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나태주 지음 / 더블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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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기만 하자고 정한 주말인데 무시할 수 없는 두통에 아침도 오전도 그저 놓쳤다. 계획도 없었지만 머리에서 울리는 심박수를 세다보니 더욱 더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는 불유쾌한 기분. 미소와 표정이 늘 기분 좋은 분의 일상을 찾아보고 힘을 얻었다.


@therealmargaretatwood

노벨문학상 수상하실 때까지 힘내서 응원해야지!

 

두통이 없는 듯 생활해보자 결심하고 마실 것 마시고 먹을 것 먹고 산책하고 나니 아주 옅은 통증만이 남았다. 못 참고 부린 어리광에 위로를 보내 준 다정한 이들 덕분에 훨씬 빨리 나았다. 약 오르게도 몸의 통증이 현재만 살게 도와준다. 집중의 폭이 아주 좁아진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당장 걱정할 것 하나 없는 삶이고, 또 다르게 따져보면 느긋하게 사는 게 철부지 같은 삶이다. 해고, 투병, 사고, 심각한 불화 등의 강렬한 시기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뭐 하나 즐겁게 바라는 대로 사는 목록도 없다. 어느 쪽이 더 어두운 터널에 진입한 것일까.


 

남의 불행으로 비로소 자신의 덜 불행에 안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걸 결국 별 의미도 없다는 걸 알 지만, 나태주 시인이 예순이 넘어서야 잘 사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조금 위로가 된다. 이 나이에 이런 정도의 어른 밖에 못되었구나 싶은 모멸감이 쓸려간다.

 

“‘나도 이렇게 아팠는데 일어났으니 당신도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이겨냈으니, 당신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모든 순간들이 모두 새로운 기적이라고 이해도 하고 믿기도 한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저 얼굴이 가장 고마운 일이라는 것, 각자의 방에서 지내다 다음날 아무 일 없다는 듯 만나는 일도 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사는 땅이 아직 물에 잠기지 않았고, 태풍에 집이 날아가거나, 우박에 다치는 일이 없다는 것, 물과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것, 식재료가 충분하다는 것,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때론 눈앞이 깜깜해도 보이는 척 하면서 산다.

 

잘하려고 애쓰고, 이기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삶을 그만둔 지는 오래되었다. 애초에 경쟁이 즐겁지도 최적화되지도 못한 참가자였달까. 그래서 반갑고 다정한 지혜들이 때론 막다른 길의 표지 같기도 하다. 불행해지는 일들을 하지 않아도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그래서 무척 위로가 되었던 이 책의 제목도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좋아질 거예요가 아니라 괜찮아질 거예요. 어쩐지 나의 인지하는 뇌가 세상에 좋아질 건 없다고, 괜찮은 것, 무탈한 것이 최고라고, 그런 타협을 단단히 받아들인 것만 같다.

 

질 줄 아는 것도 마음의 능력이다. 그건 마음의 넓이, 유연함, 너그러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인만큼 죽음에 가까이 간 건 아니지만, 심장이 뇌에서 터질 것만 같은 두통을 겪었으니, 지금은 가능한 모든 것이 고맙다. 깨끗한 식수, 잠시만 시간을 투자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 편안한 침구, 안전한 집. 내일은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까. 시인의 약속을 믿고 싶다.


 

시인은 글을 쓰고 병원에서의 불안과 절박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온갖 시시껄렁한 하소연을 하고 나니 어... 기분이 좀 가볍다. 불안의 꼬리가 걱정의 치렁한 옷자락이 싹둑 잘린 것처럼 가뿐하다. 살기 위한 글쓰기는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다 맞나보다.

 

몇 년간 나태주 시인의 글을 읽으며 여러 도움을 받았다. 서둘러 실수하지 않도록 잠시 멈춤마법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그러니 스승이시다. 강건하게 건필하시길, 글로 자주 만날 수 있기를. 515일이다. 고맙고 그리운 스승들이 떠나셨고... 여전히 내게 계시다.

 

* 오디오북은 김영옥 배우님 목소리로 녹음된다고 합니다. 기쁘고 기대되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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