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의 마음 - 삼척 생활 에세이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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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으로 들어가야 하고, 안에서도 중심에 가까워져야 성공이라고 주류라고 배운다. 중심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변두리경계(아웃, out)’은 실체와 본질과는 상관없이 상대적 개념에 갇힌다.

 

고유한 자연 풍경과 생활방식을 가졌던 중심이 아닌 지역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사회의 거의 모든 자본과 자원이 중앙 집중화되는 것을 지켜보며 소외와 박탈감을 갖는다. 뒤늦게 개발광풍에 뛰어들다보면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망치게 되기도 한다. ‘신도시라는 공간은 괴이할 정도로 전국 어디나 비슷하다.


 

가장 먼저 자연이 망가지고, 자연스럽게 살던 동식물들이 다치고 죽고 쫓겨난다. 그다음 거주민들의 공동체가 망가지고 알던 삶이 사라진다. 지워지지 못할 상처가 생긴다. 알던 풍경이 사라지는 서러움을 조금은 아는 지라, 등을 가만히 쓸어주는 것 같은 글을 감사히 읽었다.

 

한번 망가지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은빛 모래, 생명이 살지 못하는 바다, 기후위기에 놓인 지구, 건강을 잃을 지구의 생명체들. 이 모두가 무너지고 나면 복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던 곳만 가는 버릇 때문에, 추억이 없는 삼척 도시를 책 덕분에 골목길, 밥집, 제철 음식까지 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일상을 살만하게 돌보는 일이 즐겁기보다 지치는 독자로서, 유쾌한 풍경마다 그 일부가 되지 못한 부러움과 대상과 시절을 특정할 수 없는 그리움이 들락거렸다.

 

저자의 여러 입장들 - 내부인, 외부인, 경계인 - 이 시선의 각도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변화시킨다. 동해와 삼척의 묘한 경쟁 관계를 재밌게 읽다가 묵호가 고향인 지금은 연락이 어려운 친구 생각이 났다. 해변과 언덕과 항구와 기차역, 그리고 골목길과 시장과 마을. 내가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곁에 있는 사람을 코앞에서 바라보게 하는 고요한 시간, 세상의 무자비한 속도를 잊는 아득한 길, 지붕과 지붕 사이로 보이는 손바닥만 한 파란 하늘에 마음 저 아래가 가만히 흔들리는 시간 (...)”


 

개발서비스 사업으로는 만들 수 없는 공간과 분위기다. 지금은 계신 분들도 나이가 더 드시면, 건강 문제로 그만 둘 수밖에 없는, 그게 아니라도 유흥가가 아니라서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매일 조금씩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운 풍경이다.

 

살아온 시간이 흘러 그대로 길이 되고 집이 된 마을. 봄 바다에서 불어오는 순한 바람과 햇볕. 그게 전부였다. 그게 전부여서, 별것이 없어서 내 마음은 설렜다.”


 

지방을 감성으로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글에 즐겁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저자가 관광객이 아니라 삼척에서 근무하는 새로운 내부인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생활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익명성이 편하다고 느끼지만, 타인을 모두 적대시하는 태도를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몰라도 경우에 따라 인사는 나눌 수 있고, 사소한 것이라도 도울 수도 있다고 믿는다. 삼척에 가게 되면 낮은 건물 속 사람들이 분주한, 그런 마음에 드는 길을 오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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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와의 대화, 생산성을 말하다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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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은 반드시 집중력 저하는 야기한다. 생산성은 피곤한 이들을 오래 작업장에 잡아 둔다고 느는 것이 아닐 것이다. 소위 정밀하고 섬세한 생산 기획이라면 더구나. 오용되고 오해받고 오독되는 한국 사회의 생산성에 대한 개념과 생각을 변화시켜줄 선명한 지적을 담으셨을 거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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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10주년 기념 에디션)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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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우승을 경험한 선수 누구라도 우승하지 못한 팀의 에이스보다 낫다는 스카우터의 글을 읽었다. 경험을 해봐야 어떻게 하면 우승하는 지를 정확히 안다. 한 분야에서 고수가 된 분들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고 배울 점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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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질문법 - 최고들은 무엇을 묻는가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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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와 방향성과 바라던 결과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시작하는 질문에 있다. 질문이 겉돌거나 통찰력이 없거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면, 대답은 듣지 않아도 뻔한 일. 그렇게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내는 방법과 훈련을 배우게 될 유익한 가이드북일 거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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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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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조의 에세이지만 주인공은 군자씨 다.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사라진 한반도는 곧 전쟁으로 불바다와 폐허가 되고, 반으로 잘리고, 남쪽엔 미군이 상주하게 되었다. 집성촌에서 일해서 아이 둘을 먹여 살린 여성이다.

 

군자(1941~2008): 한국인. 여성. 생존자. 디아스포라. 유령.


 


식민지에 태어나 전쟁에서 살아남고 독재를 겪고 온갖 다사다난을 겪은 조부모님들 얘기를 통해서만 참상을 전해들은 나는 폐부를 찌르는 몸의 감각도, 이산의 슬픔도, 상실의 아픔도 없이 운 좋게 살아왔다.

 

지구가 가열되는 것이 가장 두렵지만, 2022년 봄, 과거의 유물 같던 먼 곳의 전쟁 소식에 뇌진탕인 듯 멍하고 어지러웠다. 무지성과 폭력의 최정점에 자리한 윽박지르는 힘의 논리인 전쟁은 과거기록 속으로 사라진 게 아니었다.

 

대단한 이유도 대의 같은 것도 없다. 모든 전쟁은 최악이고 추악할 뿐이다. 이 책에 담긴 것은 전쟁의 참상이 아니라, 생명을 건 생존기이자 신성한 힘이 있다면 이럴까 싶게 가족을 꽉 붙들고 유지해온 분투기이다.

 

용감하고 대단했던 군자씨는 조현병에 걸리고 만다. 저자는 병을 계기로 어머니의 삶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체면이라는 겉치레가 대단히 중요했는지, 여기저기서 이중적인 잣대를 휘둘렀다. 제일 크게 떠들고 선동한 이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챙겼을 것을 생각하니 역겹기 그지없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뇌에 문신을 새기듯 확인한 것은, 전시에 여성(과 아이들)을 얼마나 함부로 이용하고 버리는가이다. 전쟁 영웅처럼 애국심을 가스라이팅해서 참전하게 하고, 물리적, 심리적 성적(性的) 고통을 가한다. 후방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끌어들여 성매매 사업을 벌인다. 일본과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기획, 추진, 장려되었다.

 

놀랍게도 전쟁과 성매매 양상은 범국가적이고 공통적이고 유사하다. ‘군자의 경험과 삶은 범세계적이다. 뚝뚝 떨어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에 체력이 한 움큼씩 쓸려간다. 독자와 저자와의 거리가 가깝고 복잡하고 뜨거운 에세이를, 체력도 기력도 부족해서 한동안 안 읽었구나 싶다.


 

부모의 양육 노동이 있어서 내가 성장한 것은 맞지만, 내 어머니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은 아니셨다. 그래서 죄책감 없이 가볍고 그 점이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군자씨가 어떤 심정으로 나이와 무관하게 있는 힘껏 책임을 다하며 살아왔는지를 영 모르는 건 아니다(라고 믿는다).

 

내 글은 내 말보다 직설적이고 과격하다. 나는 대면한 상대에게 뾰족한 말을 내뱉지 않으려고 늘 힘껏 조심한다. 어떤 삶을 사셨고, 어떤 심정으로 지금 나와 만난 것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르고도 분투가 이어지는 삶의 고단함을 서로 짐작하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주장을 힘차게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지만, 상대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그 외의 모든 다른 것을 이유로 모욕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은 무조건 잘못이다. 비겁한 일이다. 더구나 상대가 나보다 약해 보여서, 만만해서, 내게 잘 해주는 다정한 이라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군자씨가 살아남았다는 것, 좀 더 당차게 살 생각은 못하고 다 산 듯 구는 내 태도를 조금은 반성할 정도였다. 생명은 참 빛나는 것이다. 감동적이다. 용기란 기적과도 같다. 그러니 나 자신만 마고 주위를 둘러보기를 더 간절히 바란다. 가장 취약한 존재였지만 살아남은 영웅들, 그 세월이 너무 고단해서 병들고 아픈 이들을.



 

그 단어가 더 이상 수치스러운 말이 아니었으면 해요. 그 여자, 나한테는 영웅이니까. (...) 나는 엄마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에세이라서 분량에 겁먹지 않아도 좋을 책이다. 다만 나는 펑펑 울며 정신을 놓았다가 엉엉 울며 정신을 추슬렀으니, 마음의 준비 혹은 체력 대비를 하시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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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7-31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드디어 이 책을 다 읽고, 마음은 벅찬데 어떻게 기록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알라딘을 뒤지다가 poiesis님의 감동적인 리뷰를 읽고 갑니다. 저는 사실, 호기심, 다음 장에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호기심이 커서 울 틈도 없었나봐요. 펑펑 우시며 읽으셨으니 더 오래 남으실 듯 합니다.

poiesis 2023-08-02 14:11   좋아요 1 | URL
7월에 전해주신 소식을 이제 읽었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아서 눈물이 많습니다. 근래에 더 그러하니 아마 책을 이렇게 불순하게 소비하며 일상을 견디는 버릇이 들었나 봅니다. 벅찬 마음으로 올려 주실 글 고대하겠습니다. 모쪼록 폭염에 무탈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