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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ㅣ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에게는 몹시 응원하고 싶지만 잘 읽으려 들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언제나 마음을 다치기 때문이다. 웹툰을 좋아하는 친구가 [피너툰]에 연재되고 있는 이 만화의 1화를 보여줬을 때도 그러했다. "여성 주인공의 성장문학" 예외없이 폭력이 수반될 것이고, 예외없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며, 예외없이 밤에 읽게 될 것이고, 예외없이 펑펑 혹은 줄줄 눈물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그래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고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고,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 또한 두려움보다는 힘들이지 않고 읽었다. 그 자신감 때문에 이 책도 집어 들었는데...그것도 밤에...무서울 정도로 의지할 곳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성장하는 주인공 모습에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지 않은 성장이 어디 하나라도 있냐고 반문한다면 그것도 할 말이 없긴 하지만, 홀로서기란, 그것도 단단하고 어엿한 모습을 갖추는 성장이란 문학으로도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제발 조금만 덜 힘들게 살 순 없을까... 정말 방법이 없을까...
무능력할뿐 아니라 거기에 더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시인' 아버지... 이 무슨 언어모순일까...싶다. 심지어 아들이 아니라고 딸을 미워하고, 부부싸움 중에 던져서 미숙의 뺨에 상처를 낸 책 제목은 [무소유]...
가정을 오롯이 혼자 도맡으며 늘 피로한 어머니...
불안하고 두려울 때마다 습관적으로 허벅지를 꼬집는 사춘기에 접어든, 그리고 죽을 병에 걸린 언니...
'미숙아'라고 부르며 놀리는 친구들...
시대를 막론하여 '인간'의 모습이란 이토록 이중, 삼중의 면모를 담아야 하는 것일까...
성장이란 이토록 복잡한 감정들이 짙게 어우러져야 하는 것일까...
그림이 있는 이야기책은 참 좋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미숙]은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아주 섬세하게 재현한 그림들이 나의 기억들도 수시로 불러 내었다. 한때 자주 들락거렸던(아마 회원가입도 했던 듯) '영화마을'이라는 비디오점, 그리고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내 책장에 꽂힌 권여선 작의 등단작 [푸르른 틈새](이 책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처음 읽고 몇 년간 손도 안대었다.), 그러니 이 작은 여자아리의 아픔과 상처와 어설픔과 당당함은 수시로 나의 것들과 겹쳐 보였다.
그동안의 일들이 "먼 과거"가 아니라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책 제목인 "올해의 미숙"은 무슨 뜻일까...
작가는 왜 시간을 뒤집어 놓았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오해가 다툴 때 비등하게 마음을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단하고 어엿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수하고 담담하게 묘사된 장면을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대사보다 더 많은 여백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칸을 누군가의 이름으로 채우고 싶어진다.
그것이 가족이든, 지금은 소원해진 친구든.”
― 신미나(시인)
나는 이 책을 미숙아, 계란말이 뺏기지 말고 너 먹어, 누가 빼앗아 먹으면 죽여……
이런 심정으로 읽으면서도 내 것이기도 하고 내게 익숙한 타인의 것이기도 한 미숙함들 때문에 서글프고 부끄러웠다.
『올해의 미숙』에는 장미숙의 미숙함 말고 미숙한 어른들과 아이들이 등장한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이런 일들이 다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말고도,
이 책을 통해 그걸 다시 겪으며 속상해 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정원 작가는 장미숙이 본가에서 데리고 나온 개 '절미'의 소식을 전하며 이 이야기를 마무리했고,
독자인 나는 그 마무리가 반갑고 기뻤다.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_황정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