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가을하다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10월
평점 :
품절


기대되는 반가운 구성입니다. 넉넉한 7개 구성이라 좋고 다양한 맛을 즐기는 시간이 고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살 위로 사전 - 나를 들여다보는 100가지 단어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휘는 예외처럼 늘었다가 이내 어휘부족의 상태로 탄력 있게 돌아간다. 이제 제발 그만 쓰고 싶은 어휘들이 많지만, 그것들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멍한 머리로 결국 쓰던 걸 꺼내 적는다.

 

꼬맹이가 아홉 살일 때 <아홉 살 마음 사전>을 펼쳤고, 아홉 살보다 나이 많은 독자가 더 자주 오래 보았다. 아홉 살의 마음도 마흔 살의 마음도 여전히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운 책인가.


 

100가지 단어이니 매일 필사하면 올 해가 다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젠 시간이 가는 것이 상당히 두렵다. 소멸하는 기억들이 줄이는 삶의 길이만큼 더 빠르게 생이 끝나 가는 것도 같아서.

 

내 해마가 너덜너덜해서 삶의 스냅샷을 더 이상 찍거나 기록하지 못하면, 차라리 사진기를 꺼내볼까 싶기도 하다. 보고 싶은 많은 것들이 상상 속에 미래에 있으니, 현실의 사물과 풍경에서 무엇을 피사체로 삼을까 막막하긴 하지만.

 

언어가 좋고 사전도 좋다. 나는 사전 읽기를 자발적으로 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기분일 때도 사전을 펴곤 했다. 그땐 명백히 틀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우기는 권력을 보고 살 줄 몰랐네.

 

살고 보니 마흔은 노화가 본격화되기 직전의 나이이고, 사십 대는 그렇게 하나씩 받아들이며 새로운 몸에 적응해야하는 동시에, 늘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여전한 책임과 의무도 견뎌야 하는 무겁고 힘이 많이 드는 생의 주기였다.

 

그러니까…… 이틀이나 늦잠을 잘 수 있었던, 불안이 점차 줄어들던 연휴의 마지막 날, 마흔 살은 지났지만, 곧 사십 대가 끝나는 나에게 위로가 될 내용만 시작 단어들에서 골라 읽었다. 그럴 수 있어서, 울리기도 웃기지도 않아서,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 사전이다. 오래 여러 번 펼쳐보게 될 것이다.


 

* 각별하다: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하게.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것.



* 값지다: 나답게 살고 있다는 것.



* 고요하다: 나도 강물이 되어본다.



* 괜찮다: 여기까지 온 게 어디인가. 날숨으로 걱정을 내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목록>을 읽고, 나만의 사례 목록 만들기 좋은 연휴였다. 산업화된 가부장제 명절이 매년 더 지겹고 버겁지만, ‘명절 후 이혼상담 증가정도로 다루는 문제를 하루 빨리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개인과 한국사회 모두에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의 백인 남성자산가로 태어나지 않은 이들은 크고 작은 불평등을 완벽하게 피할 방법이 없다. 그 불평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건, 오래된 고정관념과 시스템과 (그렇게 반응하도록 사회화된)자발적인 개인들이 있다.

 

고정관념에 숨이 막히고, 조직적으로 차별 당하고, 사적인 관계에서도 갖가지 위계와 폭력을 경험한다. 성차별은 보편 문화처럼 만연하고 성추행과 성폭행은 연령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여성들이 겪는다. 한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20만개가 넘었다는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의 사례 숫자는 성차별이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확증이다. 만연한 공통/유사 문제는 개인을 처벌하고 비난하고 바꿔서 해결할 수 없다. 저자의 선언처럼 바꿔야 할 것은 시스템이다.

 

착한 여자. 완벽한 피해자. 상냥하고 예쁘고 순수하고 신중하고 길을 벗어나거나 빨간 모자처럼 늑대와 이야기하지 않았던 여자.”

 

살던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이 어떻게 여성의 책임인가. 여성에게 조심하라거나 행동을 고치라는 말은 아무 도움도 안 되고 해결책도 아니다. 투명인간이나 초능력자가 아니면 피하거나 막을 도리가 없다.

 

여자들은 도처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흘에 한 명씩. 문제는 (...) 남자들이 우리를 죽이기 때문이다.”

 

소위 선진국에서도, 성차별과 성범죄는 녹아든 역사처럼 근절된 적이 없다. 사람들 중에는 경험하지 못해 공감할 수 없는 이들도, 시스템과 제도에 동화되어 공감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어느 쪽이든 진실이 모자란 가짜 세계에 가깝다.

 

대학교 때 내 남사친은 자신이 홀로 하는 밤 산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별빛 아래서 인적 없는 거리를 몇 시간씩 걷기도 하고 때로는 일출을 보기도 했다고. 그가 이야기하는 즐거움과 고요가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가 너도 해보지 그러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

 

평등을 지향하고 불평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근절하고 재발방지를 해야 할 분야들 - 교육, 경찰, 사법, 정치, 언론 - 이 불평들의 원인이 되고 가해를 하고 피해자의 증언을 막고 때론 회복할 수 없는 좌절을 안기는 현실이 참담하다.

 

우리는 강간을 합의되지 않은 섹스라고 부르지만 절도를 합의되지 않은 대여라고 하지도, 납치를 합의되지 않은 여행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수사와 기소를 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성범죄만큼 견고하게 뿌리박혀 있는 범죄는 없다.”



 

그러니 더욱 변화의 걸음은 느려도 방향은 바로 봐야 한다.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전 세계 누구나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일상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할 말이 넘쳐나는 사람들도 넘쳐 나니까.

 

범죄를 규명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성차별 역시 사례들을 적은 목록을 통해 실체화되고 증명된다. 개별 사례들이 실은 교차한다는 것을 더 많이 연결해서 더 선명하게 증명해야한다.

 

이미 다친 것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상처를 낫게 해서 더 이상은 아프지 않은 흉터로 만들 수는 있다. 울음과 눈물과 함께 시작하게 되더라도 언젠가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응원한다.


 

<가디언>에서 저자의 글을 찾아봤는데, 가장 최근 글이 10개월 전이라 아쉬웠다. 역시나 주제는 오래된 현재 진행형이었다. 현실은 오늘도 답답하지만, 그래서 더 반갑게 읽어보았다. www.theguardian.com/profile/laura-bate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타버스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어 있는 배경에 살짝 놀랐다. 십여 년 만에 세상을 떠난 가족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몹시 쓸쓸하고 슬펐는데,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를 하시는지 그 재미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작품 속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고 귤도 제목부터 등장(?)하는데, 겨울방학이 지나면 늘 옷이 작아지던 나는, 겨울이 성장의 계절이었고, 그 풍경 속엔 늘 귤이 함께 했다. 이런 낯섦이 이상하게 유쾌하고 묘하게 설렌다. 판타지처럼.

 

그땐 참 시간이 더디 갔지. 학교를 졸업해도 또 학교, 시험을 끝내도 또 시험, 교복을 벗으면 또 다른 교복이었잖아.”

 

고등학생인 아이는 나와 다른 고등학교 시절을 산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서 알은체를 할 일이 적다. 그리고 많이 잊었다. 나는 잊어서 문득 외롭지만, 아이는 기억해서 아직 그리운 것들이 더 많다.

 

무언가를 기다릴 이유가 있다면, 그게 뭐든 행복하고 좋은 거야.”

 

아이든 어른이든 현실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촘촘하게 경쟁하고 노출되는 시절에 가상공간의 확장은 필연인가 싶기도 하다. 기록이 저장되고 복원되고 재생되는 세계라면 더욱 더.

 

그리운 이를 드물게 꿈에서 만나고 기억하고 때론 울면서 잠에서 깨는 일은, 의식이 돌아오는 마지막까지 애달프고 안타깝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목소리가 같은 인공지능이 있다면, 나는 수다쟁이가 될 지도 모르겠다. 상상만으로 눈이 뜨거워진다.

 

특히나 작품 속에 구축된 형의 공간처럼, 세상의 모든 해야 하는 일들 말고, 혼자일 때 하고 싶었던 일로 마련된 세계는 행위 주체의 모습과 본질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질문은 존재를 규명하듯 입체적으로 바뀐다.

 

형은 어떤 학생이었을까?”

 

형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어?”

 

매력이 많은 작품이라 스포일링이 될까 쓰려던 문장들을 자주 머뭇거렸다. SF 추리소설처럼 작가는 여러 단서들을 별조각처럼 뿌리며 이야기를 전개했다. 페인트를 기억하듯, 한편 반전이 놀랍고 다른 한편 맑은 시처럼 아름답던 이 작품도 귤을 볼 때마다 기억날 것이다.


 

늦게라도 안녕, 늦었지만 안녕. 주인공을 부러워하며 결국 서로를 모르고 이별한 모든 조우를 잠시 떠올렸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그것이 관계의 일반성이라면 심장이 허물어질 것 같다. 올 해 겨울과 귤은 더 특별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임호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읽고 나니 어떤 조급한 해방감이 들었다. 멋대로인 글을 감상이라고 적을 것만 같아서 걱정이 거세졌다. 세상 다정하고 반가운 제목의 이 책은 반백년쯤 살고 나서야 겨우 조금씩 보이는 삶의 진상을 일상의 기록처럼 보여주었다.

 

삶도 세상도 단정할 거라고 오래 믿었다. 몇 가지 수식이 품은 우주적 의미가 잘 해석되면 차근차근 올라가는 계단처럼 삶에 대한 설명도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낯설어진 건 인간 자체이다. 더 정확히는 뇌 기능에 좌절했다.

 

뇌과학 지식은 답답함과 갑갑함과 불가해함과 부조리... 모두를 흔한 가능성으로 포용하였고 그 당연한 수용에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알던 세상이 전혀 모르던 곳이 되고, 친밀한 존재들이 매순간 낯설어졌다.

 

나는 온통 혼란스러웠다. (...) 마침내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소. 참된 글을 쓰기로 말이오. (...) 지금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내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시내를 헤매고 있을 거요.”

 

성장기에 배웠던 거의 모든 지식정보는 쓸모가 없어졌고, 최근엔 뇌가 없어도 인간보다 복잡한 수준의 학습이 가능하다는 걸 상자해파리를 통해 밝혀졌다. 신경 세포 1000개만 있으면 생존과 학습이 가능하다. 인간의 비효율성이라니.

 

이야기가 제공하는 미스터리 속에서 내가 즐겁게 혼란스러울 때, 20년의 간극을 두고 동일한 삶을 걸어가는 두 인물(혹은 아닐 수도)은 그 길을 가르는 다른 선택을 한다.

 

동일한 존재가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할 수 없다면 모든 경험은 다르다는 물리학을 전공한 독자로서, 이런 편차는 필연이고 오류가 아니지만, 두 존재가 아니라면, 이 결정은 어떻게 문해되어야 할까.

 

삶도 사람도 잘 모르겠다고 항복하고 나니, 세상이 더 미로 같다. 마침 미니멀리즘이 유행했고, 나는 물건 대신 관계를 벗겨내고 쳐냈다. 그 마지막에 진실의 고갱이 같은 것이 나타날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조급한 해방감으로 시작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신경은 더 팽팽하게 긴장했다. 실존을 묻는 질문은 어렵지 않은 적이 없고, 타자성을 통해 자신을 알아보는 인간은 늘 사랑의 방식을 택함으로써 모든 것은 더 복잡해지고 만다.

 

마지막의 반전이 마치 삶의 가장 지독한 오류 같았다. 혹은 사랑의 본질이란 늘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기확신을 확신하는 시간과 혼란의 시간이 교차하는 한 시절일 지도. 때로는 더욱 허망한 망상일지도.

 

지난 주 본 화재(?) 영화 <A fire>는 이 책처럼 내겐 혼동이었다. 계획과 이성과 논리와 서사를 대신하는 내가 속하지 않은 세대와 문화와 삶이었다. 불이 다 삼키기 전에 불구경을 그만 둬야 한다는 조바심에 몸이 들썩거렸다.

 

기성세대의 진정성은 정확성이 빠진 헛소리들이었을까. 그래서 지금 여기에 도착한 것인가. 붉어진 화면 속의 하늘을 느긋하게 보면서 불타고 있는 현실의 집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가득한 그 집을. 현재가 되어버린 모든 과거를, 곧 미래가 될 달라지지 못할 현재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