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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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도발적인 소재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자식들이 한번쯤 눈물 지으며, 혹은 상한 속을 감추며 상상해본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페인트]: 페어런트 인터뷰: 부모 상담, 즉 부모 될 이들을 자식 될 이들이 상담을 통해 정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춘 태도로 NC 센터를 찾아온 이 예비 부모(pre foster)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11

 

아이들을 통솔하고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가디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줄여서 가디라고 불렀다. 11-12

 

이곳의 다른 가디들 또한 모두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다.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 주려고 노력했고, NC의 꼬리표를 지워주려고 노력했다.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기를, 편견에 찬 시선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16

 

그러나 그런 도발적 통쾌함만이 오래가는 소설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마음이 먹먹하고 눈이 뜨거워졌으며, 더 자주 부끄러웠다. 소위 기성세대가 되고 나니, 상상한 것 이상의 죄책감과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가끔은 너무 자주 찾아온다. 절반은 내 자신의 과오로, 절반은 다른 동시대의 기성세대들의 작태로 인해.

 

성인이 된 후 이곳을 벗어난 사람들이 어떤 차별 속에 사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NC의 아이들은 부모 면접을 통해 서둘러 센터를 떠나려고 한다. 물론 마음씨 좋은 새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애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취하며 가족이라는 그럴싸한 가면은 뒤집어 쓴 채 살아간다. 12-13

 

“NC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게 더 어렵죠.” 13

 

태어날 때 만나야만 부모니? NC의 아이들은 모두 열세 살부터 부모를 가질 수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우린 버려졌다는 뜻이죠.”(......)

너희는 바깥세상 아이들과 달리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이야.” 22

 

사생활이라는 이름 하에 감춰지고 처벌받지 않고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수많은 폭력들에 오랜 세월 분노하고 가능한 작은 변화를 위한 후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래세대를 구해내기에는 요원한 세월이 유구하다. 그런 현실이 매일 반복되고 혹은 더 가혹해지고, 매년 몇 명의 아이들이 결국은 죽음에 이르렀는지 통계가 나오고, 그런 현실을 알지만 여러 이유로 눈을 돌리고 행복을 과장하거나 가장한 채 살아가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도 서글프다. 최선을 다해 있는 힘을 다해 잘 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이들도 수없이 많을 텐데, ‘전체를 아우르는 바람직한 변화란 참으로 느릿느릿 육중하다.

 

부모가 키우기 원치 않는 아이인 경우 국가에서 운영하는 메디컬 센터에서 아이를 낳고 그와 동시에 NC 센터에 맡겼다. 그런 부모들이 늘면서 당연히 NC에도 아이들이 늘었다. 26

 

그러나 정부에서 받는 혜택만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부모 면접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방임하고 학대하는 부모가 생겼고 더 끔찍한 일도 일어났다. 보다 못한 정부는 NC 아이들의 입양 가능 연령을 상향했다. 싫은 것과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있는 열세 살 이상의 아이들만이 부모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령 제한으 높이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NC 센터에 관심을 보였다.(......) 힘들여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간이 보통보다 십 년 넘게 단축되었다는 것과, 양육 수당과 연금을 앞당겨 받을 수 있다는 혜택. 29-30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부모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면, 아니,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바깥세상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 39

 

행복에 겨운 새끼들이지. 낳아서 키워 주고 돌봐 줬는데 부모가 귀찮다? 나쁜 자식들이야, 진짜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

부모들도 저 녀석들을 귀찮아하지 않을까? 저 녀석들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내지 않았을까? 나는 절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41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고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그 상대를 그렇게 만든 진짜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지만 이 인과 관계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42

 

17세 주인공은 젊은이답게 이 작품 속에서 빠른 성장을 한다. 그의 성장에 여러 영양을 주고 받는 인물들과의 대화는 작가가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배치한 덕에, 가끔은 어린 시절의 내가 소환되기도 하고, 젊은 내가 불쑥 튀어 나오기도 하고, 그리고 기성세대인, 그러나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를 맞닥뜨리게 되기도 했다. 성찰과 반성의 이야기들인데, 문학적 얼개와 속도감과 자연스러운 전재 방식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 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닐까?(......)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특권 의식을 느낄 만큼 그리 대단한 일일까? 그렇게 소중해서 매일같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44-45

 

누군가가 나를 꿰뚫고 있다는 기분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감사한 경우도 있다. 나를 잘 알고 있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 그렇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하고 또 쉽게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상대가 전부라고 믿는 오류를 범한다. 그런 사람 중에서 진짜 상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 마음조차 모르는 인간들인데. 61

 

아이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들 같아요.”(......)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하면서 사랑을 가장한 억압과 통제 같은 거요?

저보고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냐, 묻는다면 저는 자기감정에 솔직한 부모라고 답하겠어요.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은 싫어요(......).” 76-77

 

제목과 소재가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기성세대를 대시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우리 모두 처음 살아보는 인생, 처음 맡아 보는 역할, 연습도 단 일회의 리허설도 여유가 없는 매일의 현실에서, 조금 더 살아 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아주 운이 좋은’, 그래서 모든 것이 그날따라 잘 풀려나가는 경우일 것이다. 부모가 된 이들, 그들은 그럼 어떤 존재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통찰도 신랄하고 서글프다. 그리고 결국엔 위로로 남는다.

 

부모가 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맞이할 준비란? 준비를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육아서를 전혀 읽지 않은 부모보다 한 권이라도 읽은 부모가 더 낫다는 건 사실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고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증거일 테니까. 그러나 그런 준비들이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가 아닌, 부모의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아이도 있을 테니까. 91-92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105

 

모두들 얼마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는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자신들도 뒤늦게나마 그런 부모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니 우리가 따뜻한 가족이 되어 주겠다, 선심 쓰듯이 말했다. 자신이 부모에게 상처받았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108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111-112

 

우리가 원하는 진짜 어른은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자신들이 모르는 걸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112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라고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 속 거리가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지만 대화는 할 수 없는 거리 말이다. 160-161

 

우리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은 부모가 아기를 낳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자기 아기에 대해서 엄청난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보다는 잘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환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183

 

곳곳에 굳은 결심을 하고 애를 무한정 쓴 인격체들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도 있다. 늘 부럽지만, 내 삶에 언젠가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만 남는 깨달음들. 그래도 할 수 있는 누군가들은 이런 수준에 도달해 주면 좋을 듯하다. 그런 삶을 사는 동시대인의 존재 자체가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113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건, 그게 누구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나를 이루는 요소라고 믿는 것들이 정작 외부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듯, 내가 나를 알고 친해지기까지, 그렇게 스스로를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59-160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아픈 과거를 겪었지만 끝내 스스로를 놓아 버리지 않았고, 끔찍한 기억이 스스로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185

 

하나와 해오름은 명령이 아닌 질문과 반성을 할 수 있는 부모였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일어나는 마찰로 어려움을 겪게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와 해오름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은 부모 준비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189

 

어른으로서 이런 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힘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연약한 존재들을 짓밟지. 특권 의식을 누리려는 거다.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다. 힘이 약한 사람들도 그런 특권 의식을 지니고 있어. 자신도 약하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짓밟는 거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 누구나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193

 

어른으로서의 우리는 부끄러움을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 보고, ‘미래세대는 제공된 현실적 조건들과 미숙한 어른들로 인한 어려움에지지 말고 희망을 키워 나가고, 의도적으로 남을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서로를 좀 더 자주 용서하고 좀 더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대화의 창구들이 많아지고 쉬워졌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다. 그 속에서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195

 

모른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으니까.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이 아닐까? 196

 

마지막으로, 절절한 작가의 말을 옮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남에게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스스로에게 해주는 수밖에.

 

누군가 내게 왜 청소년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를 듣고 싶다. 유년 시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고.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하면 돼. 괜찮아, 잘될 거야.(......)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 주신 당신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전한다. 당신의 가슴 속에도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에게 한번 말을 걸어 보길 바란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가끔은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 진심으로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당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니까.

 

2019년 봄 이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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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가 높은 무협 순정 작품입니다. 김혜린 작가의 박식하고 깊이 있는 사전조사와 지식도 존경스럽고, 자칫 한편으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의 균형도 절묘해서, 무협도, 시대서사도, 사랑도, 우정도, 인간애도, 도덕도, 그러면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넉넉한 시선도 직조직물처럼 잘 짜여져 있는, 불멸의 명작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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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 -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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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리즈와 다르지 않게 이번 중국편도 섭할 정도로 잘 읽힌다.


그래서 잠시 빈둥거릴 시간이 날 때마다 눈에 띄게 둔 덮은 책을 다시 여기 저기 들춰 보곤한다.


문장도 내용도 가볍지 않으면서도 읽을 때마다 이렇듯 흡인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부럽고도 대단하다.


그것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어느 편을 읽어도 대동소이하다.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다시 보면, 사진을 오래 들여다 보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읽을 때와는 다르게 아쉬운 점도 커져간다.


너무나 인상적인 막고굴 하나만 해도 몇권 분량의 내용이 나올텐데 한정된 시공간에 몇개의 석굴을 답사하고 한권에 다 담으려니 더 알고 싶은 그 지점에서 억지로 종결이 되어 버린다.


유홍준 선생님 아시는 것 다 이야기하시려면 백과사전이 백권쯤 되어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함께 답사여행에 참가할 기회를 가진 분들이 모두 입을 모아 하는 답사후기가 선생님의 입담과 즐거운 이야기에 대한 칭찬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때 나의 답사는 이보다 더 생생할까...


느리지만 시야가 조금은 더 넓게 넓게 확대되는 공간감도 기쁘다.


다음 출간되는 3권은 어떤 내용일지 매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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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노래 창비 노랫말 그림책
유희열 지음, 천유주 그림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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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5월 가정의 달, '어린이날'은 이미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었다. 그 주말 약속과 일정과 기대를 조율하느라 실은 이번 주 내내 전화도 마음도 기분도 분주했다. 그러고 나면 숨 쉴 틈 없이 '어버이날', '스승의 날', '생일' 등이 잇달아 온다. 이런 캘린더주의에 맞추는 삶이 끔찍하기 하지만, 아이들과 노인들이 있는 가정에서 섭섭한 분위기 없이 공감하고 이벤트 없는 평안한 날을 보내는 것은 신급 스킬이다.


그렇다면, 이왕 치러야 하는 것, 선물이라도 '좀 덜 쓸모없고,' '좀 덜 상업적이고,' '좀 더 마음이 담기고,' '좀 덜 시간과 비용이 아까운' 품목이 없나 하는 마음의 타협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매년' 인기는 없지만, 아름다운 책, 공감할 수 있는 공연, 관광지가 아닌 느긋한 여행 등을 제안하곤 하는데, 이번엔 9년 전 눈부신 봄,5월에 태어난 막내 꼬맹이의 지원을 기대하며 이 책을 골랐다. 막상, 이젠 시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지셔서 큰글자 책만 잠깐씩 볼 수 있는 부모님이 더 좋아하실 지도.

 

꽃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하고 따뜻한 마음도 한 가득 담겼고, [딸에게 보내는 노래]라는 노래도 있는, 이 책은 화환보다는 적어도 좋은 선물일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처음 살고 있는 그대들에게 바칩니다(유희열)

아이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초대받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천유주)

 

예전, 꽤 오랫동안,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노래가 불릴 때면, 좋아하며 박수치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매번, "뻥치시네, 꽃이 더 아름답지!"라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보석들, 세상에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 천지였다.


그런데...

꼬맹이들이 태어나고, 처음 눈을 마주치고, 그 조그맣지만 완벽한 모습을 보고, 나는 "진심으로 진심으로"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신봉자가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들이 있구나~ 개안을 한 것은 물론, 늘 부러워하였지만 불가능했던 "사랑에 빠지는 일"도 겪었다. 출근길, 횡단보도 앞, 승강기 안, 침대 속, 어디서든 꼬맹이 모습이 떠오르고, 뭐라도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심장이 터질 듯 뛰기로 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자책이 무겁게 밀려들고, 그 모습이 떠오르면 언제든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되었다그야말로, 고단함도 괴로움도 물리치는 실패 없는 막강 엔돌핀이 매일 새롭게 업데이트 되는 일상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생각하면 누군들 세상에 새로 찾아온 '이 작은 생명'에게 진심을 담아 사랑과 축복을 전해 주고 싶지 않을까. 한 장면 한 장면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그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추억이 된다.

 

천유주님은 이 책에 빛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들을 차곡차곡 그려 담아 주었다.

"엄마의 눈부신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게 했단다 너란 꿈을 피게 됐단다"

 

세상 힘든 일이 육아지만, 세상 제일인 '모든 순간들'도 그 시간에 있다고 믿는다. 울었던 기억만 말고 행복한 기억들이 더 오래 남길, 새로 태어난 생명, 나이 드신 부모님, 엄마, 아빠, 이모, 고모, 오빠, 언니, 모든 이들에게 축하와 감사와, 따뜻한 기억과, 사랑과 힘이 되는 노래로 만나게 되길 바란다서로서로 좀 더 알아주고 위로해주고 위안이 되어 주는 그런 시간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음의 장면이 생각났다.

그가 있어 '눈이 부시게' 행복한 날들이 늘어난 것은 확실하다.

감사합니다. 당신.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백상예술대상. 김혜자 

...............................................​

 

* 창비 노랫말 그림책 시리즈: 한국 대중가요를 그림책을 펴내는 시리즈. 

* [딸에게 보내는 노래](2007년 발표, 토이 6[Thank you]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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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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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비해 너무나 빨리, 기대에 비해 너무나 빨리 읽어버린 책.


여름의 무더위가 지나도록 그 상큼함이 그치지 않는 추리전집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고 아쉽다.


평온하게 이어지는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주적인 힘들이 신비롭게 균형을 맞춘 기적인지는, 그 일상이 깨어져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건은 극적인 사건일 필요도 없다. 가장 흔한 예로 가족 중 누가 아프다면 단박에 일상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


평범하길 원했지만 평범할 수 없어서 평범한 척이라고 하며 살아야했던 이들의, 누군가의, 우리고 우리의 살아가는 순간들.


레몬, 레몬, 레몬.


여름에 레몬사탕을 입에 물고 무더위 짜증을 부리는 대신 만약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면, 제대로 그 순간을 감사하며 다시 읽을 것이다.


레몬, 레몬, 레몬.


입 안이 아니라 머릿속에 레몬의 맛과 향이 퍼지는 듯하다.

가제본에 이은 단행본 뒷 부분 마지막 인용을 올린다.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식당 주방에서 일한다는 그들 남매의 엄마는 난쟁이였다. 선우를 좀 더 가혹하게 눌러놓은 것처럼 작았다. 그 엄마를 보자 이상하게도 내가 앞으로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내가 살아갈 방향도 정해졌다. 일단 엄마에게서 독립할 것이다. 엄마는 어떤 일에도 연루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다시 엄마에게 돌아갈 것이다. 145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 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 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 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선을 긋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179


죽음은 우리를 잡동사니 허섭스레기로 만들어요. 순식간에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려요. 179


그해에 일어난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언의 삶이 끝날 때까지, 어쩌면 다언의 삶이 끝난 후에도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끔찍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190


소리는 이렇게 귀로 듣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소리는 소리일 뿐이다. 194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198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일 수는 없을까. 199

내용이 결말이 레몬의 의미가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으셔야 한다.

어찌나 앙증맞고 재미난 지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무더위가 몰려 오는 여름에 [레몬] 한 권 맛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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