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 방송가의 불공정과 비정함에 대하여
이은혜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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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부를 읽다 속이 아파온 것은 사실이었다다른 이유를 찾기도 하고 다른 책들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다시 책을 펼치니 희한하게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당사자가 힘든 이야기를 용기 있게 전한 책을 읽는 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데난감했다그래서 그냥 계속 읽기로 했다저자는 혹 답답할 지라도 완독하라 응원해 주셨고그 이전에도 나는 별 힘은 안 되어도 읽고 같이 계란은 던질 수 있다 의견을 남겨 둔 바가 있다.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 ‘어딜 봐도 우아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를 찾을 수 없었던’, ‘계약서도 없이 일해야 했던’ ‘노동을 인정받지도 보장받지도 못했던’ ‘가장 따뜻한 조언은 도망치라는 말이었던’ ‘갈라치기로 고용과 해고가 정규/비정규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던’ ‘쓰고 버려지던’ ‘매달 잉여인간인가 아닌가로 고뇌하게 되던’ ‘꿈꾸던 일인데 기쁨보다 마음이 쪼그라드는 슬픔을 전하던’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으면 하는 일’, 방송국 작가로 살았던 저자의 경험이 여기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리학을 전공한 나는 원래라는 말은 과학에서 추방해야할 표현으로 배웠다. ‘원래가 어딨나?’를 늘 묻던 교수님이 계셨으니결이 달라도 나는 어느 분야에서든 원래라는 말의 실존을 믿지 않는다그 말은 필요한 누군가의 구성품일 뿐이다. ‘원래가 어떻게 얼마나 폭력적인 언어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문장들로 다시 선명히 배워 본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은 기득권의 언어이다.

논리와 혁명에 대응하는 가진 자의 마스터키다.

원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여성들은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고,

흑인과 백인이 따로 앉아야 했을지 모른다. (...)

방송작가는 원래 휴가가 없다는 말의 원래

프리랜서는 원래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원래를 뒤집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가족주의연령주의 표현들이 꽤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었던 느낌은 내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어느새 둔감하고 편해진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잊고 물러서는 일은 제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능해진다다시 조직 내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떤 언어로 최면을 걸 듯가스라이팅을 하듯서로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예를 들어 이은혜 작가에게는 시킬 수 없는 담배 심부름을 막내에게는 시킬 수 있다.

이 고릿적 단어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누군가를 손쉽게 부리기 위해서다.

호칭은 이렇게 힘이 세다.”

 

여러 해 전이지만 심지어 상대측에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사과하는 일을 좀 더 분명히 항의하다가 그쪽 사람의 거센 역공을 받은 일이 있다나는 차분히 할 말을 고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학교 후배이지만 사회 선배인 친구가 매운 지적을 했다피해자임에도 여성은 이런 경우에도 우아하고 품위 있게 조곤조곤한 태도를 잃지 말고 상대의 심사를 살피며 말을 이어나가는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이 책에서 배운 방송가의 면면들을 보면 이런 태도와 묵직한 강요는 바뀌거나 없어진 것이 전혀 아닌가보다.

 

늘 약자만 미소와 다정을 강요받는다문제 제기를 할 때조차 상냥해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싫어하시거나 저를 미워하실 지도 모르지만 내내 무척 상냥하다적어도 글에서 그렇게 느껴진다이는 저자가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나아가 행동해 주는 선배’, ‘방송사에서 작가로 10년을 일한 도인이 되었기 때문일까심지어 이런 문장을 읽을 때조차 날카롭고 서늘한 느낌보다는 다정하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속이 아프다책 읽고 쓰기가 원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동감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개인적인 통렬함보다 이런 몹쓸 세계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구나줄어들지 않았구나하는 울화와 일종의 좌절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잘 아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꿈을 펼칠 정확한 장소에 도착하고서도 성취와 실현과 즐거움과 행복 대신 쓰이고 버려지는 이들의 실제 상황이 끔찍하고 무척 아프다. ‘하고 싶은 일도 잘 하는 일도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해치우며 사는 독자로서는 더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다시 돌아갈 곳 없는 사람만이 업계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걸까.”

 

춥고 슬픈 문장이다저자가 자신을 전직 작가라고 하는 것이 슬퍼 눈물이 차오르고 마르기를 반복한다게다가 방송가의 부조리함을 이제야 밝히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니이번에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죄다 어디 가고 고민하고 용기를 내는 사람만 부끄러워하는 걸까속이 더 아파온다이미 잘 아실 지도적어도 나보단 잘 아실지도 모르지만 경애하는 김중미 작가의 이야기를 이 글에 담아 본다.

 

지우는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걱정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그 착한 사람들이 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이 없는 게 문제이긴 하다그래도 마음이 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면그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곁에 있다는 것>

 

독자로서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는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든 듣고 읽고 쓰고 계란 정도는 언제든 함께 던질 거라 말씀 드리고 싶다그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나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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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주 - 천문학자의 가이드
조 던클리 지음, 이강환 옮김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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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학이 건조하기 짝이 없게 무매력으로 느껴진다면 천문학은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시지요저는 그랬습니다지금도 본질적으로 깊이 부러워하고 있을 겁니다그냥 천체물리학과 갈 것을!

 

제 부모님 세대는 학부였다 저 때는 학과였고 이후 다시 학부제로 바뀌었지요저도 학부 세대였다면 최종 전공은 천체물리학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간혹 블로그에서 천체물리학 전공했냐 물으시는 분들이 계셔서 뻥치고 싶은 유혹을 종종 느낍니다왜?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천체우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물리법칙으로 풀어내는 설명을 들으셔야 한다는 점특히 이 책은 천체도 사물이니 물리학 원리부터 이해해보자며 천문학 강의를 시작하시니 마구 치유가 됩니다.

 

흔히 구별하기로는 천문학자는 하늘을 연구하며 우주에 있는 것들을 관측하는 과학자를,

물리학자는 우주에 있는 것을 포함한 대상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설명하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데 관심이 있는 과학자를 말한다.”

 

저자인 조 던클리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물리학천체물리학 모두를 강연하시는 교수이자 여러 차례 물리학상을 수상한 연구자이며 스케일도 복잡함도 대단한 천체물리 현상을 잘 설명하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는 멋진 교육자라고 합니다그러니 이 책은 현재 우주에서 가장 친절한 천체물리학 책일 지도 모릅니다.


불과 한 달 전에 한국도 미국 나사NASA가 주도하는 달 탐사에 참여하기로 협정을 체결했지요명칭도 낭만적인 아르테미스 협약입니다그리스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를 소환한 협약이라 저는 최근에 무척 좋아하게 된 대한민국 최초 달연구자이신 천문학자 심채경님이 떠올랐습니다.

 

달은 언제나 한쪽 면을 지구로 향하며 한 달에 한 번씩 지구를 도는 동안 한 바퀴만 자전한다.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도는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을 하는 지구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다달은 약 50억 년 전에 태어난 지구와 나이가 거의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저자께서 과학 연구 현장과 역사에게 배제된 여성 과학자들 헨리에타 스완 레빗베라 루빈 등 의 업적을 소개하고 현실의 여성 과학 동료들이 더 평등한 환경에서 연구하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삶이 코찡하고 마음뭉클했습니다이런 분들을 만나면 세상이 표지디자인처럼 아름답고 고아하게 느껴지지요.

 

시간을 조금 거슬러가다보니 2018년 평창 하늘에 빛나던 CG가 아니라해서 더 경탄스러웠더 천상열차분야지도도 생각납니다일본군이 창경궁을 창경원(동물원)으로 만들면서 다행히(?) 그냥 버려둬서 그냥 앉아 쉬기 좋은 돌처럼 사용되다 묻힐 뻔한 아주 귀중한 천문도이지요.


1395년에 만들어 사계가 다 담겨 있는 놀라운 기록이고 알려진 바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별자리 지도이며별의 밝기가 별자리를 표기한 동그라미의 크기로 구분되어 있는 보물이자 과학문화유산입니다. 1년이 꼬박 걸려야 다 확인할 수 있었던 천문도를 완벽하게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들을 하셨을지그 당시의 하늘은 어떤 모양이었을지 그립고 감사한 마음으로 상상해봅니다.

 

오래전에 저도 Cosmology란 과목을 행복하게 수강했지만 현재의 우주론은 더구나 수학물리학천문학화학생물학식물학동물학 등등 그 외 과학들과 최첨단 기술이 협업을 이루어야 가능한 분야입니다.

 

훌륭한 새 망원경들과 계속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 성능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조만간 지금까지의 놀라운 발견에 더해

더 놀랍고 신비로운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는 언젠가 밝혀지겠지요뱀파이어로 변해서라도 아주 오래 살고 싶어지네요과학이라 미워하지 마시고 우주라는 친구이자 우리이기도 한 존재가, ‘자구라는 단 하나뿐인 우리 집이자 우리기도 한 존재가 어떻게 태어나 살아왔는지우여곡절 생애를 들어 준다 생각하고 읽으셔도 좋을 듯합니다흥미를 유발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 소개드리자면,

 

- 1장은 우주라는 동네를 둘러보는 이야기 누가누가 있나 -입니다지구태양계태양 주위은하수국부은하군초은하단관측 가능한 우주까지 갈수록 규모가 커지지요그야말로 나는 우주의 먼지구나 그것도 감지덕지이런 겸손한 기분이 화악듭니다.

 

- 2장에서는 두근두근 이란 무엇인가와 망원경은 어떻게 우리가 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가란 재밌는 이야기들이 소개됩니다별에도 종류가 많다는 것별도 일생이 있다는 것그런 것들을 인류는 어떻게 알아내었는지를 들려줍니다.

 

진화를 거치며 인간이 볼 수 있게 된 빛은 매우 특별한 종류로,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무지개의 모든 색깔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눈은 다른 파장의 빛을 다른 색으로 인지하며

리가 볼 수 있는 빛의 파장은 연못 표면에 생긴 파동의 파장보다 훨씬 더 짧다.”

 

큰 별들은 빠른 속도로 살고 일찍 죽는 극단적인 일생을 산다.

태양 질량의 8배에서 100배에 이르는 이들은 드문 흰색과 푸른색 별이다.

우리은하에 있는 별 천억 개 중 불과 10억 개 정도만이 이런 헤비급이다.

더 무거운 별일수록 더 중력이 강하고 더 높은 온도를 가지기 때문에

별의 중심부에서 수소가 더 빠르게 탄다.”

 

- 3장은 암흑물질 제가 천자문 첫 네 글자천지현황을 처음 배우고 하늘을 왜 검다고 하냐며 물었던 질문과 관련이 있(다고 억지로 우기고 있)는 -을 다룹니다중력 렌즈...... 오랜만이라 좀 헤맸습니다.

 

- 4장은 우주의 역사와 가능한 미래 모습에 대한 상상입니다.

 

우리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과

우주가 약 140억 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왜 그런지 모를 뿐이다.”

 

- 5장은 우주의 일생이자 미래 예측입니다.

 

재미있겠지요이 책 완독하심 프린스턴 대학 천체물리학 강의 마쳤다고 막 자랑하시...


저자도 책도 아름답고 훌륭하고 막 마음이 벅차서 제가 매주 두 세 번 읽는 시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에        김광섭

 


당분간 밤 하늘을 봐도 별은 안 보이는 장마이지만 다들 마음 속 반짝임은 흐려지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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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onearth 2024-06-22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가 너무 아름답네요..❤️ 마지막엔 눈물도 질끔.. ㅎㅎ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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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운 작가의 신간 소식에 너무 반가워 입틀막!


SF라면 다 좋다하는 독자라서이기도 하지만

전작 <화이트블러드>를 읽고 찐팬으로 자처하고 싶었던

기분이 다시 생생하다.


장르가 무엇이건 나는 시사성과 현실성이 저자의 고민으로

녹아있는 소위 본격! 사회파 분위기를 담지한

그런 작품들이 어쩔 수 없이 좋다.


감동이 묵직해진다.


엄청 재밌고 여러 번 크게 웃을 것이 분명하지만

을이 갑을 이기는 통쾌한 역전의 세계라는 설명에서

이미 벌써 최고!를 외치고 싶어지는 신뢰하는 작가의 작품!


이번에도 역시 행복한 독서가 될 것이다!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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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 네트워크
챈들러 베이커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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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만들어진 예술품과 같은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을 읽고 나면 어떤 구절을 소개해야 중요한 모든 것을 들키지 않을까 고민스럽다이렇게 시작해볼까요.

 

평일 오후 회사 18층 발코니에서 누군가 추락한다.

삼 주 전 스포츠 의류 브랜드 트루비브의 CEO가 심장마비로 돌연사한다.

회사 소속 변호사들이 대처 방안을 긴급히 논의한다.

대표 변호사 에임스는 유력한 차기 CEO 후보이지만 여성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

회사 여성 직원들 사이에 공유되는 배드맨 리스트에는 여러 종류의 끔찍한 짓을 하는 남자들이 올라 있다.

전체 이야기를 교차 진행하는 네 명 중 한명인 슬론은 과거에 에임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십 년 동안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는데 베드맨 리스트에 에임스의 이름을 올려야 할까 고민한다.


 

회사에는 남자들이 있었다. (...) 그런 남자들과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했다. (...) 회사가 전통적인 남학생 클럽의 영역이라면우리는 비밀 여학생 조직을 구성해 이에 대항하는 셈이었다우리는 비밀 악수법을 공유했고서로를 여성 전우로 여겼다.”

 

저자 챈들러 베이커는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며 실제 위스퍼 네트워크*를 경험했다그런 이유로 이 책에 등장하는 워킹맘들과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의 경험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데이트에서든 직장에서든 아이의 존재를 숨기는 것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남자는 아들과 온종일 낚시했다고 말할 수 있어도 엄마는 애를 병원에 데려가느라 점심시간을 넘겼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대체로 더 낫다아이 덕에 남자는 영웅 소리를 드디만 여자는 변변찮은 직원으로 전락한다.”

 

막 충격적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것이 슬프고 답답하다예를 들면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는 원하는일하기도 바쁜데 웃으라는 말을 듣고그 와중에 몸에 자꾸만 손을 대려는 남성들을 막아야 하고…….

 

이런 일을 겪는 단 하나의 이유가 그저 일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니…….


우리는 온갖 죄책감을 느꼈다워킹맘이라서아이가 없어서사회적 의무를 저버려서그럴 여유가 없는 걸 알면서도 초대에 응해서이미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일을 거절해서 혹은 거절하지 않아서월급 인상을 요구해서 혹은 정당하게 요구하지 못해서 (...) 충분한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게 또 죄책감으로 다가오니이런 도덕적 딜에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능력이 대견할 지경이었다.”

 

그럼 다시, 18층에서 추락해서 사망한 이는 누구일까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가해자일까피해자일까?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치밀한 구성을 탄탄하게 받히기 위한 진행 방식과 구성은 멋졌다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사건의 진상을 고발하는 각종 진술서와 녹취록은 어딘가 메모라도 하며 기억해야 할 듯수사관처럼 지켜봐야 할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이렇게 미스터리 스릴러물이 될 수 있다안타깝게도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성인 직장 내의 일만도 아니라 미성년 여성들의 일상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이다.

 

그럼 우리 애는 뭘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 남자애한테 그만하라고 의사 표현도 했고책임자도 찾아갔지만 도움을 거절당한 상황에서요. (...) 학교가 선호하는 여학생의 행동 방침은 뭐 그런 건가요그냥 받아들여라몸을 만지게 해줘라? (...) 참고만 있어라왜냐면 남자애들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니까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까걔들이 그러고 싶어하니까?”

 

역겹게 진화한 사이코패스 범죄로 분석되는 N번방 수사와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주범을 잡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천 명에 이르는 유료회원들은호기심에 가입한 것은화면 속 실제 인간의 고통을 구매해서 재밌고 즐겁게 소비한 것은 무죄인가?

 

이 소설의 여성들이 거의 모두 변호사라는 점은 무려 여성 검사도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여러 명이 함께한 공간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누구도 말리거나 증언해 주지 않는 상황에 처하고 그 충격으로 태아를 잃고 마침내 말을 꺼낼 때까지 혼자 온갖 괴로움을 견뎌야 했던 한국 사회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현실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소설 속 인물들이 여성들 서로서로에게 경고를조언을표시를충고를 주는 일은 긴장을 유지하는 멋진 설정이었다가 서글픈 우정이었다가 마음이 아릿해지는 현실의 연대로 전환된다.

 

아주 오래 전 남자들 가득한 학과에서 불과 한 두 살 많은 여자 선배들이 신입생인 우리에게 이런저런 조심할 점을 리스트로 만들어 소곤소곤 경고해 준 것처럼.

 

나쁜 놈들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강요하는 더 나쁜 조직들내내 분해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가 궁금해서 거의 모든 걸 미루며 끝까지 읽었다위스퍼 네트워크는 잘 작동하고 있는지 문득 걱정하며.

 

!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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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외 - 그랜드 투어
육민혁 지음, 오석태 감수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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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라는 제목 덕분에 금융계 투어인가 했는데 브라질인도베네수엘라일본으로 여행기처럼 재미난 사진들과 함께 정말 투어를 시켜줍니다책을 펴고 당황해서 읽다가 표지 다시 보다가 혹시 내 책은 파본인가 인터넷 검색도 했습니다꾸준히 관련 서적을 읽으면 정리되고 이해되는 게 있겠지란 생각으로 금융 경제 관련 도서들을 읽는데 뜻밖에 재밌는 책입니다.

 

현역 채권 전문가라고 하시는데 금융 적용하는 범위가 전 세계로 뻗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시는 분이신가 봅니다직군에서의 현장 경험과 관련/비관련 분야에 대한 남다른 관심다독과 네트워크에 기인한 박식함호기심 가득한 관찰과 여러 자료들을 엮어내는 능력 등이 펼쳐진 매우 독특한 책입니다저는 이런 투어는 난생 처음입니다.

 

선물(先物)거래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1980년 은투기를 한 미국 헌트 형제, 1762년 창립된 영국의 베어링 은행을 파산시킨니콜라스 리슨세계 구리사장의 전체 거래량의 5%를 매매하던 스미토모상사의 하마나카 야스오, 100여 년 전 조선의 일제 강점기 때 인천에 쌀을 거해하는 선물거래소 이야기 점원 생활을 하면서 모든 돈으로 선물에 투자해서 1년 만에 약 400억원을 번 반복창김구 선생 제가 강익하라는 분이 법원에서 근무하면서 억울한 누명을 쓴 조선인들을 도와주고 쌀 선물거래오 번 돈을 빈자를 위해 기부하고 독립 자금으로 지원하고 한국 최초의 보험사인 대한생명보험사를 설립한 이야기그의 부인 황온순 여사가 전쟁 시기 고아원을 세워 천 명 이상을 살리고 휘경여중과 여고를 세운 이야기 등등이 있습니다.

 

금융 서적을 읽고 있단 걸 잊고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에 푹 빠져 읽고 즐기며 배웠습니다쉽고 재밌고 유익하고 더구나 깊이도 있으니 금융 서적으로서는 드물게(?) 맘 편히 추천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에 글로 소개하는 내용들은 이런 재밌는 내용들 다 빼고(?!) 주로 현실과의 접점들이 많고 심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한국의 구체적인 노후 대비 관련 내용들입니다.

 

100세 시대라는 말 반가우신가요저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노후를 보내는 분들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한국 사회에서는 늘 목격하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폐지 줍는 노인들이라니…… 이런 분들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한 제게 국뽕이 차오를 일은 없을 거란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시니어 빈곤율이 가장 높으며, 2017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중 44%는 대한민국 중위소득의 절반도 되지 않는 소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일본은 정반대라고까진 볼 수 없지만 모양새가 좀 달랐습니다특히 아이들 입학 졸업 시즌엔 부유한 조부모님 찬스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단 이야기도 들은 지 오래고 취직이 어려운 자식 세대들이 부모에게 당연하게(?) 생활비를 받아쓰는 풍조에 대해서도 종종 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지적하듯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사회라고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국가별로 다 다른 형편을 똑같은 불안과 우려도 설명하진 않습니다일본은 부의 70%를 60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이 정도인줄은 몰라서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왜 백화점 광고에 백발의 모델들이 자식들에게 뭔가를 선물해 주는 광고들이 많은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75세를 맞은 지금 60대와 70대 초반이 내 삶에서 절정기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내 건강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85세나 90세에야 노년이 시작할 거라 생각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어제까지의 세계김영사 2013

 

그러니 장수라는 사회적 현상이 반갑고 기쁜 일이 되려면 퇴직 후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기회들과 경제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당뇨고혈압심장질환퇴행성관절염을 공통병으로 앓으며 그마나 남은 돈을 의료비로 대량 지출해서는 노후라고 할 삶이 부재하게 됩니다.

 

개인이 부담하느냐 공적 연금이냐의 구분은 일단 차치하고 100세 시대 노후에 필요한 자산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쓰기 나름이기도 하겠지만 최소한의 자산은 어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일본은 대략 3억 3~ 3억 8천만 원이라 답했고한국은 최소한 한 달 생활비 평균 198만원적정 생활비 평균 290만원으로 답했다고 합니다.



자산을 모으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저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직업으로 벌기투자로 벌기소비 조절로 벌기소비 조절을 언급해줘서 저는 기쁩니다보유 자신이 얼마였든 실제로 파산하는 이들 중 약 70%는 소비 조절 능력이 없어서라는 통계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소비 조절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국가그리고 지구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그리고 지금은 그런 생활방식을 폐기하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 실천을 하루빨리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방법을 몰라 못하시는 이들은 실제로 별로 없으시지요.

 

접근성이 쉽지 않은 금융시장 이야기들경험담들다양한 자료들해외 현지의 생생함즐겁고 실용적이고 초심자를 배려한 쉽고 기본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참 친절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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