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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21년 6월
평점 :
좋아하는 역사서이고 근래에 자주 만나게 되는 한 가지 소재로 관련 역사를 풍성하게 집어내는 재미난 구성이다. 이러다 통사와 개론사는 다시 못 읽게 되려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과 발견들이 많다.
예전엔 저자의 사관에 따라 사건을 분석하고 평하는 분위기의 역사서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기술의 도움으로 밝혀진 물증들을 가지고 고치고 보충하는 내용의 역사서들이 많은 느낌이다. 저자가 고대사와 물리학을 모두 전공했고 경매 담당 부서장으로 일하기도 해서 더 실증적인 느낌이 있는 건가 싶다. 심지어 역자도 카이스트 전기/전자 공학 전공자이다.
돌과 흙으로 채워진 지각 위에 떠서(?) 사는 육지 생명체로서 오래 전 지각의 8대 원소를 무심코(?) 외워버렸다. 오시알페카나칼마(O, Si, Al, Fe, Ca, Na, K, Mg). 이중에 오시알(O, Si, Al 산소, 규소, 알루미늄)의 결합들을 인간은 ‘보석’이라 한다.
수정(SiO2)을 기본으로 두고 여기에 물이 섞이거나 불순물이 들어가면 오팔,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라 불린다. 최고로 가치 있는 보석으로 인간이 취급하는 다이아몬드는 지루할 정도로 순수한 탄소만의 결합체이므로 저자도 지적했듯이 잘 부서지고 바비큐 굽는 숯처럼 잘 탄다.
돌멩이들은 무척 좋아하고 수천만 년이나 오래된 암석을 무척 경외한다. 더불어 화석도 좋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가장 흥분되었던 체험들 중 하나는 오래 전 영국 본머스(Bournmouth)에서 해안가 절벽에 삼엽충 화석들을 보고 캐어본 체험이었다. 영국 뿐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보석 얘기하다 왜 화석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을 차리자.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보석 이야기는 큼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더불어 펼쳐지니 - 맨해튼과 바꾼 구슬, 프랑스혁명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소련의 설립 자금이 된 황금 달걀들 등 - 모두가 대하소설 같은 재미가 있고 우리가 굳게 믿던 잘못된 사실들에 보석이 깨어지듯 균열과 충격을 주기도 한다.
“다이아몬드는 잘 부서질 뿐만 아이라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하다. (...) 사람들은 보통 다이아몬드의 화학 성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 사실 이런 무지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80년 동안 다이아몬드를 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드비어스가 판 것은 (...)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이었다.”
마이 앙투아네트는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 온갖 가짜뉴스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는데, 유명한 ‘빵이 없으면 쿠키인지 케익인지를 먹지’ 말고도 다이아몬드 목걸이 관련 누명도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라를 망친 이들은 따로 있는데 비난은 사치스럽고 음탕하고 탐욕스런 여자들 때문이라는 클래식하고 비겁한 이야기들은 동서고금 지치지도 않고 재생산된다. 무능력한 것도 모자라 넘 찌질하니 이제 그만~!
그에 비해 아주 영리하게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주변국을 굴복시키는 수단으로 보석을 사용한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염문과 치정을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었다.
“에메랄드를 이집트를 상징하는 보석으로 정해 모두에게 내보였고 (...) 부를 과시함으로써 주변국들이 ‘에메랄드를 저만큼 살 돈이 있다면 군사나 전쟁을 치를 돈도 당연히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끔 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대중이 필요로 하는 바를 정확히 보고 마련해준 소름끼치는 (포퓰리즘?!)통치자의 면모를 보인 이야기가 한편 감탄스럽고 다른 한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은 왜 이리 ‘우상’을 필요로 하는지... 혹은 원하는지.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러 면에서 마케팅의 귀재라 할만 했다. 여왕이 판 물건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 진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장 핵심적인 통치 도구였던 거대한 상징화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 자신을 처녀 여왕이라 칭함으로써 엘리자베스는 영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던 우상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성공했다.”
아름다운 것에 홀려 욕망이 불타오르고 못 할 짓이 없이 한 세상 신나게 살아온 어쩌면 보석과 고유진동수가 일치해서 휘둘린 것인가 싶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가득이라 여름밤에 읽기가 아주 뜨겁다. 그야말로 욕망이 범벅이 되어 펼쳐지는 세계사다. ‘갖고 싶다’는 대상을 발견해버린 순간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라 믿는 누구의 욕망인지 모를 일에 목숨을 걸고 삶을 바치게 된다.
화폐든 보석이든 내게는 더 욕망하는 것들로 교환할 수 있다는 교환가치가 앞서는 지라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어 낯설고도 재밌고도 조금은 휘둘리는 삶이 부럽기도 한 이야기들이다.
보석 장신구이든 문신이든 나는 그것이 맨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가리고 가진 힘을 부풀려 과시하려는, 혹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려는 의식이라고 믿었다. 옷도 신발도 가방도 심지어 학벌도 지위도 권력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욕망과 파멸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진 어두운 작품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귀하고 탐나는 것을 아름다운 형태로 갖고 싶어 하는,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으려는, 보석 자체에 대한 순전한 사랑과 심미적인 가치를 최고로 여긴 태도가 보석처럼 찬란한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에 더 방점을 두는 듯하다.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결정하는 (...)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다. 개개인을 움직이는 이 욕망은 나아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상을 맺고 다시 반사하는 것이다. (...) 바로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