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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 -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백지운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평점 :
전쟁 중인 국가에서 산다는 사실도,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300년 남짓 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대개 잊고 태평하게 산다. 기록을 보면 한국 전쟁 중에도 최전선의 상황과 달리 후방의 일상은 태평했다고 한다.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한 생존 방식 - 일개미는 일하고, 여왕개미는 알 낳고 전투 개미만 싸우는 - 이 인간 사회의 양상으로 해석하면 괴이해지는 괴리가 생긴다. 문화와 사회에는 가치 평가와 의미 판단이 개입하니까.
오래 전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돌도끼와 왕조사를 제외한 한국 근현대사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꾸준히 공부를 이어나가진 못했지만 역사란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운다.
이 책은 미스터리와 비밀을 밝히듯 새롭게 배운 내용이, 시점이, 판단이 특히 많았다. 6.25에서 한국전쟁으로 바뀐 한국 내에서의 호명이 아닌, 중국의 공식 명칭 항미원조로 만난 전쟁의 서사였다.
적어도 3년 간 진행된 전쟁에 관여한 모든 국가 - 미국, 소련, 중국, 그 외 전 세계 20여 개 국 - 의 의 서사들이 모여야, 왜 한국 내전이 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질 뻔한 국제전이었는지 전체 풍경에 가까운 사실이 나올 것이다. 또한 현재 한반도의 정세와 외교가 왜 첨예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도.
“항미원조의 귀환은 1970년대 이후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형성된 미중 공조 체제의 역사적 시한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 갈등에서 시작하여 바이든 정부에서 전면화된 미중 대결의 정치 공간으로, 사라졌던 항미원조의 기억이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분단과 동족상잔, 이산가족 등에 집중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까지 한반도의 휴전선은 동아시아 냉전 체제의 휴전선이기도 했다. 그 대가로 한반도와 한국인들은 세계의 최강 세력들이 대결을 펼친 사회, 경제, 이데올로기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체험하며 살았다.
“전쟁이란 결국 정치를 위해 벌이는 쇼에 불과하며 전쟁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평범한 백성들이다.”
중요한 질문들을 많이 만났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중국인에게 이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은 왜 이렇게나 치열하게 직접 참전을 하고 전력을 쏟았을까,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 항미원조에 대한 발언은 왜 중국에서 금기였을까.
“드러내놓고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모호한 레드라인이 숨겨져 있어, 건드리기도 쉽지 않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고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아주 많은 한국인들이 읽은 삼국지의 내용은 상식과 교양처럼 한국인들에게 익숙하다. 그에 비해 73년 전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반도에서 발발한 미국과 중국 전쟁’처럼 보이는 이 전쟁에 대해서는 자료도, 책도, 논의도, 대화도 부족하다.
중공군, 인해전술로 기억되던 전쟁의 실상에 있었던 중국 병사들을 만나며, 역사의 단편이란 얼마나 부족한 오해인지 절감했다. 안다고 생각한 완전히 이질적인 역사를 배우는 시간은 충격적이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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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이 무엇이건,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 갈등을 야기하고 고조하는 누구든 나와 우리 모두의 적으로, 전쟁 미치광이로 여길 것이다. 지구 상 어디의 전쟁이라도 모두 사라진 그런 지구에서 잠시라도 살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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