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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의 그녀
허여경 지음 / 상상마당 / 2021년 5월
평점 :
한부모가정과 청소년 환경, 온라인세계의 인간관계, 인간의 실체와 심리탐구, 독특한 무병, 중년의 고단한 삶, 다단계에 휘둘리는 시간, 청춘들의 사랑과 실패, 결혼과 현실까지 녹록하지 않은 주제의 단편집이 반가웠다. 비록 오후 4시는 아니지만 어두워가는 시간 무렵에 단편을 하나씩 읽는 재미를 이전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자가 이 시간을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와 분위기가 궁금해서 단편들 중에 [오후 4시의 그녀]를 가장 먼저 읽고 말았다. 나의 오후 4시는 하던 일을 계속하는 어떤 이름으로도 구별하지 않는 시간이다.
4시가 매일 특별한 시간으로 불렸던 기억은 오래 전 영국의 티타임이다. 슬슬 허기가 지는 시간이라 저녁 식사 시간이 멀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잼과 크림을 듬뿍 얹어 스콘을 먹었다. 처음에 경악스러웠는데 인간의 그 무엇도 아닌 습관에 적응하는 생물이라 곧 오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먹어 치우게 되었다.
저자 역시 오후 4시란, ‘하루 중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어중간한 시간, 인생을 조금은 알고 조금은 모르는 그런 애매한 시간‘이라 한다. 애매한 것은 어렵고 힘이 든다. 그 시간대를 어떻게 견디고 혹은 넘어 가는지 각 단편의 인물들이 더 궁금해졌다.
“아무 준비 없이 임신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어요. 내 몸의 변화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 주위의 따가운 시선보다 처음 겪는 내 몸의 변화에 매일 죽음과 같은 공포가 엄습하는 나날이었어요. (...) 뉴스를 보면 자기 새끼 죽이는 인간도 있던데,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당당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무슨 돈으로 어떻게 아기까지 키우면서 살 것인지가 가장 막막했어요.”
가장 마음을 많이 쓰며 읽은 단편은 [진주의 사랑]이다. 대단하진 않지만 후원하는 카테고리에 한부모가정이 있다. 부모라면 아버지와 아이일 수도 있으나 오랜 후원의 경험으로 보아 한부모의 부모는 어머니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한국 여성들만 단성 생식이 가능하거나 한국에서만 예수가 거듭 탄생할 리도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에겐 어머니만 존재한다.
번듯하게(?) 결혼 제도 속에 안착하고 정규직 벌이가 있는 경우에도 쉬울 리 없는 것이 모두의 일상인데, 그런 안전망조차 없이 여성과 아이가 살아가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어떨지 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대개는 의지처도 도움 받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크다. 간혹 치료가 어려운 병을 앓고 있기도 하고 힘겨운 일상을 유지하다 새로운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가 어떻게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깊고 넓게 질곡한 이들의 삶을 보고 전해줄까 염려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자칫하면 뭐 하나 도움 되는 일 없이 상처만 들쑤시게 되고 이미 만연한 오해와 편견을 강화시키게 되니까. 간혹 나는 사람들이 이해한다는 말없이 그저 경제적 후원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해한다는 말, 은 또 무엇이며 그런 말은 위로가 될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절반 정도는 짐작한 대로 현실의 일화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형편들이 등장하고 일차적 인간관계 맺기 훈련이 부족해 자존감이 낮은 상태의 여성을 자라 무책임하고 아무 의미 없는 시시한 남성에게 이용당하고 부정당하는 그런 이야기 구조가 있다. 짐작대로라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반복되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아쉬운 것은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집안 일’이라 명명된 분야들을 사회적인 일로 많이 이동시켰다. 무법지대였던 가정 내 폭력은 이제 적어도 처벌한 법은 마련해 두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남의 집 일에 간섭했다고 못 마땅해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관련 기관의 대응 실패와 부족함을 지적한다. 반가운 변화이고 고군분투한 많은 이들의 노고에 숙연해진다.
시종일관 어둡고 슬픈 이야기 진행이 아니라 설레고 재미난 내용이라 읽을수록 반갑고 기뻤다. 여전히 한탕주의가 인생 전반을 휘두르는 구조의 한국 사회이지만, 좀 더 사람 자체를 더 잘 보게 되면 그럴 수 있으면 한다. 십대나 이십대에 부모가 된 이들, 자식을 낳아 기르기로 한 이들이라고 남은 평생을 한 가지 호칭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