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 월스트리트 저널 부고 전문기자가 전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
제임스 R. 해거티 지음, 정유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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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저널리즘은 공동체가 알아야 할,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들, 의미 있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 속보와 단독을 달고 포털에 식재료 공급하듯 기획과 취재가 빠진 단신을 배달하는 행위를 기사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속도전에서 가장 멀리 있는 기사가 이 책이 다루는 부고가 아닌가 한다.

 

함께 살던 공동체의 누군가가 생을 다했다는 마지막 기록이다. 어떤 삶을 살았고,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은 이별과 혹은 추모와 혹은 타석의 기회로 삼을 배움의 순간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누구에게나 도착할 죽음에 대해 잊지 않음으로써 삶을 더 귀하게 여기자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길었던 팬데믹 기간 동안,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을 짧은 부고로 만나기도 했다. 이력을 요약한 것처럼 정보가 나열되어 있어서 쓸쓸하고 서글펐다. 다른 방식의 추모도 따로 있었지만, 한국 역사와 사회에 큰 기여를 하신 분들의 삶과 메시지가 짧은 한순간도 공유되지 못하는 방식이 안타까웠다.

 

제임스 R. 해거티의 부고는 훌륭하고 유명한 이들만은 아니다. 그의 부고는 당사자의 삶을 대신 전하는 에세이 같은 방식의 기사라 놀랍고, 삶도 죽음도 지면도 낭비되지 않는 방식이라 부러웠다. 돌아가신 분들을 그리워만 했지, 글로 기억할 생각을 못했다. 내가 아는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

 

부고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보존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고맙게도 이 책에서는, 한 사람의 삶을 요약하면서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가이드가 있다. 부고는 처음이니, 나도 그의 원칙을 따라 부고 쓰는 연습을 해보고 싶다. 팩트 체크를 다 하지 못할지도, 내겐 유머가 모자랄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 보여야 할 글이 아니니 형식도 내용도 새롭게, 솔직하게.

 

에세이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내가 모르던 이들의 삶을 만난다. 부고기사라고 해서 어둡고 무거울지 모른단 생각은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놀라웠다. 어떤 삶은 한 사람이 살아낼 수 없는 삶 같아서 신기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다시 배웠다.

 

장기기증,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유서, 장례방식과 비용, 할 수 있는 사전준비는 계속 하는 중인데, 내 부고도 내가 쓰게 될까. 유서와는 어떻게 얼마나 달라질까. 사는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이 아직 있을까. 앞으로 나도 완곡어법 대신 사망했다라고만 표현하게 될까. 죽음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는 어떻게 바뀔까.

 

저자가 엄격하게 팩트 체크를 하고 과정과 미화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당사자만이 살아올 수 있었던 고유한 삶에 대한 존중이라고 나는 그렇게 느꼈다. 두루뭉술 남들 듣기에 보기에 좋은 것들을 모아 포장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모욕이자 부정이라고 생각한다.

 

피할 수도 없고 멀지도 않은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며 삶에 대해 더 충실해볼 기회로 삼아보고 싶다. 냉랭해지는 태도를 조금만 더 친절하게 바꾸고 싶다. 말하기 싫어 입을 다무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가볍게 안부를 자주 묻고 싶다.

 

만일 내 부고가 나의 삶을 어느 정도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혹시라도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 인생 이야기를 고쳐 쓰면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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