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놓아줘 - 디그니타스로 가는 4일간의 여정
에드워드 독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달의시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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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슬프지만 여전히 발화의 주체를 손의 주체로 두고 있어서 좋다.무슨 이야기인가 하시겠지만 부제 디그니타스로 가는 4일간의 여정 의 디그니타스에 대해 알고 계시거나 알게 되시면 짐작이 가능하실 것이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디그니타스는 실제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안락사 지원병원이다그러니 제목과 부제만으로 이 작품의 주제 의식 또한 짐작하실 것이다내 죽음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하지만 놓아줘라고 청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그들 사이의 이야기들이다.

 

생명만이 진정한 기적이자 가장 큰 신비일지도 몰라요아버지 그거 아세요아버지가 들이쉴 수 있는 숨이 열 번밖에 안 남았다고 해도그래도… 아버지는 끝까지 그 숨을 쉬어야 해요그렇게 하지 않는 건 모욕이니까생명에 대한 모욕 그 자체니까요.”

 

사는 일도 죽는 일도 언제나 지금보단 좀 더 존엄하게 존중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예전에도 그랬겠지만 판데믹 이후 질병을 이유로 차별과 혐오가 가시화되니 더 관심이 간다다른 나라 일이긴 하지만 어떤 죽음은 사회적 혼란과 의료 위기 속에서 감당하기 어렵게 취급되고 만다.

 

얼마 전에 우연히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조력자살이 불법이 아니라 말기암인 부모들이 자식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신뢰하는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을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자식들의 심정을 짐작해보면 어떤 일일까 막막해졌다.

 

부모의 죽음에 대처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가장 사적인 일이라는 거지왜냐하면 그 관계는 바로 네가 어렸을 때로 돌아가니까어렸을 때의 그 기억으로.”

 

태어난 직후 매일 살고 있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결과인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그렇다면 죽음을 택한다기보다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내 삶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여행에 좋은 점이 있다면딱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가 함께 살아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끼고 있다는 바로 그것일 거라고진정으로 함께 사는 것처럼 살아 있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기피하고 부정하다 홀연히 갑자기 닥치고 당하는 죽음도 있겠고 원하는 방식이 그것이라면 그 또한 선택일 테지만좀 더 다양한 입장에 처한 이들의 다양한 선택을 들어 보는 일은 아마 우리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 중 하나일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 방법이 있어 어쩌면 그조차 특권인다행인운이 좋은 이들의 여행에 나도 동참해본다인생의 마지막에 나누는 대화들은 무엇일지죽음이 가까워서야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는 기분이 든다는 분들도 계신데각자의 삶이 겪어낸 서사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우리가 단 한 번 사는 이 삶은 아주 짧아얘들아그게 내가 너희에게 전하려고 애쓰는 말이야단 한 번의 아주 짧은 생이라고그러고 끝나버려우라지게 빨리 끝나버린다고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지하지만 우린 잊어버리지잊어버린다니까.”

 

쉽고 편하고 차분하고 다정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닐 거라 마음을 단단히 했다간혹 에세이로 착각하며 읽을 소설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했다혹시 이 책을 읽고 내 삶 자체를 톺아보고 뭔가 실제로 바뀔 지도 모르겠단 두려움과 기대도 공존했다.

 

골치 아픈 가족관계애증의 대상인 아버지루게릭병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세 아들이 안락사 지원병원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그들 사이에 폭발할 누적된 에너지가 언제 어떤 형태로 터질까 읽으면서 불안불안 겁이 났다.

 

“ 다들 미친 듯이 서둘러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시시각각으로 수백 대의 차가 지나갔다죽으러 가는 건 아니고사실죽으러 가는 것이기도 했다.”

 

뜻밖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죽어가는 아버지가 가장 생기 있게 느껴진다한편으론 얼마나 홀가분할까 부럽기도 하다정말로 지금여기현재를 만끽할 수 있는 이는 아버지밖에 없지 않을까내 주위의 사물들아름다움들살아가는 이유 그리고 의미.

 

주제를 파악하고 교훈을 챙기고 하는 행위가 참 약삭빠르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궁금했다편지글에 담긴 내용들은 쉽게 그치지 않는 감동이었다일상에 대해서는 따뜻하고문학과 철학에 대해서는 날카롭고종교에 대해서는 깊이 있고모든 문장의 곳곳에는 위트까지 번져있다.

 

아버지는 인생이란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라고 주장했다즉 그것이 호모사피엔스인류를 위한 모든 이야기라고.”

 

아버지는 몰랐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자신의 인생으로 내게 가르친 것내게 가르친 것은 가끔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그냥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 아마도 우리를 데려온 건 잔인한 일일 것이다아마 아버지는 대단히 용감한 사람이거나 대단한 겁쟁이일 거다.”

 

나는 놓아 달라고 청하는 내 가족 누구의 손이라도 놓아줄 수 있을까...

놓아줄 수 없다면 왜 그런 걸까...

만약 그들이 치료제도 없이 앓으며 지독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남은 시간 경험할 것이 그 뿐이라면...

내 가족이 아니라 내 경우라면...


디그니타스 병원은 안락사 지정 병원 중에 유일하게 외국인을 받아 주는 병원이다. 1988년 설립 후 2014년까지 96개국에서 7764명이 안락사를 신청했다그 중 한국인은 1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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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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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보다 같은 것을 싫어한다는 공감을 나눌 때 더 가까워진다고 하는데나는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낀다부분적으로는 함께 경멸당한 세월이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우주선이 달에 착륙했고 학창시절엔 과학자가 되는 일이 곧 애국자가 되는 일이란 분위기 속에 자랐다그런데도 문학에서의 SF는 공상과학이란 천박한 번역 탓인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면서도 갖가지 과학기술을 산업과 일상에 들여오는 일에는 아주 열광적이었으니 이런 모순적인 괴리는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어쨌든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문학 자체도 대접을 잘 받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이젠 그럭저럭 이해는 한다.

 

지금은 SF문학이라고도 불리고계간지도 있고특집으로도 다뤄지고영상화도 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평가는 너그럽지 않다아마도 SF란 퀴어와 페미니즘과 더불어 늘 젊은 소수의 영역일 지도 모르겠다이변을 일으켜 흥행몰이를 한다는 기사의 소재로 가끔 활용되는.

 

지금쯤 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은 SF 단편집이다작년에 <화이트 블러드>를 무척 재미있게 읽고 신간 소식을 기다리던 작가 임태운의 작품이다장편이 좀 더 본격적이고 묵직하고 서사가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면 단편들은 훨씬 재기발랄하고 유쾌하고 재미있고 강렬한 가능성이 크다.

 

거의 매일 머리가 지끈거리고 짜증에 지지 않도록 자신과의 격렬한 싸움으로 지치는 날들에 반가운 아군처럼 느껴지는 책이다표제작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를 당연히 가장 먼저 읽는다.

 

막장 드라마처럼 익숙하지만 불안하게 전개되더니 그야말로 SF적 급반전한동안 웃느라 잠시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뭘 적어야 스포가 안 될까 너무 고민 되어 가능한 안 적기로 한다너무나 일상적이고 웃기고 유쾌하고 뭉클하다최고다.

 

정말로 남편에게 외도 상대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울반점>은 전라도 사투리를 잘 몰라 감상이 부족할까 긴장하며 읽다가 누군가의 향수가 듬뿍 느껴지는 이야기에 에세이인가 싶다가긴장 덕에 머리가 아플 시점에 빵 터지는 사건이 생겨서 아주 재밌게 즐겁게 읽었다불량식품을 먹으며 묘한 쾌감을 느끼는 듯한 시간이었다방심하면 아주 많이 웃게 된다영상화 계약이 되었다니 결과물이 무척 궁금하다.

 

새로 생겼다는 저 중국집에서 뭔가 불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야.”

 

<궁극의 몸>은 작가의 데뷔작이고 3시간 만에 쓴 작품이라는데 시의적절한 소재라 현실 밀착적인 기시감을 느끼며 깜짝 깜짝 놀라며 읽었다인류가 바이러스로 이런저런 신체 변형을 겪는다마치 공고한 사회 계급제도를 넘어서는 일은 질병에 의한 막을 수 없는 변형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어둡게 던지는 것도 같다생각이 차분해지지만 좋은 작품이다.

 

제 오른쪽 검지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던 작품이지만프레데터와 드래곤볼을 모두 보고 읽은 경험 덕인지 의외로 깔깔 거리며 공감할 수 있는 조롱들을 많이 알아 차렸다그나저나 정말 이런 소재와 전개로 강요된 모성애 이야기를 다룰 줄 몰랐다천재!

 

나는 강해지기 위해 어머니가 된 건지어머니가 되는 바람에 강해져 버린 건지.”

 

<레어템의 보존법칙>은 정말 못 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 작품이었다게임에 열중한 바가 없어서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로봇이라서 다행이야>는 제목이 무척이나 친근하고 분위기도 막 따뜻해지는 바람에 감정의 방향을 틀어 적응하면서 차분히 읽은 작품이다인간의 상상력이비극을 막기 위한 선의에서 비롯된 의도가 이렇게 슬프고 잔인한 목적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 내다니... 인간으로서 당황했다.

 

그런데 또... 이런 우정...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춰야 하는지다른 존재를 자체로 존중한다는 건 어떤 말과 행동과 태도여야 하는지... 어려서 못했던 잘못했던 할 수 있었지만 덜 했던 모든 시간들이 후회되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지는 작품이었다.

 

비밀은 충치 같은 거야.”

 

영상화된다면 가장 먼저 보고 소장하고 싶은 작품이다망치지 말아 주세요부디!

 

우리의 현실에서는 종말 하나 정도 막아줄게하는 누군가가 있을까.

당면한 위기 말고 이미 오래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여전한데 기억하고 있을까.

작가가 살뜰하게 담아 준 차별과 갈등과 범죄와 혼란을 웃다 울다하며 삶을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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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충변화
최제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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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대해 최초로 관심을 가진 것은 공자가 주역책을 아주 여러 번 읽어서 종이를 묶은 가죽 끈이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이다주역은 모르지만 인류 문명 4대 성인으로까지 칭해지는 분이니 주역이 점치고 굿하는 매뉴얼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런데...... 마치 법전을 처음 들춰봤을 때처럼 독해가 너무나 어렵다조사와 어미 빼면 다 한자주역의 철학적 배경도 배울 수 있으려나 싶어 자신이 없었다그러니 여전히 아는 것이라돈 12간지내개 태어난 해가 어느 동물에 해당하는지 밖에 없다.

 

세상에 중요한 동물이 12마리라는 것도한 해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동물적 특성을 가진다는 결정론도 전혀 믿기지 않지만현재까지도 나는 내 동물 띠로 끊임없이 상기되며 살아야 했다.

 

제목은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만나서 혹은 마주쳐서 충충돌하고 혹은 갈등을 겪고

변화변하고 혹은 서로를 발전시키고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만물이 겪는 일은 다 이런 역학에 다름 아니다생과 사의 사이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경험하는 내용들이다.

 

태어난 해시는 고정되어 있지만세상 모든 만물이 변화하니최초의 주역이란 사주란 것은 그 변화에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고 저항하고 때로는 헤쳐 나갈지를 알려 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주역의 역()이란 단어도 도마뱀의 형상이라고 한다.

 

같은 파충류이지만 거북이가 아니라 의외이다아마도 흔히 볼 수 있는 파충류인무해한 도마뱀이 탈피하는 모습을 보면 합충변화를 뜻하는 바뀌는 것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사주명리학과 유학에 관한 책들을 판데믹 이전 평생교육원에서 즐겁게 배우시면 부모님은 훨씬 더 재밌는 독서가 가능하실 것이고 나는 내가 읽을 수 있는 부분만을 만나 본다평생을 연구하고 연구소와 칼럼과 저서 활동을 하신 분이라 무척 쉽게 읽을 수 있는 평이한 언어들이라 좋다.

 

주역은 고대의 과학사상 같이 들린다만물을 보고 운행원리를 알고 싶어 했을 고대의 연구자들이 떠오른다현상을 관찰하고 통계를 찾아내는 일은 경험 감각에 의지하는 모든 과학의 기초적인 연구 방법이다.

 

그렇게 보면 주역의 괘들도자연의 섭이에 대한 과정을 표현한 수식일 것이다상형문자처럼 보여 아찔한 표현들이지만어쩌면 현재의 누군가는 수학을 이런 기분으로 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가장 궁금한 점은 천지만물의 운행원리를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어떻게 개별 인간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과거현재미래까지 설명서처럼 보이는가 하는 지점이다공자가 전하는 말들은 일부는 과학처럼 일부는 문학처럼 들렸다.

 

정치를 중요한 가치로 두고 평생 자신의 정치철학을 현실화시키려 애쓴 분이라서인지주역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일상에서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실천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으려 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마음에 나도 그런 방점을 마음에 품고 책을 읽었더니 이런 구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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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9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1 : 서양 고대 철학편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1
김재훈.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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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텍스트를 구하던 시절에는 정말 교과서처럼 이런 저런 책 목록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단 개론서는 원작과 번역이 얼마나 훌륭하든 엄청난 인내과 체력과 끈기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나중에는 완독을 위해 읽기 하나 눈에만 비치고 뇌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신비체험도 하게 된다.

 

철학이 괴짜들의 괴딴 이야기들만이 아니라 진지한 근원적인 학문으로 소개되고 이해받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특히나 철학관들이 즐비한 한국의 상황은 철학 자체에 대한 오해와 오독이 더욱 공고했던 시절도 짧지 않았다.

 

더 이상 개론서도 전공서적도 읽지 않지만멋지게 갈무리된 대중서로서의 철학책이 끌려 읽을 때도 있다역시 좋다일상에서 수다를 열심히 떨지도 않지만 깊고 끈질긴 탐구적 대화도 부족하니 간혹 그런 추적 자료와도 같은 논리적 귀결을 따라가는 일은 즐겁다.

 

이 책은 북캉스 말고는 뭘 할 수 있나 싶은 시절이라 강박처럼 책을 구비하고 싶은 마음에 쏙 드는 멋진 책이다철학책이고 만화책이고 모르는 철학자들이 여전히 등장하니 재밌게 읽고 즐기고 배우는 기쁨이 공존한다.

 

두 종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신의 한 수!라 여겨지는 구성이다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철학을 설명하는 캐릭터보다 설명을 듣고 배우는 캐릭터에 공감하고 몰입하기 좋기 때문이다나도 궁금한 질문을 대신 해주는 존재가 될 때도 있다.

 

재밌는 유머들도 있고 사투리도 나오는데 내용만 보면 철학적으로 허술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서양 고대 철학편이란 설명이 있듯이 고대 철학에 대한 큰 맥락을 따라 가며 꼭 만나야할 철학자들과 그들의 철학을 꼭꼭 짚어준다.

 

즉 서양 고대 철학에 대해 한 줄기로 쭉 정리되는 내용을 익힐 수 있다모르던 철학자들에 관한 내용을 읽고 나니 좀 뿌듯하다역시 지식은 일단 쌓는 맛!

 

이후 출간된 책들까지 읽게 되면 서양 고대중세근대현대에 이르는 쉽지만 부족하지 않은 철학사적 지식이 생길 것이라 기대한다접근성과 가독성이 좋은 인문교양서!


! 단점 하나 :  3분 철학이란 제목 때문에 자꾸만 컵라면 생각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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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간 - 사랑이라는 이름의 미스터리 일곱 편 나비클럽 소설선
한새마.김재희.류성희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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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업도 주제도 애타고 탐나서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이다일곱 편의 추리소설이라니폭염에 판데믹 확산에 다 포기하고 싶은 시절에도 여름이 있어 이것만은 다행이야라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머리가 뜯어질 듯한 시간에도 한 편씩 쏙 꺼내 맛 볼 엄두가 난다.

 

여름엔 사랑인가여름의 사랑인가삶이 온통 풀 수 없는 미스터리라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하니 책 속의 미스터리가 만만해 보인다물론 읽기 전 기분이다.

 

1. 한새마 <여름의시간>

 

표제작이라 늘 하던 버릇대로 처음 읽어 본다.

 

우발적 사고를 완전범죄로 만드는 여정이란 슬프고 더 슬픈 이야기이다사랑 때문에 또 이런…… 이란 안타까운 마음이 번지는 소재이다.

 

우리한테 끝이란 게 있을까요?”

 

그렇다고 흔하고 뻔한 구성과 내용은 아니다불안과 궁금증으로 뒤쫓는 마음에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대답은 그걸로 됐어요.”

 

사랑과 여름과 사고와 범죄란 모든 강렬한 소재들을 모아 이렇게 차분하고 선명하고 예민하게서늘한 감정의 온도의 유지하며 쓴 문장들이 정말 좋았다.

 

뜨거운 화염이 남편을 집어삼킵니다.”

 

첫 번째 작품이 완전두근거리게 재밌고 좋아서 다음 작품을 바로 읽어도 되나 싶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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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재희 <웨딩증후군>

 

단편 분량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이토록 생기발랄한 생명력을 충분히 갖출까 놀랍고 감사했다.

 

자신은 중년 부인들의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소비 욕구로 충족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다재무 설계를 해주고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을 팔면서.”

 

풍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소재라 신선하고 재미있었다인간은 인간의 수만큼 다른 증과 병을 앓고 사는지도 모른단 생각을 잠시 한다명명되지 못했을 뿐 실체와 실재를 누가 다 알까.

 

걔는 성적인 만족감을 다르게 느껴요.”

 

이 그렇다면 사는 방식도 다 다를 수 있다는 것다른 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논리적으로 당연하고 현실적으로 위험한 수긍이 든다.

 

그러니 남을 내 뜻대로 휘두르려는 사적/공적인 모두 시도들에 강력한 폭력이 동원되는 것은 불기피한 일 일듯.

 

만약 이런 부분에 합의해 줄 수 있다면 계약서를 쓰고 공증을 받아요.”

 

좀 더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선호한다고 말해온 세월이 길어 성주희의 제안에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천천히 읽고 즐기고 싶은데 한 호흡에 휘리릭잘 읽히니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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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선주 <능소화가 피는 집>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이번엔 진짜다.”

 

초반에 이리저리 재밌게 상상해볼 여지들을 펼쳐 주어 익숙한 소재인 듯해도 작가가 마련해 둔 비상한 반전을 기대하며 즐겁게 변주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주연의 향 외에 다른 향은 섞여 있지 않았다.”

 

정확한 계산은 하지 않았지만 체감 상 꽤나 빨리 눈치를 챌 만한 강렬한 감정선이 보여서 여전히 결말은 기대되었지만 살짝 아쉬웠다.

 

끔찍하리만치 무신경하고 자기중심적인 저 천성이 언젠가 화를 부를 거라고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감정들과 그에 부응하는 장면들이 음성 지원되듯 생생했고단단하게 짜여서 널브러지지 않는 감정선이 마음에 들었다.

 

익숙한 향자신이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였다.”

 

단편의 장점 중 하나장면이 바뀌는 속도가 빠르고 한 두 문장으로 깔끔하게 사연을 수렴하는 결말이 좋다시점들이 뒤바뀌며 전개되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세련되고 즐거웠다재미가 지극해서 읽는 일이 순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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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마란 <망자의 함>

 

후텁지근한 초여름의 밤이다제일 좋아하는 와인 두 병을 들고 집을 돌아가는 퇴근길은 그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던 8단 한 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휴가가 드디어마침내 내게 허락됐다.”

 

시작하는 세 문장을 보고 이 단편은 필히주말을 택해 읽으리라 비장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그리고 주말제일 좋아하는은 아니지만 간만에 와인을 사서 집에 왔다퇴근주말와인소설휴가(미정)... 무엇 때문인지 이 모든 것 때문인지 두근거리며 읽는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이 모든 느긋함이 와장창어긋난다놀라고 당황하고 유쾌하다.

 

주인공의 감정선버릇강박까지 공감할 내용이 많아서나도 딱 이렇게 행동했겠다 싶은 것들이라 두근두근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집에서 이 아이가 사라져주기만 하면 된다얼른 이 사람들을 치루고 원래 계획했던 여유로운 휴가를 누리고 싶다훠이얼른 물러가라.”

 

그런데... 또 다음 장에서 이젠 약간 무섭도록 익숙한 상황과 심리가 등장한다작가님... 이거 제 얘기 같아요... 아니지요...

 

흔적조차 희미한 죄책감이란 것이 들썩였다. (...) 아이는 남았다금새 후회가 밀려왔다.”

 

불편한 친밀감을 느끼며 계속 읽는다여기저기 문장들이 자꾸 내 얘기 같다그래서 미칠 듯이 궁금해서 도저히... 그만 읽을 수는 없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하나씩 깨어났다모든 게 다엉망이다.”

 

예상 못한 행복한 이야기인데 눈물이 나는... 참 이상하고 신기하고... 안심이 되는 결말이다.

있었으면... 많았으면 좋겠다 싶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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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류성희 <튤립과 꽃 접힌 우산>

 

제가 죽였을 수도 안 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대답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무슨 뜻인지 다 알 것 같아 흠칫하기도 합니다상상 속에서 따귀를 후려치고 싶은 이들은 많지만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해본 적은 없으니까.

 

상상 속에서조차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지만현실은 만만치 않고이상한 이들은 끝도 없고똥은 잘 피하면 된다 생각하지만 어느새 내가 남의 똥이 된 건 아닌지도 확인해보며 살아야 한다사는 일은 대체로 쉽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겪으면 저런 표정이 될까 (...)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서로를 금방 알아봅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말끔히 잊고 임신출산육아살림기타의 감정노동을 탁월하게 해내라는 사회의 주문이 얼마나 악랄한지 잘 알기 때문에 양육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나 판단은 안 하려고 하는데... 내용이 무시무시합니다.

 

모든 것은 현상이고 결과라고 하기에도 아이를 굶기고 학대하고 약물을 먹이는 건 인물의 육성이 들릴 듯한 생생한 대화 때문인지 현실의 보도 자료만큼 끔찍합니다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깊은 숨을 쉬며 끝까지 읽습니다.

 

이제는 정말 실행해야 했습니다그 아이가 그 일을 해버리기 전에요모름지기 교사라면 학생을 지켜야 하니까요.”

 

아픕니다.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라서.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일 거라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일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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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황세연 <환상의 목소리>

 

기억에 없어요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예전엔 기억에 없다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거짓말일 거라고 믿었다일상적인 것이 아니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 거짓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세상일이 대부분 그렇듯 선명한 두 개로 잘 구분되는 경우는 없다.

 

이후 나는 실제로 자신마저 속이는 허언증에 숙달된 사람자신에게 유리한 일만 기억하는 사람타인에게 완벽하게 무심한 사람 등등 여러 유형으로 세상과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어떻게 사람의 기분을 이리 극단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거지?”

 

적지 않게 반복되는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무게감도 정서적 울림도 없는 상황 묘사가 놀랍다등장인물들의 감정과 목소리까지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의 우연이 가능한 걸까?”

 

결국 우연이 아니었지만 나는 결말에 정말 심하게 놀랐다반전 인물에 대한 묘사도 설명도 대사도 없었기 때문에나에게조차 완벽하게 투명 인물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범죄보다 아무 감동 없이 사랑을 말하던제 이익을 잘 챙겼을 뿐인 인물에 더 소름이 끼칠까중요한 것들이 제거된 듯한 이런 연애는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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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홍성호 <언제나 당신 곁에>

 

홀연히 사라졌던 예전 애인이 돌아왔다.”

 

사연은 아직 모르지만 자살 준비와 심리를 세밀하게 전개하는 문장들에 끌려들어 두근거리며 따라 읽다가 이 갑작스런 문장에 얼떨떨해졌다바로 이 순간에그 장소에이 인물이 나타날 수 있는 기막힌 개연성이 무엇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첫 번째 반전제 정신이 아니라 착각한 것이었다교차 구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았다면 계속 어리둥절했을 듯.

 

“(...)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반전에 잔 소름이 돋는다호의와 선의에서 돕고자 하는 행동들이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까 불안했다모두 거짓이 아니지만 결정적인 부분을 비튼 반복적인 거짓말이야기만을 위한 설정으로 읽히지 않아 섬뜩하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떠날 것이다.”

 

시간의 구성이 다르게 흐르기도 한다달콤한 제목과 달리 의심과 불안과 감시와 통제가 동반되는 소유욕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진 듯 무시무시한 동력을 갖추고 있다그래서... 수민은 원하던 것을 얻은 걸까이런 방식의 사랑은... 잘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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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단편을 모두 만난 서운한 날이다모든 서사가 다 생각날 만큼 인상적이고 뚜렷한 드라마들이었다상상을 한참 벗어난 반전을 만나는 일도 즐거웠다추리 자체는 아주 가볍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구성이다매일 기대되고 재미있었던 만큼 이별이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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