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 정지돈 첫 번째 연작소설집
정지돈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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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자가 넘는 이 책의 제목에서 운전하며’ ‘구술한에 주목하고 읽는 동안 잊지 않으려 했다. 연작 소설의 중심 개념이 이동성 혹은 유동성mobility’이기 때문이다. 개념이 풀어진 묘사나 서술을 찾는 방식도 읽기의 재미였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요구하는 문화적 투쟁이다. (...) 내년에 세상이 망한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어? (...) 세계는 세계의 사념이야. 하나의 사건은 원인들을 초과하는 과잉 - 결과고.”


 

정지돈 작가의 작품을 반가워하는 독자인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인들도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설득할 능력은 없다. 나도 문해를 다 하고 즐긴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잘 안 읽혀도 즐거운 문학은 아주 많다.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오래 머물러 생각하면 알 듯한 문장들도 있고, 저항감을 느끼며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있다. 둘 다 오독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답답하고 갑갑한 기분이 작품의 이동성을 따라 다니며 시공간의 변화를 경험하니 즐거웠다.

 

그러나 그 거리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관념과 매체 속에서 공간처럼 오갈 수 있는 장소다.”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일차 움직임을 재현하고, 그 의미에 대해 해석하고 기존의 개념을 흔들어보고 여러 움직임을 통해 인간관계와 세계에 대해 질문하고. 현실 고착과 정체가 지겨운 나는 새로운 오락게임처럼 재밌었다.

 

진정한 문학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


 

어설픈 일독을 마치고 나니 제목이 이어지고 길어진 이유를 알 것 같다. 움직임을 멈춘 적 없지만 고정된 존재처럼 보이는 형태들이 종종 내 꿈속에 찾아와서 함께 달리거나 걸었으면 반갑겠다. 그 길이 잘 이어져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너무 쉽게 잊혔던 사람들과 생각들과 연결고리들을, 아니 사실을 잊힌지도,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것들 사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연결을 만드는, ‘발굴해서 박제해 보인다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곧장 달려나가는 일종의 탈것을 만들어내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형태적으로 여러 군데에 흩어진 파편들을 섬광처럼 한꺼번에 드러내는, 이 책의 실린 작품들이 움직이는 방식 그 자체가 중요한 예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들을 읽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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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센스로 시작합니다 - 일은 프로답게. 말은 확실하게. 일상은 감각있게.
이현 지음 / 천그루숲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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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sense’라는 단어는 문맥과 상황에 따른 해석이 필수이다. 자연과학 전공자들에게는 감각을 사용하여 관찰하는 일sensing이 가장 기초적인 과학 행위이다. 사회학자에게는 사회적 문제에 민감한sensitive 정도가, 의사소통에는 의미 이해가 되는making sense 설명이 중요하다.

 

감각이 있다란 말은 안목이 있다는 뜻으로 주로 들렸는데, 이는 분별력과 지능과 지식과 취향과 미학 등등 무척 종합적인 능력으로 느껴진다. 순발력도 요구되니 실은 활용에 있어 쉽지 않은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글자 그대로 감각 기관이 노화되고 있고, 유입 데이터량이 줄면 당연히 판단력도 저하될 것이라서 이래저래 걱정이 된다. 한편으로는 덕분에 이런저런 이유로 다 그만 두고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은밀한 기쁨도.

 

어쨌든 센스는 직업 한정으로 필요한 능력만도 아니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삶에 유용한 문화자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일, , 일상이라는 세 분야에 맞춤한 설명을 전개했다. 독자층이 상당히 넓을 수 있겠다.


 

!

 

- 하지 말아야 할 일/해야 할 일 리스트 : 업무 환경과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책에서 정리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내용 정리가 가능하고 일터에서 활용하려면 분별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센스란 곧 분별력이며 업무이해력이다.

 

기우이겠지만, ‘열심히 한다거나 최선을 다 한다는 표현은 아예 생각에서 삭제시키기를. 뭔가 개인적으로 도전할 때 할 말이지, 업무담당자의 태도라면 안 될 일. 계약하고 돈 받는 업무란 반드시 목표/결과에 도착하는 것이다.

 

업무 보고는 논문 초록을 넘지 않는 분량으로 핵심 문장들과 참고 자료 목록/첨부만 정리되어야 한다. 길게 쓴 글을 읽을 시간이 없다. 조직 내 별개의 메신저(보안 등의 이유로 설치된 경우)로 담당자들끼리 사전 소통 가능하다면 꼭 활용할 것.



 

!!

 

- 이과적 말하기 센스라고 표현하는데 비유일 뿐이고 이과들이 말은 더 못한다. 다만 간명하고 핵심어나 통계 숫자 등 정확한 방식의 제시가 중요하다. 그래픽으로 한 눈에 보이는 문서 보고서는 더 좋다. 단 문서 작성 시 시간 배분 주의할 것.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센스이겠지만, 내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만큼 상대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질문을 통해서라도 꼭 정확하게!


 

!!! 일상

 

- 관심, 공부, 지식 확장 : 가장 어렵고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대부분이다. 관심 분야에 대한 센스는 공부를 통한 지식 확장이 필수이다. 개념과 이해는 언어를 통해서 커진다. 단어와 어휘량은 사유 능력과 같다.

 

부피만 말고 깊이를 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부와 경험을 충분히 하면 가장 마지막에 얻게 되는 반가운 것이 안목이다. 역시 새롭게 배워보아도 센스 함양이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빨리 시작하고 많이 오래 하다보면 자신만의 안목은 반드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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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 자기증명과 인정욕구로부터 벗어나는 10가지 심리학 기술
마이클 투히그.클라리사 옹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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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못 느끼는 사람은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과 질병에도 반응하지 않는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불안 역시 진화 과정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라고 한다.

 

물론 불안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괴로운 경우도 적지 않다. 공황발작에 이르지 않게 스스로를 불안해하며 사는 이들이 나를 포함한 주변에도 여럿이다. 원인은 다양하고 중복된다.


 

완벽주의 테스트 결과가 긍정/부정 두 가지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 완벽주의를 유지하라는 조언을 담고 있어서 무척 고마웠다. 저항감이 스르륵 사라졌다. 무언가를 제대로 하려면 완벽 - 흠이 없는지 - 거듭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충 대강 긴장감 없이 일하는 사람과는 절대 한 팀이 되고 싶지 않다.

 

나중엔 모니터나 종이만 봐도 구역질이 날 만큼 읽어도, 여러 명이 검수해도 인쇄가 되고 나면 오타가 있는 논문과 책 작업을 예로 들면 불안과 완벽을 지향하려는 노력이 겨우 그만큼의 오타만 허용했다고 위무할 지경이다.

 

많은 일이 그렇다. 운이 나쁘면 예상치 못한 돌발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그러니 불안을 모두 내려놓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더욱 위로 같은 제안, ‘완벽주의와 교류하는 새로운 방식을 책을 통해 잘 배우고 싶었다.


 

! 완벽주의의 두 가지 양상

- 적응적 완벽주의 : 높은 생산성, 보상, 충족감

- 부적응적 완벽주의 : 긴장, 과도한 통제, 인간관계 파탄, 상습적 미루기, 질책, 자기증명집착, 타인인정집착


 

게다가 나는 분명 강박증도 있다. 시공간이든 인간관계든 견디지 못하는 기준선이 분명하고 감당 못하는 경우라고 판단하면 결별에 미련이 없다. 관리강박과 가장 유사하다는 친구들의 평... 변명을 하나만(?) 하자면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시간낭비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일종의 강박으로...


 

대담과 실제 자료들은 늘 구체적인 의지가 된다. 실천 방법들 중 자신이 따라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시도하는 것으로 좋겠다. 자꾸 잊어버리는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독서였다. 조금만 천천히 유연하게 호흡을 고르자고 결심한다.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것, 설레며 하루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라. 거기서 출발해라. (...) 당신이 선택했기에 옳다. 당신의 가치를 변명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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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라 알퀴미아 #4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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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대면이 무척 설렌다. 올 해의 행복한 경험들로 알라딘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기대가 한 단계 상승했다. 산미도 좋고 단미도 좋고 잔향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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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이터 - 디베이팅 세계 챔피언 서보현의 하버드 토론 수업
서보현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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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삶을 따라가며 토론 경험을 만나는 에세이 구성이라, 긴장한 몸에 어느덧 힘이 좀 빠졌다. 주제와 고민을 최단거리로 해법을 향해 달려가는 오랜 버릇의 속도를 좀 늦췄다. 토론과 대화를 위한 속도부터 다시 생각해보았다.

 

! 토론의 다섯 가지 기술 : 논제, 논증, 반론, 수사법, 침묵

 

- 논제는 타당한가, 오해의 여지는 없는가, 실재하는가

-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주장은 무엇인가

- 반대는 합당한가,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하는가

 

! 토론 기술의 적용 : 삶과 토론의 관계

 

국가란 이런저런 논쟁들이 발전해 이룩해낸 결과이기도 하다.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 중에 이만큼 인간의 다양성과 우리의 열린 미래에 경의를 표하는 관점은 없을 것이다. (...) 좋은 논쟁은 사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추구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토론을 한 경험이 있는지, 토론을 할 의향이 있는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한 경험이 있는지 등의 질문을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 하고 간단 질문, 부담 없는 답변을 부탁했다.

 

작은 집단임에도 경험의 격차가 컸다. 격동의 역사와 압축 성장 등으로 인한 천차만별의 삶이 수없이 다양한 가정과 인간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권위와 위계가 강한 분위기라면 토론은커녕 대화도 드물었다.

 

개인, 가정, 사회가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가 토론이 실종되고 혐오와 욕설과 막말과 무지성이 난무하는 현재일 것이다. 요인들은 아주 복합하고 종합적이겠지만, 미스터리가 아닌 정책과 교육과 문화가 큰 맥락을 이루는 문제들이다.

 

장기적 이익이나 공동의 이익보다 단기적 이익, 사적 당파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을 곳곳에 음식을 감춰두는 습성을 가진 다람쥐에 빗댄 것. 토론에서 입론자가 주제를 가지 입맛대로 변형시킬 때 다람쥐라고 부른다.”*

 

* 종차별주의적 시각이긴 하지만, 그들의 토론 관련 어휘와 의미를 배웠다.


 

기사 댓글을 읽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의사도 시간도 없지만, 들은 바로는 최악의 무지성과 혐오와 막말의 각축장이라고 한다. 내용을 고려할 가치는 없지만, 사회학적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한다.

 

타인을 설득하려면 무지, 비논리와도 싸워야 하지만, 무심함, 냉소주의, 무관심, 이기심, 허영과도 싸워야 했다. 이런 장벽들이 모려 절대 넘을 수 없는 문턱을 만들었고, 그 문턱을 넘어서서 뭐든 하게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라도 토론이라는 문명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생각과, 자꾸 침묵하고 싶은 무기력증을 품으며 살아가는 나를 위해 배움이 갈급해서 반갑게 읽었다.

 

토론의 힘은 일대일로 얼굴을 맞대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마법에 있다. 토론을 벌일 때는 항상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해야 한다. 토론에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같은 건 없다. 우리는 한 번에 한 문장씩, 좋은 대화를 이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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