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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임호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평점 :
다 읽고 나니 어떤 조급한 해방감이 들었다. 멋대로인 글을 감상이라고 적을 것만 같아서 걱정이 거세졌다. 세상 다정하고 반가운 제목의 이 책은 반백년쯤 살고 나서야 겨우 조금씩 보이는 삶의 진상을 일상의 기록처럼 보여주었다.
삶도 세상도 단정할 거라고 오래 믿었다. 몇 가지 수식이 품은 우주적 의미가 잘 해석되면 차근차근 올라가는 계단처럼 삶에 대한 설명도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낯설어진 건 인간 자체이다. 더 정확히는 뇌 기능에 좌절했다.
뇌과학 지식은 답답함과 갑갑함과 불가해함과 부조리... 모두를 흔한 가능성으로 포용하였고 그 당연한 수용에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알던 세상이 전혀 모르던 곳이 되고, 친밀한 존재들이 매순간 낯설어졌다.
“나는 온통 혼란스러웠다. (...) 마침내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소. 참된 글을 쓰기로 말이오. (...) 지금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내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시내를 헤매고 있을 거요.”
성장기에 배웠던 거의 모든 지식정보는 쓸모가 없어졌고, 최근엔 뇌가 없어도 인간보다 복잡한 수준의 학습이 가능하다는 걸 상자해파리를 통해 밝혀졌다. 신경 세포 1000개만 있으면 생존과 학습이 가능하다. 인간의 비효율성이라니.
이야기가 제공하는 미스터리 속에서 내가 즐겁게 혼란스러울 때, 20년의 간극을 두고 동일한 삶을 걸어가는 두 인물(혹은 아닐 수도)은 그 길을 가르는 다른 선택을 한다.
동일한 존재가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할 수 없다면 모든 경험은 다르다는 물리학을 전공한 독자로서, 이런 편차는 필연이고 오류가 아니지만, 두 존재가 아니라면, 이 결정은 어떻게 문해되어야 할까.
삶도 사람도 잘 모르겠다고 항복하고 나니, 세상이 더 미로 같다. 마침 미니멀리즘이 유행했고, 나는 물건 대신 관계를 벗겨내고 쳐냈다. 그 마지막에 진실의 고갱이 같은 것이 나타날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조급한 해방감으로 시작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신경은 더 팽팽하게 긴장했다. 실존을 묻는 질문은 어렵지 않은 적이 없고, 타자성을 통해 자신을 알아보는 인간은 늘 사랑의 방식을 택함으로써 모든 것은 더 복잡해지고 만다.
마지막의 반전이 마치 삶의 가장 지독한 오류 같았다. 혹은 사랑의 본질이란 늘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기확신을 확신하는 시간과 혼란의 시간이 교차하는 한 시절일 지도. 때로는 더욱 허망한 망상일지도.
지난 주 본 화재(?) 영화 <A fire>는 이 책처럼 내겐 혼동이었다. 계획과 이성과 논리와 서사를 대신하는 내가 속하지 않은 세대와 문화와 삶이었다. 불이 다 삼키기 전에 불구경을 그만 둬야 한다는 조바심에 몸이 들썩거렸다.
기성세대의 진정성은 정확성이 빠진 헛소리들이었을까. 그래서 지금 여기에 도착한 것인가. 붉어진 화면 속의 하늘을 느긋하게 보면서 불타고 있는 현실의 집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가득한 그 집을. 현재가 되어버린 모든 과거를, 곧 미래가 될 달라지지 못할 현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