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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술이 그나마 나를 생활인으로 만든다는 것, 내 친구들은 그 사실을 알까?”
이럴 줄 알았다! 이기호 작가의 작품은 고유한 마력을 뿜는다. 매번 이런 식이다. 도리 없이 작품에 홀리게 하고, 실컷 웃기고 울리고, 온통 헷갈리게 한 뒤에, 뒤늦게 머리를 탁! 치게 된다. 농락의 달인이랄까.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하는 ‘읽는 재미’가 최고다. 아, 물론 이 모든 건 내 오독일 수 있다.
어쨌든, 작품들을 만났던 지난 경험을 잊고 반려견 이야기일 거라고 순진하게 리셋된 마음으로 만난 작품은, 이기호 작가만의 세계관과 캐릭터들로 익숙하고도 감탄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여러 물줄기를 푹푹 만들며 흐르는 문장들을 폭식하듯 빠르게 삼키게 된다.
“인간의 희망은 대부분 상대와 관계없이, 상대를 신경쓰지 않은 채, 자기 내부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모든 짐작과 기대가 다 틀렸다는 걸 번뜩 깨달을 즈음에 이야기가 끝난다. 잠시 멍해 있다가 곰곰 생각할수록 낯이 뜨거워지고 헛웃음이 픽픽 새어 나온다. 아... 진짜...!
그러니까 이시봉은 속임수다, 함정이다. 관련 역사 에피소드도 심지어 주인공의 애정도 다 속임수고 함정이며, 힌트이자 핵심이다. 그러니까 이건 ‘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야기다. 유구하고 방대하게 오해하고 오독하고 기만하고 조작하고 어리석도록 자기중심적인, 그리하여 저지르는 모든 인간적 약점과 허약성과 지독함과 결정적 결함에 관한 이야기다.
“고도이는 무고한 사람의 꺼져가는 목숨을 지켜보면서도, 그러면서도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못한, 개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려동물이 있건 없던 독자로서 이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다. 읽는 인간만 필요하다. 메타인지 혹은 반성능력이 있으며 질리도록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치도록 목격하면서, 그 틀 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투영하면서. 허술하고 허접한 인간의 세계 해석에 자괴감을 느끼면서.
아... 정말 많이 웃었는데, 씁쓸하다 못해 속이 쓰리기도 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으로 사는 풍경들 어쩔... 웃프다는 표현은 너무 발랄해서, 작가가 들춰낸 인간이 만든 위대한 어리석음을 웃퍼 넘길 수조차 없다. 그러니까 거듭 밝히지만 이건 다 내 오독일 수 있다. 아무튼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다. #역시최고
“이시봉이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이시봉을 내가 더 사랑해서, 그래서 나는 무서웠다.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