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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간 - 사랑이라는 이름의 미스터리 일곱 편 ㅣ 나비클럽 소설선
한새마.김재희.류성희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7월
평점 :
라인업도 주제도 애타고 탐나서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이다. 일곱 편의 추리소설이라니! 폭염에 판데믹 확산에 다 포기하고 싶은 시절에도 여름이 있어 이것만은 다행이야~ 라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뜯어질 듯한 시간에도 한 편씩 쏙 꺼내 맛 볼 엄두가 난다.
여름엔 사랑인가, 여름의 사랑인가, 삶이 온통 풀 수 없는 미스터리라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하니 책 속의 미스터리가 만만해 보인다. 물론 읽기 전 기분이다.
1. 한새마 <여름의시간>
표제작이라 늘 하던 버릇대로 처음 읽어 본다.
우발적 사고를 완전범죄로 만드는 여정이란 슬프고 더 슬픈 이야기이다. 사랑 때문에 또 이런…… 이란 안타까운 마음이 번지는 소재이다.
“우리한테 끝이란 게 있을까요?”
그렇다고 흔하고 뻔한 구성과 내용은 아니다. 불안과 궁금증으로 뒤쫓는 마음에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대답은 그걸로 됐어요.”
사랑과 여름과 사고와 범죄란 모든 강렬한 소재들을 모아 이렇게 차분하고 선명하고 예민하게, 서늘한 감정의 온도의 유지하며 쓴 문장들이 정말 좋았다.
“뜨거운 화염이 남편을 집어삼킵니다.”
첫 번째 작품이 완전! 두근! 거리게 재밌고 좋아서 다음 작품을 바로 읽어도 되나 싶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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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재희 <웨딩증후군>
단편 분량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이토록 생기발랄한 생명력을 충분히 갖출까 놀랍고 감사했다.
“자신은 중년 부인들의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소비 욕구로 충족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무 설계를 해주고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을 팔면서.”
풍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소재라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인간은 인간의 수만큼 다른 증과 병을 앓고 사는지도 모른단 생각을 잠시 한다. 명명되지 못했을 뿐 실체와 실재를 누가 다 알까.
“걔는 성적인 만족감을 다르게 느껴요.”
‘증’이 그렇다면 사는 방식도 다 다를 수 있다는 것, 다른 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논리적으로 당연하고 현실적으로 위험한 수긍이 든다.
그러니 남을 내 뜻대로 휘두르려는 사적/공적인 모두 시도들에 강력한 폭력이 동원되는 것은 불기피한 일 일듯.
“만약 이런 부분에 합의해 줄 수 있다면 계약서를 쓰고 공증을 받아요.”
좀 더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선호한다고 말해온 세월이 길어 성주희의 제안에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천천히 읽고 즐기고 싶은데 한 호흡에 휘리릭~ 잘 읽히니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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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선주 <능소화가 피는 집>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이번엔 진짜다.”
초반에 이리저리 재밌게 상상해볼 여지들을 펼쳐 주어 익숙한 소재인 듯해도 작가가 마련해 둔 비상한 반전을 기대하며 즐겁게 변주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주연의 향 외에 다른 향은 섞여 있지 않았다.”
정확한 계산은 하지 않았지만 체감 상 꽤나 빨리 눈치를 챌 만한 강렬한 감정선이 보여서 여전히 결말은 기대되었지만 살짝 아쉬웠다.
“끔찍하리만치 무신경하고 자기중심적인 저 천성이 언젠가 화를 부를 거라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감정들과 그에 부응하는 장면들이 음성 지원되듯 생생했고, 단단하게 짜여서 널브러지지 않는 감정선이 마음에 들었다.
“익숙한 향, 자신이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였다.”
단편의 장점 중 하나, 장면이 바뀌는 속도가 빠르고 한 두 문장으로 깔끔하게 사연을 수렴하는 결말이 좋다. 시점들이 뒤바뀌며 전개되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세련되고 즐거웠다. 재미가 지극해서 읽는 일이 순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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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마란 <망자의 함>
“후텁지근한 초여름의 밤이다. 제일 좋아하는 와인 두 병을 들고 집을 돌아가는 퇴근길은 그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던 8년, 단 한 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휴가가 드디어, 마침내 내게 허락됐다.”
시작하는 세 문장을 보고 이 단편은 필히, 주말을 택해 읽으리라 비장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리고 주말, 제일 좋아하는, 은 아니지만 간만에 와인을 사서 집에 왔다. 퇴근, 주말, 와인, 소설, 휴가(미정)... 무엇 때문인지 이 모든 것 때문인지 두근거리며 읽는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이 모든 느긋함이 와장창! 어긋난다. 놀라고 당황하고 유쾌하다.
주인공의 감정선, 버릇, 강박까지 공감할 내용이 많아서, 나도 딱 이렇게 행동했겠다 싶은 것들이라 두근두근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집에서 이 아이가 사라져주기만 하면 된다. 얼른 이 사람들을 치루고 원래 계획했던 여유로운 휴가를 누리고 싶다. 훠이, 얼른 물러가라.”
그런데... 또 다음 장에서 이젠 약간 무섭도록 익숙한 상황과 심리가 등장한다. 작가님... 이거 제 얘기 같아요... 아니지요...
“흔적조차 희미한 죄책감이란 것이 들썩였다. (...) 아이는 남았다. 금새 후회가 밀려왔다.”
불편한 친밀감을 느끼며 계속 읽는다. 여기저기 문장들이 자꾸 내 얘기 같다. 그래서 미칠 듯이 궁금해서 도저히... 그만 읽을 수는 없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모든 게 다, 엉망이다.”
예상 못한 행복한 이야기인데 눈물이 나는... 참 이상하고 신기하고... 안심이 되는 결말이다.
있었으면... 많았으면 좋겠다 싶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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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류성희 <튤립과 꽃 접힌 우산>
“제가 죽였을 수도 안 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대답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뜻인지 다 알 것 같아 흠칫하기도 합니다. 상상 속에서 따귀를 후려치고 싶은 이들은 많지만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해본 적은 없으니까.
상상 속에서조차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고, 이상한 이들은 끝도 없고, 똥은 잘 피하면 된다 생각하지만 어느새 내가 남의 똥이 된 건 아닌지도 확인해보며 살아야 한다. 사는 일은 대체로 쉽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겪으면 저런 표정이 될까 (...)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서로를 금방 알아봅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말끔히 잊고 임신, 출산, 육아, 살림, 기타의 감정노동을 탁월하게 해내라는 사회의 주문이 얼마나 악랄한지 잘 알기 때문에 양육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나 판단은 안 하려고 하는데... 내용이 무시무시합니다.
모든 것은 현상이고 결과라고 하기에도 아이를 굶기고 학대하고 약물을 먹이는 건 인물의 육성이 들릴 듯한 생생한 대화 때문인지 현실의 보도 자료만큼 끔찍합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깊은 숨을 쉬며 끝까지 읽습니다.
“이제는 정말 실행해야 했습니다. 그 아이가 ‘그 일’을 해버리기 전에요. 모름지기 교사라면 학생을 지켜야 하니까요.”
아픕니다.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라서.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일 거라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일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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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황세연 <환상의 목소리>
“기억에 없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예전엔 기억에 없다, 기억이 안 난다, 는 말은 거짓말일 거라고 믿었다. 일상적인 것이 아니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 거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일이 대부분 그렇듯 선명한 두 개로 잘 구분되는 경우는 없다.
이후 나는 실제로 자신마저 속이는 허언증에 숙달된 사람, 자신에게 유리한 일만 기억하는 사람, 타인에게 완벽하게 무심한 사람 등등 여러 유형으로 세상과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어떻게 사람의 기분을 이리 극단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거지?”
적지 않게 반복되는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무게감도 정서적 울림도 없는 상황 묘사가 놀랍다.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목소리까지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의 우연이 가능한 걸까?”
결국 우연이 아니었지만 나는 결말에 정말 심하게 놀랐다. 반전 인물에 대한 묘사도 설명도 대사도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조차 완벽하게 투명 인물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범죄보다 아무 감동 없이 사랑을 말하던, 제 이익을 잘 챙겼을 뿐인 인물에 더 소름이 끼칠까. 중요한 것들이 제거된 듯한 이런 연애는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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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홍성호 <언제나 당신 곁에>
“홀연히 사라졌던 예전 애인이 돌아왔다.”
사연은 아직 모르지만 자살 준비와 심리를 세밀하게 전개하는 문장들에 끌려들어 두근거리며 따라 읽다가 이 갑작스런 문장에 얼떨떨해졌다. 바로 이 순간에, 그 장소에, 이 인물이 나타날 수 있는 기막힌 개연성이 무엇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첫 번째 반전, 제 정신이 아니라 착각한 것이었다. 교차 구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았다면 계속 어리둥절했을 듯.
“(...)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반전에 잔 소름이 돋는다. 호의와 선의에서 돕고자 하는 행동들이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까 불안했다. 모두 거짓이 아니지만 결정적인 부분을 비튼 반복적인 거짓말. 이야기만을 위한 설정으로 읽히지 않아 섬뜩하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떠날 것이다.”
시간의 구성이 다르게 흐르기도 한다. 달콤한 제목과 달리 의심과 불안과 감시와 통제가 동반되는 소유욕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진 듯 무시무시한 동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수민은 원하던 것을 얻은 걸까. 이런 방식의 사랑은... 잘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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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단편을 모두 만난 서운한 날이다. 모든 서사가 다 생각날 만큼 인상적이고 뚜렷한 드라마들이었다. 상상을 한참 벗어난 반전을 만나는 일도 즐거웠다. 추리 자체는 아주 가볍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구성이다. 매일 기대되고 재미있었던 만큼 이별이 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