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팬들, 하루키스트 모여봐. 하루키의 소설 ‘하나레이 만’ 읽어본사람? 그거 영화로 만든 ‘하나레이 베이’는 봤어? 


하나레이 베이에 서핑을 하러 간 아들이 상어에게 물려 죽고 난 뒤 사치는 그곳을 찾아가잖아. 

하나레이 베이 속 사치는 아들을 잃고 그곳에서 텅 비어버린 공백에 대해서 생각을 해. 하루키의 대부분 소설에서 주인공은 누군가를 잃잖아. 나오코를 잃고, 키키를 잃고, 쥐를 잃고, 연상의 그녀를 잃고, 다자키는 친구들을 잃고, 엄마와 누나를 잃은 다무라 카프카 녀석, 멘시키는 아내를 잃고, 에이코를 잃은 토니타키는 생각하지.



들어온 만큼 뺐는데 원래의 구멍은 이전보다 더 커져 있다고. 그간 소설 속에 등장한 주인공은 왜 그런지 읽고 있는 독자의 이야기 같아.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우리가 보통 느끼는 상실에 대해서 여기저기에 이야기해 놓음으로써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텅 비어버린 이상한 공백과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거든.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건 돈이나 명예가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지. 밝지만 우울한 미도리, 묘한 매력의 오시마와 사에키, 다자키의 사라, 스미레, 아오마메와 덴고, 아키가와 마리에 등 사람으로 인해 생겨버린 공백은 사람이로 메꿔야 한다고 절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모든 소설 속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림 없는 진실보다는 오히려 흔들리는 가능성을 선택하는 게 옳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해.


어쩌다 보니 정작 하고 싶었던 영화 ‘하나레이 베이’ 이야기는 못 했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주인공 사치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게 돼. 화면 속 사치를 따라서 가다보면 사치의 결락을 느끼게 되어서 울컥하다가 동시에 위로를 받거든. 슬픔이란 파도 같은 것이고. 준비되지 않는 모성으로 아들을 키우다 결국 아들을 잃어버린 상실을 깨달았을 때의 사치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해.


마지막 장면 아들이 남겨 놓은 카세트를 들으며 사치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데, 그때의 사치 감정을 마음대로 한 번 써 봤어.




내 마음에 뚫린 공백은 나도 알 수 없다. 길을 잃어버려 뱅뱅 맴도는 느낌일 뿐이다. 이 공허하고 손에 닿을 것 같은데 끝에 도달 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할까. 나는 10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나는 누구이며 누군가의 엄마였고 어떤 남자의 아내였다. 병신 같은 남편이 듣던 헤드 셋이 아들을 건너 내가 결국 듣고 있다. 앞이 보였던 내 인생을 깡그리 망가트리고 깨버린 내 삶에 들어온 남자들을 증오한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남자들은 나에게 먼지만큼도 행복을 주지 않았다. 타카시를 가진 것을 알고도 마약에 빠져 있던 남편도,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타카시도 어쩌면 내가 원하는 바대로 신이 있다면 신이 데리고 가버렸다. 낡은 티브이처럼 죽은 후에도 하얀 빛이 화면위로 깜빡깜빡 헤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경우처럼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성실한 먼지가 안개처럼 가득 껴서 주변을 떠돈다. 남편과 타카시를 떠올리면 그렇다. 불성실한 공기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이미 들어와 버린 내 인생의 낙인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그 남자들이 듣던 헤드 셋을 끼고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들이 내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나도 모르는 새. 그리고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나는, 나는 바보라서... 다리 한 쪽이 잘린 일본인 서퍼를 본 순간 나는 내 마음 속의 공백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내 자신이 먼 옛날에 죽어 풍화되어 바짝 말라버린 거대한 생물의 미궁과도 같은 체내를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서 나는 시간의 구멍을 빠져나와 그 한가운데에 쑥 빠져버렸지만 타카시가 듣던 음악을 듣는 동안 나는 다리 한 쪽이 없는 서퍼가 타카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타카시는, 내 아들은 10년 동안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의 소중한 아들이었다고.



그리고 하나레이 베이를 읽기 싫으면 낭독해 놓은 유튜브가 있거든. 정말 사치가 읊조리는 듯 낭독을 하는데 정말 좋아👍🏻 


https://youtu.be/lrwnR3fVbh8?si=i_mmQ_DzurUYs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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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패트는 원래 일반 스머프가 아니라 갸갸멜이 스머프들을 잡기 위해 만든 복제 스머프였어. 남자들만 있는 스머프들을 미인계로 잡는다는 계획이었지. 

갸갸멜은 실은 물리학보다 화학에 천재성을 보인 과학자였거든. 그런 갸갸멜이 스머프 일망타진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테크놀로지 스머프가 스머패트라는 거지. 하지만 물리학에서 좀 벗어나게 만들어졌는지 파파 스머프로 인해 순화되었어. 

이후에는 완전히 스머프가 되어서 아픈 스머프를 간호해 주며 돌보게 돼. 그러면서 생각해 보면 스머프 종족은 어떤 식으로 번식을 하는 것일까. 

전부 남자인 스머프 마을에 스머패트 혼자 여자야. 근데 여자 스머프가 또 한 명 더 있어. 바로 사세트. 후에 사세트가 등장하지만 사세트는 어린이였어. 

스머패트, 단 한 명의 여자로 살아가는 인생이란 어떨까. 아기 스머프는 어떻게 탄생할까. 똘똘이 스머프, 투덜이 스머프, 배짱이 스머프 등 심지어 파파 스머프까지 스머패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단 말이야. 파파 스머프 때문에 마법으로 스머패트는 박애주의자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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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좋아하는 친구들, 우리나라에 하루키 작품을 제일 먼저 들고 온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분명 누군가 하루키의 소설을 들고 바다를 건너왔을까.


그 사람은 문학사상의 임홍빈이야. 임홍빈은 30년 생으로 하루키보다 나이가 많으며 현재는 문학사상의 일선에서 물러나서 회장?으로 알고 있어. 임홍빈이 한국에 하루키의 문학을 처음으로 들여왔지.

하루키의 초기 한국 출판물은 대체로 임홍빈이 번역을 했어. 그때는 몇 편 되지 않았지. 임홍빈은 문학사상의 회장이기도 하지만 KBS이사도 했고,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은 무슨 일을 할까)도 하는 등 이력이 화려해.


지금보다 훨씬 젊고 강단 있었던 임홍빈은 하루키의 문학을 어떻게든 한국에 들여오려고 했어.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지. 임홍빈이 번역한 하루키의 문학은 일본 문학이라 서점에서 반려당하기 일쑤였다고 해. 반일감정이 심해서 음악은 물론이고 문학까지 제대로 들여올 수 없었지.


일본인이 쓴 책을 우리 서점에서 판다고? 라며 판매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어. 하지만 임홍빈은 좌절하지 않고 하루키의 책을 들고 고속도로 휴게소 가판대에서 팔기 시작했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팔리는 트로트가 한국을 강타하듯이 하루키의 책은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씩, 시나브로 읽히기 시작했어.


만약 어쩌면 그때, 조그만 출판사 사장이자 번역가인 임홍빈이 포기를 해버렸다면 한국에서 하루키가 이렇게까지 대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이 들어.


임홍빈은 하루키와도 친분이 꽤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것에 관한 글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느 책인지, 어떤 글인지 찾을 수가 없네.


그러나 임홍빈은 2017년, 87세에 운수회사의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 3년이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어. 버스회사도 운영한 모양인데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자본을 건드렸던 모양이야.

1심 재판부는 [임 회장이 운영하던 서림 리조트는 존속능력이 의문시됐는데도 자금을 지원하고 채무를 변제해 줬다. 다만 신흥기업을 매각하면서 13억 원 상당의 채권을 포기했고, 월간지 ‘문학사상’을 발간하며 30년 동안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며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되 나이와 건강상태를 고려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어.


문학사상에서 나온 하루키 예전 소설 구입하면 이렇게 하루키 안내서 같은 게 들어 있었거든. 이 많은 하루키 소설 중에서 임홍빈이 번역한 소설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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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키는 주제가에서처럼 지구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꿈의 나라에서 지구의 어떤 부부의 아이로 태어났잖아. 밍키는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부모님이 둘이야. 밍키의 이야기를 대부분은 알 것이고, 또 대부분은 모를 거야.


밍키는 세일러 문 같은 변신 소녀의 조상이자 최상위에 있을 텐데. 원래 밍키는 엄청난 마법을 부릴 수 있는데 지구로 오면서 많은 마법 에너지를 소모해서 어른으로 변신하는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어. 이상한 설정이지? 


밍키는 거의 국민적인 만화로 ‘너와 나의 밍키, 밍키 밍키’ 밍키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이 없었고, 리코더로 밍키를 불어 재끼는 아이들이 많아서 온 학교의 교실, 운동장에 밍키가 영혼의 넋두리처럼 퍼졌어. 한 놈이 어딘가에서 밍키를 리코더로 삐리리 불면 울며 겨자 먹기로 어른들은 그걸 들어야 했었지.


도레미미파미 솔미레미 

도레미파미 솔미레미

레레미레 레미레 솔솔파파 미레 미도도

솔솔솔 라라솔파

미미 미파미레


방구석에 리코더가 있다면 한 번 불어보자. 후후. 근데 밍키는 여자아이들만 신격화한 것이 아니었지. 남자들도 밍키가 방영을 하면 똥꼬에 힘을 주고 앉아서 밍키를 봤었어. 밍키는 중학생 <남자 중학생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는 남자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었지. 이유는 변신할 때 그 실루엣 때문이었어. 


만약 이런 장면이 요즘에 초딩들이 보는 시간에 했다면 가족부, 여성부, 또 뭐 엄마들이 한 소리를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당시에는 여자아이들에게는 나도 어른이 되면 밍키 같은 어여쁜, 또 남자아이들에게는 묘한 환상을 던져주었지.


그랬던 밍키가 난데없이 45화인가? 거기서 죽고 말잖아. 어린이 세계에 대공황이 찾아온 거야. 모두가 티브이 앞에 앉아서 보고 있다가 밍키가 트럭에 부딪혀 죽는단 말이야. 영혼이 빠져나간 아이들은 그 이후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 모두가 그저 몹쓸 바이러스에 걸린 것처럼 멍하고 멍하게 있어야 했어. 


곧이어 찾아온 대재앙. 아이들은 울고불고. 바닥에 누워 머리를 박고. 대한민국이 환란에 빠진 거야. 엄마들은 방송국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방송국 전화에 불이 났지. 


밍키 인형 들고 다니고, 노래 부르고, 리코더 부르고, 밍키 옷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밍키 머리핀에 밍키처럼 커야지, 했던 아이들에게 카타스트로프가 온 거야. 아이들의 일상은 마비가 됐고 방송국 근처에 살고 있는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방송국을 찾아갔지. 


당시의 만화 스폰서가 장난감 회사(이 회사가 발전을 하야 요즘의 반다이)였는데, 밍키의 장난감을 만들고 장난감이 나오는 동안 작화가들이 만화를 계속 연장해서 만들었는데 - 그래야 광고, 후원 뭐 그런 자본이 굴러 들어오는데 여력이 안 된다고 해서 밍키 인형을 중지하는 바람에, 난데없이 밍키가 사망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했다가 그 사달이 난 거야. 


하지만 요즘도 그렇지만 여론의 힘으로 밍키는 다시 살아났고 마지막까지 밍키는 지구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자신의 꿈의 나라로 가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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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8-23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나요? 밍키가 우리나라 캐릭터인가요? 전 밍키가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별로 관심없어서. 만화는 초등이나 보는 거라는 인식 땜에.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군요.

교관 2024-08-24 11:19   좋아요 2 | URL
ㅋㅋㅋ 만화는 초딩이나 어린이들이 보는 게 맞죠 ㅋ. 하지만 그 만화를 만드는 건 전부 어른들이니까, 아직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보는 만화, 듣는 노래, 장난감, 연극을 만드니까. 아 얼마전에 타계한 김민기 시인이 그런 어른이잖아요

잉크냄새 2024-08-23 2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실루엣.....기억합니다.

교관 2024-08-24 11:20   좋아요 1 | URL
기억이란 정말 ㅋㅋㅋ
 

요리사 겸 요리 학원에서 요리를 가르치는 마츠오카는 요리 수업보다는 이상한 말을 하는 수강생을 접한다. 그 수강생은 필요이상으로 양파를 잘게 썰어버린다거나 검게 태운다거나, 전혀 요리에는 관심이 없고 마츠오카에게 차임벨 소리가 자꾸 들린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뇌는 반은 기계로 덮여 있고 반은 정상이라고 한다. 마츠오카는 알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수강생은 증거를 보여준다며 칼을 들고 귀 밑 부분을 칼로 푹 찔러 넣는다. 그리고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그 뒤로 마츠오카 주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아들은 밥을 먹다가 실없이 계속 웃는다. 아내는 밥을 먹다 말고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서 캔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일 대 일 요리수업에서 생닭을 만지지 못하는 수강생이 시키는 대로 닭손질을 하지 않고 못하겠다고 한다.

마츠오카는 못 하겠지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러자 수강생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며 닭을 던져 버리며 이상한 말을 한다. 그때 마츠오카는 칼을 들고 그 수강생의 등을 두 번 찌른다. 그리고 도망가는 수강생을 따라가서 계속 칼로 찌른다. 이 부분에서 기요시 감독의 특출한 연출이 드러난다.

부드럽고 잔인하면서도 무감정의 손놀림과 알 수 없는 통쾌함과 함께 공포를 느끼게 된다. 마츠오카는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서 누구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 다음 시체를 끌어내고 태연하게 손에 난 상처에 대일밴드를 붙인다. 이후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구로사와 기요시의 40분짜리 중편 영화로 특유의 불편하고 음험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이어진다. 큰 교집합에서 보자면 인간은 인간과 떨어져 살 수는 없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가 극에 달아있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관음 그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누군가 침범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두운 공간과 음향 그리고 마츠오카의 표정만으로도 깊은 공포감을 주는 영화다. 현대인의 불안한 단면,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그 단면이 너무나 극단적이다. 인간이 최악이 되었을 때 주위에 널려 있는 날카롭고 뾰족한 것으로 누군가를 한 없이 찌르고 싶어 진다. 마지막 장면은 사쿠라 핀 집 앞을 보여주며 끝나는데 벚꽃이 이토록 절망적이고 무섭게 보이는 건 또 처음이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은유로 채워진 ‘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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