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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다 죽은 여자들 - 가장 조용한 참사, 교제폭력을 말하다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평점 :
“그놈이 나올 때까지 어떻게든 내가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 대한민국에서 믿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책 제목만 봐도 해당 범죄 사건들이 떠오르는 현실이 끔찍하다. 불완전한 통계로도 헤어지다 죽은 여자들의 수는 대량 살상 재해 수준이다. 관련 주제의 글을 읽을 때면 속보(빠른 걸음) 수준으로 심장이 뛴다. 극우 폭력 남성성이 정치권력도 되는 한국 사회, 더 미룰 여지없이 제대로 알고 알리고 바꿔야한다.

“교제폭력은 단순한 폭행이 아니에요. 연인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악용해 상대방을 착취한 겁니다.”
모르지는 않다고 생각한 주제임에도, 모르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책의 형태가 된 기록은 이렇게 중요하다. 끔찍한 범죄에 감정이 요동치는 상태로 만나게 되는 기사보다 좀 더 차분하게 읽고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돕는다.
“스토킹 범죄에서는 ‘지속성, 반복성’이 중요한데, 한번 연락을 받게 되면 이전에 있었던 행위는 모두 ‘리셋’되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더구나 이 힘든 문제를 연구하고 기록하고 이슈를 제기하고 지적하고 분석하고 법과 제도의 개선, 사회인식의 변화와 피해자 연대까지 함께 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 큰 힘과 용기를 준다. 두려움이 가라앉는다. 퇴직 이후로 미뤄둔 일들이 너무 많지만,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과정’도 목록에 적어 둔다.
“다수의 살인 사건 피해자는 남성인데, 살인 사건 가해자의 범위를 친밀한 파트너로 좁히면 80% 이상의 피해자가 여성이기에 이를 ‘젠더화된 범죄’라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귀중한 기록이고 분석인데, 다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깝다. 부디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주시기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련 이슈를 제기하고 서명해 주시기를. 변화가 있을 때까지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정폭력이든 교제폭력이든 남성 파트너가 여성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폭행하다가 사망에 이른 경우 대부분 형법상 폭행치사, 상해치사가 적용된다. 계속 맞던 여성이 남성 파트너를 살해한 경우엔 ‘계획 살인’으로 중형이 선고되는 것과 대조된다.”
한국의 사법체계가 왜 “피고인을 처벌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피해자의 억울함과 유족의 아픔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지, 다른 폭력과 다른 “교제폭력의 특성”이 무엇인지, “현재 국내에는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따로 처벌할 법적 근거도, 양형 기준도 없“는지,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 매뉴얼”은 어떤 전면적 개선이 필요한지, 왜 “국회 청원 이후 2025년 7월 현재까지 여전히 관련 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폭행 이후에도 이리저리 얻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치욕스럽다고 느꼈고, 차라리 신고를 안 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피해자와 가족들과 조력자의 이름은 모두 실명이고 가해자는 모두 익명인 이유를 곱씹으며, 개인의 일탈이 아닌 젠더 위계에 따른 범죄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알려야 한다. “법안 개정이냐, 신설이냐 하는 방법론적 논의 외에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괄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국에서 데이트폭력, 교제폭력으로 죽은 사람들 가족 한번 모아보세요. 이게 다른 사회적 참사들하고 무슨 차이가 있어요? 똑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