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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강경석 외 지음, 이기훈 기획 / 창비 / 2019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력에 기념일로 지정해 둔다거나, 10주년, 20주년... 하는 식으로 주기별 기념식을 하는 일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된 단일 사건에 대한 평가가 그 당시에도, 그 후 100년이 지날 동안에도 '제대로' 고찰, 평가되지 않은 경우라면,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고, 늦었더라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이 한 두해에 될 일이 아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뿐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종교 등등 전 방위적 연구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니, 그야말로 다음 100년이 필요한 거대 프로젝트처럼 들린다.
올 해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이 대통령직속기관 정부주도로 이루어졌고, 이전부터 각종 단체들의 학술대회와 관련 학자들의 발표가 이어져왔다. 그 모든 시간과 자료들이 모이면 윤곽이 드러날 터라 믿는 한편, 단기적이고 단일적인 기획 말고, 좀 더 진지하고 장기적인 연구 프로젝트가 절실하기도 하다.
특히나 역사적 단일 사건들의 해석이 집권세력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더 나쁘게는 노골적으로 정권이익을 위한 정치적 의도로 왜곡되기도 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가시적인 기념사업보다는 다양하고 균형 잡힌 연구와 시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촛불의 눈으로 3.1 운동을 보다]는 역사학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한 학문적 시도의 일환이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의 좌담 「3·1운동 100주년이 말하는 것들」에서는 3·1혁명론을 둘러싼 학술적 맥락과 정치적 함의 등을 두루 살피며 각 연구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치열한 토론이 펼쳐진다.
혁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에서부터 ‘미완의 혁명’ ‘현재진행 중인 혁명’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까지 폭넓은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역사를 당대의 맥락 속에서 파악할 것인가 혹은 그것의 현재적·지속적 의미를 적극 발견할 것인가’라는 역사학의 오래된 과제이자 본질적인 쟁점을 3·1혁명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바로 얼마 전 3.1.만세운동의 데자뷰와 같았던 촛불광장의 모습과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즉, 국민이 대표가 되는 주인이 되는 자각이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3.1.운동과 촛불은 역사적 맥락을 나란히 한다고 보인다.
교과서적 서술에서 3·1운동은 ‘거족적 항일투쟁’으로 평가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3·1운동을 ‘대한독립만세’, 즉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었던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은 그 결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민족운동만이 아니라 공화정을 추구한 민주주의운동이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기훈은 「3·1운동과 깃발」을 통해 만세시위 당시 민중들의 움직임에서 어떻게 공화의 정신이 싹텄는지 탐색한다. 특히 당시 시위 현장에서 사용되었던 깃발과 격문, 선언서 등의 구체적인 매체(미디어)를 통해 당대인의 의식 속에서 국가, 민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자리 잡았고 자신들의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실증적으로 살핀다.
또한 ‘만세’라는 축하의 행위가 고종의 국장 당시 수행되었다는 점을 예리하게 파고들며, 이러한 수행이 어떻게 군주정의 종식, 공화정의 탄생과 연결되는지 분석한다. 당시 깃발과 격문에서 자주 발견되는 ‘내가 대표다’라는 언술은 민중 스스로 인민주권의 원리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한국근대의 출발점으로 평가할 만하다.
또한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연관성을 파악할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운동의 현장에 다양한 주체들의 염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지향이나 욕망이 있었다는 점이다. 촛불혁명 이후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등장, 미투 운동 등이 이어진 것처럼 촛불이 지핀 변혁의 움직임은 이 사회에서 억압받아온 목소리들이 터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게다가 3.1 운동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17세 유관순 열사’를 벗어나지 못한 기억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도 무척 흥미롭고 유용하다. 만세운동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희생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후 살아남아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의 중요성도 반드시 제대로 평가되어야 하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어쩌면 살아내는 일이 죽음보다 힘겹고 지난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장영은은 「3·1운동과 감옥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에서 3·1운동에 직접 참여한 당대의 여성 지식인이 그 경험을 어떻게 자신들의 역사로 구축해나가려 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장영은은 3·1운동이 교육받은 여성이 조직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 첫 번째 경험으로 평가하며, 이들에게는 3·1운동이 독립운동의 의미를 넘어 역사의 ‘지분’을 확보하고자 했던 권리투쟁이었다고 분석한다. 특히 언론인이자 여성운동가였던 최은희의 역사서술 작업을 통해 식민지와 해방, 국민국가의 설립 등 정치적 격랑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공적 역사로 만들어가는 일련의 투쟁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이 책의 구성 중 ‘극우태극기집회’로 대표되는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답답하기만 했던 의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3·1절과 ‘태극기 집회’」에서 다양한 민중의 목소리, 억압받은 자의 목소리를 ‘헤테로토피아적 외침’으로 규정하며 3·1운동의 기억투쟁 과정에서 헤테로토피아적 외침이 억압당해온 이유를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신앙에서 탐색한 부분이다.
3·1운동의 공적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한국 개신교에서 근본주의 신앙이 압도하게 된 배경, 3·1운동의 재기억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기억투쟁에서 반공주의가 승리한 이유,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결합한 이데올로기가 한국현대사에 미친 영향력 등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국사'라는 과목에만 집중되었던 교육 방식으로 인해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이해의 폭을 제한받은 시간이 오래되었던지라, 세계사적 흐름과 세계사의 배경을 바탕으로 민족사를 연결하여 살펴보는 방식이 반가웠다.
3·1운동은 한국인에게 대단히 민족적인 사건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것은 세계사적 흐름과 조응하면서 발생한 사건이기도 했다. 1919년 2월과 5월 사이에 한국, 중국, 인도, 이집트에서 줄지어 독립운동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 방증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베르사유체제와 윌슨의 민족자결 원칙은 전 세계의 피식민국가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고, 당시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동은 동시다발적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김학재는 「3·1운동의 한 세기」에서 이를 ‘민족사와 세계사의 결정적 조우’라는 말로 표현한다. 또한 그는 3·1운동을 ‘미완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3·1운동의 과제(공화주의, 평화로운 국제질서, 균등한 사회)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3·1운동은 ‘한반도 차원의 독립국가’를 염원한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분단과 냉전체제를 해소하고 평화를 향해가는 현재의 남한과 북한에게 공통의 기억과 자원이 되어준다. 3·1운동이 세계질서의 변동을 관찰하고 기회를 포착한 능동적 대응이었듯이, 지금 3·1운동을 발판으로 삼아 남북의 시민들이 새로운 한반도 질서를 구축하는 데 이 책이 길잡이가 되리라 기대한다.
명칭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적으로 재해석되는 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견들과 의견들을 가감 없이 기록하였으므로, 이 책은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이러한 토론의 과정을 3·1운동의 현재성에 대한 열띤 논쟁의 출발점으로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