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문 자리 - 김산아 소설집
김산아 지음 / 솔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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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머문 자리들이 갑작스럽게 텅 비워진다. 스스로 이동한 것이 아닌, 오래 머물지 못한, 놀라고 슬프고 무섭고 아프게 갔을 이들의 머문 자리들에 내처 생각이 머무른다. 몸도 따라 지쳐서 간신히 움직거린다.

 

비우고 떠나는 일은 중요하다. 그걸 늦추느라 건강보다 수명을 택한 인류는 아프고 지친 상태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장수의 형태가 고민스럽다. 내가 머무는 자리나 잘 정리하고 살다가 쓰레기 없이(적게)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무기력해지고 자기연민이 떠오를 것 같으니 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나 보고 배우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너무 길지 않은 몰입으로 여러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라 반갑고 유용했다. 머문 자리와 머물던 자리가 구분되기도.


 

돌아가려면 가진 걸 놓아야 할 거 같아서, 둘 다 가지고 사는 건 이율배반 같아 돌아가지 않을 정도의 양심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평범하게 살기가 너무 어려운 시절에, 다들 평범한 척하며 대단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요란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은 일상에 담담하고 서늘한 대처들이 조금조금씩 위로가 되어 쌓인다. 모두들 누군가를 돌보고 있구나.

 

근래에 본 두 편의 영화 중 하나는 원칙과 희망이 가득한 이가 현실에 부딪치다 좌절하는 결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차근차근 지극히 현실적으로 대처하여 당시엔 승리했지만, 세월이 흘러 어이없이 뒤집어진 사실이 모티브였다.

 

지향과 꿈을 따라 현실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고, 어렵게 이룩한 것들이 어이없이 시간과 함께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혹은 시도나 도전이 전무하기도 하다. 개인도 사회도 불완전하고 허약하다.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였다. 불행해도 죽지는 않을 거라는, 절망이 주는 안도였다. 그건 또 하나의 평안한 일상이었고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일견 힘이 쭈욱 빠지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지친 사람은 물러나고 새로운 이들이 새롭게 힘을 내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안타까움도 돕고 싶은 기분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하면 될 일이다.


 

느리게 가는 것, 천천히 크는 것, 조그맣게 전하는 것들은 (...) 이에 관한 노력과 애착은 (...) 우리의 삶을 언제까지고 부지하며 갱신해가리라 믿는다.”

 

작가의 시선은 깊이 볼 만큼 날카롭고 누구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을 만큼 맑은데, 나는 과거의 모든 판단들이 눈앞을 흐리게 한다. 땅에 발을 딛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우 중에 떠도는 습기처럼 떠돌며 휘둘리며 사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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