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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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란 단어와는 상반되는 생각이긴 하나, 성장소설을 읽으며, 완벽이라기보다는 불충분한 작품 속 인물들의 조건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이 아이들을 오히려 성장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한다.

 

한 존재가 온전한 제 자신이 되기 위해서 당연히 필요한 자기탐색과 사색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육과 교육 시스템을 구축한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짜인 일정에 양육자는 갖가지 지시 사항들을 더한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이가 아무 약속 없이 혼자 빈방에서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야한다고 하셨는데, 과학자와 전문가의 학문적 권위가 얼마나 인정받는 사회일지.

 

그룹홈(구 보육원)이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경계 밖의 세계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알아봐야하는 다른 삶이다. 소위 정상 가족내에서 상처가 덜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가족에게 버림받았단 상처는 선명한 것이니까.

 

사회는 잔인하게도 그 상처를 이유로 다시 상처를 준다. 불안과 관계 형성이 어려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고, 어떤 조건에서 살았든 성장하지 못한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이유를 간과하지 않고 차분히 살펴보는 태도를 잊지 않아야한다.

 

트라우마란 발현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버림받을 거란 불안으로 관계 형성이 어려운 단계, 반대급부로 완벽한 관계와 가정을 욕망하는 태도, 평범한 것들만 바랐으나 예상치 못한 돌발들로 꿈이 좌절된 경우…….

 

적어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것으로 비난 받거나 차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최소한의 조건이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위가 따끔거린다. 각자의 그늘이 크게 어른거려 눈이 시큰하다.



 

고단하고 어둑하고 힘이 많이 들지만, 누구의 삶과도 그리 다르지 않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더 다정할 수 있지 않을까. 경계선에 선 이는 누구이고 경계를 넘어선 이는 누구인지 불확실하지만, 누구에게도 위로와 응원을 주고자 하는 작품이라는 건 선명하다.

 

살아가는데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면, 계속 살아가는 데는 용기와 서로보살핌과 연대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힘을 키우자. 그렇게 각자의 행복감을 경험하기도 하자. 오늘도 읽고 쓰는 것으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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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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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힘이 있나요>

 

종 전체의 생존 - 출산과 양육 - 을 인구 절반인 여성에게 떠맡긴 인류의 방식은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서는 최고의 선택일지 모른다. 다른 모든 노동은 제 값이 있어도, 그 노동은 가격이 없으니까.

 

기자님은 10년 넘게 언론업에 종사했다고 하셨죠? 하지만 아기 입장에선 그게 뭐? 내 똥이나 치워줘. 이런 식이죠. 이 시간 동안 보호자는 아기에게 (...) 물리적으로 완전히 묶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강도로 얼마나 오래 요구하는 기준도 없어 거부조차 어렵다. 사회시스템 - 교육, 복지, 기타 안전망 - 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어떤 육아는 돌봄제공자가 병들거나 죽기 전에 끝나지 않는다.

 

만삭 임산부의 배우자를 그렇게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좆같은 조직 문화와, 배우자 출산휴가도 좆같이 짧은데 이것마저도 쓰려 하면 눈치를 좆같이 보게 만드는 좆같은 육아휴직 제도를 가진 좆같은 회사의 시대착오적 존재 자체를 방치하고, 나아가 은근슬쩍 연명시키기까지 하는 좆같이 덜떨어진 사회에(...).”

 

진짜 죽을 것같을 때 그래도 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어이없게도) 무척 작은 도움, 호의, 숨구멍, 대화 이런 것들도 가능하다. 이 작품은 그 점을 젖병 소독 기능을 제공하는 AI로 현학적이고도 적확하게 보여준다.

 

나는 젖병 소독의 천사, 보틀스의 엔젤이야. 잘 부탁해, 미주.”

 

마침내(?) AI와 함께 살아가는 인류, 미래 노동의 문제, 출산과 육아와 모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도 같지만, 내게는 인간이기 때문에매뉴얼에 설명되지 않은 사소한 교류와 변화와 예외와 예상 못함 등이 몹시 인상적이다.

 

양자역학적이고 그래서 혼란스럽지만, 한 가지 본질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 바로 생명의 본질이다. 혼란과 망각의 정신없던 한 시절의 생존을, 단편 소설로 기록하고 기억하자는 작가의 의도/의지에 기분이 먹먹했다.

 

현실은 늘 이론보다 불투명하고 혼란한, 끓고 있는 죽 같은 것이죠. 그런 현실에 처한 우리에겐 (...) 애매하고 불투명해도 유연하게 확장하기 쉬운 비본질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도 많다고 믿어요.”






<인간의 미래는 과학기술상품이 보장해줄 지옥 탈출일까>

 

잔뜩 긴장하고 펼친 작품엔 진짜 황새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표제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에서 전편에서 만난 욕설을 다시 만나 픽 웃음이 난다. 이 욕을 이렇게 여러 번 따라 적어본 건 처음인 듯.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됐잖아! 좆같네, 진짜! (...) 임신에서부터 출산, 육아까지 14개월 만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여전한 육아지옥이다. 비합리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을 알지만, 꺼림칙하게 들리는 효과적인 비난도 똑같이 들린다. 지옥으로부터 생존을 위한 절절한 대비책같이 읽혀 나도 기분이 절박해진다. 예상치 못한 문장에서 눈물이 솟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이 집엔 나와 이안이 둘뿐이다. 세상에 태어나 겨우 100일 남짓 살아본 사람과 엄마로 겨우 100일 남짓 살아본 사람 둘이서 다 알아서 해야 했다.”

 

신종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전국 어린이집 2주간 긴급 휴원 명령은 눈앞에서 숨구멍이 닫히는 재난이겠고, ‘황새영아송영 앱은 희미한 구원 같은 불빛이겠다. 그리고 엄마가 없어도 괜찮아펭귄 베타서비스 체험.

 

아무리 애써서 경계를 해도 어느새 깊은 잠에 들어버릴 정도의 맞춤 서비스 제공자가 타인의 감정 노동을 착취할 염려 없는 AI라면 나는... 미래의 노동에 대해, 구매자이자 소비자로서의 나에 대해 진심으로 상상해버렸다.



 

직접 경험을 통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리게 배우는 인간에 비해, 매뉴얼 숙지와 빅데이터로 능숙해진 존재라면, 그 서비스를 개별 구매하기 위해 인간은 또 다른 노동 지옥 속에서 허우적대는 방식일 거란 멈칫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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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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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책을 모으는 일은 세상을 소유하는 또 다른 상징적, 정신적, 평화적 형식이었다. 책 수집가의 열정은 여행자의 열정과 비슷하다. 모든 도서관은 여행이며, 모든 책은 유효기간이 없는 여권이다.”

 

책에 정신을 묻고 지내는 시간을 도피나 대피 대신 여행간다고 해야겠다. 삶의 다른 동력을 얻으러 떠나는 자구책이라고. 현실이 버거워 떠나는 매일의 여행인 것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변명에도 곧은 진실이 있어 다행이다.

 


🎨 Paintings by David Hettinger (b.1946, American) Oil on canvas

 


글을 배우기 전부터 종류 불문 문자 기록을 읽는 척하며 살았던 삶(양육자 증언)이라서, 세상의 문자 기록 중 가장 멋진 책을 못 읽게 갖가지 시비를 걸고 방해를 하고 겁박도 하는 정권이 웃기고 미치게 싫다.

 

책은 그저 상품이 아니라, 저항과 변화를 위한 말의 예술이라는 르 귄의 말을 지난주에 읽은 터라 더욱, 책은 발명부터, 역사 속에서 저항과 꿈의 실체가 아닌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공고해진다. 읽고 쓰기에 비해 헛된 임기 따위.

 

상징과 은유로서가 아니라, 이 책은 서사적이고 개인적인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그것도 책들의 세계로. 아는 역사와 소재는 반갑고, 낯설어서 기쁜 새로운 모든 것은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환상적인 수천 년의 모험이 좌르륵.



 

너무 궁금해서 로마인들이 미워지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꿈속에서라도, 한번이라도 찾아가서, 알바라도 해보고 싶다. 관련 문장을 한 문장씩 천천히 꼭꼭 씹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맛보며 읽었다.

 

글쓰기는 우리 종족의 마지막 떨림, 오래된 심장의 가장 최근 박동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그러나 제 생각만 해서는 문명과 사회가 생기거나 생존할 수 없다. 타인을 고려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돕는, 소위 이타적인, 외부로 향하는 생각과 행동은 서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생명체가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경험 밖에 없다. 타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며 감동 받고 눈물을 흘리고 즐기는 모든 것이, 함께 살기 위한 경험이다.

 

우리는 낯선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숙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정체성과 대조할 때라야 우리의 정체성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문자예술인 문학은 경험 세계를 확장시키고 경험한 것을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게 돕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유가 나를 구성하고 규정한다.언어가 분명치 않으면 진실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존 르 카레)는 진실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의 살아있는 증거, 말도 글도 성립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는 무도한 권력집단은 그들을 제외한 누구의 생존에도 지극히 위험하다. 그 결과 숫자로 확인 가능한 세계는 폭망 중이고, 참극은 일상처럼 벌어진다.

 

*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 비논리적인 추론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인지편향.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 하위 25%에 해당하는 실험 참가자들이 대체로 자신의 실력을 평균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뭘 보고 읽고 행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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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3 소설 보다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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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계절에 한 권뿐인 것이 완벽하게 느껴지면서도 아쉽다. 현실도 시간도 잊게 해주는, 다른 세계 속에 깊이 침잠하게 해주는 장편 소설을 좋아하지만, 뒤척이는 환절기 침상과 꿈속에서도 <소설 보다> 단편들을 반기고 좋아한다.

 

어둡고 무더운 9, 더 의젓하게 가을날을 기다려 골라 읽지 못하고, 청명한 가을을 바라며 기도처럼 읽었다. 허술한 사회와 결곡한 작품의 괴리에 갈증이 나서 부드러운 커피 생각이 났지만, 확실하게 망하는 길이라 참았다.

 

작가들이 선택한(?) 소재들이 누구의 삶에도 있을 것들이라, 연작이 아닌 다른 작가들의 단편이 사는 이야기로 죽 이어져 읽혔다. 소설 속 인물들보다 체력도 의지도 날로 핍진乏盡한 나는 그들과 다른 선택들만 하게 될까.

 

돈과 빚, 죽고 나서 남기지 않도록 해결해야할 반려의 책임과 의무, 어떤 이유든 누구나 언젠가는 1인 가구로 살게 될지 모를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장수를 보장하는 기대수명, 그래서 좋은 것, 좋아하는 것은 모두 미래로 유예한다.

 

사람을 부르는 방식을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호명 방식에는 반드시 시선이 개입하지요. 시선에는 보는 사람의 태도와 대상과의 관계성이 스며들어 있고요. (...) 그래서 늦게까지 읽기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을 전면에 보여주고 싶은 소설인 만큼 김미경과 송숙은과 오주리와 태지혜(이상 가나다순이자 이름을 지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순) 대신 소설가와 시인과 번역가와 철학자라는 호명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반려견과 딸과 전남편의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글을 쓰는 이들의 생계를 생각한다. 갖가지 갈등 속에서 방법과 타협지점을 찾는 과정이 경이롭다. 이들이 함께하는 풍경은 모두 미래형이다. “(...) 할 것이다.” 가능성만으로 존재하다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는 미래는 슬프다.

 

이들은 (...) 스스로 기약한 가까운 내일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지뢰밭 같은 오늘을 회피하지 않는 기개가 있어요. (...) 이들을 추동하는 힘은 앓는 사람이자 생존 중인 사람인 철학자를 향한 무한한 경의, 그리고 녹록치 않은 자신들의 오늘에 완벽에 가까운 내일을 선물하고 싶다는 투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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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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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경망이 번쩍번쩍하고 심장이 쿠웅쿠웅했다. 나만 모르고 살았네, 박영 작가님. 스릴러란 정보를 들어버려서, 주말엔 책 읽지 말고 몸 쓰는 삶 살자, 란 결심은 이번 주도 못 지켰다. 구경만 하려했는데 충격 속에서 다 읽었다.

 

욕망을 따르며 약자를 죽이는 일은 유구한 인류의 고질적 행태이자 문명 자체인데, 그럼에도 삽을 들어 올려 내리찍는장면 아니 문장에서 눈을 감았다. 신경 어딘가가 찔린 것처럼 이를 꽉 물었다.

 

교육받고 사회화되고 욕망만을 위해 살지 않도록 관리되지 않는 인간은, 촉발의 계기가 무엇이든, ‘무엇이든 하는존재로 변한다. 주저함이 없기 때문에 예측과 예방과 저지가 어렵다.

 

이번에도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악몽처럼 지나갈 거라고.”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가능한 자산이 있다면 욕망만큼 거센 동력으로 면죄를 꾀하고, 명분을 만들고, 진실을 더럽히고, 타인을 거침없이 공격한다. 그러니 그만큼 끈질기고 뜨겁지 않으면 처벌도 쉽지 않다.

 

인간은 반성보다 자기 합리화를, 고통보다는 안락과 포만감을 추구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뇌는 기억을 삼켜버린다.”

 

반백년을 살고 나서, 그보다 더 오래된 사건사고와 범죄들이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수많은 사례들을 알게 되니, 15년 전이라는 소설 속 과거 역시 옛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와 면죄의 창성한 호시절인 듯 어지럽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니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한 거다.”

 

미화되었지만 실은 기능적인 한국사회의 가족관계와, 개인주의가 뿌리도 내리지 못한 전체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도구주의적 쓰임에서, 어떤 열기들이 형태를 바꾸어 생멸하는 과정을 살다 지친 독자로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기분이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벼랑 끝에서 인간의 품위와 선의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닐 듯싶다. 그러니 내가 조금이라도 덜 유해하게 살 수 있는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이다.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은 행운.

 

그래서 더욱 모두 다 알면서도, 삶과 목숨과 가족과 그 모든 것을 희생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면서도, 함께 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저항해야하기 때문에, 끝까지 용기를 낸 분들의 삶과 서사가 눈물겹고 존경스럽다.

 

그러니 그런 이들을 함부로 모욕하는 일은 저열하고 천박하다. 최소한과 최저선이 없다면 무엇으로 합의하고 삶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나. 평화로워 보였던 공간의 괴물들, 아니 그저 인간의 어떤 진면목.

 

어른으로 사는 일이 무겁다. 알고도 모르고도 얼마나 많은 방관과 협력을 하며, 이익을 추구하며, 불의의 총합을 늘려가고 있는지. 그렇게 절망시킨 사람들은 얼마일지. 고단하고 피로하다고 외면한 순간과 삼킨 기억은 또……. 작품 전개의 속도감만큼 죄책감도 빠르게 돌아오던 작품이었다.

 

태워도 사라지지 않아, 덮어도 감춰지지 않아, 잊어도 지워지지 않아.



 

! <낙원의 기억> 작은 책자도 꼭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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