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최규영 지음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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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생각을 하면, 흐리고 비 오는 봄날이 반갑고 안도가 된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한 막막함도 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화재 속 막막함을 생각하면 비교할 길이 없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마는 재난을 당하고 피난을 가야했던 분들에 대해 현직 소방관인 저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어두운 감정들을 동반하는 것이 화재라고 한다.


 

이전에 다른 일을 했을 때는 감사 인사를 받기보다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고, 현장에 도착하기만 해도 고맙다고 해주는 직업이라는 것이 고맙다고 한다. 활활 타오르는 공포가 몸을 얼어붙게 하는 현장에서, 다른 누가 불 속으로 뛰어 들어 타인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을까.

 

평범한 날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아직도 충격적이다. 그날 우린 다 같이 보통 날을 살았고 서로의 속도가 달랐을 뿐이었다.”


 

무섭고 두렵고 어려운 남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달려가고 해결해주는, 걱정을 덜어주는 직업은 성스럽다. 매일 도움을 청하는 누군가를 어떻게든 돕는 일은 다를 바 없이 고단하고 피로하고 더할 수 없이 힘들고 위험하겠지만, 자주 많이 행복할 것도 같다.

 

알다시피 소방관firefighter는 화재 관련 일만 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 저자는 출근해야 그날의 업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변신한다고. 나무가 쓰러지면 목수가, 누군가 산에서 실족/부상당하면 들것을 멘 산악인이 된다.

 

작업의 강도와 현장의 심각성도 다양하다. 어느 날은 땀에 젖은 채로, 다음 날은 피에 젖은 채로. 또 다른 날은 검댕이 재투성이가 된 채로.

 

옷에 피 묻히는 직업을 후회하지 않는다.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내 몸에 묻은 피가 짧고 강렬하게 피고 졌던 한 인간의 꽃잎이라 생각하면 더럽지 않다. 죽은 사람의 얼굴이 꿈속에 나올까 겁내지도 않는다. 내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기라 생각하면, 피 묻은 방화복은 더 이상 섬뜩하지 않다.”

 

소방관인 저자가 감정적인 충격을 덜어내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 타인의 사고와 불행을 글감으로 쓰는 일을 거듭 생각하며 써 나간 글이, 마치 찬란한 봄날 즐겁게 뛰어노는 듯한 표지로 출간되었다. 좋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은 더 가라앉은 독자지만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여러 사례들 덕분에 웃다보니 삶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화가 난 소에 쫓기고 돼지가 힘이 다 빠질 때까지 함께 뛰고.

 

늘 감사하고 응원하고 가능한 더 많은 처우개선을 바란다. 계속 써주시면 좋겠다. 글로 다시 만나 뵙고 싶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실행하는 사람. (...) 겹겹이 시간을 쌓아가는 모습은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 꾸준히 이상하면 진심이란 것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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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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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오랜만에 기억나는 꿈을 꾸었다. 현실의 기상 시간이 다가오는 걸 꿈에서도 알고 깨기 싫어 눈물이 났다. 언제 다시 만나냐고 우는 나를 달래던 할머니는 개학 전 헤어지기 싫어 울던 어린 나를 달래시던 생전과 같았다.

 

울면서 깨었지만, 그리움이 통증처럼 박힌 느낌이지만, 행복했다. 집도 세상도 흐리고 어두워 다행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세상의 삶과 죽음이 분간하기 더 어려워진다. 탄생도 소멸도 그 사이의 무수한 감정도 모두모두 찰나의 빛.

 

젊은 작가들 글로 채워진 작품집에서... 고모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지, 자살을 하려고 했다가 다시 살아보자고 했다가 그렇게 어이 없이 죽었지, 그런 내용들이 줄줄 기억난다. 죽음은 일상의 사건처럼 닥치고. 누군가는 죽은 이의 이름과 나이를 물려받아 평생을 살기도 하고.

 

이렇게 요약하면 작가들이 애써 복원한 서사들이 다시 납작해지니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잠이 덜 깨고 꿈에서 못 벗어난 채로 다시 졸리는 시간에 읽은 것을 헷갈리며 쓰는 내 탓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몰라서 나무로 만든 종이책들을 중독자처럼 읽고 기록하는 일상은, 연필로 만든 샌드위치를 씹고 삼키는 식이장애와 너무 닮아 있다. 뭐가 더 악몽인가. 매일 밥상을 차리는 일만이 경건한 지옥이다.

 

뭐라도 먹어야지.”

 

내 조상들은 본가를 달갑게 물려받으려 하지 않고, 제 삶 추스르며 살기도 종종 버거워하는 후손들 생각에, 짐만 될 자개장을 모두 처분하셨다. 기억 속 자개장들이 순간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있는 줄 단 한 번도 시험을 못해봐서 원통하다.

 

이런저런 계산도 말고, 존재하지 않는 과거나 아무도 모를 미래도 염려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활짝 펼치고 바삭하게 말리며 호쾌하게 웃으며, 그렇게 살았던 시간들이 세대를 이어온 아무개 여성들의 풍경이기도 했으면. 박완서 작가님이 묘사한 그 유쾌한 한 때의 정경이 그립다.

 

사는 일 자체가 모든 혼란인 와중에 어린 나를 사랑해준 할머니께서 바스락 밝은 한복을 입고 다정하게 쓰담쓰담 해주셔서 지난 밤 꿈속에서 완벽하게 행복했다. “이상하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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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때문에 퇴사하고 싶은 너에게 - 누구와 일해도 나의 커리어를 지키는 매니징 업 기술
메리 아바제이 지음, 정지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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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이라는 게 의미가 있을지 여부도 모르겠지만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다. 평생 다닌다 해도 어떤 심정으로 버티는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이직을 좀(?) 했다.

 

사건, 사고, 의지, 꿈이 이유라기보다, 학교, 연구소, 유럽의 직장들, 국내 해외기업은 계약고용이 기본이었고, 나는 어디서 살 것인지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이 많았다. 더 이상 바쁘기 싫어 이직한 공사가 눌러앉을 유일한 기회였을까.

 

책 덕분에 어쨌든 20대 대학원 조교부터 쭉 이어진 다양한 직장들의 상사들과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고 결국은 나에 대해 처음으로 시간 흐름을 따라 최대한 세세하게 복기해보았다. 그러니까 상사가 이유가 되어 이직/퇴직을 한 적 없는 이상한 직장인이 나였다.

 

그건 사실 그런 이유였는데, 타인으로 인해 삶이 변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오만과 고집인 지도 모를 일이다. 책임질 줄은 모르고 일만 방해하던 임원들과, 미팅에서는 다 알아듣는 척 하고 다 끝나고 거의 모든 것을 질문해대던 담당자는 분명 견디기 힘들었다는 기억을 담고 있으니까.

 

한국사회, 한국인 저자가 아니고, 이 책에서 기반을 둔 통계의 표본 기간이 내 세대와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겠지만, 경력직 면접에서 이직의 이유로 99%가 상사라는 대답은 놀라웠다.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단호한 가이드를 전한다. 이상적인 직장은 없다. 그런 상사도 없다. 더 최악을 만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계속 피하면서 나만 이직할 수는 없다. 컨트롤 주도권을 스스로 잡아라.

 

상사의 유형들이 일반적인 유형들(4)과 최악의 유형들(10)로 나뉜다는 것이 어쩐지 약간의 안도감이 들어 웃프다.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만나본 유형인데 이 책에서 가장 두렵고 다루기 힘든 상사 중 하나로 분류된 유형이 나르시시스트이다. Full of oneself!


 

나르시시스트는 (...) 권력과 관심에 굶주리고 이기적인 지옥의 상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자아의 중요성과 특권 의식이 너무 부풀려져 있다. (...) 칭찬과 인정, 아부에 대한 욕구가 끊이지 않는다. (...) 누군가를 탓하는 움직임 또한 빠르다. (...)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하며 실패도 인정하지 못한다. (...) 직원들이 그의 부풀려진 자만심을 달래느라 전전긍긍하게 만들어 해로운 업무 환경을 조성한다.”


 

이런 최악의 상사도 매니징이 가능할까. 대답은 예 그리고 아니요이다. 적당한 존중심, 칭찬, 험담 금지, 성공 경력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배우기, 이미지에 호소, 능숙한 조종력 경계, 문제는 내가 아니라는 확신.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하면 벗어나야 한다고. 괜히 최악이 아니다. 퇴사가 정답일 수 있다. 결심이 끝났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퇴사 준비다. 가장 중요한 내용일 수 있으니 이직/퇴사를 시도할 독자들은 내용을 잘 기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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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야라 AA TOP #5 - 5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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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로 보냈는데 기뻐하니 즐겁다. 밀봉만 잘 하면 기막힌 향과 맛을 오래 즐길 수 있다. 힘든 봄날 향기롭고 따뜻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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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스물네 시간
황현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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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만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제목은 그런 뜻은 아닐 것이다. 공감이란 인지이든 감각이든 느끼는 것이니, 대상이 무엇이든 어떤 시공간이든 감정을 따라 기록해보는 일도 흥미롭다.


 

오늘은 저자를 따라 내 곁에 있는 이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다정하게 바라보고, 그들의 스물 네 시간이 무탈하기를 더 바라고 싶은 날이다. 눈에 띈 누구의 시간도 그러하기를 간절히 빌고 싶은 날이다.


 

언제 어떻게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게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날의 희생을 잊지 말고 지우지 말고 다시 기억하는 날이다. 그들 모두가 꿈 꾼 눈부신 미래와 가능성이 갑자기 사라졌음을 아파하는 날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두의 슬픔을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은 날이다. 그날을 아무 것도 잊을 수 없어도 계속 살아가는 이들을 응원하는 날이다. 비슷한 참사와 비극이 없도록 우리가 질 책임에 대해 숙고하는 날이다.


 

인간의 삶과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팔을 뻗어,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들도 제각기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날이다. 이미 저지른 일이야 뻔뻔스레 모른척 하지만, 오늘부터라도 덜 유해하게 살아보자고 결심하는 날이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핀 노란 꽃들이, 찬사도 보호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머무는 생명들에게 눈길을 주고 인사를 건네는 날이다. 손수건 한 장으로 부족했던 눈물과 콧물을 닦고 다시 나선 어스름한 시간에 다시 기도하는 날이다.


 

밤이 깊어지면 그리움에 지쳐도 잠을 못 드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빠른 휴식이 찾아들기를, 숨 쉬기가 많이 어렵지 않기를 바라는 날이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는 고백을 바꾸어 전하는 날이다. 오늘은 그런 스물 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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