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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라틴어 문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티나 씨.야마자키 마리 지음, 박수남 옮김 / 윌마 / 2025년 10월
평점 :
한동일 선생님 덕분에 라틴어 공부를 재밌게 했지만, 반복하지 않으니, 풍선 바람 빠지듯 잊고 만다. 이 책에는 핵심 문장 65개가 담겼다니, 그건 모두 다 기억할 수도 있겠단 반가운 기분이다. 제일 좋아하는 문장을 골라 필사하는 재미도 좋을 듯하다.

* Vivere est cogitare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 연구에 의하면, 누군가가 디자인을 해서 진화를 전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종이 진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뇌를 집중 진화시킨 종이 살아남아서 가는 향방은 ‘온갖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스스로도 시달리며 사는 모양새가 당연한 것도 같다.
그러니까, 인간은 사유를 무기로 사용하는데 진화적으로 최적화 되어있고, 언제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적극 활용 중이다. 즉, 스스로 애써 생각하지 않으면, 타인의 생각대로 따라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속이고 속고 저항하고 바꾸고 하는 모든 순간이 역사로 기록된다.
* totus mundus agit histrionem 온 세상 사람들이 배역을 연기한다
‘연기’라는 단어에 어떤 거부감이 있는 경우, ‘역할’로 바꾸면 이 문장은 더 선명해진다. 스스로 배역을 지정하지 않고 사는 이는 거의 없다. 그렇게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집단생활을 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인간이라면. 문제는 타인이나 조건 하에서 만들어지고 부여된 역할이 생존과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다.
그런 경우는 의외로 빈번하니,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괴로움에 귀 기울여 얘기를 듣는 편이 훨씬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얘기라고 충분히 할 수 있다면, 모른 채로도 극도로 혐오하고 갈등하는 문제는 좀 더 평화로운 해법을 찾아가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한다.
과거에 생겨났으니, 현재의 내 상황에도 그 통찰을 잃지 않는 문장들을, 짧아서 부담 없고, 그래서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더해볼 수 있는 시간을 즐겼다. 일기 쓰듯, 생각을 남기자니 민망하기도 하지만, 얇고 가볍고 다정한 이 책이 주는 재밌고 따뜻한 위안이 좋아서 즐겁게 소개한다.
* festina lente
나의 최애 문장은, 예전에 자주 사용했던 이 문장이다. 뜻을 아는 분들도 많을 듯하다. “천천히 빨리 와”라거나, “여유롭게 재빨리 처리 해”라거나... 멋대로 번역하며 농담 같은 진담을 자주 전했다. 일견 모순 같지만, 서로 속 타는 상황에서 같이 웃으며 힘을 낼 수 있는 방식이었다. 오랜만이라 몹시 반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