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날들이 단단한 인생을 만들지
임희재 지음 / 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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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자기중심을 잡고 단단하게 사는 일도 쉽지 않지만, “다정함은 더 큰 능력이자 어려운 수행이라 생각한다. 한동안은 다정함은 성격이나 태생적 기질과 관련이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살아갈수록 그렇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일회성이 아니라면, 다정한 존재로 살아가는 일은 지극한 노력과 갱신을 필요로 한다.

 

또한 다정함이란 판단의 부재나 구별 없이 좋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정확하게 자기 의견을 갖고 표현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면서도, 상대와 세상을 향하는 방식과 태도는 여전히 다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참 어려운 수행을 요구한다. 내가 이해하는 다정함은 고도로 사회화되고 훈련된 인격이다.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상대를 존중하고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

 

짐작보다 더 다정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는, 경험을 배움으로 채우고 품어서 전하는 능력을 가졌다. 같은 시공간에서 유사한 경험을 해도 체험은 모두 다를 수 있다. “눈을 부릅뜨고 의견을 피력하는 법서로의 세상을 확장하는 열린 대화법은 이렇게 공존 가능하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얻는 확장적인 경험들을 만나서 반가웠다. 사반세기 전이긴 하지만, 나도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떤 스트레스는 전무하다시피 줄었고, 동시에 세계와 사람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구체적으로 배웠다. 편견과 선입견은 실체를 모를수록 공기처럼 팽배하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동성, 이성 할 것 없이 결혼을 생각할 만큼 관계가 깊은 커플이 결혼 대신 팍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상 말이 동거지, 팍스 커플은 여느 부부처럼 살며 자식을 낳아 키우기도 한다. 게다가 팍스 제도는 외국인에게도 활짝 열려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세월이 지나 달라졌지만, “사람이 사는 일에 보편적인 질문과 문제와 해결하려는 노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구분하는 벽을 크고 높게 쌓는지, 더불어 사는 인식이 커지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장 보수적인 가치가 가장 진보적인 사상처럼 들리는 것이 상당히 서글프기도 하다.

 

인간이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 “안전한 공간에서 살 권리는 여전히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어서 괴로운... 전쟁이라는 변명 하에 자행되는 계획적 집단 살해의 현장에서... 매일 살해되는 이들의 소식을 찾아보지 않은 날들이 길어지고 있다.

 

손쉬운 결론이나 행동이 혹시 게으르고 폭력적인 방식인지 경계해야한다. 어려운 일들 중에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 중에는 구분과 조건을 따지는 대신, 인간이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 서로에게 가능한 다정한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평생 제자리걸음만 할지도 모르지만, 다정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나에게 다정하고 단단한 위로가 된 고마운 이야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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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염라가 산다 - 제1회 사회평론 어린이·청소년 스토리대상 수상작 사회평론 청소년문학 1
이담 지음 / 사회평론주니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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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저승이 세워진 후 저승 영혼들 사이에 불만이 가득했다.”

 

돌아가셨다란 표현을 일상어로 쓰지만, 어디로 가신 건지는 종교별로 개인별로 분분하다. 선친이 떠나신 후 그리움이 커질 때마다 나는, 부디 어딘가 다른 세상에 잘 도착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 필요를 이해하니 메타저승과 관련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우리 집 십대들이 읽기 전에, 내가 먼저 즐겁게 읽는다.

 

주인공인 차기염라대왕이 이승에 내려와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전개, 묘사와 설정이 촘촘하면서도 미스터리해서 재미가 크다. 아이들의 사연이 훨씬 더 방대한 어른들의 사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추리소설 읽듯 집중해서 읽게 된다. 시신으로 발견되어 깜짝 놀랐지만, 그래서 저승이 개입할 확실한 이유가 생겨 이야기가 명확해진다.




 

이진이 빙의가 됐다는 건 원망의 마음이 풀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고 가슴에 사무친다는 뜻이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가볍게(?) 읽을 거란 선입견은 이번에도 깨졌다. 짐작하는 바를 족족 능가하는 반전들이 계속 이어진다. 깜짝 놀랄 만큼 서늘한 이유를 만나고서 이복동생인가 했던 흔한 설정은 머릿속에서 재빨리 자취를 감춘다. 스포일링 방지를 위해 어떻게든 중요한 반전 내용들은 피해서 기록해야겠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괴로운 일은 무엇일까. 그 순위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버림받고 부정당하는 것은 성별 나이 불문 참 아프고 서러운 일이다. 현실에서는 사정을 다 알 기회가 적으니,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토록 생생하고 자세하게 심정을 들려주면서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제안이 더없이 고맙다.

 

책임져야 하는 무언가가 살아갈 힘이 되곤 해.”

 

버림받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서 길냥이 이야기를 넣어준 것도 좋고, 촘촘한 차별이 어떻게 큰 원칙을 교묘하게 피해 일상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는지, 그 복잡한 사정과 심정을 차분하게 드러내는 것도 귀하다. 재미있게 속도감 있게 읽다가도 가만히 한참 생각하게 되는 사려 깊은 청소년 문학 작품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이러저러한 성장의 어려움을 겪지만, 안타깝게도 그 경험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만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입장이 가장 중요해지고 타인의 - 사회적 약자로서 어린이, 청소년 - 입장에 대해, 늘 진심으로 진지하지 못한다. 성인독자로서 자주 부끄럽고 반성이 되는 지점이다.

 

나는 독립된 존재로서 지금, 이 순간 분명히 여기에 있다. (...) 지금껏 로서 살았다.”


누구의 삶도 개별 선택들이 모인 합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삶이 죽음으로 모두 끝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다른 이들에 의해 영속성을 가질 수도 있다. 저승세계와 영혼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한 영혼이 고유한 유효기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복잡다단한 감정에 휘둘리며 몹시 힘겨운 감정을 품은 채로, “사랑받지 못하고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던 영혼이 지닌 아픔은 크고 무겁다. 의도가 있든 실수든 미숙이든, 가해를 한 상대가 사과를 먼저 해주는 것은 단단한 마음의 매듭을 푸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

 

주인공 염라희처럼 나도, 이진이 순순히 저승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기쁘고 시원하기보다 마음이 먹먹하게 아팠다. 가족을 향한 마음과 양육자의 사랑을 바라는 강렬한 바람은 비례하는 아픔과 상처를 야기한다. 상대를 아프게 상처주려는 행위는 때론 자해와 같은 몸부림이다.

 

잊었던 중요한 것들, 더 숙고해야할 것들, 반성해야 할 것들, 기억하고 변화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며 읽다가, 마지막 반전에서 크게 웃었다. 정말 상상도 못할 반전이라서 오히려 통쾌했다. 차분하고 진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위트 가득한 아이디어도 샘솟는 멋진 작가님이다.

 

반전 이후 염라희의 생활이 너무나 궁금하다. 시리즈로 나올 이유는 분명하니 꼭 다음 이야기도 써주시면 좋겠다. 빨리 써주심 더 감사하겠다. 우리 집 십대들의 후기도 무척 기대된다. 선선한 가을, 함께 읽고 재밌게 얘기 나눌 시간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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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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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을 넣은 맥주가 돈이 된다는 걸 간파하자 (...) 맥주를 만드는 주체 또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처녀와 과부부터 업계에서 밀려난 거죠.”

 

지난주에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과음(?)했다. 선친 일주기 제사라는 핑계도 있었다. 뇌세포가 얼마나 급격히 망가졌는지 사흘이나 멍했다. 그래봐야 한두 잔 마시던 것에 한두 잔 더 추가되었을 뿐이지만.

 

식욕이 시큰둥하니 삼시세끼가 저주 같다. 남이 뭐 먹는 지도 별 관심이 없어서 먹방도 술방도 안 보니, “술꾼도시 처녀들도 못 봤다. 그래도 남이 해주는 음식은 대개가 맛있다고 느낀다. 노동은 역시 인간에게 해로움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산 덕분에(?) 대학생이 되자마자 - 미성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주류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못할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폭음이 급속 사교의 최적화란 믿음이 성행하던 시절이다.

 

양조산업의 상업화와 기독교의 합동 공격으로 인해 에일와이프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이야기.”

 

소주와 막걸리와 라거 맥주와 한국산 와인과 가짜 양주가 너무 맛이 없어서 다행이었을까. 뭐에도 잘 중독되는 성향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다 싱글 몰트 위스키와 코냑과 유럽 어딘가에서 만든 공정가 와인 등등을 알아간 건 영국 유학 시절이었다. 포만감이 싫으니 안주가 빈약한 한두 잔 술자리가 반가웠다.

 

의미 불명인 위하여~”, “건배~”, “~” “파도타기등이 없는 조용한 시간도 좋았다. 워낙 흐리고 춥고 비가 오다 말다하고 해가 너무 빨리 지는 계절이 길어서, 알코올은 더 잘 어울렸다. 이불킥 에피소드들도 비로소(?) 생겼다.

 

찬차만별이었던 보드카의 도수를 40도로 통일시킨 건 주기율표의 아버지 멘델레예프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음복과 선친을 핑계로 홀짝 거린 술이 도와 쓰는... 그런 글이다. 만화라서 작가의 표정이 다정한 육성처럼 들리는 주정이기도 하다. 이런 술 좋아하고 들려줄 얘기가 마르지 않는 친구가 그립다는 투정이기도 하다,

 

알코올 때문만은 아니고, 덕분에 민망하게도 여러 번 크게 웃었다. 술분해를 전혀 못하는 선친이 만들어 주시던 그믐날의 칵테일이 그리웠다. 너는 마시라고 미리 사다 놓으신 맛있는 술을 즐기던 자리가 쓰렸다.

 

작가가 술 이야기 말고, 자꾸 너나없이 이러저러하게 힘들게 살아오는 이야기를 풀어서 별거 아닌 술에 빨리 취한다. 온 세상이 남성 화자로 시끄러워서 귀가 아플 때마다, #이야기장수 에서 계속계속 출간하는 여성 작가들을 떠올린다. 모든 술보다 더 강력한 위로다. #술만화에세이 참 좋네. #미깡최고 #김혼비작가님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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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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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냥 신간 나올 때마다 다 읽습니다. 그런지가... 1993<개미>부터...입니다. 이번엔 혼종 인류입니다.* 무시무시하고... 궁금합니다. * <멸종 위험에 대비하여 현 인류를 보완할 세 종의 혼종 신인류 창조에 대한 시도>




 


내 조상은 인류의 진화가 세 가지 경향을 따를 거라 추론하셨지. 더 작고, 더 여성적이고, 더 굳게 연대하는 쪽으로.”

 

SF 문학의 오랜 팬이다. 어릴 적엔 픽션다운 상상력을 미처 미래로 그리지 못한 채로 즐겼고, 21세기가 되자, 작품 배경인 미래가 근미래로 초근미래로 가까워졌다. 이제는 문학이 과학기술의 활용과 문제를 따라잡듯이 현실이 된 소재로 택하기도 한다. 혼종 생체 실험은 전공자자 아닌 내가 알기로 이미 30년도 더 된 이슈다. 연구범위와 소위 완성도에 대해서 일반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지만.

 

작품 속 사피엔스는 기어이 핵폭탄을 마구 쏴대는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테러와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이니, 현실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서 쉬는 호흡마다 소름을 삼킨 듯 으슬으슬하다.

 

생은 찾고자 하는 이들에겐 방법을 찾아 줬어.”

 

진화는 무정하기만 해서, 의지도 계획도 없이, 각종 형질을 가진 개체들을 던져놓는다. 살아남아 우세종이 되면 성공한 진화가 불린다.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들이 더 많아져야 살아갈 힘이 생길 텐데, “상호 보완적 에너지를 지닌 생명체만 멸종되는 듯해 자꾸 힘이 빠진다.

 

근현대 프랑스 문화로 사회화된 작가는 자유 의지와 운명을 온갖 우여곡절이라는 삶 속에서 지향과 목표점에 도달시켜주는 혼합 동력으로 삼는다. 혼란스럽지만 그만한 자각을 품고 일생 살아가는 이들 또한 얼마나 소수일까 싶다. 보인다고 다 알아 보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명백해서 보이지 않는 것은 늘 있다 - 많다.

 

“<키메라>라는 말은 실현할 수 없는 것, 유토피아, 무모한 꿈, 환상과도 동의어가 됐어.”

 

재미는 보장이니 그저 읽으시라. 읽다 보니 나는 다시 오래 된 질문과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문제에 이른다. 생의 반환점을 돌아서인지 지쳐서인지 희망이나 낙관을 애틋해하지 않아서인지 예전처럼 서글프거나 힙겹지는 않다.

 

,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한 이들이 부디 살기로결심하고, 다정한 방식을 해결책으로 선택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피엔스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가장 느리고 완곡할) 사랑으로 행동해주기를.

 

살면서 우리는 대체로 두 갈래 길 앞에 놓이죠. 공포의 길과 사랑의 길. (...) 사랑이 당장 가능하지 않다면 일단 눈을 맞추고 서로 이야기하고 귀담아듣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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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알고 싶다 : 인상 카페 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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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주말이고 마침 여름밤은 짧지 않아서 더 반가운 책이다. 차례를 살펴보고 가장 끌리는 작곡가와 음악부터 읽어보아도 무방할 구성이라 좋다. QR코드가 있어서 글과 함께 음악 감상하기도 편하다. 내용이 재밌고 문장이 깔끔하다.



 


이 책에 담긴 작곡가들 중에는, 덕분에 추억이 가득한 공연을 즐긴 이도 있고, 연주할 꿈을 오래 가진 이도 있고, 실제로 연주한 애정하는 곡의 작곡가도 있고, 해외에 여러 해 거주할 때 중독처럼 빠져든 이도 있다.

 

음악을 들으며 읽는다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참 행복한 방식의 독서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세 분의 작곡가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감상한 글을 남기려 한다. 독서란 모르는 건 늘 있다는 것을 일깨워져서 매번 즐겁다.

 

제 인생을 음악에 바친 건 모차르트 덕분입니다. 모차르트는 저의 음악에 자극을 주었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사랑하게 해줬어요.”

 

친절한 저자는 각 작곡가별로 클래식 대화가 가능해지는 키워드 10”을 따로 정리해주었다. 스토리는 상세할수록 더 재밌지만, 키워드를 암기할 수 있다면 그것대로 재밌는 기억 방식일 수도 있겠다.

 

또한, “꼭 들어야 할 추천 명곡 PLAYLIST”도 정리해 주었는데, QR코드가 붙어 있어서, 바로 들으며 목차를 익힐 수 있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은 겨울이면 늘 그립다. 아이들과 적당히 환호하며 신나게 보는 크리스마스 즈음의 기억이라 그렇다. 어쩌면 혼자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보러가게 될 지도.

 

쇼팽의 서정성과 리스트의 기교를 약간 낡은, 그러나 깊은 상자에 담아 조용히 열어서 보여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 모든 고통과 탄식을 고스란히 품은 채 계속 연주하고 싶고, 계속 듣고 싶게 합니다.”

 

죽기 전에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들을 한번은 완주 연주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죽기 전이란 것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 아닐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더구나 재작년에 시도해본 연주는... 마치 전생에서 배운 듯, 내 손가락이 아닌 듯 충격적으로 엉망이었다.

 

오토의 유서에는 말러가 좋아하는 도스토엡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구절이 써 있었어요.”

 

초등학생 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하진 못했지만, 말러의 곡들을 지나칠 수는 없다. 껴안고 연주하면 심장을 울리는 첼로의 울림과 떨림을 증폭시키는 깊고 묵직한 튠. 말러가 좋아한다기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으려다 기절할 뻔 했다. 첫 시도에 실패하고 두 번째 함께 읽기 클럽에서 겨우겨우 일독했다.

 

나이가 들수록, 말러의 음악을, 사랑을, 고통을, 삶을, 죽음을, 아슬아슬한 경계의 여정들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버겁다 싶은 순간마다, 말러의 악보에 적인 구원의 순간들이 음악이 되어 내 일상의 공기를 흔들 것이다.

 

잘 몰라도 늘 부족해도, 역시 예술서 독서는 행복하다. 주말도 음악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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