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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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을 읽고, 나만의 사례 목록 만들기 좋은 연휴였다. 산업화된 가부장제 명절이 매년 더 지겹고 버겁지만, ‘명절 후 이혼상담 증가정도로 다루는 문제를 하루 빨리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개인과 한국사회 모두에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의 백인 남성자산가로 태어나지 않은 이들은 크고 작은 불평등을 완벽하게 피할 방법이 없다. 그 불평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건, 오래된 고정관념과 시스템과 (그렇게 반응하도록 사회화된)자발적인 개인들이 있다.

 

고정관념에 숨이 막히고, 조직적으로 차별 당하고, 사적인 관계에서도 갖가지 위계와 폭력을 경험한다. 성차별은 보편 문화처럼 만연하고 성추행과 성폭행은 연령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여성들이 겪는다. 한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20만개가 넘었다는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의 사례 숫자는 성차별이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확증이다. 만연한 공통/유사 문제는 개인을 처벌하고 비난하고 바꿔서 해결할 수 없다. 저자의 선언처럼 바꿔야 할 것은 시스템이다.

 

착한 여자. 완벽한 피해자. 상냥하고 예쁘고 순수하고 신중하고 길을 벗어나거나 빨간 모자처럼 늑대와 이야기하지 않았던 여자.”

 

살던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이 어떻게 여성의 책임인가. 여성에게 조심하라거나 행동을 고치라는 말은 아무 도움도 안 되고 해결책도 아니다. 투명인간이나 초능력자가 아니면 피하거나 막을 도리가 없다.

 

여자들은 도처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흘에 한 명씩. 문제는 (...) 남자들이 우리를 죽이기 때문이다.”

 

소위 선진국에서도, 성차별과 성범죄는 녹아든 역사처럼 근절된 적이 없다. 사람들 중에는 경험하지 못해 공감할 수 없는 이들도, 시스템과 제도에 동화되어 공감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어느 쪽이든 진실이 모자란 가짜 세계에 가깝다.

 

대학교 때 내 남사친은 자신이 홀로 하는 밤 산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별빛 아래서 인적 없는 거리를 몇 시간씩 걷기도 하고 때로는 일출을 보기도 했다고. 그가 이야기하는 즐거움과 고요가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가 너도 해보지 그러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

 

평등을 지향하고 불평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근절하고 재발방지를 해야 할 분야들 - 교육, 경찰, 사법, 정치, 언론 - 이 불평들의 원인이 되고 가해를 하고 피해자의 증언을 막고 때론 회복할 수 없는 좌절을 안기는 현실이 참담하다.

 

우리는 강간을 합의되지 않은 섹스라고 부르지만 절도를 합의되지 않은 대여라고 하지도, 납치를 합의되지 않은 여행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수사와 기소를 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성범죄만큼 견고하게 뿌리박혀 있는 범죄는 없다.”



 

그러니 더욱 변화의 걸음은 느려도 방향은 바로 봐야 한다.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전 세계 누구나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일상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할 말이 넘쳐나는 사람들도 넘쳐 나니까.

 

범죄를 규명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성차별 역시 사례들을 적은 목록을 통해 실체화되고 증명된다. 개별 사례들이 실은 교차한다는 것을 더 많이 연결해서 더 선명하게 증명해야한다.

 

이미 다친 것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상처를 낫게 해서 더 이상은 아프지 않은 흉터로 만들 수는 있다. 울음과 눈물과 함께 시작하게 되더라도 언젠가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응원한다.


 

<가디언>에서 저자의 글을 찾아봤는데, 가장 최근 글이 10개월 전이라 아쉬웠다. 역시나 주제는 오래된 현재 진행형이었다. 현실은 오늘도 답답하지만, 그래서 더 반갑게 읽어보았다. www.theguardian.com/profile/laura-b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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