보이나 발화 주제만 다른 보편적인 인간 존재 같았다. 그들의 대화는 인간 보편이 느끼는 고통이라는 경험, 삶의 일부로서의 의미, 고통을 견디는 존재 방식과 그 이유, 죽음과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누구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누구나 같은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공감하지 못한다. 사유할 수 있을 뿐이다. 인상적인 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날카롭게 고통의 경험과 외로움을 묘사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욱에게 가장 친밀하고 잘 알고 자신의 것이라고 여긴 것은 고통자체였을 것이다. 경험을 통한 의미도 극복의 가치도 없이, 그저 지쳐가는 자신을 무력하게 견뎌야했을 세월 동안 욱은 외롭게 절망했고, 생존하기 위해, ‘의 말을 믿고, 의미를 찾고, 목적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 입장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과학의 발달도 지식의 진보도 제아무리 충실한 의료 지원체계도 인간이란, 생물이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 인간은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채로, 죽음을 언제나 똑바로 바라보는 채로 하루하루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 선택을 통해 고통의 터널 끝을 본 것 같았다. 운이 좋았던 편이지만, 나름 버티고 견디며 반백년쯤 살았다. 나의 상처도 타인들의 상처도 무통의 흉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세월이 서늘했다. 수많은 타자들의 슬픔을 정확히 이해하고 작품을 통해 발화하려 애쓴 작가가 겪은 세월도 감히 상상해보았다.

 

어느 날부터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가 지금을 견디는 건 언젠가의 달달한 희망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살아있는 한 다시 마주할 다음 고통을 견디고 버틸 조금만 더 증량된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깊은 상처도 반드시 고통 없는 흉터로 바꾸어내며 계속 살기 위해서라고.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상처 입은 흉터투성이 존재를 떠안고 죽는 순간까지 망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승인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이었다.”

 

팬데믹 동안 가정과 가족이 안전하지 않은 이들은 어디로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나, 문득 소스라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구원처럼 기다리던 이후의 세상에서,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 내 외의 폭력과 비극이 줄지 않는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해도 상황은 날로 힘겨워진다. 자주 고통스럽다.

 

던져야 할 질문들을 모두 던지고 나면 같은 질문에 더 이상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곁을 돌아볼 여력이 없어서 저항도 연대도 쉽지 않고, 변화의 동력은 사라졌나 두렵고 때론 모멸감이 든다. 고통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감싸 안은 작품이 둔중한 통증 같기도 희망 같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품이 넓고 시선이 올곧은 정보라 작가의 작품은 무형이지만 확실한 위안과 의지가 된다.



 

내 깜냥으로 이해한 만큼이라도, 작가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기억하며, 뭐라도 하는 삶의 순간들을 늘려가야겠다. 사는 동안은 희망, 사는 동안은 변화, 사는 동안은 성장이 가능하다고, 현재의 모든 선택이 바라던 미래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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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냠냠냠 3 - 서울·인천·경기의 정겨운 맛집들
조경규 지음, 방현선 사진 / 송송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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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찢으면 음식 향이 확 풍길 것 같은 표지다. 내용이 궁금해서 다급히 펼쳐본 페이지를 미처 다 읽기도 전에 꼴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만든 요리처럼 따스한 작가의 시선이 시리즈 마지막 권까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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