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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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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병모 작가에 대해서라면 아래 포스팅의 내용에 더할 나위 없이 동의한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261844&memberNo=35799573&vType=VERTICAL

 

영국에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이 있다면, 한국에는 단언하건대 "구병모" 작가가 계시다. [해리포터]가 아이들을 위한 성장소설만이 아닌 것처럼, 구병모 작가의 '영어덜트'소설들 역시 '성인'인 내게도 더할 나위 없는 감동과 각성을 불러 일으켜주는 작품들이다.

 

부디 성인들이 다 읽어 보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다 읽고 집 서재에 하나씩 꽂아 두면 '성장기' 가족들 중 누구라도 함께 읽을 기회도 될 것이다. 장담하건대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단언컨대 끝을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 지라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다작 작가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면 한국에는 역시 "구병모" 작가가 계시다. "또 하가시노 게이고 신작이라고?!"라고 느낄 만큼 신작 출간 소식이 자주 들리지만 10년 동안 12권의 하나 같이 재미와 감동이 충만한 '위험하기 그지없는' 선물을 주는 작가가 우리에게도 있다.

큰 조카에게 선물하기 위해 처음 산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를 조카보다 더 재미나게 읽고, 이제는 조카를 핑계로 매번 희열을 느끼며 다른 작품들을 읽고 있다.

 

그 작품들 중 가장 최근의 것이 [버드 스트라이크(2019)]이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 ''가 성장기일 때 이런 글을 읽었다면 꼼짝없이 빠져 들었을 것이 분명한, 익숙하고 세련된 이야기 방식으로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문명 비판과 사회 비판 내용들이 가득하다. 뭘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매번 같은 의문스런 감동이 든다.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오래된 미래"와 같은 내용들이 곳곳에 있다. 이번에도 작가가 정성과 사랑을 다해 말을 거는 지금 '성장기'인 세대들에게 말 못한 질투를 느끼며 읽었다.

비판이 많다고 해서 교훈이 주가 되는 그런 글이 아니다. 달달하고 애달프고 씩씩하고 용기 있는 사랑과 아픔과 책임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아름다운 직물 사이사이에 교훈들이 자연스럽게 무늬를 이루고 짜여져 있다.

곤경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대하는 법과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

"나는 그 사람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도 부끄럽지 않아…….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와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말이야." 88

"도시 사람들은 합리와 계약과 문서를 중시하면서도 그 못지않게 그것을 저버리거나 변형하거나 위조하기를 일삼지,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그런 들쑥날쑥한 규격을 지닌 도시 사람들의 눈에 우리 삶의 방식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관계에 대해 묵인하고 자유 의지에 맡긴다……. 우리는 모두 초원조의 아이들이지 다른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88-89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식을 낳아 놓은 것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죄하면서 사는 건 부당하고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은 누구나 그날그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로 인한 짐을 제 것이 아님에도 나눠서 져야 할 때가 있지. 그렇다고 해서 비오에게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란다. 우리가 짐을 나누는 것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베푸는 일이야." 93

"세상에서 바람직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형태와 과정을 갖춘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구하고 살리는 것도 삶의 이유이자 의미가 된다면 그 마음을 귀하게 품어야 할 것이었다." 119

소설 전반에 걸쳐 주인공을 비롯해 부모와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들.

"…….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잘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규격에 맞도록 어깨를 움츠린다는 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안 그래도 작은 날개가, 비오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더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 크게 활짝 펼칠 자격이 없다 하면서." 121

"그러니 그 작은 날개로 어디까지 날겠는지 고민하기보다는......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나." 122

"인사가 늦었지.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이른 나이의 성급한 결정이라고 생각지 않아.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언가는 옳고 바람직하거나 다른 것은 그릇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아. 축복과 경애의 입맞춤을 전하며." 296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살짝 마음이 쿵하면서 서글프고 우울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제 버드 스트라이크란 명칭에는 마치 "새들이 인간들을 공격했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있지 않은가. 물론 새들이 항공기로 빨려 들어가면 결과적으로 큰 사고가 나지만 그렇다고 그게 "새들이 (의도적으로) 인간들을 스트라이크 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삼천포로 무한정 빠질 것같아 관련 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기서 멈추려 한다. 어쨌든 그래서 살~ 마음이 불안으로 동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역시...... '거의 아무 위협이 되지 않고 그들끼리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익인()''저 하고 싶은 대로 막 살면서 다른 건 다 망가뜨리면서 수탈과 부정으로 얼룩진 문명인(인간)' 에 저항하는 장면이 내용에 있다. 그리고 그래서 사건이 전개된다. 작가가 담고 있는 정서에 깊이 동감할 수 있어서 더 반갑고 더 서글펐던 책읽기 경험이기도 했다.

 

역사나 시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에 다름 아닌, 소위 현재 지구상의 '선진국들'이 자유무역이라는 허울 아래 어떻게 제3세계에 수많은 부채를 지웠는지.

 

"도시에서 감미나 우리온의 가죽을 비롯해서 미과와 은각안 같은 수많은 것들을, 우리를 보호해 준다느니 백 년도 넘는 오래전부터의 통상조약이라느니 하며 이런저런 명복으로 거둬 가는 일은 내 할머니의 할머니 시절부터 있었던 일이라 우리 세대는 그것에 익숙하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지. 하지만 대체 도시에서 우리의 무엇을 돌봐준다는 거지? 그들이 한 일이라곤 주로 자기네 말을 가르치는 학교와 수도 시설을 놓고, 자기네 공산품이라면서 우리가 원한 적도 없는 합성수지로 된 물건들을 잔뜩 갖다 안기는 대신 세금을 뜯어 가는 일인데. 말이 좋아 무역이지 실은 미과나 은각안 같은 사치품은 규정보다 더 많이 도시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중 모르는 사람은 없어." 94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빼앗길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지요의 얘기처럼 능력 대신 평화가 보장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원해서 그런 힘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닌데...... 그때 루는 고개를 들어 은각마의 희고 눈부신 뿔과 천진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빼앗길 것이 남아 있는 한, 도시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평화란 익인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 117

 

인간이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모든 어른들도 구병모 작가의 소위 '영어덜트' 소설들을 만나보기를 희망한다. 나는 운 좋게 그런 기회를 가졌고, 지금은 작가가 가능한 오래 작품활동을 해주시기만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는 독자이다. 다른 많은 경애라는 작가들이 많지만,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은 문득 잠시 떠오를 때라도, 마치 '성장'하는 묘목이 봄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몰랑해지고 간지러워진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러하다.

 

올 해 이제 3월 말...... 언제 또 만나려나......길고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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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강경석 외 지음, 이기훈 기획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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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 기념일로 지정해 둔다거나, 10주년, 20주년... 하는 식으로 주기별 기념식을 하는 일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된 단일 사건에 대한 평가가 그 당시에도, 그 후 100년이 지날 동안에도 '제대로' 고찰, 평가되지 않은 경우라면,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고, 늦었더라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이 한 두해에 될 일이 아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뿐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종교 등등 전 방위적 연구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니, 그야말로 다음 100년이 필요한 거대 프로젝트처럼 들린다.

 

올 해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이 대통령직속기관 정부주도로 이루어졌고, 이전부터 각종 단체들의 학술대회와 관련 학자들의 발표가 이어져왔다. 그 모든 시간과 자료들이 모이면 윤곽이 드러날 터라 믿는 한편, 단기적이고 단일적인 기획 말고, 좀 더 진지하고 장기적인 연구 프로젝트가 절실하기도 하다.

 

특히나 역사적 단일 사건들의 해석이 집권세력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더 나쁘게는 노골적으로 정권이익을 위한 정치적 의도로 왜곡되기도 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가시적인 기념사업보다는 다양하고 균형 잡힌 연구와 시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촛불의 눈으로 3.1 운동을 보다]는 역사학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한 학문적 시도의 일환이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의 좌담 3·1운동 100주년이 말하는 것들에서는 3·1혁명론을 둘러싼 학술적 맥락과 정치적 함의 등을 두루 살피며 각 연구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치열한 토론이 펼쳐진다.

 

혁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에서부터 미완의 혁명’ ‘현재진행 중인 혁명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까지 폭넓은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역사를 당대의 맥락 속에서 파악할 것인가 혹은 그것의 현재적·지속적 의미를 적극 발견할 것인가라는 역사학의 오래된 과제이자 본질적인 쟁점을 3·1혁명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바로 얼마 전 3.1.만세운동의 데자뷰와 같았던 촛불광장의 모습과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 국민이 대표가 되는 주인이 되는 자각이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3.1.운동과 촛불은 역사적 맥락을 나란히 한다고 보인다.

 

교과서적 서술에서 3·1운동은 거족적 항일투쟁으로 평가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3·1운동을 대한독립만세’, 즉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었던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은 그 결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민족운동만이 아니라 공화정을 추구한 민주주의운동이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기훈은 3·1운동과 깃발을 통해 만세시위 당시 민중들의 움직임에서 어떻게 공화의 정신이 싹텄는지 탐색한다. 특히 당시 시위 현장에서 사용되었던 깃발과 격문, 선언서 등의 구체적인 매체(미디어)를 통해 당대인의 의식 속에서 국가, 민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자리 잡았고 자신들의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실증적으로 살핀다.

 

또한 만세라는 축하의 행위가 고종의 국장 당시 수행되었다는 점을 예리하게 파고들며, 이러한 수행이 어떻게 군주정의 종식, 공화정의 탄생과 연결되는지 분석한다. 당시 깃발과 격문에서 자주 발견되는 내가 대표다라는 언술은 민중 스스로 인민주권의 원리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한국근대의 출발점으로 평가할 만하다.


또한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연관성을 파악할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운동의 현장에 다양한 주체들의 염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지향이나 욕망이 있었다는 점이다. 촛불혁명 이후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등장, 미투 운동 등이 이어진 것처럼 촛불이 지핀 변혁의 움직임은 이 사회에서 억압받아온 목소리들이 터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게다가 3.1 운동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17세 유관순 열사를 벗어나지 못한 기억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도 무척 흥미롭고 유용하다. 만세운동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희생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후 살아남아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의 중요성도 반드시 제대로 평가되어야 하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어쩌면 살아내는 일이 죽음보다 힘겹고 지난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장영은은 3·1운동과 감옥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에서 3·1운동에 직접 참여한 당대의 여성 지식인이 그 경험을 어떻게 자신들의 역사로 구축해나가려 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장영은은 3·1운동이 교육받은 여성이 조직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 첫 번째 경험으로 평가하며, 이들에게는 3·1운동이 독립운동의 의미를 넘어 역사의 지분을 확보하고자 했던 권리투쟁이었다고 분석한다. 특히 언론인이자 여성운동가였던 최은희의 역사서술 작업을 통해 식민지와 해방, 국민국가의 설립 등 정치적 격랑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공적 역사로 만들어가는 일련의 투쟁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이 책의 구성 중 극우태극기집회로 대표되는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답답하기만 했던 의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3·1절과 태극기 집회에서 다양한 민중의 목소리, 억압받은 자의 목소리를 헤테로토피아적 외침으로 규정하며 3·1운동의 기억투쟁 과정에서 헤테로토피아적 외침이 억압당해온 이유를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신앙에서 탐색한 부분이다.

 

3·1운동의 공적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한국 개신교에서 근본주의 신앙이 압도하게 된 배경, 3·1운동의 재기억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기억투쟁에서 반공주의가 승리한 이유,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결합한 이데올로기가 한국현대사에 미친 영향력 등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국사'라는 과목에만 집중되었던 교육 방식으로 인해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이해의 폭을 제한받은 시간이 오래되었던지라, 세계사적 흐름과 세계사의 배경을 바탕으로 민족사를 연결하여 살펴보는 방식이 반가웠다.

 

3·1운동은 한국인에게 대단히 민족적인 사건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것은 세계사적 흐름과 조응하면서 발생한 사건이기도 했다. 19192월과 5월 사이에 한국, 중국, 인도, 이집트에서 줄지어 독립운동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 방증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베르사유체제와 윌슨의 민족자결 원칙은 전 세계의 피식민국가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고, 당시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동은 동시다발적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김학재는 3·1운동의 한 세기에서 이를 민족사와 세계사의 결정적 조우라는 말로 표현한다. 또한 그는 3·1운동을 미완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3·1운동의 과제(공화주의, 평화로운 국제질서, 균등한 사회)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3·1운동은 한반도 차원의 독립국가를 염원한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분단과 냉전체제를 해소하고 평화를 향해가는 현재의 남한과 북한에게 공통의 기억과 자원이 되어준다. 3·1운동이 세계질서의 변동을 관찰하고 기회를 포착한 능동적 대응이었듯이, 지금 3·1운동을 발판으로 삼아 남북의 시민들이 새로운 한반도 질서를 구축하는 데 이 책이 길잡이가 되리라 기대한다.

 

명칭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적으로 재해석되는 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견들과 의견들을 가감 없이 기록하였으므로, 이 책은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이러한 토론의 과정을 3·1운동의 현재성에 대한 열띤 논쟁의 출발점으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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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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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몹시 응원하고 싶지만 잘 읽으려 들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언제나 마음을 다치기 때문이다. 웹툰을 좋아하는 친구가 [피너툰]에 연재되고 있는 이 만화의 1화를 보여줬을 때도 그러했다. "여성 주인공의 성장문학" 예외없이 폭력이 수반될 것이고, 예외없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며, 예외없이 밤에 읽게 될 것이고, 예외없이 펑펑 혹은 줄줄 눈물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그래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고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고,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 또한 두려움보다는 힘들이지 않고 읽었다. 그 자신감 때문에 이 책도 집어 들었는데...그것도 밤에...무서울 정도로 의지할 곳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성장하는 주인공 모습에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지 않은 성장이 어디 하나라도 있냐고 반문한다면 그것도 할 말이 없긴 하지만, 홀로서기란, 그것도 단단하고 어엿한 모습을 갖추는 성장이란 문학으로도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제발 조금만 덜 힘들게 살 순 없을까... 정말 방법이 없을까...

 

 

 

무능력할뿐 아니라 거기에 더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시인' 아버지... 이 무슨 언어모순일까...싶다. 심지어 아들이 아니라고 딸을 미워하고, 부부싸움 중에 던져서 미숙의 뺨에 상처를 낸 책 제목은 [무소유]...


가정을 오롯이 혼자 도맡으며 늘 피로한 어머니...


불안하고 두려울 때마다 습관적으로 허벅지를 꼬집는 사춘기에 접어든, 그리고 죽을 병에 걸린 언니...


'미숙아'라고 부르며 놀리는 친구들...

 

시대를 막론하여 '인간'의 모습이란 이토록 이중, 삼중의 면모를 담아야 하는 것일까...

성장이란 이토록 복잡한 감정들이 짙게 어우러져야 하는 것일까...

그림이 있는 이야기책은 참 좋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미숙]은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아주 섬세하게 재현한 그림들이 나의 기억들도 수시로 불러 내었다. 한때 자주 들락거렸던(아마 회원가입도 했던 듯) '영화마을'이라는 비디오점, 그리고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내 책장에 꽂힌 권여선 작의 등단작 [푸르른 틈새](이 책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처음 읽고 몇 년간 손도 안대었다.), 그러니 이 작은 여자아리의 아픔과 상처와 어설픔과 당당함은 수시로 나의 것들과 겹쳐 보였다.

 

그동안의 일들이 "먼 과거"가 아니라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책 제목인 "올해의 미숙"은 무슨 뜻일까...

작가는 왜 시간을 뒤집어 놓았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오해가 다툴 때 비등하게 마음을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단하고 어엿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수하고 담담하게 묘사된 장면을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대사보다 더 많은 여백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칸을 누군가의 이름으로 채우고 싶어진다.
그것이 가족이든, 지금은 소원해진 친구든.”

 ― 신미나(시인)

 


나는 이 책을 미숙아, 계란말이 뺏기지 말고 너 먹어, 누가 빼앗아 먹으면 죽여……
이런 심정으로 읽으면서도 내 것이기도 하고 내게 익숙한 타인의 것이기도 한 미숙함들 때문에 서글프고 부끄러웠다.
『올해의 미숙』에는 장미숙의 미숙함 말고 미숙한 어른들과 아이들이 등장한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이런 일들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말고도,
이 책을 통해 그걸 다시 겪으며 속상해 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정원 작가는 장미숙이 본가에서 데리고 나온 개 '절미'의 소식을 전하며 이 이야기를 마무리했고,
독자인 나는 그 마무리가 반갑고 기뻤다.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_황정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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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 - 조선왕조실록 기묘집 & 야사록
몽돌바당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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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거나,혹은 읽지 못하는 이들의 통계치가 오르고 있는 형편이라지만, 나의 새해 결심엔 아주 오랜동안 "올 해 책 몇 권 읽기"란 초딩적 목록이 항상 있다.


그 중에서도 스케일이 가장 큰 것으로는 한 해 동안에는 무리겠지만, 죽기 전에 반드시 [조선왕조실록]을 읽어 보겠다는 것이다.(조선왕조실록이 실제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거나 일제 시대 각색편집된 부분은 제외해야한다거나 이런 논의는 일단 차치하고...) 현실은 아직까지...태조실록을 들여다보고만 있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단일 왕조 역사서이고, 그 분량이 무려 1,893권 888책!ㅎㅎㅎ 완독을 못하고 세상을 뜬다 하더라도 많이 부끄러울 듯 하지는 않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그러한 결심은 아주 오래 지인들에게 부끄럼없이 반복해서 들려 준 덕분에 가끔 이런 추천? 혹은 참고용 책들을 권하기도 하는데, 일단 제목이 참으로 재미지고 자알~ 정말 자알 읽힐 듯하여 읽어 보았다. 왕조실록이라 왕과 관련된 이야기들, 기묘하고 야사라 할지라도 나름 점잖고 격식을 갖췄으리라 생각했는데, 작가는 그 모든 예견을 뒤집었다. [인요(人妖) -조선왕조실록 기묘집&야사록]은 조선시대에 인요라 불리던 사람(인요 : 떳떳한 도리(道理)에 벗어난 요사(妖邪)스럽고 괴상(怪常)한 짓을 하는 사람, 여자(女子)가 남자(男子)로 변복(變服)하고、 남자(男子)가 여자(女子)로 행세(行世)하는 따위)을 주인공으로 시작한다.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며 거칠고 불량?하다. 요즘 분류된 성정체성으로는 '트랜스젠더'가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왕이 트랜스젠더인 인물에게 관직을 제수했다?


 


그렇다면, 소위 '젠더감수성'은 조선시대가 훨씬 더 리버럴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놀라운 점은 그의 관직이 다른 것도 아닌 '병조참의'라는 것이다. 병조는 병권, 즉 군사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곳이다. 대한민국에서 트랜스젠더 군사관련 고위직 임명 채용!이란 가히 기사화될만한 이변?이 아닐까. 성적소수자처우 관련 여러 생각에 머리가 잠시 다소 복잡해졌다.


소재는 그러하나, 솔직하게 도입, 전개 부분이 개인적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느낌이 강했으나, 모든 책에서 문학적 의의와 탄탄한 역사적 상식 또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을 놓을 수 있다면 속도감있게 즐기고 쉬어가기 좋은 책이었다.


그 이후의 15편의 짧은 소설은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상당히 재미있는 단편을 독파하는 기분인데, 실화 바탕이라는 점이 신기할 정도로 새로웠다. 심지어 외계인과 UFO 기록, 왕족연쇄살인마, 인육살인 등등...


2. 조선왕조실록 기묘집
1장 … 수리봉의 하얀물괴
2장 … 괴이한 물고기 [해우 : 海牛]
3장 … 피로 물든 바다 [거북마을의 전설]
4장 … 미지와의 조우 Vol. 1
5장 … 미지와의 조우 Vol. 2


3. 조선왕조실록 야사록
1장 … 해귀(海鬼)
2장 … 인육(人肉)
3장 … 살인귀(殺人鬼)
4장 … 교수형(絞首刑)
5장 … 바투(拔都)
6장 … 인면수심(人面獸心)
7장 … 신군(神軍)
8장 … 마술사(魔術師)
9장 … 서착(鼠捉)
10장 … 세계지도(世界地圖)


그 외에도 궁궐, 마을, 문화, 계급, 그리고 특히 '동월관'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무척 자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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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이와 나
프란체스카 산나 지음, 김지은 옮김 / 미디어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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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9월에 Me and My fear란 원제로 출간되었습니다.
난민의 이야기와 심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고 서글프게 전해 준 [긴 여행, 2017]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라면, [긴 여행]과 [쿵쿵이와 나]를 순서대로 읽어 보는 것도 참 좋을 듯합니다.

Fear가 '쿵쿵이'로 번역된 것은 적절한 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느낄 때 마음이 '쿵쿵' 거린다는 점은 상당한 일반성을 지닌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사물과 사람과 세상에 대해 어린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절대 아니지요.
두려움이 없다면 생존해서 성장하는 인구수가 심각하게 줄어들 것이라 봅니다.
문제는 그런 보호자 같은 두려움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지요.

어찌 보면 상당히 무거운 주제일수도 있는데 작가는 이 주제를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과 시선으로 풀어 줍니다.
어찌나 그림이 사랑스러운지 잠시 두려움의 무게가 잊힙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화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궁극적으로 비폭력적인 이야기라고 느낀 점은
쿵쿵이를 물리치거나 없애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흔한 말로 "이겨 내라", "극복해라"하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힘을 내어 '화해'하고 그 감정을 안고 업고 동행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감정은 사라지는 법이 없으니 가끔은 다시 나를 삼킬 듯이 커지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 감정이 내 것이고, 그런 감정을 가진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도 내가 약해지지 않는다는 점,
오히려 비로소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이,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위안과 안심을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른이 되면, 어른이면, 자기 일과 삶을 책임지고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갖췄을 거라 상상했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 약점이 공격무기로 돌아오기도 하는 험한 경쟁사회를 겪은 쓰라린 경험도 해보았겠지만,

그래도 그게 '현실'과는 별개로 옳지 않다는 것을 믿는 한
작가처럼 이기는 것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공존에서 답을 찾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그리고 어른들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앞면 속지에 눈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뒷면 속지에 그 눈들이 포함된 그림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딱! 알아보신 분들도 있을까요?^^

꼬맹이에게 부탁해보니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듯 한 귀여운 쿵쿵이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외롭지 않게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는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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