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과 망원 사이 - 1인 생활자의 기쁨과 잡음
유이영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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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근무지가 합정과 망원 어디였다. 야근과 밤샘이 격일로 이어지는 날이었으니 실제로는 주생활공간이었을까. 답답하거나 친구들이 위문(?)을 오면 함께 얘기하며 걷다 양화대교를 건너 다녔다.  근래 합정동에 들러 올 일이 생겼는데딱히 좋을 것도 없는 추억이 한꺼번에 화라락 덮쳐드는 기분이다이럴 때도 저럴 때도 책을 읽고 자가 치유를 하는 것이 익숙하니 오늘은 이 책을 펼쳐 본다.

 

유이영 저자는 9년차 신문기자이기도 하다 근래 기자인 저자들의 책을 읽게 되는 우연이 이어진다저자는 합정과 망원 사이에선 7년 동안 1인 생활자로 살았다시기는 다를 지라도 상상하고 짐작할 여지가 많아 일반 반가웠다여기를 걸었으리라여기를 달렸으리라저기 음식을 먹어봤으리라 등등.

 

별 일 없는 직장일도 괴롭고 힘든데 일터에서 부당한 미움을 흡수한 시간이 있었다고 하니 숨이 턱 막힌다한강이 가까워 그래도 숨 쉬는 일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역시나 밤의 한강을 달렸다고 한다나는 걷고 저자는 달리며 스쳤을 지도 모르는 시간을 상상하며 뒤늦게 응원을 보낸다.

 

경제지리학에서 분석하는 도시 유형들에는 기술이 집약되고 재능이 모이는 이유에 해당 지역이 관용tolerance’가 중요하다고 평한다살기 불편한 곳에 사람이 모일 리 없으니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지방의 소멸이란 안타까운 현상에는 전체적 인구 감소와 사회적 물적 인프라의 중앙 집중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 지역 사회의 관용성 부족도 한 몫을 할 것이다.

 

남이 나의 모든 이력과 가족관계매일의 일상소위 수저 개수까지 알아야 한다고그게 친함의 척도라 여기는 동네에서 나는 절대 살 수가 없다저자가 합정과 망원 사이에서 7년 간 살고 글로 남길 기억이 축적된 이유는 비혼 30대 여성의 정체성이 도드라지지 않는쓸데없는 스트레스가 줄어든삶의 많은 피로감이 덜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서교동과 합정동 어디 어디가 자꾸 떠오른다주문을 마치고 나면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 카페에 다시 앉아 있고 싶다저자가 언급한 곳들 중 한 곳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정기적으로(?) 방문하던 곳이었고나는 타인에게 불편을 끼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카페에 머무는 것을 한 차례도 경험하지 않았다한 무리의 으쌰으쌰 수다도 호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지적 자체를 못 견디는 남성들도 없었다그립다.

 

그렇다고 합정과 망원에 사는 이들이 마냥 개인주의에 경도되고 매몰되어 사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개인으로서의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한 공동체의 의미와 가치를 확실히 알고 사랑하고 소신과 세계관을 실천하며 참여하며 산다저자가 소개하는 종이잡지클럽’, 비건 식당 띵크비건’, 반려식물을 위한 식물 병원’, 퀴어 프렌들리 동네 수제 맥주집’ 등등.

 

저자는 다행히 혼자 뀌는 일 말고 글 쓰는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이름은 쓰고 달리고이다글쓰기 모임이 또 다른 한강이라고 말해서 마음에 물결이 출렁했다마음은 강물에 풀 수도 있지만 글로 풀 수도 있는 것이니까다행이다.

 

타인의 오독을 감수하고 어디까지 내 신념을 공개할 수 있는가그것이 기록으로 남고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 생각을 부정하는 위험을 어느 선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가. (...) 너무 과격한 소재가 아닌가 갸우뚱하며 내 글을 읽던 차에

 

이 정도도 말 못하고 어떻게 살아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 검열의 선을 가뿐이 뛰어넘은 기분이 들었다.

 

쓰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제 언어를 찾아 어떤 사건을 해석해내는 것다른 사람이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을 보는 기쁨이 크다. (...) 읽고 난 후의 우리 대화 소재는 TMI이다살에 대해 말하는 대신 내 몸을 압박하는 규율들에 대해 쓰고 말한다결혼할 남자에 대해 말하는 대신 사랑과 외로움관계에 대해 쓰고 말한다.

 

혼자 썼다면 글에는 여전히 분노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을 테다한 주 동안 쌓인 얘기가 밖으로 토해지고 다른 사람의 얘깃거리가 내 마음을 드나들면서 염세주의적 태도가 많이 희석됐다타인의 문장에 수백 번의 큭큭을 감응하며 생긴 변화이다.

 

특이한 경험인 때밀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세신사보다 이 말이 더 좋다고 함나는 목욕탕만을 목적으로는 잘 안가는 지라 나체로 누워 남에게 몸 세척을 맡기는 일에는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

 

두 해 전 1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어릴 적부터 친구가 남한 한 바퀴 돌기 여행 중 담양리조트관광호텔 온천탕에서 세신서비스를 발견하고(?) 원했을 때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우정을 위해 감행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우리 세 명은 오래된 절친이었는데 한 친구는 끝까지 못하겠다고 배신을!

 

어쨌든 두렵고 민망한 경험이었는데 나는 친구를 위한답시고 친절한 설명을 세신사들께 해드리는 바람에, 12년 만에 목욕탕을 방문한 미쿡에서 온 친구는 신상 고백과 더불어 때밀기에 관한 여러 건강의학정보를 학습하며 오래 오래 욕탕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고 미쿡식 습관으로 팁을 드리는 진풍경을!

 

구독하는 잡지가 있으신가요?

 

이 책에는 저자가 서교동 재즈 클럽 재즈다에 가려다 문이 닫혀서 모퉁이를 돌아 발견한 종이잡지클럽 THE MAGAZINE CLUB’ 이야기가 나온다멋지다잡지 클럽이라니서교동을 뱅글뱅글 돌며 여러 해 살았는데 나는 한번도 못 본 곳이다좋아하는 <우먼카인드>와 제주 사는 친구가 사랑하는 제주 지역 잡지 <iiin>이 등장해 눈이 커지며 읽었다.

 

그 클럽 계단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요즘 시대에 잡지를 좋아하는 건 촌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러면 어때좋은 걸. Who cares!

 

저자가 만들어 보고 싶은 잡지들의 면면을 공개(?)한다.

 

인물 잡지 <장녀클럽>도 만들어보고 싶다.

인터뷰이는 대한민국 출생 첫째 딸이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불편한 농담을 엮은 대화집 <개소리 사전>도 내보고 싶다.”


펀딩 열리면 참여해야지!

 

역시 좋은 책만 한 위로가 없다


체감 상 백만 가지 정도 더 재미난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오늘의 감정 치유 쓰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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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투자자들 - 25명의 투자 전문가가 밝히는 성공 투자 비법
조슈아 브라운.브라이언 포트노이 지음, 지여울 옮김 / 이너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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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와서 집어든 책인데 25명의 인물들이 미니드라마 한 편씩 등장하는 미드처럼 후다닥 읽었다어떻게 보면 투자금융경제에 관해 성공을 거둔 이들이 관련 분야에 관한 강연만 하고 질문에 대답만 하다가 왜 아무도 나에 대해 관심이 없지내가 어떻게 사는지투자하는지 물어봐줘!’라고 섭섭해서 털어 놓은 이야기 같아 재미있었다.

 

“ 다른 사람이 투자하는 방식에 대해투자하는 대상에 대해 비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런 논쟁은 대부분 비판자 스스로 자신에 대한 불안과 의심에서 비롯된다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투자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다.”

 

피곤해서 내 뇌가 웃기는 건지 뭔가 자꾸 웃긴데 책의 내용은 예상하듯 진지하고 충실한 분위기와 설명들이다단 진짜 현장 프로들이라서인지 극단적인 선택을 권한다거나 투자 비법을 알려 주려고 무리하지 않는다아주 담백하고 합리적인 화법이고 내용들이다그래서 전문가들답다.

 

장기적 목표를 위해 일관성 있게 절제하며 노력하라하지만 미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오늘을 즐겁게 보내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직감을 신뢰하라마지막으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행운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선택권을 갖고 있는 것그리고 약간의 행운은 재정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열쇠이다.”

 

예를 들면 투자하기 전에 고정 수입나이연금을 다 따져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일단 만들라는 것 포트폴리오 만들기 힘들어 투자 포기할 지도 모를 게으른 유형은 나 과 그 다음은 설상가상 세금 관리은퇴 계획까지 다 살피고 전체 윤곽을 확실히 하라는 것이다옳은 말씀이지만 미래가 포함된 계획은 어디까지가 유의미한 것일까 막막하기도 하다.

 

명료함Clarity, 자신감Confidence, 통제권Control, 용기Courage이다고객들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명료하게 알 수 있다나는 고객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를 바란다자신감은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지침이 될 것이다.”

 

갈수록 내용은 더욱 건전해져서 투자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하고분산 투자를 다각적으로 조심스럽게 하고저축은 적극적으로 하며생활 방식은 균형 잡힌 모양새로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간만에 듣는 분위기지만역시 다 옳은 말씀이다돈에 눈이 멀어 있거나 돈 버는 일에 관여도 책임도 없다면 다 무의미할 말들이니까.

 

내 투자 철학은 절제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그리고 이 전략은 내가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이런 방식의 투자는 열매를 맺게 될 씨앗을 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사랑과 믿음기쁨건강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유대감 외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버는 일도 쓰는 일도 기부를 하는 일도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일도 대출을 받는 일도 다 돈의 가치와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할 일이다그래야 행복을 살 순 없을지 몰라도 고통과 후회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결국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 일이 내가 행복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일인지부터 잘 알고 시작해야 한다.

 

돈과 관련된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단지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고 쓰고모으고 빌려주고 베푸는 등의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행복한 삶을 위한 자금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내게 진정한 부란 나에게 의미 있는 인생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제 어떻게든 자자.

그래야 의미 있는 인생을 지불할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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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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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해서 더 이상한 일종의 선입견이랄까정세랑은 소설만 쓰는 작가야전작들보다 길고 평범해진 제목에 낯설어하며 찾아본 책은 에세이였다처음 본 생명체인 듯 에세이 앞에서 손이 움칫움칫했다읽어 보라고 출간된 타인의 일기 앞에서 망설이는 기분처럼.

 

현실이 소설보다 덜 극적일 리 없고 정세랑의 시선에 잡힌 장면들이 납작하게 전해질 리도 없다여행을 싫어하는 작가의 여행기를 여행을 좋아하지만 갈 수 없는 시절의 나에게 위로의 선물로 주었다가장 많이 그립고 제일 먼저 갈 곳부터 펼쳐 본다이곳을 여행한 작가가 이곳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다면 나머지 여행을 따라갈 여력은 사라질 거야단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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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초반을 너무 허투루 읽었다정세랑은 분명 이 지난 여행의 기록들은 사실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을 하며 안쪽에 축적된 것들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라고 밝혔는데 나는 내가 보고자 하는 장면들이 나오라고 나오길 집착하느라 경고와도 같은 이 문장을 놓쳤다.

 

그 대가는 나의 안쪽에 축적된 것들이 정세랑의 문장에 이끌려 심연에서 떠오르는 것을 말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내밀한 내 것들이라 나를 모질게 뒤흔들 강렬한 모든 것이었다거만하고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며 어디 좋은 곳 다니셨나보려던 마음은 자세를 고쳐 앉는 것으로 휘발되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차별과 모멸을 겪으며 깎여나가지 않는 세계를 절실히 바란다. (...) 가까운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 때 그 누구도 혼자 행복할 수 없으니까누구나 조금씩의 모멸을 견디며 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퀴어들이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모멸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 같아 우려가 크다우정에서 출발하는 신념이 있고나는 어느 도시에서 눈뜨건 무지개 깃발을 흔들 준비가 되어 있다.”

 

후배였고 친구가 되었고 동료가 되어 함께 일하기도 한 이가 있다학부생이 대학원 수업 청강 신청을 해서 듣던 당돌하고(?) 반가운 후배였는데 유학을 다녀온 사이 아주 훌륭한 논문을 쓰고 배운 것들을 현실로 바꿀 정확한 그곳에서 사회인이 되어 일하고 있었다.

 

나는 배운 바를 모두 낭비하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사느라 서로 일하는 세계는 달랐지만 종종 낮에 만나 밤이 되도록 나누는 이야기들은 늘 마지막까지 아쉬웠다.

 

그런 만남이 이어지던 몇 해 후 서로의 베를린 출장 기간이 12시간 정도 겹쳐서 일이 조금 더 늦게 끝나는 나를 만나러 와주었는데 독일인 치고는(?) 기이할 만큼 사교성이 좋은 (내가 만난분이 친구와의 사적인 자리까지 남아 있었다.

 

대화가 이어지다 어릴 적 베를린에 있던 김일성 무슨무슨 학교에 다녔다고 코리아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인지도는 실상 늘 북한보다 낮았다그리고 다른 나라 국민들은 의외로 코리아의 사정을 잘 모른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나는 순간 친구의 손목을 낚아채서 달려 도망가고 싶었는데 그건 내게 빨갱이 사상이나 북한 혐오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친구가 당시 모정당의 정책연구위원이었기 때문이다상식적인 발언만 해도 혹은 본인이 한 말이 아니라도 찍히면 빨갱이 되는 그런 사회에서 김일성학교출신 사업가 대표를 구 동베를린에 가까운 지역에서 만났다는 얘기가 돌면 본인은 물론이고 소속 정당은 어찌될 것인지 오싹했다.

 

돼먹지 못한 검열 사회에 살다보니 내게도 체화된 자기검열기능이 자가 반응처럼 작동했다문제를 마주하면 피부에 살얼음이 끼일 정도로 비유입니다초능력 없습니다 뇌가 서늘하게 식어가는 유형이라 머릿속엔 갖가지 가능 시나리오들이 떠올랐고 각 상황에 맞는 답변 또한 등장하여 짝짓기를 시작했다혹시 취조를 당할 경우 내가 마련한 자리에 친구는 모르고 왔다란 무기를 정교하게 다듬어 잘 쥐어주자 비장한 결심도 했다.

 

그런 위험쯤은 나보다 백만 배는 더 잘 알고 겪어왔을 친구는 의외로 태연했다시간은 흐르고 서늘한 베를린 야외공기에도 불구하고 자꾸 땀이 배어나는 나는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에 늦지 않았어라고 마음을 거듭 굳히고 있었고 친구는 잠시 후 자리에 합류한 북한에 지점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유럽과 코리아 모두에 익숙한 사원을 찾고 있다는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의 이야기도 예의 바르게 듣고만 있었다.

 

함께 공부하고 삶을 수다로 나눈 시간이 길어 이미 특별한 친구이지만 나와의 조우로 인생이 망가졌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혼자만 더 애틋해진 친구는 그날 이후 별 일 없이 그리고 매일 별 일을 겪으며 잘 살고 있다한국의 성정책이 인류 공영을 위해 보편성을 띠는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모든 과정과 결과와 문구 하나마다 내 친구의 삶 전체가 재료로 들어있을 것이다.

 

정세랑 작가처럼 내게도 우정에서 출발하는 신념이 있다.

 

내 창내 방내 집내 생각내 세계배 바람에도 친구와 함께 언제든 흔들 무지개 깃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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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시민들을 위해 일회용 생리대를 기부했습니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쿠데타가 지속되면서

미얀마 시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얀마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하여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통해

일회용 생리대를 기부했습니다.

 

미얀마는 지금 마스크생리대와 같은 생필품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미얀마 민주화에 연대하기 위해 여력이 있으시다면

물품을 보내주세요

 

물품 후원 아이쿱생협서울지역협의회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 #여성환경연대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사랑담는사람들

 

늘 마음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서 기막히고 속상하고 사상자 소식에 사는 일이 아득해지지만 눈에 띄는 대로 뭐든 해본다때로 그것은 #savemyanmar 해시태그 하나일 때도 있고 때론 생색만 내는 적은 금액일 때도 있다그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솔직하게는 깊은 절망도 동시에 느낀다이런 위로를 받을 줄 몰라 감사하다.

 

여자들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세계 곳곳의 여자들의 삶에 대해세계가 이렇게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것은이 세계를 복원하고 개선할 가능성을 가진 여성들이 교육과 사회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닐까 두려워하며 추측하기도 한다. (...) 여성이 극도로 억압 받는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먼 곳에서도 지지를 보내기 예전보다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모여서 강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인권 단체에 기부를 하고 오지은의 [작은 자유]를 들으며 마음을 다진다.”

 

기대한 혹은 예상한 여행도 에세이도 아니었다. 이제까지 나는 정세랑의 작품들을 소비하는 독자였을 뿐이었나 싶게 작가의 심력도 필력도 몰랐다고 고백한다어쩌다 여행 에세이를 9년째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도 허투루 읽었다. 9년 그 이상의 무게를 담지 한 글을 마주한 결과가 당혹스럽지만... 괜찮다멋진 내용들이 가득한 런던뉴욕오사카타이베이아헨에는 오래 정차하지 않은 대신 정세랑이 들려 준 안쪽과 나의 기억 속을 왕래했다.

 

SF, 판타지호러스릴러 내가 좋아하는 장르들을 자유롭게 오가던 <드림드림드림>이 좋아 그의 책들을 읽으며 10년이 지났다<옥상에서 만나요> <시선으로부터>를 만나서는 아프고 뜨거워졌지만 지금도 나의 최애는 <피프티 피플>이다이야기를 견인할 단 한 명의 주인공을 없애버린대담한 작가도 다 있구나 싶었던 당혹스러웠던 매력은 모여서 강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정세랑을 만나 지금 완독을 이룬다.

 

책 한 권 없이 몇 편의 단편뿐이었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해주시던 분들이……아무것도 아닌 나를 선택해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이 의기양양하실 수 있게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50권을 쓴다는 약속을 지키실 것 같아 마음이 갈급해진다다 읽으려면 건강과 수명 관리를 더 진지하게 해야 한다내내 투명했는데 뾰족하고 확실하게 형체를 만들어가는 마음이 보인다사랑하기로 선택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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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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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역사서이고 근래에 자주 만나게 되는 한 가지 소재로 관련 역사를 풍성하게 집어내는 재미난 구성이다이러다 통사와 개론사는 다시 못 읽게 되려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과 발견들이 많다.

 

예전엔 저자의 사관에 따라 사건을 분석하고 평하는 분위기의 역사서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기술의 도움으로 밝혀진 물증들을 가지고 고치고 보충하는 내용의 역사서들이 많은 느낌이다저자가 고대사와 물리학을 모두 전공했고 경매 담당 부서장으로 일하기도 해서 더 실증적인 느낌이 있는 건가 싶다심지어 역자도 카이스트 전기/전자 공학 전공자이다.

 

돌과 흙으로 채워진 지각 위에 떠서(?) 사는 육지 생명체로서 오래 전 지각의 8대 원소를 무심코(?) 외워버렸다오시알페카나칼마(O, Si, Al, Fe, Ca, Na, K, Mg). 이중에 오시알(O, Si, Al 산소규소알루미늄)의 결합들을 인간은 보석이라 한다.

 

수정(SiO2)을 기본으로 두고 여기에 물이 섞이거나 불순물이 들어가면 오팔루비에메랄드사파이어라 불린다최고로 가치 있는 보석으로 인간이 취급하는 다이아몬드는 지루할 정도로 순수한 탄소만의 결합체이므로 저자도 지적했듯이 잘 부서지고 바비큐 굽는 숯처럼 잘 탄다.

 

돌멩이들은 무척 좋아하고 수천만 년이나 오래된 암석을 무척 경외한다더불어 화석도 좋다한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가장 흥분되었던 체험들 중 하나는 오래 전 영국 본머스(Bournmouth)에서 해안가 절벽에 삼엽충 화석들을 보고 캐어본 체험이었다영국 뿐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보석 얘기하다 왜 화석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을 차리자.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보석 이야기는 큼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더불어 펼쳐지니 맨해튼과 바꾼 구슬프랑스혁명과 다이아몬드 목걸이소련의 설립 자금이 된 황금 달걀들 등 모두가 대하소설 같은 재미가 있고 우리가 굳게 믿던 잘못된 사실들에 보석이 깨어지듯 균열과 충격을 주기도 한다.

 

다이아몬드는 잘 부서질 뿐만 아이라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하다. (...) 사람들은 보통 다이아몬드의 화학 성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사실 이런 무지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지난 80년 동안 다이아몬드를 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드비어스가 판 것은 (...)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이었다.”

 

마이 앙투아네트는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 온갖 가짜뉴스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는데유명한 빵이 없으면 쿠키인지 케익인지를 먹지’ 말고도 다이아몬드 목걸이 관련 누명도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라를 망친 이들은 따로 있는데 비난은 사치스럽고 음탕하고 탐욕스런 여자들 때문이라는 클래식하고 비겁한 이야기들은 동서고금 지치지도 않고 재생산된다무능력한 것도 모자라 넘 찌질하니 이제 그만~!

 

그에 비해 아주 영리하게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주변국을 굴복시키는 수단으로 보석을 사용한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염문과 치정을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었다.

 

에메랄드를 이집트를 상징하는 보석으로 정해 모두에게 내보였고 (...) 부를 과시함으로써 주변국들이 에메랄드를 저만큼 살 돈이 있다면 군사나 전쟁을 치를 돈도 당연히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끔 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대중이 필요로 하는 바를 정확히 보고 마련해준 소름끼치는 (포퓰리즘?!)통치자의 면모를 보인 이야기가 한편 감탄스럽고 다른 한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인간은 왜 이리 우상을 필요로 하는지... 혹은 원하는지.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러 면에서 마케팅의 귀재라 할만 했다여왕이 판 물건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 진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장 핵심적인 통치 도구였던 거대한 상징화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 자신을 처녀 여왕이라 칭함으로써 엘리자베스는 영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던 우상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성공했다.”

 

아름다운 것에 홀려 욕망이 불타오르고 못 할 짓이 없이 한 세상 신나게 살아온 어쩌면 보석과 고유진동수가 일치해서 휘둘린 것인가 싶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가득이라 여름밤에 읽기가 아주 뜨겁다그야말로 욕망이 범벅이 되어 펼쳐지는 세계사다. ‘갖고 싶다는 대상을 발견해버린 순간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라 믿는 누구의 욕망인지 모를 일에 목숨을 걸고 삶을 바치게 된다.

 

화폐든 보석이든 내게는 더 욕망하는 것들로 교환할 수 있다는 교환가치가 앞서는 지라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어 낯설고도 재밌고도 조금은 휘둘리는 삶이 부럽기도 한 이야기들이다.

 

보석 장신구이든 문신이든 나는 그것이 맨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가리고 가진 힘을 부풀려 과시하려는혹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려는 의식이라고 믿었다옷도 신발도 가방도 심지어 학벌도 지위도 권력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욕망과 파멸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진 어두운 작품은 전혀 아니다오히려 저자는 귀하고 탐나는 것을 아름다운 형태로 갖고 싶어 하는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으려는보석 자체에 대한 순전한 사랑과 심미적인 가치를 최고로 여긴 태도가 보석처럼 찬란한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에 더 방점을 두는 듯하다.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결정하는 (...)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다개개인을 움직이는 이 욕망은 나아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상을 맺고 다시 반사하는 것이다. (...) 바로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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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과는 없다 VivaVivo (비바비보) 46
김혜진 지음 / 뜨인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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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 혼란과 사회적 평가 사이에서 성장과 관계를 동시에 감당하는 아이들의 아프고 힘든 여정을 그에 어울리는 묵직하고 섬세하고 날카롭고 깊은 공감의 문장들로 이어나가는 놀랍도록 진지한 작품이다. 천천히 읽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다. 그래도 끝까지 응원을 보내고 싶다. 모두 함께 빠져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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