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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병모 작가에 대해서라면 아래 포스팅의 내용에 더할 나위 없이 동의한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261844&memberNo=35799573&vType=VERTICAL
영국에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이 있다면, 한국에는 단언하건대 "구병모" 작가가 계시다. [해리포터]가 아이들을 위한 성장소설만이 아닌 것처럼, 구병모 작가의 '영어덜트'소설들 역시 '성인'인 내게도 더할 나위 없는 감동과 각성을 불러 일으켜주는 작품들이다.
부디 성인들이 다 읽어 보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다 읽고 집 서재에 하나씩 꽂아 두면 '성장기' 가족들 중 누구라도 함께 읽을 기회도 될 것이다. 장담하건대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단언컨대 끝을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 지라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다작 작가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면 한국에는 역시 "구병모" 작가가 계시다. "또 하가시노 게이고 신작이라고?!"라고 느낄 만큼 신작 출간 소식이 자주 들리지만 10년 동안 12권의 하나 같이 재미와 감동이 충만한 '위험하기 그지없는' 선물을 주는 작가가 우리에게도 있다.
큰 조카에게 선물하기 위해 처음 산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를 조카보다 더 재미나게 읽고, 이제는 조카를 핑계로 매번 희열을 느끼며 다른 작품들을 읽고 있다.
그 작품들 중 가장 최근의 것이 [버드 스트라이크(2019)]이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 '내'가 성장기일 때 이런 글을 읽었다면 꼼짝없이 빠져 들었을 것이 분명한, 익숙하고 세련된 이야기 방식으로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문명 비판과 사회 비판 내용들이 가득하다. 뭘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매번 같은 의문스런 감동이 든다.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오래된 미래"와 같은 내용들이 곳곳에 있다. 이번에도 작가가 정성과 사랑을 다해 말을 거는 지금 '성장기'인 세대들에게 말 못한 질투를 느끼며 읽었다.
비판이 많다고 해서 교훈이 주가 되는 그런 글이 아니다. 달달하고 애달프고 씩씩하고 용기 있는 사랑과 아픔과 책임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아름다운 직물 사이사이에 교훈들이 자연스럽게 무늬를 이루고 짜여져 있다.
곤경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대하는 법과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
"나는 그 사람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도 부끄럽지 않아…….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와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말이야." 88
"도시 사람들은 합리와 계약과 문서를 중시하면서도 그 못지않게 그것을 저버리거나 변형하거나 위조하기를 일삼지,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그런 들쑥날쑥한 규격을 지닌 도시 사람들의 눈에 우리 삶의 방식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관계에 대해 묵인하고 자유 의지에 맡긴다……. 우리는 모두 초원조의 아이들이지 다른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88-89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식을 낳아 놓은 것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죄하면서 사는 건 부당하고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은 누구나 그날그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로 인한 짐을 제 것이 아님에도 나눠서 져야 할 때가 있지. 그렇다고 해서 비오에게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란다. 우리가 짐을 나누는 것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베푸는 일이야." 93
"세상에서 바람직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형태와 과정을 갖춘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구하고 살리는 것도 삶의 이유이자 의미가 된다면 그 마음을 귀하게 품어야 할 것이었다." 119
소설 전반에 걸쳐 주인공을 비롯해 부모와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들.
"…….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잘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규격에 맞도록 어깨를 움츠린다는 게, 좋기만 한 일이었을까? 안 그래도 작은 날개가, 비오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더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 크게 활짝 펼칠 자격이 없다 하면서." 121
"그러니 그 작은 날개로 어디까지 날겠는지 고민하기보다는......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나." 122
"인사가 늦었지.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이른 나이의 성급한 결정이라고 생각지 않아.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언가는 옳고 바람직하거나 다른 것은 그릇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아. 축복과 경애의 입맞춤을 전하며." 296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살짝 마음이 쿵하면서 서글프고 우울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제 버드 스트라이크란 명칭에는 마치 "새들이 인간들을 공격했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있지 않은가. 물론 새들이 항공기로 빨려 들어가면 결과적으로 큰 사고가 나지만 그렇다고 그게 "새들이 (의도적으로) 인간들을 스트라이크 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삼천포로 무한정 빠질 것같아 관련 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기서 멈추려 한다. 어쨌든 그래서 살~ 마음이 불안으로 동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역시...... '거의 아무 위협이 되지 않고 그들끼리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익인(새)'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막 살면서 다른 건 다 망가뜨리면서 수탈과 부정으로 얼룩진 문명인(인간)' 에 저항하는 장면이 내용에 있다. 그리고 그래서 사건이 전개된다. 작가가 담고 있는 정서에 깊이 동감할 수 있어서 더 반갑고 더 서글펐던 책읽기 경험이기도 했다.
역사나 시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에 다름 아닌, 소위 현재 지구상의 '선진국들'이 자유무역이라는 허울 아래 어떻게 제3세계에 수많은 부채를 지웠는지.
"도시에서 감미나 우리온의 가죽을 비롯해서 미과와 은각안 같은 수많은 것들을, 우리를 보호해 준다느니 백 년도 넘는 오래전부터의 통상조약이라느니 하며 이런저런 명복으로 거둬 가는 일은 내 할머니의 할머니 시절부터 있었던 일이라 우리 세대는 그것에 익숙하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지. 하지만 대체 도시에서 우리의 무엇을 돌봐준다는 거지? 그들이 한 일이라곤 주로 자기네 말을 가르치는 학교와 수도 시설을 놓고, 자기네 공산품이라면서 우리가 원한 적도 없는 합성수지로 된 물건들을 잔뜩 갖다 안기는 대신 세금을 뜯어 가는 일인데. 말이 좋아 무역이지 실은 미과나 은각안 같은 사치품은 규정보다 더 많이 도시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중 모르는 사람은 없어." 94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빼앗길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지요의 얘기처럼 능력 대신 평화가 보장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원해서 그런 힘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닌데...... 그때 루는 고개를 들어 은각마의 희고 눈부신 뿔과 천진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빼앗길 것이 남아 있는 한, 도시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평화란 익인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 117
인간이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모든 어른들도 구병모 작가의 소위 '영어덜트' 소설들을 만나보기를 희망한다. 나는 운 좋게 그런 기회를 가졌고, 지금은 작가가 가능한 오래 작품활동을 해주시기만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는 독자이다. 다른 많은 경애라는 작가들이 많지만,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은 문득 잠시 떠오를 때라도, 마치 '성장'하는 묘목이 봄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몰랑해지고 간지러워진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러하다.
올 해 이제 3월 말...... 언제 또 만나려나......길고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