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99호 - 2023.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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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벼리는 건 그 힘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희망이 발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비틀거리고 좌절했으나 끝내 포기하지 않던 힘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을 열 것이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묵묵히 일상을 쌓아가길 바란다.”

 

앞이 될 수 없다면 곁이, 곁이 어렵다면 맨 뒤라도 함께하길 바란다.”

 

그곳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 사라지지 말자.”





어제와 오늘

사이에 유격이 클 때

꿈에 깃들지 못한 채로 내 주변을 맴돌던 악몽이

눈뜬 아침을 가엾게 내려다볼 때

 

* 유격1 (裕隔) [명사] 기계 작동 장치의 헐거운 정도.





불구하고

 

그새 또 잊고 어제 잠시 샌드위치를 사고 싶었다

거의 살 뻔했다

애도할 줄 모르는, 플라스틱에 싸인 것을





그 모든 시간이

나의 선택이었다고





있는 힘을 다하여 3월이 왔다

살아 있는 모두가 3월에 도착했다

봄이 아니랄 수는 없을

이제 3

 

그저 신을 신고 나가서

있는 힘을 다해 땅을 밀면

몸이 앞으로 나갈 것이다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더 망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건

여전히 희망일까,

낱낱이 찾아낸 시간차 절망일까

아무도 만세를 부를 것 같지 않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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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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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지향하는 바가 없다. 공공의 삶에 대한 가치 철학이 없다. 기억과 역사에 대한 지식과 고민이 없다. 그런 주제에 시끄럽다. 나처럼 나약한 목격자들의 심신을 해하니 가능한 그 꼴을 보고 싶지가 않다.

 

작년 815일 그래도 광복절인데 국가에서 어떻게 기념하는지 궁금해서 보려다가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을 학대할 뻔 했다. 부작용이 너무 커서 읽고 있던 책도 덮었다. 경축은커녕 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험했다.

 

그러니 조선왕조를 되찾자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화국을 세워 자유, 평등, 정의의 세상을 만들자고 한 헌법의 기초가 된 선언도 만세운동도 거의 일 년간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 격렬한 저항전쟁을 담은 3.1절도 기념할 리가 없다.

 

개인에게 기억이 중요한 만큼, 국가가 기념하는 일은 공동체에 큰 의미를 갖는다. 성공한 이들에게 훈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고 죽임 당하고 찾지 못하고 묻히고 가려지고 한 모든 일들을 잊지 않고 찾겠다는 약속이자 계승을 위한 되새김 학습이다.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원에 묻힌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야 한다. (...) 나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 정정화 회고록 <장강일기> 중에서

 

사진 : <정정화 초상>, 2020 학고재 갤러리

 

포기하니 복잡하지만 평화로운 휴일을 보내고 있었는데, 작년의 나처럼 속이 뒤집힌 친우들의 연락이 도착한다. 괴로워도 보고 기억하고 욕하고 타석으로 삼는 태도를 존경한다. 나는 못할 일이다. 도저히.

 

대통령과 행정부와 국가가 여기저기를 메우고 때우고 가린 상처를 열어 치료하려 노력한, 이제 천천히 한 발을 떼겠구나 했던 시절은 멀지 않은데, 심리적 거리는 전생 같다. 삼일절을 어떻게 기념했는지, 찾아보았다.



 

“‘그즈음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폄훼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은 사회 부적응자라는 허무맹랑한 비난이었다. (...) 우리는 행사 사회자로 (...) 독립유공자 가족인 이재화 씨를 선정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알려진 시인 이상화 선생의 후손이었다.“




우리는 단지, 낡은 생각과 낡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를 억누르고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따라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원한이 생겨나고 있다.”

 

- <기미독립선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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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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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를 위한 방대한 조사는 감동적이고, 냉담할 정도로 차분하고 단호하게 써내려가는 저자의 글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새로운 주장이며, ‘열망을 중심으로 이해해보는 지위 결핍과 부재는 익숙한 불안의 형태로 이어진다.

 

일독을 마치고 나니,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언급한 지위에 대한 불안의 문장들이 떠올랐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의지자유로운 선택과 같은 표현은 반발심도 생기고, 일부 부정할 근거도 있긴 하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여전히 의지적 힘이 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지위에 대한 열망과 불안에 더해 개인이 상상하고 과장하는 면면도 일부 분명하다.

 

매일, 모든 이들이 서로 지위 게임을 벌인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마치 호흡을 의식하세요, 라는 제안처럼도 들리지만, 심신과 타인에 악영향을 주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면, ‘의식하지 못했던것들도 인지하고 바꿔야한다. 모른 척 한다고 바뀌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의 뇌는 진화의 산물이니, 과학정보로서 배우는 것도 흥미롭지만, 인간을 연구하는 주제라면, 역사학과 경제학을 살핀 책들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이해가 쉽다.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 결과를 기초로 썼다는 점이다.



 

19세기, 서양의 산업사회 등장 당시 사회와 인간 양상을 분석한 <유한계급론>2023년 한국의 현실에도 설명력을 가진다. 과소비가 아닌 과시적 소비역시 지위 게임의 수단이자 결과이며, 갑질의 심리, 더 심각하게는 사이비 종교와 다양한 과학정보의 불신에 이른다.

 

인간은 다양한 욕구들을 가지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난 지위 욕구는 아주 거대한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역사를 바꾼 큰 사건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라 일상까지 촘촘하게 그 영향력을 펼친다. 우정, 협력, 연대를 보고 싶은 독자로서 나는 조금 서글플 지경이다.



 

욕구라는 것은 늘 양면성을 가지게 마련이라서, 지위 욕구로 추동된 인간 역시 파괴와 성장, 폭력적 퇴행과 성취, 이상과 전쟁 등의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행위들로 역사를 채워왔다. 21세기에 끝내지 못하는 전쟁에 침통해하다, 계산과 거래가 덜 끝났을 거라 막연히 짐작하고 염오厭惡한 내 생각은 부박浮薄했다.

 

즉 계산만이 아닌 좌절, 패배감, 모멸감, 굴욕 등등이 보상 심리로 가장 폭력적이고 과격한 방식의 보상 심리와 지위 회복을 노린 결정이었을 수도. 인류는 매일, 일상과 사회와 국제 간에 지위게임을 펼치다가, 누군가가 임계점에 달하며 테러와 전쟁으로 현현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완전히 속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강하므로 진실을 알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면 합리적 사고는 가능하다. 개인의 경험으로 거품을 터트리고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하듯, 욕구에 휘둘린 위험과 환성을 인식하고 휩쓸리지 않을 합리성을 인류가 회복할 수 있을까. 개개인이 충분히 합리적 존재가 될 수 없어도 집단 합리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살면서 너무 합리적인 사람들 때문에 괴로워본 적이 없다. ‘합리성자체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해봐야 나의 태도를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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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섀퍼 부의 레버리지 - 경제적 자유로 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
보도 섀퍼 지음, 한윤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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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안에 현재 소득의 100퍼센트를 더 벌 수도 있으며, 지금보다 더 오래, 더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11)’는 문장에 끌려 꼭 배우고 싶었던 강렬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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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간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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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한지 얼마 되었다고 또 게으름에 변명에 걸으러 나가지 않았다. 222일이고 수요일이고 특별할 것 없는 정보들을 격려 삼아 3일 만에 산책. 쌀쌀하긴 하지만 쨍함이 무뎌진 이제 곧 봄밤이다.

 

검은 하늘도 흐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늘보다 더 흐려진 눈을 올려 깊이 들여다봐야 했다. 별빛이 적다, 그나마 밝은 것들은 인공위성들이겠지. 언젠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도 우주의 먼지가 될 테니, 지구도 다시 우주의 일부가 될 테니, 인공이건 아니건 아쉬워하지 않기도 한다.



 

어두운 밤에 구경(?)하기에 더 맞춤한 제목은 없을 듯했다.

 

A hora da estrela

The hour of the star

별의 시간

 

저자 이름조차 별빛이다

 

Clarice : from Latin Clara, "bright, shining, clear"

Li-spect-or : spek- "to observe", observer

빛 관찰자

 

한 분자가 다른 분자에게 그래라고 말했고 생명이 탄생했다.”




첫날은 몇 장 못 읽고 잠들었다. 주말 저녁 약속과 다른 책에 끌려 별의 시간을 덮어 두었다. 작가의 전작도 읽다 멈췄는데, 선홍빛으로 아름답던 표지가 핏빛으로 느껴지던 문장을 만난 순간이었다. <야생의 심장 가까이>로 칼날이!

 

아니, 그 칼날은 웃고 있는 허파 속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파고 들었다(219)’고 했다. 선명한 생각을 타고. 얼음장에 닿은 듯 놀라 날이 더워지면 천천히 읽자고 도망갔다.

 

한 사람을 깊이 사귀기보다 유쾌하고 늘 뭔가 새로운 일회성 만남을 즐기는 사람처럼, 요즘 독서가 대체로 그렇다. 그게 편하다. 어쩔 수 없이(?) 끌려들고, 뭔가가, 때론 중요한 것들이 덕분에 변하게 되는 책들은 여전히 있지만.

 

작가가 어떤 사상을 심화시켜 얼마나 깊숙하게 작품에 담았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간질거리는 감각만 느껴진다. 전통을 파괴하고, 파격적으로 묘사하고, 기존과 현상status quo를 거부하면서도 완전한 문학을 창작했다는 것.

 

사실 나는 작가라기보다는 배우다. 구두점을 찍는 방식이 단 하나로 정해진 상태에서 어조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홀려, 그들의 호흡이 내 텍스트와 함께 가도록 만들고 있으니까.”

 

정신을 차릴수록 헷갈리는 글을 읽으면서 무척 감정적이 된다. 예측도 할 수 없고, 자주 비인간적 사고로 가장 인간적이라는 스토리를 읽어야하고. 당대의 이야기인지 여전한지 모를 제한된 의식 묘사에 갑갑해지고.

 

헌사를 쓴 이, 작가, 작품 속 마카베아는 여러 명의 동일인이다. 여러 세계의 경계선을 넘어 다니는 읽기도 쉽지 않다. 극적으로 대비되는 캐릭터 덕분에 중심을 잡고 따라간다.

 

라는 것이 운이 좋으면 양면적이고 나쁘면 다면적인 라는 존재의 파편들이 극적으로 체화되어 있다. 진실로 혼자인 시간은 언제일지. 아무도 못 믿는 내게는 진실을 전해 줄 타인이 있을 수 없다.

 

이제 일 년이 지난 전쟁은 누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픈 것은 선명한 피해자들이다. 백여 년 전,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러시아 내전을 피해 브라질로 간 작가.

 

여성으로 작가로 생존하기 참담했던 부조리한 브라질 사회, 불법이었던 이론, 불안, 불면, 수면제, 흡연, 화재, 전신 화상, 잔혹한 희망... 죽음 말고, 존재의 소멸 말고 자유로워질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빅뱅의 순간을 몰라도 우주가 계속 달라져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상 가능하다. 마지막 순간 가장 밝게 타오르는 별의 생멸의 모순처럼, 그의 문학은 파괴적이지만 신비로운 형식을 갖춘 재생하는 우주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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