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승무원 - 서비스와 안전 사이, 아슬했던 비행의 기록들 어쩌다 시리즈 1
김연실 지음 / 언제나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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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직 승무원이었거나 나처럼 전직 승무원 친구가 있다면 이 책에 담긴 비밀스러운 뒷이야기가 완전히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물론 항공사에 따라 경험이 천차만별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티웨이 항공 5년 근속 승무원이다.

 

해외 항공사에 50-60대 항공 승무원들이 근무하는 풍경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서비스직 여성들의 나이와 외모가 변태적으로 강압적이기 때문에 장기 근속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몸무게를 매주 측정해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넘으면 감시 메이트가 배정되어 몸무게가 줄 때까지 지켜본다고 했다(꽤 오래 전이긴 하지만!).

 

불규칙한 근무 시간불편한 복장온갖 불필요한 스트레스까지 승무원은 고단한 직업이다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격한 드라마가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끊이지 않는얘를 들면해외 도피 범죄자부터 외교관까지 다양한 승객들과의 일화들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승무원을 직업으로 동경한 적이 없으나 승무원으로 입사하여 5년간 근무하고 현재는 취업 멘토링을 하는 저자 김연실은 내가 느끼기엔 적어도 내 친구보단 긍정적이고 모범적이고 열심인 분으로 느껴졌다본인은 똘끼로 중무장 했다는데 무척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들이다신발 벗고 타세요/쉬는 시간 쥐포 구워 먹기/동료들과 행복수다/도떼기시장 상인을 빙의한 기내판매 등등.

 

그런 저자의 분위기에 맞게 일러두기와 일러스트 모두 귀엽고 재미있다이것은 재밌어서 공개한 일기인가하는 생각도 도중에 들었다.


앞치마 주름이 그렇게 큰일인가요…….

 

항공사는 다르지만 역시나 계약직처럼 불안한 고용 구조는 비슷한 것 같고 - 1년 단위로 의무 정기 교육을 받아야 자격을 유지한다거나위계질서라는 이름의 전체주의적 분위기는 여전히 강한 것 같다.

 

비행 서비스를 이용하던 예전의 나와 나를 감당해주던 승무원들 기억이 난다젊고 무지하고 이해심이 없어 아이들이 비행 동안 얼마나 지겨울지도 부모가 얼마나 피곤할지도 전혀 몰라서통로를 뛰고 노는 아이들을 봐주지 못하고 승무원을 호출했던 낯 뜨거운 기억뒷자리 승객들의 수다가 어쩌면 처음 나선 친구들과의 여행길의 즐거움일 지도 모르는데 망설임 없이 호출 버튼을 눌렀던 미안한 기억.

 

아직 승객들이 탑승을 하기 전인데 제 자리 바꿔달라고 떼쓰다기다리시란 말에 건방진 것들니들이 다방레지랑 다를 게 뭐냐!고 고함을 쳐서 모두를 당혹시킨 몹쓸 인간차분하게 다방레지에게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하던 멋진 승무원 언니등등예전 시절 공항과 비행기 안 풍경들이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쩌다 승무원이 되었지만 멋지다 승무원으로 살아 온 저자라 느낀다평소에 다른 이들을 보면 부럽게 느끼는 활발함과 친근함이다.



전 지구가 여전히 판데믹 상황이고 변이 바이러스들의 출몰과 확산이 불안하기만 한다유럽 본사에 업무로도 이 년째 못 가고 있다는 지인들도 있으니 해외로의 여행은 상상 속에서만 자유롭다.

 

비행 산업에 관련된 모든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 걸까이 책에 소개된 내용만으로도 빡센’ 교육과정을 마침내 마쳤는데 비행이 중단된 바로 그 시기를 마주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부디 매일 조금이라도 숨쉬기 더 편한 날들을 만나시길 바라는 마음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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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문학동네 청소년 53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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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인지 혼재인지 안온한 어린 시절에 그저 상상해본 불행과 슬픔의 잔재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특정 작품과 정서에 반응하는 눈물샘이 있다감정의 밀도가 아주 높고 노골적으로 울어라울어라하는 이야기보다는 웅장한 서사구조에 감동을 크게 하는 경우가 잦다.

 

자라서 과학자가 되고 우주비행사도 되고 지구도 구하겠단 생각을 하던 세대science kids라 그런지도 모른다그런 정서는 골고루 스며있어 연주도 단품 보다는 오케스트라가 좋다헤드폰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은 인간 소외의 대표적 사례라 느끼긴 하지만.

 

수없이 태어나는 별들을 위해 우주는 스스로의 몸을 넓혀 새 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어린 별들은 두렵지 않을까자기 주변의 세계가 자꾸자꾸 커지는 것이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나는 이제 겨우 어른이 되었는데 어른들은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말한다말할 수 없이 넓은 이 우주 안에서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웃분들은 이제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다소 뜬금없는 제 얘기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단 고백이다대서사 구조의 이야기결핍과 비관은 깊고 어둡고갈망과 연대는 높고 황홀한 그런 거대한 격차가 좋다.

 

우주공학의 최정상을 차지한 연구단체는 또한 사업을 막대한 이윤을 거둔 기업의 얼굴을 하고 있다달에 표면에 메지시를 개기는 도구를 만들어 달 자체를 이윤 창출을 위한 거대한 광고판으로 만든 것이다그 모든 욕망이 들끓는 지구로 소행성이 날아오고 있다.

 

엄마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몰라서 그 미움을 모두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나요저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다른 하늘 아래 서면 별자리가 바뀐다같이 본 하늘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곳은 오직 여기뿐이었다흐려지는 기억과 떠나는 사람들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 안에서 나는 변화하고 싶지 않았다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내 자리만이라도 못 박아 두고 싶었다.”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창작 이야기라 해도 지구멸망이란 말은 마음을 깊이 찌른다인류가 오래 살아남아 우주의 비밀도 더 알게 되고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사람과 삶을 대하는 방식이 이토록 멋지고 존경스러운 이들이 사라지는 이야기는 절망적으로 슬프다부디 뜻밖의 희망이해법이 나타나주기를지구와 더불어 생존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읽었다.

 

걷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라고 시구처럼 자신을 소개하는 전삼혜 작가의 시침 뚝 떼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문장이지만내용은 죽도록 사랑하는 이야기였다다 읽은 나는 흉통을 느낄 정도로 아프다열렬히 살자던 젊은 날이 막 떠오르면서 더 늦기 전에 힘껏 사랑하고 싶어지는 위험한 작품이다이 모든 것을 208페이지에 담은 작업이 기적이다.

 

암흑물질에 대해 천문학 책은 외로운 물질이라고 설명했다빛을 잡아 두지만 관측되지 않는다고단지 은하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별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끌어들이고 있으니 거기에 암흑물질이 있다고 하는 거라고나는 암흑물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SF를 태어나면서 좋아한(듯한나는 등장인물들이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처럼 반갑다. SF의 고전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의 매력이자 위대한 메시지는 다른 인종들과 생명체들이 만나서 친구가 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이다여전히 먼지만한 지구 행성의 30%도 안 되는 땅 위에서는 피부 색깔이나 국적이나 종교나 나이나 성별이나 성지향성 등등 온갖 시시한 이유들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들 있지만.

 

사회는 어떤 일에든 자격을 묻고 자격이라는 말로 선을 긋는다

어리기 때문에

신체가 불편하기 때문에

버림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내지 못할 거라는 확신. (...) 

궤도 밖으로 밀려난 주체들이 사랑을 하고세상을 구하려 한다

최종의 최종까지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확신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단 하나의 자격이 필요하다면 바로 간절함이라고.” 


천선란 천 개의 파랑』 저자.

 

이 책을 읽고 <1987>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의 감상이 떠올랐다텍스트 기록과 사진의 불연속적 자료로 만나다 영상 자료를 보니 일련의 흐름 속에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했구나이건 안 되겠다이건 못 하겠다스스로 그어 놓은 인간으로 사는 한계선에 임박해서 불안하고 두렵지만 선택과 행동을 했구나 하는 것들이 한 눈에 보였다경중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모두의 무언가가 중첩을 거듭하여 보강된 파동을 만들고 거대한 물결을 밀어내듯이 그렇게 진행된 것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강인함과 보드라움이 빛이 닿지 않는 달의 뒷면에 따뜻한 구원으로 도착한다저자는 현실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시선의 힘으로짐작할 수 없는 미래를 진보와 희망의 세계로 상상하는 힘으로주류와 규범의 가장자리 밖에 더욱 집중하여 미래의 인류 청소년을 위로하고 살리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열일곱사랑을 받지 못해 주는 방법도 느리게 배우던 우리에게 첫사랑은 봄바람이라기 보단 태풍 같았지.”

 

우리의 궤도가 평행선이 아니어서 다행이야평행선이 아니라면 하나쯤은 교차점이 있지우리는 그 보육원에서 교차점을 이루었고시간이 지나 다시 멀어졌다 해도 교차점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그 교차점이 누군가의 생을 구하기를.”


무슨 말을 보태야 할까요.

혐오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나에게.

그 혐오 속에서 우리가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 일이,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의 방향을 비틀고 표면을 깎듯

예전보다 나은 삶을 위한 우리의 최선이라는 것 외에는.

 

삼혜

 

혹 이 책을 읽으시게 되면 리아제롬리우루카(캐롤린), 세은의 이야기를 잘 읽어 주시고 힘껏 응원해주시길 바란다.

 

나의 자유나의 등을 밀어 준 바람나의 울음 가득한 밤을 지켜준 사람나의 룸메이트. (...) 네가 이 지구에 다시 돌아올 희망으로설령 이 지구에 내가 없더라도.”

 

당신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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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해변에서 혼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3
김현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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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좋다동경한다공들여 잘 벼린 것들이 가지는 분위기가 아름답다그래서 읽지만 매번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가끔은 풀 수 없는 수학공식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읽지 못하는 시잠시도 내 것이 되어 주지 않는 세계는 쓸쓸하다.

 

시를 읽기 전 여타의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다새로 만난 시가 주는 느낌이 깨어질까봐어차피 오롯이 혼자인 유일한 경험원치 않는 색들로 채색될까 경계하는 것이다그러다 아무리 애써 봐도 읽혀 주지 않는 시들을 결국 놓아버린 기억이 오래지 않다.

 

그렇기도 하고고집스런 결심이 약해지기도 하고뭐든 방법이 있다면 결국엔 시를 잘 읽고 이해하는 쪽을 택하리란 이유를 들어 시인의 에세이를 먼저 읽어 보았다작가를 모르고서 작품을 잘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하나 에세이 한 편 읽는 것이 얼마나 이해를 높일까도 확신은 없지만 이번에 그렇게 해 보았다.

 

선입견에 있어서 나는 참 구태의연한가보다시인의 에세이가 뜻밖에 뜨겁고 선명하고 강렬해서 그 어조에 놀라고 어색했다시인은 잠시 화가 난 게 아니라 분노하고 있다그래서 슬프고 그런데 모두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 ♡시집을 넘기는 내 손 끝에서 따끔거리는 불꽃이 빠삭거린다.

 

그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누구와도 있지 않고 그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해변에서는 누구나 남길 것인가 지울 것인가선택의 기로에 선다해변에서 그런 갈림길에 서보지 않은 사람을 나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가지 않은 길에 관해 후회 없이 인간다운 척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나는 그가 사랑의 기로에 서 있길 바란다몰락은 대체로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다.”

 

오래 만나지 못해 더 그리운 친구가 옮겨 살고 있는 제주를 찾아가 어디든 적요하고 아름다운 해변에 앉아 함께 읽으면 좋겠다그러지 못해 아쉽다대신이라기엔 무례할 지도 모르지만 본 적 없는 동물과 새와 식물과 꽃이 함께인 강주리님의 작품 표지를 한참 보았다.



하나도 반가운 뿔소라가 세 개나 있다제주 삼춘들이 바다에서 캐다 준 뿔소라를 꽝꽝 깨부수어 꼬득또득 씹어 먹으라던 다사로운 친구가 더 그리워지고그리움은 이기적이라 그 곁에 가서 앉고 싶어 잔병이 들거나 눈물이 날 것 같다 ― ♡.

 

첫사랑은 그 이후의 모든 사랑은 가사처럼 어쩌다 생각이 나는 게 문제이다아무 일 없이도’ ‘언젠가 조용해진 연인이 되어’ ‘홀로 걷게 되는’ 날이 오면 소리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도 나의 불행만을 확인해준다이별의 시간마저 달리하는 이별을 하고 비로소 헤어질 준비가 된 나는 [뿔소라]를 선물로 내민다그때의 뿔소라가 매끈하고 빛난다면 수명이 다했거나 속이 텅 빈 상태일 것이다이끼가 끼여 두텁다면 아직 살아 온기가 남은 마음이 거기 있을 것이다 ― ♡.

 

뭐 잘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은 아닐진대살리는 것보단 죽이는 게 쉬우니까/사시사철 뜨거운 사람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자국]’ ‘뿔소라의 내장에는 독이 있다는 핑계로 빈 공간으로 날뛰던 사랑도 부재를 견디지 못하던 슬픔도 모두 말 못 되는 지껄임이 되어상대가 홀연히 경쾌하게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서야 남은 할 말에 혼비백산하게 되어잘 사시는지잘 살고 있는지보이시나요저의 마음이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되었는지보이시나요저의 마음이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되었는지 ― ♡.’



네가 보여준 그 날의 바다 풍경이 오고서야 혼자서 해변을 걷노라니 온갖 상념이 반복적으로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의 구절을 이어 읽었다그 여름 해변에서 네가 내 손에 쥐여줬던 조개껍데기에 관해사랑할 때만 소중한 것에 대해.’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발견한 사랑할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의 손에 자꾸만 놓아 준다오래 전 우리가 물고기였을 때 새였을 때 건네던 선물들을 기억하는 것처럼쥐여줬던 손과 손이 향연처럼 떠올라잠시 ― ♡.

 

(...)

어스름한 저녁에 책상 앞에 앉아 뿔소라에 귀를 대보면

언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네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묻는다

 

뭐 해 불도 안 켜고

(...)

 

큰 꿈을 꾸거나 큰 행복을 바라는 방법을 몰라서 평생 작은 것들만 욕심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나도 그렇다소확행을 바라는 큰 무리에는 끼지 못해 혼자 행복만을 알아보곤 한다언젠가의 내 행복도 도봉로 10길 잔치국수에 담겼던 적이 있다플라스틱이 아닌 그릇에 담긴 그릇에 행복했으니까작은 행복의 띄엄한 흔적으로 이어나가는 삶이지만 시인은 큰 시를 쓰기로 한다’ ‘어딘가 복스러운 사람을 보면/무럭무럭 자라서/인류의 등불이 되길/부러워서 부끄럽게/열심히 지켜보았다/해시태그 인생사.’ 나도 바라본다인류의 등불이 출현하길열심히.

 

삶은 오늘도 쏟아지지 않고 슬픔과 더불어 소년은 (...)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내의 이유]는 매일 충분하니 맞다대체로 삶이 문제다끝날 때까진 계속이니까계속 밀고 가야 하니까.’ 이제 남은 삶에는 쫒아 올 행복한 사람도 행복도 없을지 모른다그래도 이럴 수가 아름다워 보여서/희망적인 사람이기로 했다

 

(...)

꺾이지 않는

피를

흘리면서

도망쳤다

(...)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잘 울게 된다특히나 사랑이 사랑에게 사랑을 사랑하자는 스물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다면이 모두를 세 시간에 완독할 수 있다는 네 말 때문에 나는 다시 다사로운 해변에 홀로이다움직이지 못하는 발 옆에 뿔소라가 하나셋 있어 주면 좋겠다두 귀에 입술에 대어보고 싶으니우두커니 남의 인생을 재생하다 보면 (...) 똑같이 따라 써보게’ 되면 따라 읽어 보게 되면. ‘그런 게 간혹 시가 되기도 하고시가 될 뻔 하기도 하고시가 되라고(...) ― ♡.’


...............................................................................

꼭 싸 안고 며칠을 지내 봐도 부화는 없다

그만 품에서 내어 놓을 때


시는


좋고

낯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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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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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좋아하시지요혹 나무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좋아합니다바라만 봐도 즉각 기분이 좋아집니다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 묘목도 한 그루 심어 주셨습니다나무가 저보다 빨리 자라 고가의 지붕을 넘어섰지요.

 

어릴 적 단독 주택에 살 때는 아침에 새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아파트에 살면서 그런 아침이 사라졌는데사라진 줄도 모르고 살다가 유학 시절 기숙사에 살면서 아침마다 수다스러운 새들을 다시 만나고서야 비로소 그 단절을 알아 차렸습니다.

 

2층 기숙사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비로운 떡갈나무Oak tree가 계셨거든요수령이 오래되면 가지가 땅으로 휘어져 굴곡져서 한 그루가 숲처럼 공간을 이루기도 합니다그 가지 하나에 올라가 책을 읽기도 하고 그냥 숨어 있기도 하고반지의 제왕의 그 숲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던 국립공원에 현장 조사 나가던 시절도 그립습니다.



당시 무척 인상적이었던 나무껴안기, Tree Hugging 혹은 칩코Chipko 운동이 있었습니다인도 히말라야 칩코 지역 여성들이 벌목산업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나무를 껴안고 벌였던 조용한 저항운동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가 시애틀에 사는데 워싱턴주 사람들 별명이 Tree hugging hippie people이라고 합니다자연친화적이고환경운동에 열심이고매우 진보적인 정치 성향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책과 무관한 얘기를 지나치게 한 셈인데나무이야기가 즐거워서 그렇습니다그러니 나무에 관한 이 책도 반갑고 궁금하고 행복하게 잘 읽었습니다아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직업과 연구 분야가 있다니뭔가 제 정보지식을 과신하다 다시 한 번 크게 놀란 내용이 가득한 책입니다조금 소개하겠습니다.

 

첫 문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멋진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연륜연대학Dendrochronology’이란 학문 분야를 아시나요나이테에 생장 연도를 부여하고 나이테에 저장된 다양한 환경 정보를 밝히는 학문(옮긴이)입니다


Dendro는 나무라는 뜻이고, ‘Chronos’는 시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 ‘연륜은 나이테라는 뜻입니다(옮긴이). 즉 나무의 나이테가 담고 있는 정보들을 찾아 읽어 내는 분야입니다기후나 토양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관련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저자 역시 나이테가 과학의 한 분야가 될 정보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잠시 상상해보니 나무와 함께 하는 연구란 참 좋을 것만 같습니다나무들은 정말 근사하니까요요즘은 특히 인간의 수명이 짧디 짧게 느껴집니다그러니 몇 천 년 씩 살아가는 나무들이 부럽고 경이롭습니다.

 

나는 연륜기후학자이다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 매년 우리는 기후에 대해그리고 우리가 태운 화석 연료가 기후에 초래한 대혼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 그러나 해를 거듭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억제하거나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심지어 196개국이 모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 찬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한 2015년 파리 기후 협약 이후에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연륜연대학은 생태학기후학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연속적인 나이테 기록은 독일의 참나무-소나무 연대기로 지난 1만 2650년 동안 한 해도 건너뛰지 않았다.”

 

세계적 규모의 네트워크 덕분에 과학자들은 나무가 자라던 지구 표면의 과거 기후는 물론이고지표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권의 과거 기후까지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연륜연대학이 정확하게 밝혀낸 한 해 한 해의 나이테는 인류와 기후의 역사 사이에서 일어난 복잡한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발판과 정박지가 된다.”

 

물론 나를 사로잡은 나이테 이야기들도 들려줄 것이다이 이야기들은 나무 착취와 산림 파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연륜연대학자들로 하여금 과거를 연구하게 만들고미래에도 지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멈추지 않고 최고의 속도로 자신의 닿을 다음 천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지만 과학 진보에 대해 인류는 또한 불신과 무관심도 동시에 높습니다젊을(?) 적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혼란스럽고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예외가 아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오답이 아닌가 생각했지요그런데 같은 연도를 살지만 우리 모두는 또한 각자의 연도를 살고 있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예외도 잘못도 오답도 아닌 팩트였지요항상 그럴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저자처럼 과학적 발견을 재미있어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을 즐거워하는 저자는 짜릿함이라 했지만 그런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과학의 동력은 발견의 즐거움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궁무진하게 재미있습니다. 1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영상 자료로도 기록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나무라는 단일 대상에 관한 과학 분야이지만역사를 오르내리는 풍부한 문명적 사건들을 담고 있고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 문학처럼 읽힙니다무려 지난 2,000년 동안의 지구 날씨와 인류 문명과 생태계의 변화를 저자가 나무와 함께 밝히고자 노력한 기록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폭우와 모로코의 가뭄나이테의 넓이와 해적선여름 추위가 닥친 것과 로마 제국의 멸망나이테에 기록된 어느 해의 화재가뭄추위와 같은 나무의 불만과 우울 증상들나무인데 사는 일은 사람 사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경쟁과 공격이 없고 식량과 물이 풍부할 때 나무도 행복하게 살고 자랍니다그리고 그 행복을 기록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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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의 타이밍
이선주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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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취보다 너의 상처에 닿는 일이 더 아름답다.

 

무루 작가의 추천사에서 만난 문장에 청소년 시절에 가진 마음이 화석이 녹듯 꿈틀거렸다당시에는 진실하고 당연했던 말이었다막 세상의 경계가 넓어지고 현실의 모습들이 보이고 아름답거나 밝지 않은 것들도 직시할 힘이 붙고 용감한 생각도 해보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무척 중요한 시절이다


열여섯 살다섯 명.

 

표지를 보고 그래픽노블인가 했는데 장편 소설이다자주 경험하듯 청소년 문학은 때로 몹시 깊고 날카롭고 직설적이라 예상치 못한 혹은 기대 이상의 충격을 받기도 한다살짝 겁을 내다 읽어 본다.

 

카톡을 하는 데 무슨 의의가 있는 건 아니다그냥 편하기 때문이다편한 이유는친구들 대부분이 하기 때문이다이런 걸 사회 시간에 배운 문화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별 과제를 하는데 카톡을 안 하는 친구 남주가 있다안 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을 수도 있는 문제일까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이상한 것일까혹은 신념일까.

 

다행히 정윤은 남주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일단 나는 카톡 안 하는 게 노력해서 이해하고 이해받고 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랍다저는 안 합니다했다가 엄청 놀라서 안 합니다그렇게는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톡카톡카톡...... (...)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쉴 새 없이 카톡이 울렸다. (...) 단톡방에 제일 많이 올라오는 글은 ㅋㅋㅋㅋㅋㅋ” 였다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카톡이 오면 기계처럼 답했다.”

 

세상은 온라인 쌍과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뉘어 있고온라인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도 서서히 존재가 지워졌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결코 그냥 넘기지 않는다이해하지 못하면 악으로 만들어서라도 이해하고 싶어 했다. (...) 대결만큼 명확한 구도는 없으니까아이들은 (...) 남주를 악의 영역에 두려고 했으며근거를 찾으려 했다그 근거는 대개 실체가 조금 섞인 거짓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사고방식이 무시무시하다방어 기제인지 공격 방식인지 조금씩 헷갈리기도 하지만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인간의 반응 속도는 멈칫 거리는 법이 없다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배운 것들이라 창작물이지만 현실은 더 대단할 듯해서 두렵고 미안하다.

 

단톡방은 진지하게 성찰해야할 문제이지만 첫 번째 순서답게 충격을 유예한 소재이기도 하다다른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들 중 아주 심각한 범죄에 이른 사건을 접하면서는 무척 끔찍했다. 이야기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역시 현실이 더 대단할 듯해서 더 두렵다


한 방에 인생이 결정 나기도 한다고 협박 비슷한 강요를 당하는 시기,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고 강박적으로 훈련받은 아이들의 시기는 팽팽하고 뜨겁다. 아이들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극히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깊이 느낀다.

 

작가는 차분하고 끈기 있게 모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지만나는 아이들의 삶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팽배한 에너지들이 불안해서 조마조마했다결합이 끊어지는 반응 속도가 빠른 물질의 해체를 우리 사회에서는 폭탄이라고 부른다


불안한 심정으로 비극을 목격하는 독서가 달갑지 않았는데, 다행히 작가가 이끄는 먼 곳의 방향이 각자에게 맞는 성장의 모습이라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서는 모습이라 안도했다.

 

기억도 흐려졌고 내 시절과 이 시절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 시기란 궁금한 것은 많지만 되는 일은 적어 힘든 마음을 털어 놓고 싶어도 누구에게 얼마나 솔직해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시간임에는 분명하다진심을 정확히 전할 능력도 부족하고 나를 드러내는 일도 두렵다그런 시절이다


나이가 들면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덕분에 나도 남도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포기도 하게 된다. 비겁한 듯 들려도 덕분에 세상의 모순과 결핍이 조금 덜 고통스럽고 포기한 여백으로 인해 남은 에너지로 희망을 그려볼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마법이나 초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해법은 우리가 아는 그 방법 밖에는 없다.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지만 서로가 아니고서는 희망을 찾을 다른 곳이 없으니까


역지사지


나는 이럴 때 아프던데 저 애도 그럴까나처럼 저 애도 혼자 울었을까나처럼 저 애도 누군가 말을 걸고 마음을 내어주면 반갑고 위로가 될까이렇게 상상하고 용기를 내어 다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


어쩐지 경구만 읊는 것도 같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세상은 공고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거세며 누가 되었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 어른보다 실수가 적고 잘못이 적은 아이들, 미래를  살아 갈 아이들에게 희망을 두고 힘껏 응원한다. 무책임과는 다른 마음으로...  어른들은 부디 현실을 좀 더 잘 책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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