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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나는 인간의 뇌가 욕망만 충분하다면 거의 무엇이든 눈에 보이도록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천체물리학자의 과학소설, 혼자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작가가 어떻게 공간을 eversion(전환)할 것인지 기대가 컸다. 무대 배경 스크립트처럼 묘사가 촘촘한 첫 장을 읽으며, 50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보면 좋겠단 생각부터 들었다. 공간에 관한 내 상상력의 한계가 아쉬웠다.
얇지 않지만 가벼운 책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껴 읽고 싶었다. 바람과 다르게 장면은 휙휙 흘러갔다.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구,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 가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지구 중심부... 마침내 하강(?) 비행하기 시작했을 때는 두근두근했다.
인간이 완전히 낯선 무언가를 목격하면 어떤 인지가 가능할까. 수학자 뒤팽의 반응은 수학적일까. 주인공의 이름은 왜 코드code일까. 전환eversion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의 메시지는?
“항상 번개가 친다.”
물론 이런 형태의 집중은 인지에 톡톡 충격을 주듯 배치된 힌트(?)들로 인해서, 꿈에서 깨어나 또 다른 꿈을 꾸듯, 혹은 깨었다고 믿었지만 아직 꿈을 꾸는 중인 듯, 모호하게 알 듯한 경험으로 새곤 했다. 읽는 것만으로 내 의식에 “인셉션” 기술*이 심어지는 듯했다. * 영화 <인셉션> 생각을 심는 기술.
간절한 바람은 결함일까.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속이는 일, 거짓말의 진화적 효용은 무엇일까.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SF 소설을 읽고 통곡도 하는 팬이지만, 어두운 우주의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 질문들을 만날 때면, 끝없이 서글퍼지고 만다. 존재한다는 것은 반짝이는 고역이다. 해체와 소멸을 향해가는 모든 시간을 삶이라고 부르는 순간들이 서럽다. 진실과 아름다움의 향하는 방향이 늘 같지 않아서 서늘하다.
“딱 하나 당신만큼은 진짜이기를 바랐는데.”
끝없이 읽고 싶은 작품이라 오래 품었다. 스포일링이 없이 쓰느라 정보도 뜬금도 없는 글이 된 것 같다. 여름의 혼곤한 잠 속에서, 이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는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50부작 드라마로 좀 만들어 줬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